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성도는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2,3절을 보면 다윗이 요압에게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러자 요압은 그 일이 하나님 앞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윗을 향하여 "내 주 왕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라고 합니다. 요압은 신하된 자로서 왕의 행위의 그릇된 것을 그르다고 지적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요압은 이스라엘에서 다윗도 두려워했을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기에 다윗을 향하여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3:39). 어쨌든 그가 다윗에게 그런 말을 하였다는 것은 그가 다윗의 무제한적인 권력 행사와 범죄를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관심있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요압 외에는 다윗의 그러한 행위에 대하여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대제사장도, 다른 많은 신하들도 그의 잘못을 지적할 줄 몰랐던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다윗의 위세에 눌려서이거나, 아니면 다윗처럼 교만하여져서, 옳고 그른 것을 가릴 줄 모르고 맹목적으로 복종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자일 가능성은 적고, 후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다윗은 자기의 위세와 권위로 그 신하들을 대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때 선악을 온전히 판단할 줄 아는 그 신하들 여러 명이 다윗을 말렸으면 그는 그들의 말을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신하들 모두가 다윗의 행위가 하나님을 향한 범죄인지 아닌지도 분별 못하던 당시에, 요압 혼자만의 주장으로는 다윗의 범죄를 막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세상이 범죄하고 타락의 길로 내달려 가는 것을 막고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교훈해 줍니다. 즉 우리가 세상이 타락하는 것을 막는 길은, 그 옳고 그름을 정확히 분별하여 만일 잘한 일이 있으면 칭찬해 주고, 그릇된 일이 있으면 그 허물을 꾸짖고 비판할 줄 아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악을 선하다, 선을 악하다 하는 그들에게는 화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사 5:20). 반면 의를 전하는 자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사 51:7,8).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느 편에 서시렵니까? 여러분 모두 선악을 온전히 분별하여 그 잘잘못을 바로 지적할 줄 아는 지혜롭고 당당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