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빙탄상애(氷炭相愛) - 얼음과 숯이 사랑한다.
11. 재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성균관으로 돌아온 세 사람은 동삼문을 들어서면서 호기에 찬 정호의 목소리에 주목했다.
“성균관에 들어와 사서오경을 배우고 연구하는 자로써..
이대로 백성들의 고통을 보고 있을 수만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성균관에서 따뜻하게,
배부르게 학문할 수 있는 것 또한 백성들의 땀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지 않습니까?”
정호의 말을 조용히 경청하고 있던 지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를 하였다.
류현은 담벼락에 기대어 그들을 바라볼 뿐 별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그들이 우리에게 베푼 덕을 이제 우리가 그들에게 베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아직 유생이라 떳떳이 명자를 내밀지 못할 만큼 부덕합니다. 그렇지만..그렇지만..”
류현은 끝맺지 못한 정호의 뒷말을 알겠다는 듯 살짝 비뚤어진 흑립을 바로 잡아 썼다.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생겼네, 안 그래? 동 장의 이지윤?”
“날이 밝는 대로 재회를 소집 하겠네.”
류현의 입가엔 미소가 드리웠다. 그와 반대로 지윤은 어딘가 불편한 기색이었다.
정호가 눈을 뜬 것은 갖 묘시에 들어섰을 때였다.
어스름해졌던 날이 밝아오자 수복이 아침을 알리는 신호가 울려 퍼졌다.
모든 유생들은 밖으로 나와 수복이 나누어 주는 물로 세수를 하였다.
류현은 하품을 하면서 방문을 나와 세숫대야를 마루위에 던지자
대야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빙그르 돌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물을 나눠주던 수복은 당연하다는 듯 마루에 떨어진 세숫대야를 보자
바가지에 물을 떠와 황급히 류현의 세숫대야에 김 서린 물을 부어주었다.
정호는 지윤은 어딜 갔는지 어스름해질 때 나가선 이때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이각이 지났을 때 정읍을 알리는 북소리와 함께 유생들은 식당으로 발을 옮겼다.
“식사를 하러 가지 않을 것인가?”
정호와 류현은 지윤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가 류현이 뱃속에서 부글거리는 허기를 달래지 못하고
방을 나서려고 하던 순간 지윤이 방으로 들어왔다.
“어디 갔다가 지금 오는 거야!”
늘 그러하듯 온화한 미소가 돌아왔다. 새벽녘 말도 없이 사라져 내심 안전부절하고 있던
류현은 그의 얼굴에 띈 미소를 보자 괘씸한지 괜히 성을 냈다.
“그냥 저냥 처리할 일이 있어서 본가에 다녀왔다네.
다녀오는 길에 서 장의에게 들려 재회소집에 대해 논의를 하고 돌아왔다네.”
지윤이 서 장의에게 현 백성의 고통에 대해서 이해시키는 것이 어려웠다.
세수를 마친 그는 재직의 도움으로 상투를 트고 있었다.
지윤의 말에 그는 노발대발하며 반대하였다. 그 자또한 자신의 이익이 최우선으로 여겼고
노론당색에 짙은 자라 백성의 고통은 일개 유생인 자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발을 빼려고 하는 것을 지윤이 윽박을 지르고 겁박까지 주며 재회를 소집하도록 설득하였다.
꽤나 강한 집념으로 달려드는 처음 보는 사납고 섬뜩한 그의 모습에
서 장의는 두 손, 두 발을 들고 재회를 소집하는 것에 동의하였다.
모든 유생들의 아침식사가 끝나고 수복은 재회 소집 신호를 알렸으며,
당번인 수복들이 동재와 서재을 오가며 재회의 참석할 것을 권하였다.
재회의 참석하기 않을 경우 도기의 예에 해가 갈 수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모든 유생이 참석하였다. 서재청에 마련 된 자리에 유생들이 모여들었다.
지윤은 아직 재회장에 들어서지 않았고 류현의 경우 상색장으로써 동향에 앉았으며
작년에도 조사였던 정호는 올해도 성균관에서 최연소였기에 조사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윽고 모든 유생이 착석한 것을 보고 수복 하나가 장의를 모시러 갔다.
연갑을 든 재직이 서 장의와 동 장의 지윤을 자리로 인도하였다.
수복이 기좌라 외치자 모든 유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의와 유생들은 대립하여 서있었고 수복이 읍을 외치자 마주 보고 있던 이들은 읍례를 하였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재회가 시작되었다.
“현 백성들의 고난은 곧이어 나라의 위난이다. 백성들의 고통을 경시하는
조정은 이를 바로잡아 백성들을 안위한 삶으로 이끌어야 하며, 주상전하께오선
민심을 다독여 군자에 대한 백성의 천심을 굳건하게 다져야 한다.”
서 장의의 재회의 안건에 대해 선포하였다.
그러자 수복이 큰 목소리로 장의의 말을 유생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말하였다.
수복의 말이 끝나자 지윤이 곧이어
“성균관 유생으로써 백성의 고통을 헤아리지 않는 조정 대신들을 비판하며,
그들을 평온한 삶으로 이끌기 위하여 우리 성균관 유생들은 막역한 모습을 유소에 담아
주상전하께 올릴 것이다. 모든 유생들은 명첩에 이름을 적어 유생으로써의
백성에 대한 은혜를 보답하고 덕을 행하라”
수복에게 의해 전해들은 지윤의 말에 유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 장의 옆에 앉아있던 상색장이 반박하였다.
“어찌 우리가 백성에게 은혜를 입었단 말입니까? 오히려 백성들이 우리에게 은혜를 입는 것이겠지요.”
서 장의는 미간을 찌푸리고 아까 전 지윤에게 말하지 못한 바를 대변하는 상색장의 반론에 동의하였다.
아니꼽게 상색장을 보던 또 다른 상색장인 류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그자에게 손가락질을 하였다.
“오늘 네가 쳐 먹은 밥이 누가 만든 건진 아냐?
네놈의 면상을 청결이하라고 물을 떠다주는 이는 누군지 알고 있냐?”
류현의 호통에 유생들의 수군거림은 더욱 커졌고
당황한 서 장의과 상색장은 토끼눈을 뜨고 멀뚱멀뚱 쳐다만 보았다.
“상색장은 재회의 예, 장의와 색장에 대한 예를 갖추시길 바랍니다.”
지윤이 그의 행동을 엄격하게 제지하자
수복이 류현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애처롭게 눈빛을 보냈다.
그제야 류현은 맞은편에 앉아 수군거리는 유생들을 인식하고는 정중하게 자리에 앉았다.
“일반천금이라, 한 번 얻어먹는 밥에 천금과 같은 은혜가 담겨있다 하온데
어찌 백성들의 땀이 섞인 밥을 먹는 우리가 그들에게 은혜를 입지 아니한다 말할 수 있는가.
또한 그들의 은혜를 뼈에 새겨 더 나아가 신료가 되어 그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마땅하다.”
지윤의 말을 들은 유생들은 모두 자신이 여태껏 성균관에서 기거했던 삶을 되돌아보았다.
나라에서 내리는 성균관의 모든 경비 또한 나라 백성들의 땀이었다.
때로는 그들대신 발이 되어 땀을 흘린 이들 또한 나라의 백성이었다.
그런 그들이 지금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으며,
설사 알고 있다고 하여도 그들을 도울 방법이 없었다.
일사천리로 왕에게 올릴 유소는 완성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유소의 소임을 정하고 유생들의 이름을 명첩에 적으면 되었다.
서 장의는 대의사를 진행하려는 지윤을 제지하고 유생들에게 말했다.
“이번 안건은 다수결로 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각 유생들은 자의로 명첩에 이름을 적을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전하께 올릴 유소 명첩에 이름을 적지 아니한 자들에게 불이익이 가는 일 또한 없을 것이다.”
이는 곧 유소를 올리는 것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는 자가 있음을 나타내고,
그 일에서 발을 빼고 싶어 한다는 자가 있다는 말이었다.
아침녘 재회 소집을 동의한 서 장의가 한 말이 생각났다.
‘재회를 소집하는 것에 동의를 하지만 자네와 뜻이 같지 않은 내가 있듯이 유생들의 뜻도 다를 걸세,
자네가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니 유소에 대한 다수결은 논하지 않겠네.
허나, 강제로 그 명첩에 이름을 적는 자들은 없어야 할 것이네.’
그의 말을 들은 후여서 지윤은 놀라지 않고 유생들을 바라보았다.
서 장의의 말에 유생들의 수군거림은 다시 시작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소의 소임을 하겠다고
나설 이가 없을 것이라 여긴 지윤은
재회를 빨리 끝내길 원하는 몇몇 유생들에 행색에 수복에게 명첩을 건 냈다.
명첩을 건 내어 받은 수복은 상석인 북쪽으로 가 그곳에 앉아있는 나이가 든 유생에게
명첩과 붓, 벼루가 올려져있는 서안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 나이 든 유생은 유소의 첫 머리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 것을
꺼려하는지 쉽사리 붓을 잡지 않았다.
그것을 지켜보던 정호는 참을 수 없었는지 재빨리 손을 들었다. 그것을 본 지윤은 정호에게
“윤정호 유생 이의가 있는가?”
“제가 이 유소의 소두가 되도록 승낙해주십시오.”
지윤과 류현은 깜짝 놀랐다. 일이 잘못되면 소임들에게 해가 갈지도 몰라
겁먹은 유생들은 선뜻 소임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 화가 난 정호는
처음부터 이번 재회를 소집할 명분을 만든 것이 자신이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소두가 되겠노라 나섰다.
“제가 소두가 되고 유소 첫머리에 이름을 적겠습니다.
그리하면 저와 같이 백성을 안타깝게 여기는 자들 또한 쉽게 유소의 이름을 적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의 저돌적인 모습에 지윤은 어쩔 수 없이 승낙을 하였다.
서 장의 또한 별 문제가 없었기에 쉽게 승낙하였다.
수복은 명첩이 올려진 서안을 정호에게로 가져왔다. 붓을 잡은 정호는 날렵하게 명첩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이로써 소두는 확실하게 정해졌다.
정호의 호기로움에 유생들은 겁내던 자신을 책하였고 다른 소색 및 제소, 사소 또한 쉽게 결정되었다.
순조롭게 명첩에 이름이 적혀져갔다. 모든 유생들이 명첩에 이름을 적지는 않았지만
맨 끝에 있던 자가 이름을 적고 나서 그 명첩은 다시 정호에게로 돌아왔다.
정호는 유소함에 유소를 넣었고 완성된 명첩, 청금록을 상자에 넣었다.
그리고 서 장의와 동 장의의 동의에 재직이 외쳤다.
“파좌를 아뢰오. 파좌를 아뢰오. 파좌를 아뢰오.”
모든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상읍례를 하였고 모두 흩어져 재회가 해산되었다.
“어찌 무모한 짓을 하였는가?”
“왜 무모하다 생각하십니까?”
서재청에 남아있던 정호를 급하게 찾아온 지윤과 류현은 걱정스러운 마음이 얼굴에 가득하였다.
수복들은 재회가 끝나고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유소함과 청금록상자는 이미 수복이 정리를 하였다.
“출세 길이 막힐 수도 있는데도?”
류현은 답답하다는 말투로 정호에게 투덜거렸지만 이미 끝난 일이라 다시 뒤집을 수는 없었다.
“그런 것은 무섭지 않습니다. 폐단으로 얼룩진 조정에 들어갈 바엔
차라리 지방으로 내려가 학당에서 천자문이나 가르칠 것입니다.”
류현은 정호의 패기에 혀를 내둘렀다.
내일 아침이 밝으면 정호는 유소를 올리기 위해 승정원으로 가야할 것이다.
그의 뒤를 따라올 자들이 있기 때문에 두렵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들의 뜻을 왕과 조정신료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밖에 없었다.
“어허, 유소라 풋내기들이 유소를 올린다.”
퇴청을 이르게 한 것인지 아니면 입청을 하지 않은 것인지
노론의 핵심무리였던 우의정과 형조참판 강윤식은
영의정의 사랑채에 딸려있는 호화스럽게 꾸며진 누각 위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성균관에 있는 측근 하나가 재회가 끝낸 직후 사람을 보내어 그들에게 유소에 대한 서찰을 보내왔다.
그것을 읽은 그들 풋내기들의 호기를 비웃고 있었다.
“소두라는 자는 윤정호라 합니다.”
강윤식은 정호의 이름을 말하였고 그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는 듯 우의정은 눈짓을 하였다. 그것을 알아챈 윤식은
“대사헌의 아들이랍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가 무슨 유소야 유소”
“그나저나 전하께오선 상황이 이리도 나쁜지 모르시는데 만약 유소라도 올라간다면..”
우의정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김규진은 잠잠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사헌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며칠 전에 어느 멍청한 놈 하나가 대사헌에게 찾아가 뇌물을 바쳤다
그 길로 형조로 끌려가 곤장을 맞고 또 그 멍청한 놈에게 뇌물 청탁을 시킨 자 또한 좌천 되었답니다.”
강윤식은 허탄하다는 듯 주절주절 떠들어대었고,
우의정은 옆에서 그의 말에 간혹 아, 음, 허라는 감탄사를 붙여주었다.
“쯧쯧쯧, 아둔한 자로군요.”
입을 다물고 있던 김규진의 대꾸를 하자 강윤식은 더 신이 난 듯
벌어진 입을 다물지 않고 그간 자신의 귀에 들려온 소식을 떠들었다.
“잔뜩 약이 올라선 지방 관료들의 부정행위에 대해서 감찰하라고 대사헌이 호통을 쳤다합니다.
이는 지방에 있는 자들만 좌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까지 피해가….”
그는 말을 하다 말고 김규진의 눈치를 살짝 봤다. 그는 심기가 불편해보였다.
그의 어두운 안색에 두 사람은 말을 멈추었다.
“생각보다 시기를 앞 당겨야 할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을 알아챈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였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우상의 물음에 규진이 지난 밤을 떠올렸다.
근처의 산 속에서 울리는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팔각정, 명월 루에는 두 개의 달이 떠있었다.
하나의 달은 칠흑으로 뒤 덮여있는 하늘에 떠있고, 하나의 달은 명월 루의 연못 위에 떠있었다.
작은 비단잉어의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니 하나의 달은 금세 그 모양이 어그러졌다.
잠잠한 명월 루의 연못가에 둘러져 있는 철쭉나무 속에서는 작은 벌레가 울어댔으며,
그 울음소리가 모여 명월 루의 적막은 사라졌다.
“한낱 미물의 생명도 소중하게 여기거늘, 어찌 인간의 생명을 그리 미천하게 여기겠소.”
어느 새 잔잔해진 연못 위에 떠있는 달의 위엄은 곧이어 근엄한 목소리에 짓눌려 구름 속으로 그 자취를 감추었다.
근엄한 목소리의 여음이 사라지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곧 바로 또 다른 목소리가 명월 루에 퍼졌다.
“맞습니다, 영상대감..”
그 자는 연못에 비친 달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던 김규진을 향해 허리를 약간 굽히는 것으로 경의를 표하였다.
영의정 김규진, 그는 왕의 장인인 부원군, 그리고 세자의 외조부로써 조정에서의 왕 다음의 최고 권력자이다.
표면적으로 들어난 권력자는 왕이나, 그 속을 파헤쳐보면 들어나는 권력자가 바로 김규진이다.
입을 다물고 연못을 바라보고 있던 김규진은 자신의 뒤에 세 걸음 정도 떨어져 서 있던 자에게로 몸을 돌렸다.
“허나, 해가 되는 미물은 처참히 으깨야 되지 않겠소?”
그 자는 김규진의 근엄하면서도 살기 어린 목소리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김규진을 쳐다보았다.
그리곤 바로 자세를 되찾았다.
“해가 되는 미물의 생명이나 인간의 생명이나 같다고 생각되오.
해가 된다면 미물이든 인간이든 처참히 짓눌러야 하오.
그러나 이 일은 조용하나 시끄럽게..시끄럽게 하나 비밀스럽게..”
김규진은 꽉 쥔 주먹으로 명월 루의 난간을 내려쳤다.
그리고 규진은 우상과 강윤식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야 조용하나 시끄럽게, 시끄럽게 하나 비밀스럽게…그리하면 되지요.”
그 시각 사헌부의 대사헌에게도 유소에 대한 소식이 들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시끄러운 조정에 성균관 유생들마저 나섰으니,
모든 사실을 알게 될 왕이 진노한다면 조정에 피바람이 불지도 모를 일이었다.
대사헌은 수졸을 성균관으로 보내어 당장 정호를 집으로 불러들었다.
중용 강연이 끝나고 명륜당에서 나오던 류현에게 수복하나가 서찰을 건 내었다.
그것을 펼쳐본 류현의 안색은 심하게 일그러졌고 서찰을 구기더니 발로 짓밟았다.
그리곤 너덜너덜해진 서찰을 수복에게 던지더니
“재수 없으니까 당장 아궁이에 쳐 넣어”
“본가에서 온 것인가?”
지윤은 늘 본가에서 서찰이 올 때마다 이런 괴상한 짓을 하는
류현을 알기에 이번에도 그의 속을 뻔히 들여다보았다.
다른 강연을 듣고 나오던 정호 또한 그의 괴기스러운 행동에 혀를 찼다.
“아우 오늘은 재수 털렸다. 난 방에 가서 낮잠이나 자련다.”
라고 말하고는 책을 옆구리에 끼고는 터벅거리며 동재로 돌아갔다.
“왜 저러시는 것입니까?”
“마음이 아파서 그러는 걸세.”
지윤의 말에 정호는 지윤의 말대로 본가에서 온 서찰을 저렇게 대하는 사람이
어떻게 마음이 아파서 그렇게 한 것인지 도대체 동조를 할 수가 없었다.
정호는 지윤과 함께 존경각에 들러 읽을 책을 가지고 동재로 들어섰다.
“윤정호 유생님!”
수복 하나가 동재로 들어서는 정호를 보고 부리나케 뛰어왔다.
“무슨 일인가?”
“본가에서 지금 당장 집으로 오시라고 합니다. 대사헌영감께오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정호는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집으로 오라는 대사헌의 전언에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 들고 있던 서책을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어찌된 일인지 낮잠을 자겠다는 류현은 방 안에 없었다.
황급히 집으로 갈 채비를 마치고 앉아있는 지윤을 향해 다녀오겠노라고 말하고 황급히 동삼문을 나섰다.
<계속..>
첫댓글 사건전개되는건가요..
이제..시작이에요~~^^
집에 다녀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