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말씀은 시편 89편 19-37절인데
어제 시편 89편은 통째로 올려서
오늘은 교회전체 말씀일기 본문인 디모데후서 2장 1-13절을
정리해서 올려 보겠습니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디모데후서는 바울서신 중 가장 마지막에 기록되었으며,
바울이 순교하기 얼마전에 기록된
바울의 유언과 같은 서신입니다.
유대교에 열심이었던 장래가 촉망되던 젊은이가
주님의 강권하심으로 사도가 되어
이제 로마의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실패한 인생처럼 보이지만
우리 중 누구도 바울을 실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복음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면서 충성된 사람의 특징을
군사와 경기하는 자 그리고 농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군사’는 군사로 모집한자를 기쁘시게 합니다.
우리의 주님의 군사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목적이란 너무나 분명합니다.
부르신 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경기하는 자’는 법대로 경기해야 합니다.
경기하는 자가 경기의 방법대로 하는 것처럼
복음을 증거하는 자가 복음의 방법대로 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입니다.
복음의 방법은 언제나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래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이 나오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
즉 십자가의 도의 선포를 통하여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여기의 세 가지 비유의 특징은 ‘충성됨’과 ‘신실함’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복음을 부탁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부르신 자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우직한 군인처럼,
경기에 다른 사람들은 심판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반칙을 쓰는데
미련하게 경기규칙대로 하는 미련해 보이는 사람처럼
남는 것이 별로 없는 뻔한 농사를 위하여 부지런히 농사짓는 농부처럼
신실한 자에게 복음을 부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시로 주를 부인하며 살아갑니다.
분명한 주님의 요구를 알면서도 무시하며 살아갑니다.
애써 외면합니다.
뭐 다른 그런 거지, 그렇게 해서 어떻게 살아!
하면서 자기를 합리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부 주님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소식, 기쁜 소식은
주님은 항상 미쁘신 분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늘 한결같이 미덥고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택하신 자들을
‘그들의’ 신실함으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한결같은 신실하심, 일향 미쁘심으로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이 주님을 우리가 알수록 더욱 믿어지고,
그럴수록 걱정과 염려에서 감사와 찬양을 바뀌어 질 것입니다.
오늘도 항상 신실하신 주님을 믿음으로
부족하지만 한 걸음씩 주님께 더 나아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주님은 항상 신실하십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