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글에 필이 와서 써봅니다.
초등학교 교사로서, 학부모님들에게 학생들이 게임하는 문제로 굉장히 많이 상담했습니다.
평소 내가 하는 상담내용이 사실일까 싶어서 10살, 7살 두 아이를 제 소견대로 키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중간결과이고, 적용샘플도 둘 뿐이라서 좀 그렇지만, 그래도 평소의 제 소견을 써볼까 합니다.
가. 기본 방침
- 게임은 하고싶은대로 한다. (날짜, 시간 특정하지 않음. 하고싶으면 맘대로 하면 됨)
- 무슨 게임이건 플래이하는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줘야 한다. (게임 내용 확인용)
- 집 밖에서는 하지 않는다. (하고싶을 때는 반드시 허락 받고, 언제든지 끊을 수 있어야 함)
- 다른 행동과 같이 게임하지 않는다. (밥먹을때, 화장실갈때, 대화할때 등)
나. 몇가지 예시
- 이제 7살된 딸내미와 잇테이크투를 벌써 8개월째 하고 있음... 지겨워 죽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bigwZCEN1D4
- 10살 첫째가 매일같이 아빠에게 피파23으로 도전중. 매치는 일단 토트넘 VS 모로코로 시작.. 요즘 슬슬 이기기 시작함.
- 둘 다 마인크래프트 많이함. 자기들만의 맵도 종종 만드는 모양.
- 첫째는 로블럭스를 가장 많이 함.
- 집에 닌텐도 스위치 있음. 가끔 첫째 둘째랑 셋이 거 같이 하는데, 누구 하나 울면 끝남. 주로 둘째가 많이 울면서 끝남.
- 핸드폰게임은 첫째는 신비아파트와 쿠키런, 둘째는 거의 모든 꾸미기게임 섭렵중.
- 현질은 절대 금지.
- 둘 다 거의 5살때부터 게임 시작했음.
다. 장점
- 게임에 집착하지 않는다.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게임시간이 그닥 소중하지 않음.
- 밖에서 게임 얘기 꺼내지도 않는다. 병원 줄 기다릴때, 외식할때 등등 그냥 가만히 있는다. 조금만 참으면 집에서 맘껏 할 수 있으니까.
- 게임 말고 다른거 하자고 하면 얼른 달려온다. (단, 독서는 제외. 한번 해보고 재미없다고 파업중)
- 첫째는 확실히 창의력이 생기는것 같다.(7살때 이상형월드컵 제작)
- 의외로 욕설, 폭력 등 공격적인 성향은 둘 다 딱히 없음.
- 같이 게임하는 아빠와의 관계는 매우 좋다.
라. 단점
- 독서 진짜 안함. (첫째는 6살때 한글을 뗘서 글 잘 읽고 타자도 잘 치는데, 하여간 독서 싫어함)
- 감정이 좀 들쑥날쑥인 느낌. 감정이 과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좀 있음.
- 둘 외에는 딱히 단점 없음. (아내도 단점이 딱히 보이지 않으니 이 방침에 반대하지 않음)
마. 세부사항(여기부터 줄글)
일단 게임을 왜 할까요? 결국 재밌어서 하는겁니다. 심심할 때 재미있고자... TV를 보는 것과, 만화책을 보는 것과, 결국은 같은 활동입니다. 그냥 재미를 위한 활동입니다. 유독 재미가 넘쳐서 문제라면 문제인 거지요.
그럼, 게임을 왜 못하게 할까요?
- 애가 폭력적으로 변할까봐
- 중독될까봐
이 두 가지를 많이 얘기하시는데, 게임중독 얘기는 조금 있다가 하고, 두가지 문제는 게임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게임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 홈런, 뽀로로 코딩컴퓨터 같이 굉장히 많은 아동용 장난감과 교육용 교재에서 반드시 게임기능을 넣고 있습니다. 심지어 타자프로그램에도 게임이 있잖아요?
게임은 일종의 보드게임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집중력, 창의력, 상상력, 통찰력, 관찰력, 판단력 등 다양한 능력을 키워주고, 간접체험을 보다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활동입니다.
그럼 뭐가 문제냐,
어떤 게임을 하느냐!
이게 진짜 문제의 본질이죠.
FPS 게임(오버워치 등)을 하게 되면 짜증만 늡니다. 상대의 압도적인 실력에 무너지면 화만 생기고, 티배깅이나 정치질 같은거 당하면 기분만 나쁘지요. 하지만 총질하다 킬 따는 순간의 쾌감은 압도적이기에, 그러한 부정적 순간들을 견디며 계속 하게 됩니다. 그러면 뭐 인내심이라도 생길까요? 그냥 뻔뻔해지고 다른사람 말 듣기 싫어하고 고집 세지고..
오버워치가 괜히 15세가 아닙니다...
AOS, 특히 롤은 어떨까요?
아주 그냥 발 담그는 순간 일베용어 술술 꿰고 남 조롱하고 놀리는게 습관화가 됩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한판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거지요. 40분정도 걸리는데, 중간에 나가면 또 안됩니다.
그래서 누가 와서 게임 그만하라 그러면 그만하지 못하고 잠깐만 잠깐만 거리다가 싸우고, 대들고, 욕하고, 짜증부리고, 사이 나빠지죠.
롤은 진짜 사회성 갉아먹는 나쁜 게임입니다. 물론 재미는 엄청나지만요.
수많은 핸드폰게임들도 나쁜 게임이 많습니다.
일단 핸드폰게임은 굉장히 단순하기에, 생각과 사고 자체도 단순해질 경우가 많아요.
특히 광고 많이 나오는 심플한 게임(여자가 걸어가면서 옷 같은거 챙기는 그런 레일게임)들은 쉽기 때문에,
어려운 일을 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생기기 쉽습니다.
맨날 쉬운 게임만 하니 도전정신 그런건 생기지도 않고 성취감도 딱히 생기지 않습니다.
그냥 멍~ 한 상태가 지속됩니다.
그래서 학생들 게임 관련 컨트롤은 사용시간이 아니라 게임 내용을 제재해야 합니다.
몇시간을 해도 상관 없지만 이 게임은 안되. 이건 나쁜거야.
그럼 애들은 그 게임을 하기 위해 싸우기 보다는 그냥 다른 게임을 찾게 됩니다.
저는 게임을 좋아해서 제가 직접 게임을 해 보고 판단하고,
아예 애들에게 게임을 추천하기도 합니다.
잇테이크투 같은 경우도 유튜브 좀 보고 제가 먼저 사서 첫째부터 시켰죠. 잇테이크투는 진짜 좋은 게임입니다.
하루에 한시간만 게임해! 이거 진짜 안좋은 방법입니다.
- 그 한시간동안 문제 많은 저질게임을 할 수도 있습니다.
- 게다가 온라인 게임이면 딱 한시간에 끊기도 어렵습니다. 엄마가 그만하랬는데, 경쟁전 5분 남았다? 그걸 어떻게 끕니까.
- 그리고, 게임시간이 매우 소중해집니다. 진짜 나만의 시간이라 여기고, 게임시간에 집착이 강해지죠.
그냥 게임 자체를 하지 마! 이건 최악의 방법입니다.
- 언젠간 게임을 접하게 되고, 그때 게임에 빠집니다.
- 초등학교때 게임 잘 막았다가 고딩때 학원과 학원 사이에 친구들과 PC방에 빠져 성적 내려가는 케이스 정말 많아요.
- 몰래 게임하게 되는데, 부모를 속이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 결국 부모는 동반자가 아니라 나의 적, 이라는 개념이 생겨서 부모와의 사이는 무조건, 진짜 100%, 무조건 나빠집니다.
그래서 게임 시간보다는 게임 내용을 통제해야 합니다.
저같은 경우는 이렇게 합니다.
일단 제가 해보구요, 재밌으면 같이 합니다.
로블럭스 같은 것도 가끔 제가 직접 해 봅니다. 그럼 첫째가 옆에서 이거저거 가르쳐 주는데, 이런 시간 자체가 의미가 있습니다.
평소에 생색도 많이 냅니다. 하고싶은대로 해. 대신 내가 그만하라면 그만해야해.
애들은 그래서 제가 다른거 하자 하면 얼른 달려옵니다. 그게 약속이고, 그 약속이 지켜져야만 자기들도 게임을 원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게임을 하면서 이건 좋다, 저건 나쁘다, 이런것도 많이 얘기해 줍니다.
오버워치를 워낙 하고싶어 해서 시켜줬습니다.
대신 옆에서 지켜보는데, 잘 안되서 짜증내고, 애들이 정치질하고 이런걸 겪고 애가 감정이 흔들릴 때,
이래서 널 안시키는 거다. 이런건 어른들이나 견디지, 너는 기분만 나쁠 것이다, 라고 못하게 했죠.
오버워치는 그래서 안합니다.
그리고 롤 같은거, 이런건 절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구요,
게임 하다가 욕하는거 등등의 매너를 많이 강조합니다.
온라인게임은 왠만하면 하지 말라고 합니다. 중간에 끊어야 하는데 못끊으니 아예 언제든지 끊을 수 있는 게임을 하거나, 남이 기다려줄 수 있는 짧은 게임을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예 스위치로 제가 게임을 추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메이드인 와리오라던가, 잇테이크투, 말랑말랑 두뇌교실 등등 말이죠. 콘솔게임은 기본적으로 솔로플래이가 기본이라 게임 조절이 참 잘 되고, 스테이지 개념이 많아서 성취감도 높습니다. 적어도 멍때리며 게임하는 느낌은 안듭니다.
아직까지는 잘 먹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줄요약
1. 게임 시간보다는 게임 내용을 통제하라
2. 같이 하라
3. 스위치 게임이 짱입니다. 스위치 게임으로 입문하세요!!! 진짜로!!!!
첫댓글 좋은 부모이자 교육자시네요
멋지십니다!
정말 좋은 글이네요
저도 게임 좋아하는 38개월 아들 아빠로써, 나중에 아이의 게임 생활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어떤 게임을 어떻게 같이 할까 고민 중인데, 좋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제 생각에, 저희 애가 초등학생쯤 되면 VR게임도 더 활성화 될 것 같은데, 비트 세이버 같은걸 멀티로 같이 해도 재미있겠다 싶네요. (집이 작아 둘이 같이 할 공간이 안나온다는게 함정...ㅠ.ㅠ)
써주신 내용보다 더 프리하게 게임하고 자랐는데 (7세부터 콘솔 시작, 시간제한, 내용제한 없음) 사실 내용 통제도 필요 없다고 봅니다. FPS, 롤, 심지어 몰래몰래 구한 성인용 게임들 다 해봤지만 크게 문제될건 없었네요. 오히려 고등학교때 까지도 오후 저녁시간에 게임 할만큼 하고 일찍 자고 하니 수업태도 좋아지고 성적도 그럭저럭 잘 나왔고요 ㅎㅎ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제가 경험해본바는 특정 게임을 많이 한다고 그 성향을 닮아가는게 아니라 자기 성향에 맞는 게임을 결국 찾아서 하게 된다고 봅니다. 물론 경쟁 유발하는 대전 게임들은 지면 굉장히 열받고 짜증나고 하지만 여기서 주체 못하고 폭발하냐 적당히 컨트롤 하냐 또한 개인성향으로 갈린다고 봐요
사실 저도 엄청 허용적인 분위기에서 자라서 90년대에 이미 게임페인짓도 많이 해봤거든요. 맨헌트같은 살인게임도 많이 해봤고, 그래도 멀쩡한 어른으로 자랐습니다.
그래도 부모가 되긴 하니까 걱정은 되더라구요. 그래서 내용은 좀 검열하고 있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글 보다보니 문뜩 이게 떠오르더군요. 게임은 아니고 폰과 태블릿에 관한 건데 it업계 대표수장들인 잡스와 게이츠도 자기네 애들한텐 집에서 it기기를 금지시켰었다죠.
이렇게 따로 글 적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 와이프한테 보여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4학년 아이가 게임을 너무 많이 한다 싶어 고민이었는데 많은 참고가 되는 글입니다.
FM, 문명은 어떠신가요
문명을 아빠엄마와 멀티를 하면 최고겠네요
유튜브 보니깐 문명 멀티 12시간 생방 이런거 있던데...
3~4인이 하면 2시간이면 될겁니다 ㅎㅎ
둘 다 좋은게임이고
특히 문명은 제가 예전에 사회과 교생할 때 수업자료로 썼습니다 ㅋㅋ
멋진 아빠시네요. :-)
저 또한 같이 하는게 제일 좋더라구요. 그래서 전 온라인 게임 보다는 콘솔게임류를 더 좋아합니다.
뭐든지 같이 하는게 중요한거 같아요
미디어건 게임이건...
유튜브도 같이 보면서 소통하려고 하는데 사실 잘 안되네요...애들껀 너무 나랑 안맞아서...
아예 게임을 못하게 할 거 아니라면 내용을 통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깊이 공감합니다.
추가로 첨언하자면, 게임 내용 외에 게임의 연출적인 측면도 따질 필요가 있습니다.
뇌과학쪽에서 영유아들에게 게임과 미디어를 멀리 하라고 당부하는 이유는 화면이 너무 빠르고 자극적이어서이죠.
화면변화가 빠르고 번쩍거리는 연출이 많은 화면은 '빠르고 강한 자극'에 해당하는데, 한참 뇌발달이 진행되는 나이의 영유아가 빠르고 강한 자극에 익숙해지면 역치가 높아져서 느리고 약한 자극에는 잘 반응하지 않게 됩니다.
본문 내용에도 있지만 '책을 읽지 않는' 이유가 여기서 나오는 거죠. 독서는 매우 '느리고 약한 자극'에 해당합니다.
빨리빨리 넘어가는 화면에 익숙해지면 천천히 글을 읽는 건 자연히 멀리 하게 되구요.
어른들도 강한 자극에 길들여지면 약한 자극은 재미 없게 느끼는데 어린아이들은 그 정도가 더 심해요.
글 읽기를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서 글을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맥락 파악을 못하고 문해력이 떨어지고 하는 거죠.
결론적으로, 요즘 시대에 게임과 미디어와 아이들을 완전히 단절시키기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어쩔 수 없다면 느리고 덜자극적인 게임 위주로 접하게 하는 게 좋습니다.
좋은 말씀이네요
어우 참고하겠습니다 너무 멋지심
좋은 글입니다. 참고할게 많네요~~
잇테잌스투 다운받으러 갑니다.
저랑 비슷하시네요. 못하게 하면 나중에 커서 자유가 주어졌을 때, 자기 통제가 힘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너가 너의 일에 책임을 다 한다면, 너가 게임하는데는 절대 터치하지 않는다." 가 제가 아들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mmorpg는 나이가 먹어도 시작하지 말라고 충고는 해 줬습니다. ㅎㅎㅎ
전 제가 게임을 많이 했어서;;; 하다보니 지겨워지고 스스로 너무 많이 하면 뭔가 걱정되고 다 때가 있는것 같아요. 친구들과 밖에서 놀때면 게임은 뒷전이지요. 지금은 컴퓨터 준비해두고 플스도 사놓고 게임 CD만 모아놓고 안하네요. 스스로 공부할 애들은 공부하고, 예체능 할 애들은 예체능 하고, 게임할 애들은 게임하고 하더군요. 스스로 하고 싶은것을 찾지 않고 주변에서 참견만 하면 오히려 반발심이 생겼던것 같아요.
요즘 애들 한글교육과
탭,스마트폰과의 괴리때문에
고민이 있는대 좋은글 참고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