♡ 지혜로운 사람과 어진 사람 ♡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자는 움직이고, 어진 자는 고요하다.
지혜로운 자는 즐기고, 어진 자는 오래 산다.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
지자동 인자정(智者動 仁者靜)
지자락 인자수(智者樂 仁者壽)
<논어> 옹야(雍也)편
처음 이 구절을 접한 것은 중학교 한문시간이었던 것 같다.
樂을 ‘낙’ 또는 ‘락’으로 읽으면 즐긴다는 뜻이고 ‘요’로 읽으면 좋아한다는 뜻이라 했다.
한 글자를 뜻에 따라 달리 읽는 것도 신기했지만, 이 구절도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알쏭달쏭했다.
지혜로운 자와 어진 자, 둘 다 본받을 만한 사람인데 어느 쪽이 더 좋다는 말일까?
물을 좋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고 산을 좋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선생님은 시원한 답을 주지 않았다.
나도 더 이상 깊이 생각할 지력(知力)이 없어 그냥 지나가고 말았다.
머리가 큰 후로는 당면 과제와 별 관계 없어 보이는 이 구절에 대해 깊이 생각할 계기가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어제 어느 분이 올리신 산이 좋으냐 바다가 좋으냐라는 글을 보고 문득 이 구절이 다시 떠올랐다.
원문을 찾아보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전에 생각지 못했던 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혜롭다는 말은 분별력이 있다는 뜻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옳은 것과 그른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현실에서 유효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간할 줄 안다.
그래서 순리를 따르면서도 실용적이다.
물이 흐르다가 바위와 같은 장애물을 만나면 돌아가듯 원칙을 완고하게 고집하지 않는다.
어질다는 말은 가리지 않고 포용한다는 뜻이다.
움직이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산처럼 호불호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성인(聖人)의 경지다.
성인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노자는 지혜로운 자보다 어진 자를 윗길로 쳤다.
그러나 공자는 노자와 달리 지혜로움과 어짐을 동등한 경지에 놓았던 것 같다.
현실 참여를 꺼려 했던 노자와 달리 공자는 현실에서 도를 펼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과 같이 있으면 즐겁다.
현실에 적용되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어진 사람과 같이 있으면 편안하다.
어떠한 말이나 행동도 다 받아주기 때문이다.
그리 지혜롭지도 못하고 어질지도 못한 나 같은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진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감지덕지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