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괴라는 말이 무섭다.
금괴라고 할 때 '괴'자가 괴물, 요귀,라고 할 때의 '괴'나 '귀'와 같은 것으로 생각되며 금덩어리의 싯누런 빛이 또한 끔찍하다.
흔히 서양 영화에서 황금덩이를 찾아 일신의 안녕을 내어놓고 모험하는 것을 보면 나는 그들의 절박한 상황에 조금도 공감할 수 없는 이단인이구나 싶다.
서양 사람들은 우리보다 황금에 대한 애착이 커서 중요한 것을 곧잘 황금에 견주어 비유하였다.
그것이 그들을 잘 살게 한 원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황금 보기를 돌을 보듯 하라'라고 하였고,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워' 거기에서 최선의 평화를 발견하려고 하였으며 가난을 오히려 미덕으로 여겼던 우리가 서양보다 못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인 것 같다.
'보물섬',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마켄나의 황금' 등에서 서양 사람들의 큰 물욕이 대량의 황금을 배경으로 하여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비단 그러한 작품만 그런 건 아니지만 금방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말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 나라에도 흥부의 박이 있고 '돈 나와라 뚝딱, 금 나와라 뚝딱'하는 도깨비 방망이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갖기를 희망하거나 욕심낸 나머지 온갖 노력과 수단을 쏟아 쟁취한 것이 아니라, 하늘이 보다보다 못해 아무런 댓가도 바람도 없이 그저 공짜로 준 것이다.
찢어지게 가난하면서도 그 가난을 숙명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보기에도 딱하였나 보다.
가난한 흥부가 너무 세상을 모르고 돈도 모르니까 그 순량함에 하늘이 감동하고 측은히 여기어 내려준 것일 게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은 재물은 별로 가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얻기 위해 투쟁은 물론 노력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요행으로 운수좋게 떨어진 것인 만큼 그걸 지키는 일에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하루 아침에 없어져도 억울하지 않게 체념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억지로는 못 사는 법이며 무슨 일이든지 될래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귀신이 돌보든지 도깨비가 돌보든지 죽은 조상이 돕든지 해야만 잘 산다고 했던 것이다. 순리, 우리는 순리를 좇아 살았다.
가난한 나뭇꾼이 강물에 도끼를 빠뜨리고 울고 있을 때 신령님이 금도끼를 내어 주었지만 그것은 내것이 아니라고 정직하게 말했기 때문에 그가 여생을 유복하게 살 수 있었다는 얘기도 그렇다.
돈을 안다는 것은 군자의 수치로 여겼다. 선비의 할 일은 진리의 탐구에 있었지 현실의 탐닉에 있는게 아니었으므로 선비사상을 중히 여겼던 우리 조상들로서는 돈을 안다는 게 바로 속물로 취급받는 첩경이었다.
그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나는 왜 금괴를 싫어하는가.
물질이 정신을 여지없이 내리누르고 있는 오늘날 하루하루 각박한 계산 속을 헤엄쳐 살아가는 가난한 내가 금괴를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싫어하는 게 아니라 두려워하는 것이라면 두려워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그것이 나를 잘 살게 할 텐데 무서워할 것까지야 없지 않은가.
나는 비겁하고도 주변머리 없고 못난 겁장이임에 틀림이 없나 보다.
나는 우선 금괴가 내 개인 생활과 별로 조화를 이루거나 익숙한 물건이 아니라서 싫다. 내 생활은 살다가 더러 금괴가 굴러 들어오기도 하는 구조가 아니다. 그러므로 금괴(이하의 문장에서는 그것이라고 말하겠다)는 생각하기에도 서먹서먹하다. 이질적인 그 물건이 기존의 내 질서까지도 교란시킬 것이므로 두렵다.
나는 그것을 놀라움 없이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누가 나에게 조건 없이 꽁짜로 그것을 주겠노라고 하더라도 거기엔 모종의 계산이나 흑막이 은폐되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나에게 그것을 줄 것인가. 아, 어림도 없는 일이다.
어떤 일에 나를 끌어들여 그것이 지닌 싯가 이상의 내 희생과 파멸, 굴욕 파염치를 요구하며, 그것의 몇백 배가 되는 중량의 불행과 불안을 안고 넘어지게 할 것이다.
우연히 길을 가다가 그것을 얻었다 하여도 곤란한 일이 벌어질 게 뻔하다. 나는 그것을 어찌할까 길을 모색하다가 관청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계속 몇 번씩 불려다니면서 죄인이 문초 당하는 것 같은 조사를 받을 것이다.
내 주민등록 번호와 이름, 직업 등을 거듭거듭 서류에 쓰고 시간과 장소를 기록하고 그리고 기다리라는 지시에 따라 지루하게 대기하게 될 것이다.
혹은 담당 직원이 외출 중이거나 점심 식사 중일 수도 있겠지.
나는 관청의 이런 수속과 냉대가 싫다.
내가 그것을 주울 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으니 슬쩍 내 소유로 담아 두자는 욕심이 발동하였다 해도 그것을 어떻게 숨겨 둘 것인가. 아니면 어디에 가서 팔아 처치해 버릴 것인가. 그러다가 나는 도둑의 누명까지 쓰게 될 것이다.
두려워서 처치하지도 못하고 가지고 있다가 가끔 가끔 한 번씩 꺼내 보기만 한단 말인가?
내가 하루 아침에 하늘로 떠오르면 하루 저녁에 땅 속으로 꺼질 것이기 때문에 단단하게 쌓아올린 내 자리만이 제일 요지부동한 내 자리이다.
나에게 축복이 있으려면 그것과 같은 재물로 말고 재주와 능력으로 있기를 바란다.
그것같이 무서운 것도 지배하는 능력, 그의 위력을 해체하고 결합하는 능력으로 있기를 바란다.
금괴는 싫다.
(이향아 님의 수필중에서....)
첫댓글 얼마전 지인이 내가 묻더군요.
"언니는 금괴를 몇개 가지고 있나요?"
나는 깜짝 놀랐어요.
금괴라니? 서민들이 가지고도 있나보다 싶어 되물었어요
"그러는 아무개씨는 금괴를 가지고 있느냐고?'
오만원권으로 8억이 들어가는 금괴를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왜냐고 물으려다 그와의 괴리감 때문에 질문을 꿀걱 삼켰던 적이 있었지요.
그녀가 대단(?)하게 느껴지더군요.
울 친구들은 금괴를 가지고 있나요?
글쎄요. 금괴는 커녕 두지가 비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어쩌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