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액은 회주사의 전신이었던 하산재에서 하산재 전기설치를 한 사실 기록이다. 편액으로 걸었던 것을 그동안 백산재 소장고에 있다가 최근 노출되었다. 무오년이면 1918년이다. 1918년 유두절에 후손(청계공파) 毅齋公 위석환(1900~1982)이 기록했다.
惟我魏氏之在東邦者皆以麗朝忠烈公諱繼廷為中祖而在國為名臣在家為顯祖為自朝家寵褒已極而至於配食王庭矣若其子孫百
世報之宜無所不至而李氏改鼎其九代孫祇
侯公諱种守岡僕義李氏使三世不赴舉自是
科宦雖遜而子孫頻振ㄷ焉矣及壬辰丙子之
亂或爲國禦賊或赴 義扈駕但適值國家板蕩
之際雖稱邦内華閥未遑念及祖先之事矣當
是時也吾族亦分居四方故所謂霞山齋者只
以茅茨數間(絻衣?)風雨而已往在癸已詢議齊
發日以吾族之繁盛而不於顯祖能致其心力
將烏乎可哉乃以門力重建而新之凉軒燠室
淨楚可愛然與夫閭閻相距多数兮?之地莫能
由被今世物質文化之澤而諸族齎恨未伸其
所志焉去歳春聖哉甫舊曰夫忠烈公吾姓之
顯祖也此齋諸族之所重也若一物不備無以
生齋室之光也獨捐鉅貲以設電燈於是當夫
諸族齊宿之時使免?具行苟且之態客喆编告
于門會處曰有功必賞有過必罰此門規之所
賴而行也今有功績膚施而不以一言表之將
何以勸後人為哉諸族咸曰可請余以記其事
故辭不獲而書之如右以塞責焉
戊午流頭節忠烈公二十五世孫
錫漢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