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고등동기 다섯명이서 모처럼 저녁을 먹기로 하고"고향의 맛, 통영집"에 모였다.
한 친구는 한국은행 부총재를 끝내었고, 법원에서 일하였던 또 한친구는 하릴없이 바쁘기만 한 백수들.
나머지 둘은 현직 변호사이다.
저는 이 친구들의 집안과 고향까지 모두 안다.
구미가 둘, 통영, 대구, 영주 친구들이다.
통영출신의 친구가 소개를 하여,
지난번 해남출신의 서울고등법원 의료전담 부장판사가 주최한 "해남 천일옥 서울 분점"에서
후대를 받은 적이 있는지라 오늘도 그걸 기대하면서.
사실 저도 통영은 여러번 갔었지요.
62년 중악교 2학년 때가 첫번이었고
두번째가 84년 겨울, 차를 갖고 남해안 여행길에 들른 곳입니다.
미륵섬 산양도로를 일주하면서 먹은 백합죽,
밤에는 부두에서 사온 뚱보할매 김밥을 거제교가 내려보이는 충무관광호텔 2층의 스위트 룸에서 밤참으로,
다음날은 아침식사로 먹었었고.
그때는 조용한 도시이었는데.
재작년에는 5월에 관광버스를 타고 하룻밤을 자고는 미륵섬의 케이블를 타고 정상에 올랐었고
동피랑 벽화골목을 들렀다 시장통에서 미리 사온 충무김밥과 멍게비빔밥.
지금은 차를 가지고 가면 교통이 너무 혼잡해 오히려 불편한 곳이 되어 버렸다.
한 친구는 장인을 오랫동안 봐드렸고
한 친구는 내시경적 대장암 수술을
한 친구는 대법원장 하시던 분의 아들로 어르신네가 담낭 수종이 담도를 폐쇄하여 일어난 황달을.
그 뒤에도 또 분당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계실때 봐드렸지만.
모두가 나에게 신세를 진 친구들이다.
의사란 직업은 이럴때 좋다.
다른이의 부탁을 선뜻 들어줄수 있으니, 전직 판사인 두 친구가 우린 그럴 수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검사들은 좀 나은데.
나도 지금은 장관인 동생이기하고 후배가
지방의 차장 검사로 있을 때 두 건을 부탁하였었지요.
부탁인즉 제자들끼리 일어난 송사를 정확하게 일을 처리해달라고,
또 한건은 하반신 부분마비가 있는 구치소에 수감된 나의 오랜 환자를 병사로 옮겨 달라는 부탁.
시시한 청탁이지요.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친구들 욕 좀하자.라고 운을 떼고서는
서울대 입시를 끝내고 대구에 내려와 오전내내 수성못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집으로 들어오니까
웬지 집안 분위기가 싸늘하다.
조금 있으니 부친이 "너 대학입시에 떨어졌다고 담임한테 전화왔다."
"아니 그럴리가 없는데요" 하며 일단 점심먹고 한숨자고 일어났더니 뭔가 수상스러운 점이 있어
담임 선생님댁을 찾아 갔더니 "아직 발표도 안되었고, 내가 떨어진 것을 전화하겠어." 하신다.
나중 알고보니 아직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몇명이서 점심때 중국집에 모여
그래도 가장 합격 가능성있는 나의 집에 담임 목소리 흉내를 내어 전화를 건 것.
물론 전화를 건 친구들은 한명도 빠짐없이 대학에 떨어졌습니다.
다른 이야기는 지금은 돌아가신 중학교 국어선생님, 전 상렬시인.
하루는 집으로 가정방문을 오셨다.
부친은 중국요리를 시켜 술을 좋아하시던 두분이 낮술 한잔을 하시고는 선생님이 돌아가실때
봉투를 하나 주셨는데 나중 내 편에 시집을 한권 전해주셨다.
"지금은 하오 한시"로 시작되는 "하오 1시"가 실린 시집 한권을.
이분의 정년퇴임때 직접가지는 못하고 축하선물을 보내어 드렸다.
인연은 그 아들로 내려와서 지금도 친하게 지낸다.

기본 상차림.
낙지, 생굴과 멍게가 한접시에 담겨 있고. 그 위는 봄철이라 두릅회, 그 옆은 고동.

모듬회가 나오기 전에 나 온 부추전.
부추, 아니 경상도 말로는 "정구지"가 조금 더 있었으면.

모듬회.
모두가 싱싱하고 방어, 호르래기, 도미, 광어, 오른 쪽 중간의 뼈까지 먹었는 병어회.

새우튀김과 고구마튀김.
역시 튀김은 튀긴 즉시 가져와야 제 맛, 고구마도 얇게 썰고 얆게 옷을 입혀 입에서 아싹댄다.

노릿하게 구운 가자미.

처음 나 온 홍합을 껍질을 까고.

통영비빔밥이다.
안동의 헛제사밥과 비슷하고 고추장을 넣고 비벼도, 안넣고 비벼도 좋으나 나는 그냥 먹었다.
가운데 두부 익힌 것이 특징.

각자 퍼 준 도다리쑥국.
식사는 매운탕대신 통영비빔밥과 도다리쑥국을 특청해서 먹고.
멍게 비빔밥과 멸치, 이 동네에선 멸치, 아니 미루치 시락국도 좋은데 그건 다음을 기약해야지.

식사 때 나온 세가지 반찬.
원래 통영에서는 멸치회도 있으나 이건 서울에서 여간해서 맛보기는 힘이 든다.
멸치조림 옆에 있는 것은 "파래까실이 무침."

오늘 낮 한시차로 올라온 쑥을 넣고 도다리와 끓인 국.
쑥의 향은 봄내음이다.
이때 쯤 친구들은 "이건 고문이야" 맛있는 걸 두고 안먹을 수도 없고하면서.
이날 다섯명이 마신 술은 국순당 생막걸리 3병과 소주 한병.
호기롭게 마시던 시절은 모두 지나가고, 2차, 3차도 벌써 없어지고, 그저 만나서 이야기하는 재미만.

통영을 소개하는 글과 사진.
통영은 예향인가?

오른 쪽 두분은 형제.
동숭동 서울대 교수 관사 옆 제가 하숙하였던 방에 시인 이 영도씨가 살았다던데.
이 두분의 로맨스(?)는 유명하지요. 사실은 불륜의 관계인데.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달.
윤 이상씨는 동백림사건의 주인공이었으나 지금은 통영의 "윤 이상국제 음악제"로 남아 있다.

김 춘수시인의 "꽃"이란 시가 생각이 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내가 그이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박 경리선생의 문학관이 이곳에 있으나 주요한 것들은 원주의 토지문학관에 있지요.
섬짐강가 평사리를 배경으로 쓴 대하소설 "토지"
그곳에 소설의 최 참판댁이 지어져 있다던데.
지난번 세상을 떠나신 박 완서선생님과 더불어 한 시대를 대표하시던 분.

지금 제가 보고 있는 만성 신부전환자인 화가도 이 대열에 오를 수 있을까?
한자리에서 굳건히 6시반부터 세시간 떠들며 놀다가 전부 지하철 2호선 역삼역으로 직행,
나를 포함한 세명은 교대쪽으로, 두명은 반대편 쪽으로 타고 저야 두 정거장 후 하차하여
기다리고 있던 마을버스로 바꾸어서 정각 10시에 집에 다달았다.
서로간 이해가 없으니 유쾌하고 즐거운 모임, 맛있는 저녁이었다.
이 집은 생긴지 일년이 조금 넘었다하며 아마 주인이 통영사람인 듯.
위치는 역삼동 엘지빌딩 동호대교 가는 쪽으로 건너편 지하, 전화 508-3330.
가격대가 착해요.
첫댓글 이건 몇년전에 작성한 글입니다.
방준재선배님과 저녁을 여기 4월 22일 6시 반에 예약을 하였으니
박인철, 윤덕기선생은 이글을 보고 댓글 부탁.
Call.
어쩐지 방선배님 글이 안 올라오더라니.... 우리나라에 와 계신 모양입니다.
방선배님 친구분 나나이모 사장님께서는 몸이 불편하시어(호흡곤란 문제...) 어떤 병원에 입원중이라고
합디다.... 안부나 잘 전해 주세요...
오케이.
확인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