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감독 시절, 세계적인 축구 스타 요한 크루이프의 아들 요르디(Jordi)를 대표팀에 발탁한 적이 있다. 1996년 영국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전에 그를 투입했다. 내가 스페인 발렌시아팀 감독일 때 그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뛰었기 때문에 그를 예의주시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는 득점 감각이 뛰어났고, 상당한 기술력을 겸비한 스트라이커였다.
그가 크루이프의 아들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를 대표팀에 합류시킨 것은 그 사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는 대표팀에 합류하자마자 스위스를 상대로 중요한 골을 보란 듯 성공시켰다. 요르디는 기술적으로 플레이를 펼치는 스트라이커였다.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프로선수로 뛸 만큼 완숙한 단계에 올라서 있었다.
차두리가 넘어야 할 산 '아버지'
한국대표팀의 차두리도 비슷한 경우다. 내가 차두리를 최종 엔트리에 포함시킨 것은 그가 천부적인 체력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그가 차범근 전 대표팀 감독의 아들인지는 알았지만,. 만약 그가 별 볼 일 없었다면 결코 선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차두리는 한국에서 스피드와 파워를 겸비한 몇 안 되는 선수다. 기술적으로 완숙한 경지는 아니지만, 잠재력이 풍부했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성실한 훈련태도 덕분에 빠르게 성장했다.
그가 그라운드를 휘젓고 다니면 상대 선수가 위협을 느낄 만큼 파워가 넘친다. 체격과 힘도 좋아 유럽 선수들에게도 밀리지 않으리라는게 주된 선발 이유였다. 물론 차두리는 골 결정력이 약한 게 흠이었다. 그래도 힘이 넘치는 선수인 만큼 월드컵을 거치면서 성숙한 단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는 2002년 월드컵에서는 주전이 아니었지만, 2006년 월드컵에서는 주전이 될 소지가 충분하다,.
나는 두 선수와 각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둘 다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하려고 노력했고, 나는 옆에서 그들의 노력을 도왔다. 하지만 두 선수는 성격이 전혀 달랐다. 둘 다 아버지 유명세 속에서 성장했지만, 요르디는 차두리보다 나이가 많았던 만큼 대표팀에 합류할 당시 이미 독립한 상태였다. 스페인 프로 리그에서 검증 받은 스트라이커였고, 프로 선수로서 자기 영역을 다져나가고 있었다.
두리는 대표팀에 합류할 당시 대학생이었다. 부모 그늘에서 완전히 독립한 상태가 아니었다. 한국 문화 탓이겠지만 아직 자기 영역을 구축하지도 못했다. 당시 프로 리그에서 검증 받은 선수도 아니었지만, 내 눈엔 그의 성장 잠재력이 보였다. 만약 내가 그를 잘못 봤다면 월드컵 이후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이 그와 계약을 맺을 리 없다. 차두리의 또 다른 강점은 완벽한 독일어를 구사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차두리가 대표팀에 들어온 뒤 나는 그를 혹독하게 다그쳤다. 그는 아버지의 유명세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도 뭔가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에게 골을 넣지 못했다고 아쉬워하지 말라고 했다. 대신 골이 들어갈 때까지 계속 슛을 날리고 찬스를 만들어내라고 격려했다. 축구란 잘되다가도 안 될 때가 있는 것이다. "골이 안 들어간다고 포기하지 말라. 실패했다고 해서 공 뒤에 숨지 말라. 다음 기회를 노려라."
차두리는 사람들이 항상 아버지와 자기를 비교한다고 투덜거렸다. 요르디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요르디를 지도한 경험을 차두리에게도 적용했다. "너는 아버지의 아들이지만, 세상에 아버지 아들이 아닌 사람은 없다. 너는 이제부터 차두리라는 국가대표 축구 선수이지, 차범근의 아들이 아니다. 네가 실수하면 혼내고 야단치겠다. 네가 겁이 나서 골을 넣으려는 시도조차 안 한다면 국물도 없다, 아버지 이름을 더럽히기 싫다고 해서, 실패가 두렵다고 해서 아무런 시도도 안하면 용서하지 않겠다. 실패했다고 해서 의기소침하고, 실패가 두려워 다음 기회를 노리지 않는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하지만 찬스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모험을 감행하다 실패하는 것은 얼마든지 용납한다. 언론이 너를 아무리 비판해도 나는 너를 보호한다. 네 뒤에는 항상 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말라."
축구 선수는 실패가 두려워 공 뒤에 숨어버릴 수 있다. 슬럼프에 빠지면 나타나는 현상이다. 가장 단적인 예가, 경기 중 빈 공간에 뛰어들어가야 하는데도 실패가 두려워 들어가지 않는 경우다, 실패가 두려우면 선수는 공이 안 오는 곳에 가 있곤 한다. 그래서 나는 차두리에게 " 만약 네가 그런 행동을 보이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어느 경기에선가 차두리는 골을 넣을 결정적 찬스를 놓쳤다,. 그러자 관중은 그에게 야유를 보냈다. 차두리는 머리를 감싸쥐고는 못내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러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를 불러 야유에 반응하지 말라고 야단쳤다. 오히려 당당하게 나와서 골이 들어갈 때까지 뛰고 또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코스타리카전에서 골을 넣었을 때 힘이 넘치는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골 세레머니를 하지 않는 걸 보고 아직도 아버지의 명성에 짓눌려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축구는 실패투성이 게임이다. 골을 만들어내려고 수많은 드리블과 패스를 시도하다 겨우 한두 골로 승부를 결정짓는 경기다 . 그 숱한 시도들은 대부분 실패하고 만다, 따라서 축구는 실패를 컨트롤하는 경기다. 정확한 슈팅을 날리고 정확한 패스를 하는 게 중요하지만, 축구 속성상 부정확한 게 훨씬 더 많다. 따라서 한 번 실패했다고 그 선수 체면이 손상되는 건 아니다.
한국 문화에서는 단 한번 실패가 그 선수의 운명을 결정 짓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실패보다 단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도를 했느냐가 축구에서는 훨씬 더 중요하다. 실패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차두리에게도 그렇게 말해주었다.
김병지선수의 예는 조금 다른듯 합니다 ㅎㅎ.. 김병지선수가 스스로 이야기한 부분과 히딩크 감독의 자서전에 비춰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당시 김병지선수는 정말 최고의 스타였습니다. K리그 연봉 1위를 했던적도 있었으며 경기장밖에서도 방송이나 CF쪽에서도 잘나갔죠. 경기 운영방식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전진 플레이를 자주 구사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히딩크선수는 대표팀에 오자마자 선수들의 기강을 잡으려했습니다. 홍명보선수가 말했듯이 엄청나게 치밀하며 선수단의 분위기 하나하나를 체크해나가는 아주 세밀한 스타일의 감독입니다. 그런 히딩크 감독과 혼자만 노랑머리를 하고있는 김병지선수의 눈에 보이지않는 자존심싸움
이 있었을꺼라고 저는 예상합니다 ㅎㅎㅎ; 그런 가운데 아시다시피 파라과이전 사건이 일어났고(병지선수 입장을 변호해 보자면 경기가 안풀려서 전방으로 깊숙히 찔러주려고 했던게 타이밍이 안맞아서 한번더 치고나갔던거라고 하더군요) 위에 아이유님 말처럼 히딩크감독은 바로 김병지를 제외합니다. 그뒤 김병지선수는 마음만 먹으면 K리그에서 눈에 보이는 활약이 가능할정도의 레벨이었고 이번에도 그런 레벨을 보여주며 다시한번 여론의 힘을 입어 승선을 합니다. 김병지선수는 본인말로 다시 의기양양해졌다고 합니다. 역시 내가 최고다. 어린나이에 덜 성숙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네덜란드에서 김병지같은 튀는 선수들을 많이 조련해
본 히딩크 감독이었기에 김병지선수의 주전 혹은 승선외에도 5:0 감독이라는 여러 여론에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봅니다. 김병지선수 왈 이미 히딩크감독은 이운재선수를 내정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ㅎㅎ 자신은 그걸 느꼈다고 합니다. 뭐 자서전에는 자신은 김병지선수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경기전날 GK감독이 이운재선수 컨디션이 더 좋다고 해서 발탁했다고 하지만 모든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죠. 아무튼 김병지선수와의 오히려 대립의 각을 세웠다고 보는편이 맞기에 차두리케이스와는 다른것이죠^^ 그나저나 쓸대없이 말이 길어진것 같네요;; 제가 축구와 그중에서도 GK부분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거라고 이해해주세요ㅠ
아직도 기억나는게 2002월드컵이 끝나고 1년뒤에 무슨 기념식인가 다큐를 했는데 히딩크 감독이 나오면서 선수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라고 할때 제일먼저 말한 선수가 김병지 였습니다..너무 고맙다고 말이죠;; 개인적으로 어려울 상황에서 감독인 자기를 잘 따라줘서 고맙다고 말이죠..
올해도 역시 마찬가지고 그런 GK 방어스타일의 변화가 K리그 최장경기 출장기록과 김병지선수 스스로가 자신의 전성기는 지금이다라고 외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GK에 관심이 많고 김병지선수에 관심이 많아서 그의 프로 인생과 함께 축구 경기를 관람해왔는데 참 이선수만큼 다사다난한 선수도 없습니다. 실패도 참 많았구요. 지금 대충 생각나는것만도 06년 엔트리 제외, 수원(이운재)과의 승부차기 통한의 패배(이때 우승했으면 MVP는 김병지선수라는 소리도 나왔습니다), 서울과의 계약등등 참 무수합니다 ㅎㅎㅎ 이런 시련이 그를 더 단단하게 한것 같습니다.
첫댓글 너무 대단한 아버지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압박을 받았겠죠....조던아들들은 더했을라나...ㅎㄷㄷ
조던 아들은 이보다 5백만배는 심할듯.....ㅡㅡ;;;
5백만배는 좀 심했네요. 그래도 한 때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에 한명이었던 차범근이었는데요. 지금도 독일에서의 위상은 대단하죠.
히딩크 진짜 멋지네요...^^
명장은 진짜 명장이네요.
"한국 문화에서는 단 한번 실패가 그 선수의 운명을 결정 짓는 경우가 있다." 이건 진짜 와닿는 말이네요.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한 순간 실수 때문에 질타를 받고 망가져간건지..
와... 진짜 멋진 감독이군요.. 감동 ^^
그러고 보니 차두리가 공격수였다는걸 까마득히 잊고 있었네요.
02월드컵 후에 열린 중국 아시안컵에서도 주전 윙포워드 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당시에 멋진 중거리슛으로 골도 넣었ㄷㄴ 것 같은데.. 02월드커 후 독일전에서는 이동국과 함게 독일수비진을 초토화시켰구요 ㅋㅋ
이탈리아전에서 오버헤드킥도 했던걸로 기억하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박지성의 아들은 차범근의 아들만큼 압박을 받지는 않을 거 같네요.
"모험을 감행하다 실패하는 것은 얼마든지 용납한다. 언론이 너를 아무리 비판해도 나는 너를 보호한다. 네 뒤에는 항상 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말라" ...멋지구리.
병지형은 왜.. ㅋㅋㅋ
자기에 본분을 망각하는 선수를 엄청 싫어한다고 인터뷰에서 본거 같군요..
김병지선수가 거기에 든거겠죠..ㅡㅡ;;
김병지선수의 예는 조금 다른듯 합니다 ㅎㅎ.. 김병지선수가 스스로 이야기한 부분과 히딩크 감독의 자서전에 비춰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당시 김병지선수는 정말 최고의 스타였습니다. K리그 연봉 1위를 했던적도 있었으며 경기장밖에서도 방송이나 CF쪽에서도 잘나갔죠. 경기 운영방식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전진 플레이를 자주 구사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히딩크선수는 대표팀에 오자마자 선수들의 기강을 잡으려했습니다. 홍명보선수가 말했듯이 엄청나게 치밀하며 선수단의 분위기 하나하나를 체크해나가는 아주 세밀한 스타일의 감독입니다. 그런 히딩크 감독과 혼자만 노랑머리를 하고있는 김병지선수의 눈에 보이지않는 자존심싸움
이 있었을꺼라고 저는 예상합니다 ㅎㅎㅎ; 그런 가운데 아시다시피 파라과이전 사건이 일어났고(병지선수 입장을 변호해 보자면 경기가 안풀려서 전방으로 깊숙히 찔러주려고 했던게 타이밍이 안맞아서 한번더 치고나갔던거라고 하더군요) 위에 아이유님 말처럼 히딩크감독은 바로 김병지를 제외합니다. 그뒤 김병지선수는 마음만 먹으면 K리그에서 눈에 보이는 활약이 가능할정도의 레벨이었고 이번에도 그런 레벨을 보여주며 다시한번 여론의 힘을 입어 승선을 합니다. 김병지선수는 본인말로 다시 의기양양해졌다고 합니다. 역시 내가 최고다. 어린나이에 덜 성숙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네덜란드에서 김병지같은 튀는 선수들을 많이 조련해
본 히딩크 감독이었기에 김병지선수의 주전 혹은 승선외에도 5:0 감독이라는 여러 여론에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봅니다. 김병지선수 왈 이미 히딩크감독은 이운재선수를 내정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ㅎㅎ 자신은 그걸 느꼈다고 합니다. 뭐 자서전에는 자신은 김병지선수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경기전날 GK감독이 이운재선수 컨디션이 더 좋다고 해서 발탁했다고 하지만 모든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죠. 아무튼 김병지선수와의 오히려 대립의 각을 세웠다고 보는편이 맞기에 차두리케이스와는 다른것이죠^^ 그나저나 쓸대없이 말이 길어진것 같네요;; 제가 축구와 그중에서도 GK부분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거라고 이해해주세요ㅠ
아직도 기억나는게 2002월드컵이 끝나고 1년뒤에 무슨 기념식인가 다큐를 했는데 히딩크 감독이 나오면서 선수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라고 할때 제일먼저 말한 선수가 김병지 였습니다..너무 고맙다고 말이죠;; 개인적으로 어려울 상황에서 감독인 자기를 잘 따라줘서 고맙다고 말이죠..
맞습니다~ [LAL]yj.com님 말씀대로 그것이 김병지에게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던것 같습니다. 약간은 젊은 패기에 혈기왕성했던, 무서울것이 없었던 김병지선수에게 전경기 벤치행은 하나의 시련으로 다가왔고 터키전까지 묵묵히 참아내며 락커룸에서 팀분위기를 생각하며 누구보다 파이팅을 외칠수있었던 김병지선수의 그릇은 그 스스로가 생각보다 훨씬 켰다고 봅니다. 그뒤로 스스로를 돌아보며 경기운영방식도 반사신경에 의존하기보다 수비라인을 조율하며 방어하는 스타일로 바뀌고 선수자체도 성숙해졌다고 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02년부터 10년까지 1~2년을 제외하고 K리그의 No.1 GK는 매해 김병지선수였습니다.
올해도 역시 마찬가지고 그런 GK 방어스타일의 변화가 K리그 최장경기 출장기록과 김병지선수 스스로가 자신의 전성기는 지금이다라고 외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GK에 관심이 많고 김병지선수에 관심이 많아서 그의 프로 인생과 함께 축구 경기를 관람해왔는데 참 이선수만큼 다사다난한 선수도 없습니다. 실패도 참 많았구요. 지금 대충 생각나는것만도 06년 엔트리 제외, 수원(이운재)과의 승부차기 통한의 패배(이때 우승했으면 MVP는 김병지선수라는 소리도 나왔습니다), 서울과의 계약등등 참 무수합니다 ㅎㅎㅎ 이런 시련이 그를 더 단단하게 한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