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백성들은 불의한 법령과 불의한 말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새로운 법을 만들었다는 의미이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버리고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단하고 과부를 돌보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방식으로 살았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벌하시는 날을 주실 것이고 그들은 도망할 곳도 피할 곳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살아가는 백성에게 내리는 형벌이었습니다(1-4).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통해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앗수르도 심판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서 스스로를 인식하지 않고 교만하여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고 멸절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앗수르 왕은 스스로 왕들 중의 왕이 되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갈로와 갈그미스, 다마스커스, 그리고 북이스라엘도 정복했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하나의 패배한 신으로 취급했습니다. 자신의 신과 이스라엘 신과의 대결에서 자신의 신이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5-11).
이에 하나님은 그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 주실 것입니다. 앗수르가 이렇게 강하게 되어 이스라엘을 정복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의 도구로서 그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이에 하나님은 분명하게 유다를 심판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과 교만한 눈을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앗수르 왕은 자신의 능력과 힘과 권세를 자랑했고, 스스로 그것을 해냈다고 교만합니다(12-14).
이는 마치 도끼가 그것을 쓰는 사람보다 낫다고 자랑하고, 톱이 켜는 자보다 자신이 낫다고 자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앗수르를 살찐 자가 말라지는 것 같이 그의 부귀영화가 불에 살라지도록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의 울창하던 숲에 나무가 몇 그루 남지 않아 아이라도 셀 수 있을 만큼 망하게 만들 것입니다(15-19).
반면에 이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진실하게 의지할 것입니다. 남은 자들이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자는 파멸될 것입니다(20-23).
이는 앗수르가 더 큰 제국 바벨론에 의해서 망하게 되는 것과 포로로 잡혀 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세월 후에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앗수르의 현재 위협에 겁내지 말라고 유다 백성들을 격려합니다. 오래지 않아 진노를 그치고 앗수르를 망하게 하시며 위협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때문에 지속되는 앗수르의 위협 속에서 남 유다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강력한 위력으로 앗수르를 멸망 시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쇠 도끼(바벨론)로 앗수르를 망하게 하실 것입니다(24-34). 유다가 하나님만 의지한다면 강대국 사이에서 하나님은 지켜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끝내 하나님과 강대국을 의지하며 망하게 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서 엄중한 심판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심판이 그들을 멸망시키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현실의 위기와 위협은 강력하지만 그 역시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습니다. 앗수르는 하나님의 도구로 북 이스라엘과 다른 나라를 정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앗수르가 교만할 때 하나님은 앗수르도 치실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주관자가 강대국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남 유다의 운명은 강대국의 패권에 달려 있는 것이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우상 숭배와 율법을 버리며 살아가는 삶을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삶을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의 불확실한 미래와 삶은 세계의 경제와 우리의 스펙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그것을 움직이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다른 삶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며 그분을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