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에서 상천으로
오월 첫날은 월요일인데 근로자의 날인 노동절로 은행원들도 하루 쉬었다. 새벽녘 잠을 깨 생활 속 글을 몇 줄 남기고 시조도 한 수 마무리 지었다. 일전 칠서 강나루 생태공원을 다녀와 남은 청보리밭의 잔영을 글감으로 삼았다. 행정당국에서 드넓은 둔치 생태공원에 심어둔 청보리는 이삭이 패어 축제를 앞둔 때였다. 아침 식후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산행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이웃 동 꽃대감의 꽃밭으로 가봤더니 친구와 아래층 할머니는 아직 꽃밭으로 내려오지 않은 때였다. 주인이 먼저 나타나지 않은 꽃밭에서 잠시 서성이다가 반송시장으로 향했다. 아침 이른 시간의 시장 풍경은 이제 눈에 선하다. 좁은 시장 골목에 횟집 물차가 와 활어를 수족관으로 옮겼다. 반찬가게는 냉장고의 찬을 밖으로 꺼내고 떡집도 비교적 일찍 문을 여는 편이다.
내가 이른 아침 반송시장으로 나감은 간편식 점심으로 때우려는 김밥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노점에서 김밥을 말아 파는 아주머니는 얼굴을 익혀 잘 알았다. 어떤 때는 너무 일찍 나와 김밥 재료를 아직 펼치지 않아 시간을 기다렸다가 마련하기도 했다. 내가 김밥을 사는 데가 두 곳인데 마산역 번개시장은 여항산과 서북산 일대로 나갈 때고 반송시장 노점은 북면 야산으로 갈 때다.
동정동으로 나가 창원역을 출발해 북면 강가 명촌으로 가는 15번 마을버스를 탔다. 이 버스는 온천장을 지나 강변으로 가기 전 내곡으로 들어가 아산에서 차를 돌려 온천장으로 항했다. 내가 가려는 곳은 아산인데 행정구역은 함안 칠북면에 해당하는 산간마을이다. 산중 마을이라 논은 한 뙈기가 없는 밭작물만 가꾸는 동네로 산지를 개간한 단감과 복숭아 과수단지가 펼쳐져 있었다.
산마루에서 산비탈을 개간한 과수원으로 농기계가 다니려고 뚫어둔 작업 도로를 따라 산 이름이 뭔지 모르는 무명고지로 향했다. 나이가 들어 등허리가 굽어진 한 할머니와 그보다 젊어 뵈는 아주머니가 고무호스를 끌면서 감나무에 농약을 뿌리고 있었다. 그들과 초면인 내가 그 일손을 거들어 줄 여건이 못 되어 마음에 걸렸다. 두 사람은 아마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로 여겨졌다.
소나무가 우거진 산기슭에는 이맘때 피는 오동꽃이 눈에 띄었다. 높이 자란 나무둥치에서 잎보다 먼저 피는 보라색 꽃은 우아하고 기품이 있었다. 오동꽃이 저물고 맺을 열매는 봉황이 날아와 먹는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의문이 들었다. 봉황은 용과 같이 실체를 볼 수 없는 상상 속 새가 아닌가. 장롱이나 거문고를 만드는 고급 목재에 오동나무가 쓰인다고 들은 바 있기는 하다.
단감과수원이 끝난 곳에서 소나무 숲으로 들어 산등선을 따라 산마루를 넘어갔다. 등산로가 있긴 해도 산행객이 많이 다니질 않아 희미했다. 내가 인적 드문 숲으로 찾아감은 늦은 감이 있어도 산나물을 뜯기 위함이다. 선행주자가 다녀갔는지 고라니가 시식했는지 잎맥이 잘려 나간 참취를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이삭처럼 남겨진 일부 참취와 둥굴레 이파리를 훑으면서 숲을 누볐다.
청청한 소나무 가지 사이로 간간이 드러난 하늘과 먼 마을이 보였다. 그리 높지 않은 야산임에도 바위 더미를 타고 넘는 험한 지형을 지나 고사리 자생지를 만나 몇 가닥 꺾었다. 둥글레는 계속 보였는데 금낭화와 같이 휘어진 줄기에서 꽃을 피웠다. 늦여름에 자주색 꽃을 피우는 등골나물도 보여 뜯어 보태다 어느 무덤가 군락을 이룬 미역취가 가득 자라 봉지를 쉽게 채울 수 있었다.
산기슭으로 나가니 단감과수원이 펼쳐진 마을이 나왔다. 과수단지 동네 특성은 집들이 모여 살지 않고 독립가옥으로 드문드문 흩어져 있었다. 소라마울에 이르러 마산에서 들어온 농어촌버스를 타고 온천장으로 나가 집 근처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종합운동장 만남의 광장 쉼터에서 배낭의 봉지를 꺼내 나물에 붙은 검불을 가려 연락이 닿은 지기에게 건네고 무릎 진료를 받았다. 23.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