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상자 외 1편
홍경나
사개가 개먹은 소꿉상자엔
비닐 코팅한 네잎 크로버 물수제비뜨기에 마침맞은 납짝돌
홍콩 디즈니랜드 기념 열쇠고리와 흰 종이학
언제부터 낯선 안색이 되어버렸는지
폐우물 속 캄캄한 맞소리 같은
먼빛 잔상들
깊다
방을 아무리 뒤져도 안 보이던
외짝으로 남은 코빌트빛 커프스버튼과
내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는
그렁그렁 미안해지던 이야기며
놓칠까봐 힘껏 뛰었는데 코앞에서 놓치고만
길바닥서 꼬박 20분을 기다려야했던 3414번 버스 이야기
이번 추석에 당신께 내려가겠다는 기별에
따문따문 속씨름한 시덥잖은 얘기들을 보태고
색색의 리본으로
단단히 상자를 묶어 놓습니다
다음 추석엔 당신이 당신 집 근처 산꽃을 들고
꼭 한번 다녀갔으면 하는 부탁도 함께
당신, 잘 있지?
엄마의 비밀 레시피
기어이 엄마는 지칭개나물 보시기를 내 앞에 끌어다 놓았다
응! 맛있네, 레시피가 뭐야?
지렁 붓고 왜간장 쪼맨창 보태고
참지름 깨소금은 낙낙하니 흔쳐 조물조물 문치는 기지
이야, 우리 김 여사 우리가 모르는
비밀 레시피가 또 있는 거 아냐?
비밀은 무신?
기냥 지렁하고 파 마늘 곱기 다지 넣고
미역 빠는 거맨치 빠락빠락 치대 문치는 기지
엄마의 나물반찬 레시피는 언제나 판박이다
참 야릇한 것은
같은 레시피에서 각각 다른 맛깔이 난다는 것이다
미나리 무침은 실한 봄햇살을 닮은 애초롬한 맛이
냉이 세발나물 다래순 원추리 뽕잎은
매옴하고 배릿하고 알근달근 들부드레한 맛이 나고
쑥과 잘게 다진 쇠고기를 섞어 완자를 빚어 끓여낸 애탕국도
쌉싸래한 쑥맛이 오롯이 남아 엇구수한 맛을 내는 것이다
이 봄동은?
초 한 빨 치고
이치지 안쿠로 시직시직 문치면 된다 아이가
맛나져라, 맛나져라, 하는 기지
레시피라는 기 머 따로 있나
봄동겉절이를 우걱우걱 볼이 메도록 씹으며
끼니마다 밥 먹어라 식구들을 불러 모으던
마디마디가 불퉁그러진 두름손으로
누룩곰팡이 뜸씨 같은 맛깔손으로
오래오래 갓 지은 쌀밥에 조물조물 문친 나물반찬을 해줄 것을 생각하며
여든넷 엄마가 예순셋 딸 밥 해먹이려고
쉬이 돌아가시지도 못할 것을 생각하며
나는 여직 빈 밥그릇을 내민다 엄마, 밥!
홍경나
1962년 대구 출생. 2007년 심상 등단.
시집 초승밥. 201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창작기금 수혜.
2022년 천강문학상 수상. 2023년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