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恐怖에 의해 精神(意/認知)이 나감
精神
1. 육체(肉體)나 물질(物質)에 대립(對立)되는 영혼(靈魂)이나 마음.
2. 사물(事物)을 느끼고 생각하며 판단(判斷)하는 능력(能力). 또는 그런 작용(作用).
意
두루 생각하고 헤아리는 마음의 작용(作用). 또는 정신(精神)의 본체(本體).
認知
자극을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일련의 정신 과정.
지각, 기억, 상상, 개념, 판단, 추리를 포함하여 무엇을 안다는 것을 나타내는 포괄적인 용어로 쓴다.
마음(心), 인지(意), 분별(識).
마음
1.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 - 마음이 좋다.
2.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
- 몸은 멀리 있어 마음으로나마 입학을 축하한다.
3. 사람의 생각, 감정, 기억 따위가 생기거나 자리 잡는 공간이나 위치.
- 안 좋은 일을 마음에 담아 두면 병이 된다. <*담아 : '쌓다'라는 의미에서 citta>
4.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하여 가지는 관심. - 마음을 떠보다.
5. 사람이 사물의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심리나 심성의 바탕.
- 네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결혼해라.
6. 이성이나 타인에 대한 사랑이나 호의(好意)의 감정.
- 너 저 사람에게 마음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7. 사람이 어떤 일을 생각하는 힘.
숲은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의 마음을 빼앗아 가버린다고 생각합니다.
haranti maññe mano vanāni samādhiṃ alabhamānassa bhikkhuno”ti.
바라문이여, 전에 내가 정각을 이루지 못한 보살이었을 적에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 곳은 참으로 견뎌내기가 어렵다.
한거는 행하기가 어렵다. 혼자됨을 즐기기는 어렵다.
mayhampi kho, brāhmaṇa, pubbeva sambodhā anabhisambuddhassa
bodhisattasseva sato etadahosi —
‘durabhisambhavāni hi kh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dukkaraṃ pavivekaṃ, durabhiramaṃ ekatte,
haranti maññe mano vanāni samādhiṃ alabhamānassa bhikkhuno’ti.
숲은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의 마음을 빼앗아 가버린다.<*고 생각한다.; 빠진 번역>'
vanāni(중복주) samādhiṃ(남단대) alabhamānassa(현분남단속) bhikkhuno(남단속)
mano(√man 중단대) haranti(3복현) -라고 maññe(√man 1단중간태/불변사 ~처럼 본다/~ 것 같다)
숲들은 삼매를 얻지 못하고 있는 비구의
意<*意`見/認知>을 빼앗아 가버린다.- 라고 여겨진다<*意`見/認知>.
anulomikā khanti 隨順-容認
容認: 용납(容納)하여 인정(認定)함.
容忍: 너그러운 마음으로 참음.
tathāgatappavedite dhammavinaye desiyamāne na sussūsati, na sotaṃ odahati,
na aññā cittaṃ upaṭṭhāpeti , anatthaṃ gaṇhāti, atthaṃ riñcati,
ananulomikāya khantiyā samannāgato hoti.
imehi kho, bhikkhave, chahi dhammehi samannāgato suṇantopi saddhammaṃ
abhabbo niyāmaṃ okkamituṃ kusalesu dhammesu sammattaṃ. (AN 6.88)
“여래가 선언하신 법과 율을 설할 때 그것을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잘 알아서 마음에 새기지 않고,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을 취하고, 이익이 되는 것을 버리고,
[교법에] 적합한 지혜241)를 구족하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법을 구족한 자는 정법을 듣는다 하더라도 확실함에 들 수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올바름을 가질 수 없다.”
241) '적합한 지혜'로 옮긴 원어는 anulomika khanti인데 '적합한 인내'라 직역할 수 있다. 그런데 『청정도론 주석서』 (Pm)에서 이것을 “성스러운 도를 얻는데 적합한 지혜를 뜻한다.”(Pm.697. Vis.XX.18에 대한 주석)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다. khanti는 '인내'라는 뜻으로 주로 사용된다. 여기서 '인내'를 뜻하는 khanti를 쓴 이유를 Pm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지혜가 대상의 고유 성질에 들어가서 그것을 구분하는 것을 참고 견딜만하기 때문에 khanti라 한다.”(Ibid)
40가지 관찰 cattārīsākārānupassanā
Visuddhimagga (dutiyo bhāgo) 20. maggāmaggañāṇadassanavisuddhiniddeso
cattārīsākārānupassanākathā
697. so tasseva pañcasu khandhesu aniccadukkhānattasammasanassa thirabhāvatthāya,
yaṃ taṃ bhagavatā
“katamehi cattārīsāya ākārehi anulomikaṃ khantiṃ paṭilabhati,
katamehi cattārīsāya ākārehi sammattaniyāmaṃ okkamatī”ti etassa vibhaṅge —
18. 다섯 가지 무더기들에 대해서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라고 명상함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
세존께서는, “어떤 40가지 방식으로 적합한 인내165)를 얻는가?
어떤 40가지 방식으로 올바름과 확실함166)에 들어가는가?(Ps.ii.238)"라고 질문하시고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165) '적합한 인내(anulomika khanti)'란 성스러운 도를 얻는데 적합한 지혜를 뜻한다.
khanti라는 단어는 인내라는 뜻으로 주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지혜를 나타내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지혜가 대상의 고유성질에 들어가서
그것을 구분하는 것을 참고 견딜만하기 때문에 khanti라 한다.(Pm.697)
166) 'sammatta-niyāma(올바름과 확실함)'는 성스러운 도를 가리킨다.
팔정도의 바른 견해(正見) 등은 바른 것이고 또 물러남이 없기 때문에 확실 하다.(Pm.697)
냐나몰리 스님은 이 단어를 the certainty of rightness라고 영역했는데 문맥상 옳지 않다.
성스러운 도는 고유성질로서는 바른 것이고, 또 절대로 물러남이 없이
확실하게 열반에 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anulomikanti ariyamaggādhigamassa anukūlaṃ.
khantinti ñāṇakhantiṃ.
ñāṇañhi visayasabhāvaṃ ogāhetvā vavatthāne khamati sahatīti khantīti vuccati.
AI. "'순응적'이란 고귀한 길의 획득에 적합한 것을 의미한다. '인내'란 지혜의 인내를 의미한다.
실로 지혜가 대상의 본질에 들어가서 그것을 확립하는데 적합하고 견디기 때문에 '인내'라고 불린다."
1. anulomikanti: anulomika + nti (인용 불변화사): anu (따라서) + √lom (가다)
: anu + √lom + -ika (형용사 접미사) = 순응하는, 적합한 : 형용사, 중성 단수 주격
2. ariyamaggādhigamassa: ariya (고귀한) + magga (길) + adhigama (획득) : √gam (가다)
: adhi (향하여) + √gam + -a (명사화 접미사) = 획득 : 복합어, 남성 단수 여격
3. anukūlaṃ: anu (따라서) + kūla (기슭, 측면) : 적합한, 호의적인 : 형용사, 중성 단수 주격
4. khantinti: khanti + nti (인용 불변화사): √kham (인내하다)
: √kham + -ti (명사화 접미사) = 인내, 수용 : 명사, 여성 단수 대격
5. ñāṇakhantiṃ: ñāṇa (지혜) + khanti (인내) : 복합어, 여성 단수 대격
6. ñāṇañhi: ñāṇaṃ + hi (강조 불변화사): √jñā (알다)
: √jñā + -ana (명사화 접미사) = 지혜 : 명사, 중성 단수 주격
7. visayasabhāvaṃ: visaya (영역) + sabhāva (본질) : 복합어, 남성 단수 대격
8. ogāhetvā: ava (아래로) + √gāh (들어가다)
: o (ava의 변형) + √gāh + -tvā (절대분사) = 들어가서 : 절대분사
9. vavatthāne: vi + ava + √sthā (서다) : 확립, 결정 : 명사, 중성 단수 처격
10. khamati: √kham (인내하다, 적합하다) : 동사, 3인칭 단수 현재
11. sahatīti: sahati + iti (인용 불변화사) : √sah (견디다) : 동사, 3인칭 단수 현재
12. vuccati: √vac (말하다) : 동사, 3인칭 단수 현재 수동태
“pañcakkhandhe aniccato, dukkhato, rogato, gaṇḍato, sallato, aghato, ābādhato,
parato, palokato, ītito, upaddavato, bhayato, upasaggato, calato,
pabhaṅguto, addhuvato, atāṇato, aleṇato, asaraṇato, rittato, tucchato, suññato, anattato, ādīnavato,
vipariṇāmadhammato, asārakato, aghamūlato, vadhakato, vibhavato, sāsavato, saṅkhatato,
mārāmisato, jātidhammato, jarādhammato, byādhidhammato, maraṇadhammato, sokadhammato,
paridevadhammato, upāyāsadhammato, saṃkilesikadhammato”ti (paṭi. ma. 3.37) —
"다섯 가지 무더기들을 무상으로, 괴로움으로, 병으로, 종기로, 화살로, 재난으로, 질병으로,
타인으로, 붕괴하는 것으로, 전염병으로, 재앙으로, 두려움으로, 협박으로, 떨림으로,
무너지기 쉬운 것으로, 지속되지 않는 것으로, 보호가 없는 것으로, 피난처가 없는 것으로,
귀의처가 없는 것으로, 비었음으로, 허함으로, 공함으로, 자아가 없음으로, 위험으로,
변하기 마련인 법으로, 고갱이가 없는 것으로, 재난의 뿌리인 것으로, 살인자로, 복리가 없음으로,
번뇌에 물들기 쉬운 것으로, 형성된 것으로, 마라의 미끼로, 태어나기 마련인 법으로,
늙기 마련인 법으로, 병들기 마련인 법으로, 죽기 마련인 법으로, 근심하기 마련인 법으로,
탄식하기 마련인 법으로, 절망하기 마련인 법으로, 오염되기 마련인 법으로 -
cattārīsāya ākārehi,
“pañcakkhandhe aniccato passanto anulomikaṃ khantiṃ paṭilabhati.
pañcannaṃ khandhānaṃ nirodho niccaṃ nibbānanti passanto sammattaniyāmaṃ okkamatī”ti
ādinā (paṭi. ma. 3.38) nayena,
anulomañāṇaṃ vibhajantena pabhedato aniccādisammasanaṃ vuttaṃ.
tassāpi vasena ime pañcakkhandhe sammasati.
이런 40가지 방식으로 다섯 가지 무더기들을 무상하다고 보면서 그는 적합한 인내를 얻는다.
다섯 가지 무더기들이 멸하는 것이 영원한 열반이라고 보면서
그는 올바름과 확실함에 들어간다. (Ps.ii.238)"
이러한 방법으로 수순하는 지혜(anuloma-ñāṇa, 隨順智)167)를 설명하시면서 분류에 따라
무상 등의 명상을 설하셨다. 수행자는 이 방법대로 이 다섯 가지 무더기들을 명상한다.
167) 수순하는 지혜에 대해서는 XXI. §128이하, 특히 §133을 참조할 것.
41. khantiñāṇaniddeso
92. kathaṃ viditattā paññā khantiñāṇaṃ?
rūpaṃ aniccato viditaṃ, rūpaṃ dukkhato viditaṃ, rūpaṃ anattato viditaṃ.
yaṃ yaṃ viditaṃ taṃ taṃ khamatīti — viditattā paññā khantiñāṇaṃ.
vedanā …pe … saññā … saṅkhārā … viññāṇaṃ … cakkhu … pe …
jarāmaraṇaṃ aniccato viditaṃ, jarāmaraṇaṃ dukkhato viditaṃ, jarāmaraṇaṃ anattato viditaṃ.
yaṃ yaṃ viditaṃ taṃ taṃ khamatīti — viditattā paññā khantiñāṇaṃ.
taṃ ñātaṭṭhena ñāṇaṃ, pajānanaṭṭhena paññā. tena vuccati — “viditattā paññā khantiñāṇaṃ”.
khantiñāṇaniddeso ekacattālīsamo.
294 빠띠삼비다막가 역주
제32장 감내의 지혜
1. 「알게 된 것(已解)으로부터의 혜로서 감내의 지혜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해서인가?
'물질적 요소(色)를 무상으로 알게 되었고, 물질적 요소를 고통으로 알게 되었고,
물질적 요소를 무아로 알게 되었다는 것으로, 무릇 알게 되었다는 곧 감내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알게 된 것으로부터의 혜로서 감내의 지혜가 있다.
'감수작용을…내지…지각작용을, 형성작용을. 식별작용을,
눈을…내지…늙음과 죽음을 무상으로 알게 되었고, 늙음과 죽음을 고통으로 알게 되었고,
늙음과 죽음을 무아로 알게 되었다는 것으로, 무릇 알게 되었다는 것은 곧 감내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알게 된 것으로부터의 혜로서 감내의 지혜가 있다.
그와 같이 알고 있다(所知)는 의미에서 지혜(智)이며, 알아차린다(了知)는 의미에서 혜(慧)이다.
그러므로 말한다. 「알게 된 것으로부터의 혜로서 감내의 지혜가 있다」고.
ete vā pana ubho ante anupagamma idappaccayatāpaṭiccasamuppannesu dhammesu
anulomikā khanti paṭiladdhā hoti,
그러나 [여래는] 이 들 양 극단에 가까이 가지 않아, 연기(緣起)의 도리에 의해
연하여 생겨난 법에 순응하고, 감내하고, 획득한다. {360쪽}
katamaṃ khantibalaṃ?
kāmacchandassa pahīnattā nekkhammaṃ khamatīti — khantibalaṃ.
byāpādassa pahīnattā abyāpādo khamatīti — khantibalaṃ.
thinamiddhassa pahīnattā ālokasaññā khamatīti — khantibalaṃ.
uddhaccassa pahīnattā avikkhepo khamatīti — khantibalaṃ.
vicikicchāya pahīnattā dhammavavatthānaṃ khamatīti — khantibalaṃ.
avijjāya pahīnattā ñāṇaṃ khamatīti — khantibalaṃ.
aratiyā pahīnattā pāmojjaṃ khamatīti — khantibalaṃ.
nīvaraṇānaṃ pahīnattā paṭhamaṃ jhānaṃ khamatīti — khantibalaṃ ... pe ...
sabbakilesānaṃ pahīnattā arahattamaggo khamatīti — khantibalaṃ.
idaṃ khantibalaṃ.
[11.170]5-(1). 감내하는 힘(忍力)이란 무엇인가?
'감각적 쾌락에 대한 바램을 끊음으로 인하여 떠남을 감내한다'는 [의미에서] 감내하는 힘이다.
'성냄을 끊음으로 인하여 성내지 않음을 감내한다'는 [의미에서] 감내하는 힘이다.
'혼침과 졸음을 끊음으로 인하여 빛에 대한 지각을 감내한다'는 [의미에서] 감내하는 힘이다.
'들뜸을 끊음으로 인하여 산란하지 않음을 감내한다'는 [의미에서] 감내하는 힘이다.
'의심을 끊음으로 인하여 법에 대한 결정을 감내한다'는 [의미에서] 감내하는 힘이다.
'무명을 끊음으로 인하여 지혜를 감내한다'는 [의미에서] 감내하는 힘이다.
'혐오를 끊음으로 인하여 환희를 감내한다'는 [의미에서] 감내하는 힘이다.
'[다섯] 장애를 끊음으로 인하여 첫 번째 선정을 감내한다'는 [의미에서] 감내하는 힘이다... 내지...
'일체의 번뇌를 끊음으로 인하여 아라한에 나아가는 경지를 감내한다'는 [의미에서]
감내하는 힘이다. 이것이 감내하는 힘이다. {814쪽}
AI. khanti의 어근인 √kham(√kṣam)은
*kh2em-이 인도-유렵어의 공통되는 어근이고 기본적인 의미는 "구부러짐"에서
"인내하다, 견디다(kṣam)"로 파생된 것이라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