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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실과 시적 진실
이 진 흥
내 귓속의 물고기 한 마리
정일근
젊은 의사는 내 귀의 이명현상을 일시적인 난청으로 진단했다
나는 의사에게 지난 주말 만어사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일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돌로 변했다는 만어산 만어사를 다녀온 후
내 귓속에 숨어 따라온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나를 괴롭히는 귀울음 현상의 주범이 아닌지를 묻지 못했다
만어사에서 돌 속의 물고기들이 내는 금종소리 은종소리를 듣다가
산수유 노란 꽃그늘에 누워 낮잠이 들었는데
그 때 나는 분명히 내 귓속으로 숨어드는 물고기 한 마리를 보았다
바위 아래 푸른 바다에 사는 물고기 한 마리가
내 귓속으로 들어와 달팽이관 안에 놀고 있다는 것을
의사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절집에 걸린 풍경처럼 소리를 내는 물고기를 믿지 못할 것이다
신라사람 경문왕의 당나귀 귀를 본 복두쟁이의 마음처럼
말할 수 없는 비밀의 고통이 신화를 만든다
만어산에는 소금내음 풍기며 바다가 출렁거리고
만어사 바위들이 내는 종소리가 그 바다에서 물고기로 태어나고
그 중 한 마리가 내 귓속에 들어와 일으키는 시인의 이명을
간단한 처방전을 쓴 후 이내 다음 환자를 호명하는
젊은 의사는, 그 비밀을 고백한다해도 알지 못할 것이다
<1>
일찍이 신들과 함께 살던 인간이 신들을 떠나올 때, 신들은 벌거벗은 인간에게 언어를 주었다. 언어는 인간이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문명을 이룩하는데 가장 유용한 도구였다. 인간은 그것을 가지고 그들의 어둠과 추위를 막을 불을 켜고 집을 지었다. 그런데 언어에는 양면성이 있다. 한쪽은 이성과 논리로 사실을 이해하는 면이고, 다른 한쪽은 감성과 도취로 진실을 드러내는 면이다. 우리는 전자를 과학언어(로고스logos))라고 하고 후자를 신화언어(미토스mythos)라고 부른다. 고대에는 신화언어의 힘이 강했지만 근대로 이행하면서 과학언어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고, 덕택에 오늘날의 찬란한 현대문명을 이룩하게 되었다.
그러나 과학언어는 우리에게 삶의 편의는 제공했지만, 삶의 의미는 배제한 공허하고 메마른 언어였다. 가슴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슬픔이나 고통 따위의 감정은 드러낼 수가 없었다. 두려운 심연 앞에서 혹은 말할 수 없는 불안이나 죽음의 그늘에 휩싸일 때, 그 언어는 인간에게 오히려 무력감만 더해 줄뿐이었다. 그러한 무력감 속에서도 인간은 눈부신 빛과 신비한 음성을 느낄 때가 있었다. 알 수 없는 빛과 음성.... 그것은 일찍이 헤어진 신들의 눈빛이고 음성이었음을 인간은 어렴풋이 알았다. 그러나 신들의 눈짓은 빠르게 지나가고, 음성은 들릴 듯 말 듯 안타깝게 사라졌다. 인간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눈을 열고 귀를 기울여 신들의 눈짓을 번역하고 음성을 받아썼는데 그것이 시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로고스가 닿지 않는 신들의 눈짓과 목소리를 포착하는 미토스이다.
시는 인간이 신들의 말을 받아쓰는 일이었고, 받아쓰는 사람 즉 시인은 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신탁이었다. 원래 작시(Dichten)라는 말은 받아쓰기(Diktat)인 것이다. 신들을 떠나서 살게 된 인간이 신들의 눈짓을 번역하고 신들의 음성을 받아쓰는 일은 바로 인간 자신의 삶의 의미를 이룩하는 일이다. 일방적으로 분석과 구속의 일을 자행해 온 로고스의 마당에서 미토스는 화해와 해방이라는 한바탕의 춤을 추게 하는 언어이다. 오늘날 메마른 과학언어의 사막에서 그래도 이끼처럼 녹색의 생명력을 가지고 푸릇푸릇 살아나고 있는 신화언어가 있음은 축복이다.
<2>
정일근의 시 <내 귓속의 물고기 한 마리>를 읽었다. 그는 그 시에서 과학언어(로고스)와 신화언어(미토스) 사이의 거리를 노래하고 있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과학언어에 묶여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동시에 어떻게 신화언어 속으로 해방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젊은 의사는 내 귀의 이명현상을 일시적인 난청으로 진단했다
나는 의사에게 지난 주말 만어사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일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돌로 변했다는 만어산 만어사를 다녀온 후
내 귓속에 숨어 따라온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나를 괴롭히는 귀울음 현상의 주범이 아닌지를 묻지 못했다
<젊은 의사>의 <진단>은 과학적으로 정확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진단은 시적(혹은 신화적)으로는 매우 답답하다. 그의 사고는 명료하지만 동시에 단순하고 소박해서 우리들의 삶의 의미를 담기에는 너무 좁다. 삶의 의미나 가치의 세계에 들어가면 과학언어는 별로 쓸모가 없어진다. 우리가 신뢰하는 과학적 사실 즉 우리의 이성에 의해서 인식되는 존재의 기반은 우리의 실존 앞에서는 매우 허약한 것임을 신들의 언어를 받아쓰는 시인은 알고 있다. 과학적 사실은 신화적 진실 앞에 무력하다. 사실의 세계를 설명하는 과학적 사고의 틀 안에서는 삶의 의미나 시적 진실은 설명되지 않는다. 의미의 세계는 사실의 세계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시인이 구태여 <젊은>의사를 등장시킨 것은 바로 그러한 의미의 세계를 잘 모르는 과학적 사유자의 인생론적인 약점을 지적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같은 의사라 해도 아마 삶의 경험이 많은 늙은 의사였다면 시인은 지난 주말에 만어사에 다녀왔다는 얘길 할 수 있었을는지 모른다. 늙은 의사였다면 인생의 다양한 경험에 비추어서 어쩌면 신화적인 세계를 공감해 줄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언어의 신봉자인 <젊은 의사>에게 시인의 이명현상은 단순히 <일시적인 난청>으로서 단지 생리적 메커니즘에 일시적 장애가 온 것이라고 이해할 뿐이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의 이명현상은 지난 주말 만어산에서 만났던 <일만마리의 물고기들>중의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그의 귓속에 들어와서 내는 소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믿음을 <젊은 의사>에게 말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는 어불성설이므로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과학적 사실>은 아니지만, 시인에게는 어떤 과학적인 설명보다도 더 실감나는 <시적 진실>이다. 젊은 의사에게 만어산의 돌들은 지질학적으로 흘러내린 너덜에 불과하다. 그것이 물고기모양으로 보이건 말건 그것은 깨어진 돌들의 무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에게 그것은 단순한 돌이 아니라 옛날 동해에 살던 일만 마리의 물고기가 그곳에 와서 돌로 변한 것이고 지금도 그것들이 금종소리 은종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 塔像편 魚山佛影조에는 다음과 같은 만어산의 물고기 얘기가 나온다.
<古記에 이렇게 말했다. [萬魚山은 옛날의 慈成山, 또는 阿耶斯山이니, 그 곁에 呵囉國이 있었다. 옛날 하늘에서 알이 바닷가로 내려와서 사람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으니 이가 바로 首露王이다. 이 때 국경 안에 玉池가 있었고 못 속에는 毒龍이 살고 있었다. 만어산에 羅刹女 다섯이 있어서 독룡과 왕래하면서 사귀었다. 그런 때문에 때때로 번개가 치고 비가 내려 4년 동안 五穀이 되지 못했다. 王은 呪文을 외어 이것을 금하려 했으니 금하지 못하고 머리를 숙이고 부처를 청하여 說法한 뒤에 羅刹女는 五戒를 받아 그 후로는 災害가 없어졌다. 때문에 동해의 물고기와 용이 마침내 化하여 골 속에 가득찬 돌이 되어서 각각 쇠북과 경쇠의 소리가 났다.(故東海魚龍遂化爲滿洞之石, 各有鍾磬之聲)>
옛날(신화시대)에는 신과 인간이 소통했다. 옛 기록에 의하면 가라국의 수로왕은 사람을 잡아먹는 악귀 나찰녀와 독룡을 쫓아내려고 주문을 외웠지만 되지 않았다. 그래서 부처를 청하여 설법을 하니 그 재해가 없어졌고, 동해의 물고기와 용이 이 골짜기에 가득찬 돌이 되어서 쇠북과 경쇠소리를 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만어산을 흘러내리고 있는 너덜의 돌들은 그 모양새가 어찌보면 수만 마리의 물고기 형상으로 보이고, 두드리면 어떤 것은 쇠소리가 나기도 한다. 이 고기록은 고려 명종 11년에 보림이라는 승려가 남긴 것인데, 나중에 일연 스님이 그곳에 가서 확인해 보고 <돌이 전체의 3분지 2는 모두 금과 옥의 소리를 내는 것이 그 하나요>라고 쓰고 있다. 이 고사는 시적으로 진실하다. 그것을 오늘 정일근 시인이 체험을 통해서 다시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만어사에서 돌 속의 물고기들이 내는 금종소리 은종소리를 듣다가
산수유 노란 꽃그늘에 누워 낮잠이 들었는데
그 때 나는 분명히 내 귓속으로 숨어드는 물고기 한 마리를 보았다
돌 속의 물고기들이 내는 금종소리 은종소리.... 그것에 대해서는 <실제로 이 돌들은 두두리면 쇠소리가 난다>고 일연 스님도 확인하고 있다. 이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금속성의 원인을 우리는 이 돌의 강도나 혹은 너덜 밑의 지질학적 특징 등의 어떤 물리적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과학적인 설명이란 우리들의 정서에 얼마나 답답하고 공허한 것인가? 여기서 돌들의 소리는 분명히 시인에게는 물고기가 내는 <금종소리 은종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 소리는 일상의 자동차 경적이나 라디오의 음악, 심지어는 골짜기를 휘감아오는 바람소리나 나뭇가지 사이로 다가오는 새소리와도 다르다. 금종과 은종이 내는 아득하고 눈부신 소리가 시인을 신화적 세계로 인도한다. 더구나 산수유가 노랗게 피어나는 봄날 조용한 만어산의 꽃그늘 속이 아닌가? 그런 곳이라면 시인이 아닌 사람도 잠깐 낮잠이 들었을 것이고, 잠든 그의 귓속으로 만 마리의 물고기 중 적어도 한두 마리쯤 은 숨어들었을 것이다.
그 봄날 산수유 꽃그늘 속에서 분명히 시인은 잠든 자신의 <귓속으로 숨어드는 물고기 한 마리를> 보았던 것이다. 산수유 꽃그늘 속에서의 낮잠은 매우 시적인 정황이다. 산수유꽃은 아직 살얼음이 채 녹기도 전에 노랗게 피어나는 봄의 전령이다. 겨울 동안 꽁꽁 언 땅 밑과 골짜기에서 웅크리고 있던 생명들이 산수유의 노란 봄소식으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이제 막 활기를 띄우고 있다. 나무 가지에서는 죽은 듯 숨죽이고 있던 잎눈이 터지기 시작하고, 골짜기의 바위틈으로는 대지의 입김이 피어난다. 바로 이 때 포근한 햇살이 감싸안고 있는 꽃 그늘 속에 앉아 시인은 잠깐 잠이 든 것이다. 그럴 때라면 일만 마리의 물고기 중에 아주 작고 귀여운 물고기 한 마리가 시인의 귓속으로 헤엄쳐 들어온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도 당연하다. 시인은 분명히 그 장면을 본 것이다. 그런데 그가 목격한 진실이 병원의 젊은 의사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위 아래 푸른 바다에 사는 물고기 한 마리가
내 귓속으로 들어와 달팽이관 안에 놀고 있다는 것을
의사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절집에 걸린 풍경처럼 소리를 내는 물고기를 믿지 못할 것이다
<바위 아래 푸른 바다에 사는 물고기 한 마리가> 지금 시인의 귓속에 들어와 <달팽이관 안에>서 놀고 있다. 여기서 시인은 그 물고기가 살던 곳을 <바위아래 푸른 바다>라고 아름답게 묘사했지만 그 다음 행에서는 그 물고기가 귓속에 있는 <달팽이관 안>에 들어왔다고 매우 구체적인 의학용어를 쓰고 있다. 여기서 시인은 <바위 아래 푸른 바다>와 <귓속의 달팽이관>이라는 두 개의 공간, 즉 시적 세계와 과학적 세계가 하나로 겹쳐지는 아름다운 혼융을 보여준다. 돌과 물고기가 서로를 넘나들고, 푸른 바다와 귓속의 달팽이관이라는 이질적인 공간이 친화하는 아름다운 화해의 공간을 그는 보고 있는 것이다. 양자 사이에 과학적 사실로서의 단절의 벽은 시적 진실 속에서 봄눈처럼 녹아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시적 언어는 바로 이러한 신화의 꽃을 피워내는 것이다. 시적 진실의 언어(신화언어)를 구사하는 시인에게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혼융이지만, 과학적 사실의 언어의 틀 안에 있는 젊은 의사에게 그것은 말(논리)이 되지 않을 것이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시인에게 그의 귓속에서 놀고있는 물고기 소리는 마치 <바람이 불 때마다/ 절집에 걸린 풍경처럼> 들리지만, 의사에게 그것은 <일시적인 난청>에서 오는 <이명현상>일 뿐인 것이다.
여기서 <절집에 걸린 풍경처럼> 내는 소리는 예사소리가 아니다. 절집이란 일상의 생활공간이 아닌 인간이 부처님과 만나는 곳, 다시 말해서 유한한 인간과 무한한 신성이 만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그곳에 걸린 風磬은 아파트 베란다에 걸린 장식물과는 다르다. 그 풍경이 내는 소리는 일상의 현실을 벗어나 무한의 신성으로 열리는 소리이다. 다시 말해서 과학언어를 벗고 신화의 언어로 나아가는 소리인 것이다. 그러니 과학언어(로고스) 밖에는 인정하지 않는 젊은 의사가 어찌 그런 신화언어(미토스)로 주장하는 귓속의 달팽이관에 들어온 작은 물고기의 소리를 믿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귓속 달팽이관에 와서 놀며 내는 물고기 소리를 젊은 의사에게 말할 수가 없다. 그것은 시인에게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므로 반드시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만, 과학언어의 틀 속에 있는 의사에게는 전달할 수 없다. 따라서 시인은 그것을 혼자서만 비밀처럼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은 고통이다. 그것은 마치 혼자만 알고 있는 왕의 귀의 비밀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복두쟁이>의 마음 속 고통과도 같은 것이다. 복두쟁이는 고통을 견딜 수 없었으므로 그 비밀을 대밭에 들어가서 털어놓는다.
왕위에 오르자 왕의 귀가 갑자기 길어져서 나귀의 귀처럼 되었다. 왕후와 궁인들은 모두 이를 알지 못헷지만 오직 幞頭匠 한 사람만이 이 일을 알고 잇었다 그러나 그는 평생 이 일을 남에게 말하지 않앗다. 그 사람은 죽을 대에 道林寺 대밭 속 아무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서 대를 보고 외쳤다. “우리 임금의 귀는 나귀 귀와 같다” 그런 후로 바람이 불면 대밭에서 소리가 났다. “우리 임금의 귀는 나귀의 귀와 같다.” (삼국유사, 紀異편, 景文王조)
시인은 이 이야기를 끌어다가 현재 젊은 의사와는 통하지 않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인간이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이 설화는 얘기하고 있지만, 시인은 그 복두쟁이의 <말할 수 없는 비밀의 고통이 신화를 만든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바람이 불면 도림사 대밭에서는 <우리 임금님 귀는 나귀의 귀와 같다>는 복두쟁이의 소리가 난다는 신화가 된 것이다.
신라사람 경문왕의 당나귀 귀를 본 복두쟁이의 마음처럼
말할 수 없는 비밀의 고통이 신화를 만든다
그렇다. 비밀한 고통이 신화를 만든다. 쉬운 일은 맺히지 않는 법이다. 한 알의 열매를 빚어내기 위하여 나무는 한여름의 가뭄과 폭풍의 고통을 묵묵히 인고해야 한다. 눈부신 진주는 진주조개가 뱃속의 상처(고통)를 안으로 삭여 만들고, 수도승은 뼈를 깎는 수행의 고통으로 몸 속에 영롱한 사리를 빚어낸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아무에게나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비밀한 고통>을 가지고 아름다운 <신화> 만드는 것이다. 신화는 유한한 인간이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영원한 꿈이고 희원이다. 신화적 언어인 미토스는 논리적인 언어인 로고스에 대립한다. 인간은 과학적 사실 뒤에 숨어 있는 의미의 세계를 드러내기 위하여 미토스(신화언어)를 구사한다. 신화는 인간이 현실을 넘어서서 신들의 세계에 들어가 그들의 말건넴을 받아 쓴 신성한 서술이다. 그리하여 지금, 시인은 젊은 의사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 만어산의 물고기 한 마리가 자신의 귓속으로 들어왔다는-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발설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또 하나의 신화를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어산에는 소금내음 풍기며 바다가 출렁거리고
만어사 바위들이 내는 종소리가 그 바다에서 물고기로 태어나고
그 중 한 마리가 내 귓속에 들어와 일으키는 시인의 이명을
간단한 처방전을 쓴 후 이내 다음 환자를 호명하는
젊은 의사는, 그 비밀을 고백한다해도 알지 못할 것이다
만어산의 너덜은 어찌 보면 수만 마리의 물고기로도 보이고 안개 속에서 소금내음을 풍기며 출렁거리는 바다의 파도로도 보인다. 또한 돌들이 내는 종소리는 그 바다에서 다시 수만 마리의 물고기로 태어나고, 만어산 골짜기에 들어와 돌이 되어서 금종소리 은종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 많은 물고기 중의 한 마리가 어느 봄날 노란 산수유 꽃그늘에서 살폿 잠든 시인의 귓속으로 헤엄쳐 들어와 달팽이관에서 노닐고 있는 것은 시적으로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이야기(미토스)를 그러나 시인은 젊은 의사에게는 지금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의사에게는 시인의 귓속에 들어온 작은 물고기가 일으키는 이명을 <일시적인 난청>이라고 아주 간단한 처방전(로고스)으로 처리할 뿐이다. 그리고 곧장 다음 환자
를 호명한다. 그러한 젊은 의사에게 시인이 어떻게 그의 비밀을 고백할 수 있겠는가? 설령 그것을 고백한다면 그는 알아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신분열의 초기증상까지 의심할는지 모를 일이다. 시인은 지금 메마른 과학언어가 닿을 수 없는 만어산 골짜기의 아름다운 비밀을, 그리고 그것을 발설할 수 없는 고통을, 또 하나의 신화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끝> (현대시학 20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