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서 강나루 청보리밭
열흘 전 곡우가 지난 예년보다 봄이 일찍 무르익는 사월 끝자락이다. 텔레비전과 절연하고 사는지 오래다만 날씨 정보는 궁금해 인터넷으로 취하고 있다. 누구는 휴대폰 바탕 화면에 그날의 기상 정보를 띄우기도 하더라만 나는 그럴 수준이 못 된다. 그래도 어떤 경로로 알게 된 소 박사 유튜브에서 카오스의 세계인 기상을 접하는데, 그는 이번 주말 우리 지역은 강수를 예보했다.
전날 달천계곡으로 들러 숲길을 걷고 삼림욕장에서 머물다 나온 두 지기와 점심 식후 헤어지면서 다음날 일정 얘기가 오갔다. 내일은 하루 내내 비가 온다고 하면서 각자 제 위치 제 시간을 보내자 했더니 동의를 얻지 못했다. 비가 올수록 집에서 머물지 말고 바깥으로 나가 운무 속에 자연과 교감하자고 했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올라 그럴듯한 장소를 짚어주고 반응을 떠보았다.
아침부터 종일토록 비가 온다니 함안 악양루 건너 의령 적곡 제방 정자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자 했다. 거기는 ‘처녀 뱃사공’ 노래비 악양루 건너편으로 평소 현지인은 물론 외지인은 더 왕래가 없는 남강 하류 방둑이다. 그러다 먼저 제안한 장소는 동선이 멀어 수정하기를 칠서 강나루 생태공원으로 가자고 했다. 남도 저편 만경평야 고창 보리밭 축제와 같은 행사를 앞둔 때였다.
셋은 내일 일정을 조율하면서 동행 지기로 이웃 선배를 한 분 더 모시기로 했다. 간밤을 편히 잠들고 아침을 맞았다. 소 박사 예상보다 비는 적게 내려 예정된 일정은 무리가 없을 듯해 마음이 놓였다. 이웃한 아파트단지 지기와 전날 모시기로 했던 주택에 사는 선배와 함께 창원역 근처에서 나머지 한 지기와 합류했다. 일행은 넷으로 늘어 지기가 운전대를 잡아 교외로 나갔다.
천주암 아래서 굴현터널을 지난 북면 온천장에서 79번 국도 따라 본포교를 건넜다. 학포에서 노리를 지난 임해진 벼랑에서 창녕함안보를 건너 칠북에서 밀포교를 건너갔다. 복숭아 과수단지가 많은 덕남마을에서 광려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소랑교를 지나니 칠서 이룡으로 4대강 사업 때 조성된 강나루 공원이 펼쳐졌다. 거기가 우리가 가려는 곳으로 보리밭 축제를 앞둔 둔치였다.
우리 일행은 지난 초봄에 겨울을 나던 보리밭에 자라던 냉이를 가득 캐 봄 향기를 맡은 적 있었다. 행정당국에서 드넓은 둔치에 심은 보리와 귀리는 이삭이 패고 있었다. 달이 바뀌는 다음 주말부터 보리밭 축제가 열린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는데 우리는 행사 기간보다 앞서 들렀다. 예전에는 벼농사 뒷그루로 많이 심던 보리였는데 소비량 감소로 보기가 드문 보리밭을 찾아갔다.
예상은 한 바지만 평원이 연상되는 넓은 둔치에 이삭이 팬 청보리는 가히 환상적이라 탄성이 절로 나왔다. 강변 둔치의 보리밭 사잇길을 걸어 둔치 나루터로 향하니 조경수로 심은 이팝나무꽃이 피어 눈이 부셨다. 오토캠핑장에는 야영객들이 다수 보였고 봉오리를 맺은 작약은 꽃이 피려는 즈음이었다. 수레국화는 개화가 시작되었고 절로 자라는 금계국도 꽃봉오리를 맺어 있었다.
웃비가 그쳐가는 쉼터에서 다과를 들면서 자연이 주는 은총과 혜택에 감사했다. 우리가 우중에 길을 나선 하이라이트는 풍광 좋은 곳에서 끓여 먹을 라면의 점심이 기다렸다. 차를 몰아 왔던 길을 잠시 되돌아 창녕함안보 근처 밀포 나루터 포구나무 정자로 갔다. 동행한 지기가 집에서 준비해온 콩나물과 대파를 썬 기본 재료에다 가스버너로 라면을 끓였더니 그 맛이 일품이었다.
왕후장상 부럽지 않은 점심을 먹고 창녕함안보 강변 따라 내봉촌에서 창원의 북단 오곡을 거쳐 내산의 커피랜드로 향했다. 외진 곳에서 정원을 가꾸면서 온실에 커피나무까지 키우는 개성이 독특한 이의 찻집이었다. 전망이 탁 트인 창가에서 느긋하게 환담을 나누며 차를 마시고 정원을 둘러봤다. 귀로에 강변 초등학교 근처 야생화 농원에 들러 다시 한번 눈이 호사를 누리고 왔다. 23.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