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노스(kainos)
요한의 복음서나 서간의 기록에는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주셨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이다. 또 요한 묵시록에는 ‘새 하늘 새 땅을 보았다.’(묵시 21, 1)고 한다. 바오로 서간에는 ‘새 창조만이 중요하다.’(갈라 6,15)라고 한다. 여기서 ‘새’는 무엇을 의미할까? 새롭다는 말로 그리스어로 ‘카이노스’(καινός[kainŏs])이다. 이는 없던 것이 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새롭고 신선해지며 복음적 가치가 새롭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주신 것은 예전부터 내려오는 계명(십계명)과 전혀 다른 새로운 계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왜 옛 계명을 새 계명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어두움이 지나가도 참 빛 즉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이다. 복음의 빛에 비추어 보면 새 계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신약 시대는 율법의 구약 시대는 끝나고 사랑의 새 시대가 왔다고 설명하는 것은 잘못이다. 계명의 내용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이며 단지 참 빛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빛에 비추어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 계명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 사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빛에 비추어 새롭게 이해하기 때문에 새 계명이라고 했다.
새 하늘과 새 땅, 새 창조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있던 것이 없어지고 전혀 새로운 것이 생긴다는 것이 아니다. 하늘과 땅, 창조가 그 전의 것으로 돌아가 새롭게 조명된다는 것이다. 본래 창조의 거룩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새로운 것이다. 히브리어 ‘거룩하다’(קָדַשׁ[qâdâsh])는 구별하다는 의미로 서로 다름이다. 서로 다름이 일치와 조화를 이루 때가 새 하늘, 새 땅이며 새로운 창조이다.
창세기는 하느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땅은 꼴을 갖추지 않고 물로 덮여 있었다. 이는 혼돈의 공허하고 무질서한 상태를 의미한다. 빛과 어둠을 가르시어 낮과 밤을 구별했고, 물을 가르시어 하늘과 땅을 구별하셨다. 그리고 제 종류별로 성별하여 만들었더니 제각각 그 자리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어 일치됨이 보기에 좋았다는 것이다.
새 하늘 새 땅의 새로운 창조에서 우리의 모습은 어떠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자신으로부터 먼저 해방되어야 한다. 요한복음에서는 그 해방이 곧 사랑이라고 한다. 사랑은 누구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개방의 문을 열어 해방시켜 자유를 얻는 것이며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럴 때 사랑의 씨앗이 움터 기쁨과 평화가 깃들며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새 아담’(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