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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녀로 본 남자
김지명
삼십 대 아주머니가 팔십 년 아카시아 꽃피던 어느 날 남편과 같이 건설노동자로 허드렛일을 하는 선이였다. 선이가 결혼하여 부잣집 며느리로 사랑받고 살았으며 친구도 모두 부자였다. 그런데 선이가 무슨 이유인지 이혼하고 실의에 빠져 있다가 다시 삶을 찾은 것이 재혼이었다. 선이는 생활이 어려워도 친구들 앞에서는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항시 최고의 여인들과 놀았지만, 지금은 놀 시간이 없다. 너무나 가난한 생활을 알고 있는 나는 부잣집 언니를 소개해 주었다. 선이는 키도 크고 예쁘게 생겼으며 성격이 아주 좋아 부처 같은 마음으로 천사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모두가 좋아하였다. 오십 대 언니가 삼십 대 선이를 보고 좋아서 자매처럼 대하며 가끔 불러 함께 놀기도 했다. 선이도 소개받은 언니가 나이는 많아도 혈육 같은 정으로 아주 잘해주기 때문에 멀리할 이유가 없었다. 돈이 있으면 장사해볼래? 하면서 언니가 하는 일을 낱낱이 늘어놓았다. 선이가 돈이 없어 못하겠다고 했다. 언니가 돈 빌려줄 테니 같이 해보자고 했다. 선이는 남편이 일하러 가자고 조르기도 하였는데 약속이 있다고 하고 언니를 따라가기로 했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생전 처음으로 외국구경 한다는 마음에서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언니 친구들과 일본으로 밀수할 물건을 구매하러 갔다. 일본에 도착한 우리는 부두에서 가까운 곳으로 관광을 마치고 압력밥솥을 구매하였다. 언니가 세관 직원에게 새로운 식구가 늘어났다고 선이를 인사시켰다. 세관 직원 이계장이라며 자주 드나들기 바란다고 했다. 몇 번 드나드는 횟수에 따라 이계장에게 상납하여야 한다고 했다. 세관의 이계장이 젊고 예쁜 식구가 늘어났다고 좋아했다. 선이가 생활비를 보충하려고 물건 구매 차 자주 일본으로 드나들었다.
세관 이계장이 잘 봐주겠다며 젊고 싱싱한 선이에게 접근하였다. 오십 대 전후의 아주머니를 상대하다가 젊은 새댁이 끼어드니 이계장이 은근히 좋아하며 짝사랑하였다. 이계장이 예쁘다며 퇴근 후에도 선이를 자주 불러 술을 마셨으며 두 사람의 사이가 가까워졌다. 선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선이가 사랑에 엄청나게 갈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이의 남편은 건설노동자로 중노동 하기 때문에 사랑할 힘이 없었다. 이계장이 선이의 갈증을 해결해주었기에 만남은 자자졌고 깊은 관계로 이어졌다. 친구들은 선이가 사랑에 빠진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정애는 선이가 만나고 싶으면 아침 일찍 찾아와야만 볼 수 있었다. 선이는 사랑을 방해한다고 마음속으로 원망하였다. 선이는 외국으로 다니면서 밀수하는데 요령이 생겨 겁 없이 드나들었다. 선이는 머리가 영리하여서 보따리 밀수꾼으로 요령이 붙었다. 언니에게 고맙다고 선물도 하고 즐겁게 생활할 때 가족은 돈을 벌어오니 좋아하였다. 자녀 등록금과 사교육비도 선이가 벌어서 가정을 영위해 나갔다.
팔십 년 봄에 전자제품은 일본 제품을 많이 선호하였다. 압력밥솥은 주부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래서 주로 압력밥솥을 구매하여 소비자에게 직접 팔면 수입이 짭짤했지만, 소비자를 많이 확보하지 못해 신창동 깡통시장에 거래처를 정해놓고 납품하였다. 거래처 사장은 찾는 사람이 많다며 자주 주문하였다. 언니 친구 차여사가 선아에게 이런 일하면 감방에 가야 하니까 그만두라고 하며 상당히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늘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선이가 일본으로 들락거리던 어느 날 세관 직원이 다가와 귓속말로 신고식으로 요번에는 감옥에 들어가야 하니 준비하라고 사전에 알려주었다. 선이가 너무나 놀라 당혹해하며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가 보따리장사들은 세관 직원과 짜고 단속반에 걸리면 순서에 의해 한두 명이 구속되는 약정을 정해놓았다고 했다. 정해진 순서에 의하면 요번 차례는 신규로 등록한 선이라고 하였다. 말만 구속이지 감방에 들어가면 오래 있지 않고 세관 직원에 의해 쉽게 풀려난다고 했다. 구치소 직원과 세관 직원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세관 직원은 보따리 장사하는 아낙네를 가족처럼 보살피며 관리하였다. 세관 직원이 잡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에 감방에 오래 두지 않았다. 세상살이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돈이 없으면 없던 일도 만들어 돈을 뜯어내는 파렴치한 시대였다.
삼복이 가까운 어느 날 김형사는 세관으로 가서 보따리밀수꾼을 잡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정해진 순서에 의해 선이가 들어왔다. 김형사가 선이에게 다가가 형사라는 사실을 알리고 물건을 수색하여 이 물건은 밀수라고 하며 따라오라고 했다. 선이를 잡아가면서 아무리 보아도 예쁘게 생긴 아주머니가 마음에 걸려 조사실에서 구체적으로 물었다. 왜 이런 행동으로 살아가나요? 하였더니 세상이 각박하여 일할 곳도 없고 생활이 어려워서 벌어야 먹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여자들은 감방에 갈 곳이 못 되어도 어차피 잡혔으니 가긴 가야 하는데 하고 머뭇거렸다. 선이가 미소를 지으며 어떤 방법으로도 그곳엔 가기 싫으니 좀 살려달라고 애틋한 목소리로 간곡히 부탁했다. 김형사가 선이를 놓치기 아깝다는 느낌이 들어 귓속말로 남자친구가 있는가 하고 물었다. 선이가 전혀 없다며 먹고 살기도 바쁘다며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했다. 그러자 김형사는 약속을 하자고 제의했다. 친구가 되어준다면 요번 일은 없었던 것으로 처리하겠다고 하였다. 선이가 생각을 달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은 즐겁게 살아야 한다며 감방생활은 죽어있는 시간과 같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김형사의 고마움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했다. 김형사가 모든 사람에게 감방에 간 것으로 하고 보이지 않는 친인척 집에서 열흘 동안 머물 수 있겠는가 하고 물었다. 선이는 날아갈 듯 기분 좋은 말에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만약에 약속을 어긴다면 두 배로 감옥을 살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선이는 머뭇거림도 없이 승낙했다. 김형사가 마치고 가겠다며 골목 안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선이는 복권이라도 걸린 듯이 좋아하였다. 김형사가 선이를 데리고 간 곳은 25층 모텔 방이었다. 커튼을 열고 밖으로 내다본 선이는 세상이 눈 아래 보인다며 좋아했다. 김형사가 선이도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머지않아 선이도 세상을 내려다보고 살아가는 시절이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이는 무슨 의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듣기는 좋았다. 감방에 가지 않는 것도 좋은데 사랑까지 베풀어준다니 감개무량하여 흥분된 이 마음 어디에도 비할 수 없었다. 선이는 용광로 같은 사랑으로 열정에 빠뜨린 김형사가 경찰이라는 두려움은 사라지고 사랑의 동반자가 된것 같다고 했다. 김형사가 선이에게 내 가정을 책임지라고 했다. 선이는 놀란 표정으로 무슨 말씀인지요, 하고 물었다. 김형사가 속궁합이 너무나 잘 맞아 헤어질 수 없는 처지라고 했다. 선이가 방긋이 웃으면서 같은 생각이라고 다소곳이 말했다. 김형사가 선이의 보호자처럼 사무실 전화번호를 주며 연락하라고 했다. 선이가 감방으로 가지 않고 멀리 떨어진 시골 친척 집에 가기로 가족들과 의논하였다. 도시에서 자라온 선이가 시골로 들어갔을 때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갈수록 선이와 김형사는 자주 만났고 이젠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김형사는 선이대신 다른 한 사람을 구속해야 했다. 다시 세관으로 달려간 김형사는 보따리밀수꾼 잡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이번엔 선이를 싫어하는 언니 차여사였다. 김형사가 차여사를 밀수사건으로 경찰서로 연행했다. 차여사의 남편이 검사라는 사실을 김형사는 알리기 없었다. 차여사가 김형사에게 잡혀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조사를 받으면서 전화기 사용하자고 형사에게 양해를 구했다. 남편에게 전화로 급히 시골에 다녀와야 한다고 하고 약 열흘 걸릴 것이라고 하였다. 친정이 시골이라 워낙 먼 거리라서 가는데 온종일 걸리기 때문에 자주 가지 못했다. 전화가 없어 연락이 어려워 남편이 행방을 알 리가 없었다. 생각지도 않은 연행에 당혹해하면서 어차피 치를 것을 좀 이르다는 느낌이었다. 남편이 알면 보통 일이 아녔다. 바로 이혼이라는 엄청난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었다. 이번 순서는 내가 아닌데 하면서도 선이가 잡혀갔다는 소문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경찰서에 연행되어 있다가 구치소로 입소하는 날 옷을 가라 입기 전 홀랑 벗겨놓고 구멍마다 검사하였다. 혹시 마약이라도 감추어 들어오는 사람이 있는지 철저하게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입던 옷은 바구니에 담아 이름표를 달아 저장되었다. 이름은 가슴에 달린 번호였다. 흰 번호판 빨간 번호판 노란 번호판 중에 차여사는 노란 번호판이다. 경제사범들의 가슴에는 노란 번호판이 달려있었다. 미결수로 두 평짜리 방에 일곱 명이 있으니 복잡하지만 이러한 곳에서 사는 사람은 노숙자보다 낮다는 것을 이미 느낀 바 있었다. 그런데 먼저 온 선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의아해 하였다. 다행히 형은 받지 않고 미결수로 있다가 일주일 만에 풀려났다. 구치소에서 나온 차여사가 세관에 근무하는 이계장을 찾아가 먼저 구속된 선이를 보지 못했다고 물었다. 이계장은 그를 이가 있겠는가? 하더니 아차! 맞아 청송구치소로 보냈다고 했다. 같이 있으면 만나서 또 계획을 꾸민다고 분리했다고 들었다. 차여사가 그래서 보이지 않았구나 하면서 중얼거렸다. 이계장은 선이와 사랑을 나눈 이후부터는 보호자 역할을 하였다.
이계장이 구치소 담당에게 선이는 언제쯤 풀려나는지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했다. 구치소에 근무하는 담당직원이 아무리 알아보아도 그런 이름이 없다고 했다. 이계장이 선이와 가장 가까이 지내는 언니를 만나 물어보았다. 언니는 동생 같은 아우가 구속되었다고 했다. 너무나 이상하여 경찰서 형사과 김형사를 찾아가서 사실을 밝히라고 따지고 물었다. 김형사가 조사실로 이송 중에 너무나 급하다고 하여 주요소 화장실로 보내 주었다. 김형사가 화장실 앞에서 기다릴 때 잘 아는 사람만나서 이야기 하는 사이에 도망을 갔다고 했다. 그리고 반드시 잡을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그러자 이계장이 김형사에게 선이문제를 논하고 싶다면서 마치고 술집에서 만나자고 제의했다. 김형사가 꼬치꼬치 따지면 어떻게 하나 고민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화해하니 속이 후련했다. 술집에 마주앉은 이계장이 구속되지 않는 사건으로 처리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고 물었다. 김형사가 이계장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고 되물었다. 친척 동생이라고 하며 배려해 달라고 간청을 했다. 김형사가 이계장의 부탁이라면 그렇게 해 보겠다고 했다. 이계장이 김형사에게 선이를 어디로 갔다고 하면 좋겠는가? 그리고 주위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어쩌지 하며 의논하였다. 당연히 구속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하였다. 이계장이 선이를 만나면 청송구치소에서 열흘 있었다고 하고 구치소 내부의 이야기를 해주자고 했다. 김형사가 그게 좋겠다며 그렇게 하자고 했다. 두 사람은 잔을 비워라 브라보 지상에 멋쟁이는 우리다, 하면서 취객처럼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술을 마셨다. 며칠 후 김형사가 퇴근하려고 하는데 선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눈물이 어리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당장 집으로 와도 되니 구체적인 이야기는 내일 만나서 하자고 했다. 퇴근 시간에 맞추어 선이가 나타났다. 김형사는 천사를 보는 느낌이었으나 선이는 김형사를 보는 순간 온몸이 찡~하는 감동을 하았다. 김형사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으로 처리하였으니 동료를 만나면 청송구치소에서 고생했다는 말을 하라고 일러주었다. 선이는 시골에서 나와서 두 사람을 번갈아 만나면서 기분을 업 시켰다. 선이는 김형사와 이계장을 빌미로 크게 한탕 하려고 섬세하고 치밀하게 구상해 놓았다.
선이가 없는 동안 친구명숙이가 대신하였다. 명숙이가 세관에 이름이 등록돼 있지 않아 물건을 들고 나올 수 없었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선이와 잘 아는 언니로부터 물건을 받았다. 정문으로 나오지 못하고 부두의 뒷문으로 나올 때 문지기가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돈 몇 푼으로 쉽게 통과시켜주었다. 집으로 가져온 물건을 이튿날 깡통시장에 선이가 가리켜준 대로 거래하던 곳으로 갔다.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물건을 넘기려고 거래처에 들어갔더니 아주 후리후리하고 잘 생긴 사내가 거래처사장과 대화중이었다. 나는 물건을 며칠 전에 구매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환급하려 왔다고 했다. 거래처사장은 이거 우리 물건이 아닌데요, 라고 하였다. 명숙이가 형사라는 것을 재빠르게 눈치채고 앗! 잘못 들어왔구나 하며 밖으로 나왔다.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와 국제시장 의류상가로 뛰어갔다.
최형사가 보따리밀수꾼이라고 판단하고 명숙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명숙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뛰다가 걷다가 최형사를 피했다. 최형사는 명숙을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히 따라붙었다. 명숙은 건물모서리를 돌아 알지 못하는 가게에 들려 주인에게 물건을 놓고 보관료 드릴 테니 맡아 달라고 했다. 그리고 급하게 달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최형사는 무전기로 한 명의 형사를 더 불러놓았다. 명숙은 형사를 피해 밖으로 나와 또 다른 의류상가 안으로 들어갔다. 상가는 길게 늘어져 복도를 가운데 두고 여러 명이 각자의 점포를 지키고 있는 사이로 뛰어나갔다. 국제시장 의류상가에서 밖으로 나와서 이웃 상가로 뛰어가 공동 화장실로 들어갔다. 명숙은 남자 화장실 좌변기에 앉아서 고양이에 쫓기는 생쥐 신세가 되었다. 숨을 죽이고 놀란 토끼처럼 귀를 세워 밖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형사는 여자 화장로 뛰어들어 문을 두드리다 모두 열어보며 확인을 하였지만, 남자 화장실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소리가 조용해진 후에도 한 참을 기다리고 있을 때 잠자 화장실로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신경 쓰이게 하였다. 줄기찬 오줌소리는 정력이 강한 사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다볼 수 없는 처지였다. 형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도 숨을 죽여 기다렸다. 그런데 나가려는 순간 또다시 발걸음 소리가 나서 숨을 멈췄다. 기다리고 있을 때 찔찔거리는 오줌소리와 함께 제수 없이 여자도 잡지 못하고 놓쳤잖아 하는 소리에 온몸에 있는 털은 젓가락처럼 빳빳하게 서고 몸은 석고가 된 기분이었다. 소변을 끝내고 밖으로 나가던 형사는 수돗물 틀어놓고 손을 씻는 모양이었다. 물소리가 들렸다. 한 시간을 넘게 쭈그려 앉아있었더니 항문에서는 방귀가 나오려 하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힘을 주며 참아도 자꾸만 밀려 나오려 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힘을 약간 빼는 사이에 조금 삐쳤고 나온 것이었다. 뿅~하면서 억지로 참았던 것이 공간을 빠져나와 소리가 났다. 민첩한 동작으로 일어났다가 다시 앉으면서 항문에 힘을 가하여 내장을 안정시켰다. 김형사는 수돗물 소리 때문에 가죽피리 소리를 듣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하느님이시여!, 부처님이시여! 마리아님이시여! 이 순간을 무사하게 해달라고 두 손 모아 고개 숙였다. 약 두 시간이 지난 후에 쥐새끼가 굴속에서 밖으로 나올 때 천적을 살피듯 명숙이도 조심 또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발을 머리에 이듯 사푼사푼 걸었다.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달려 큰 도로가 있는 대청로 쪽으로 뒤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형사는 멀리서 뒷모습을 보았는지 소리를 질렀다. 명숙이가 온몸에 진땀을 흘리면서 택시를 잡아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선이는 시골에서 나와 다시 일을 시작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선이는 정애와 명숙을 따라나섰다. 물건을 보관해 두었다는 곳으로 함께 가고 있었다. 혹시나 형사가 나타날까 염려되어 명숙이가 변장을 하고 국제시장 의류상가에 맡겨두었던 물건을 찾으려고 갔다. 정애 친구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냥 국제시장에 옷이나 구경하러 가자고 하여 데리고 나왔다. 선이와 명숙은 항시 형사를 염두에 두고 생활하였다. 그런데 멋지게 생긴 낯선 남자가 앞을 가로막더니 다시 만나 반갑다며 인사를 했다. 총각같이 젊은 남자가 명숙에게 묻는다. 그 순간 선이는 김형사를 너무나 잘 알아도 입장이 곤란하여 모르는 체하였다. 김형사도 선이를 알면서도 실적 때문에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김형사가 반드시 잡아야 한다며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명숙을 주시하였다. 명숙이가 자세히 보더니 그날 잡으려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사내였다. 그래서 눈치 빠른 명숙이가 빠져나가려고 저 바쁜 사람입니다. 했는데 김형사는 눈치를 챘는지 지난번보다는 더 민첩하게 보인다며 형사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지 않으려고 부드럽게 말했다. 김형사가 명숙 팔을 잡고 몇 걸음 앞으로 나가 귓속말로 친구들 보내고 협상하자고 하였다. 그러자 명숙이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눈치를 채고 선이와 정애를 먼저 가라고 하자 선이는 알아듣고 잘 친해 보라고 하였다. 선이는 정애를 대리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정애가 명숙이 요즘 애인 생겼나 하고 물었다. 선이는 모르겠으나 잘 아는 사람이겠지 하였다. 선이가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각오도 이겨낼 수 있도록 마음의 훈련을 단단히 체험으로 느끼고 있었다. 선이가 컨테이너 하나를 통째로 수입할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그러기 위하여 형사도 필요하고 세관 직원도 필요하였다. 길을 알기 위해 안내자를 따라다니며 스스로 가는 길을 찾고 있었다.
김형사가 이 직업을 이십 년을 넘게 하면서 아줌마 같은 사람 수도 없이 잡았다고 하였다. 며칠 전에도 아주머니가 범인이라는 것도 알았으나 모른 채 넘어간 것이라고 귓속말로 전하였다. 김형사가 딱 걸렸으니 빠져나갈 생각은 안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면서 다방에서 차라도 한잔하자고 하였다. 조용히 타협을 보자는 의미였다. 명숙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망칠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김형사의 말에 응하기로 하는 척하다가 잠깐 등을 보이는 순간 튀었다. 명숙이가 잡히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천지를 모르고 달려보았지만, 막다른 골목에서 잡히고 말았다. 김형사가 명숙에게 수갑을 보이면서 경찰서 조사실로 갈까? 다방으로 갈까 하고 물었다. 명숙이가 다방으로 가자고 하고 순순히 따라갔다. 다방은 음울한 분위기에 테이블마다 칸막이로 높이 가려져 있었다. 김형사와 명숙은 마주앉아 진지한 대화로 이어갔다. 김형사가 명숙에게 그날은 처음이고 첫눈에 너무나 예쁘게 보여서 범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보내드렸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다고 하였다. 김형사가 예쁜 아주머니와 이렇게 마주 앉으니 애인을 만난 듯 마음이 흐뭇하다고 했다. 명숙에게 마음을 주는 척하면서 친근감을 보여주었다. 명숙은 김형사가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선이가 정애를 데이고 명숙이가 말해준 집으로 찾아갔지만, 가계를 알 수가 없어 찾지 못하여 물건을 가져올 수 없었다. 정애는 영문도 모르고 따라다니면서 어리둥절하였다. 정애는 선이에게 좋은 옷을 구경하자 하면서 어디로 데리고 다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투덜거렸다. 선이는 옷이 마음에 드는 것이 없으니 돌아다녀 보아야 마음에 드는 옷을 구할 게 아닌가 하였다. 선이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정애에게 집으로 가자고 하였다. 정애는 명숙이가 오기를 기다려 보자고 하였다. 오지 않는 명숙을 어디서 기다려야 하나? 집으로 가보자고 하였다. 정애와 선이는 명숙이네 집으로 갔다.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정애는 애인을 만났으니 놀다 오겠지, 벌써 오겠는가 하였다. 선이는 아마도 형사에게 잡혔으니 끌려간 것은 아닌지 걱정하였다. 선이가 좋은 남자친구 만난 명숙은 즐겁게 놀다 오겠지, 우리도 동기생 불러서 카페에서 술이나 마실까? 하고 정애에게 물었다. 정애는 술을 좋아하지 않아 집으로 가자고 하여 두 사람은 해어졌다.
김형사가 명숙에게 섬세하게 묻기 시작하였다. 언제쯤 누구를 만나서 물건을 인수받아 가지고 왔으며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소상히 밝히라고 하였다. 김형사는 육하원칙에 의하여 철저한 조사로 명숙을 압박하였다. 명숙은 너무나 무서워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긴장한 상태로 앉아있었다. 김형사는 다시 질문하였다. 물건을 인수받을 때 컨테이너에서 가지고 왔는지? 누가 전해 주었는지? 꼬치꼬치 따지기 시작하였다. 명숙이가 말을 못하고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으니까 김형사는 경찰서로 가자고 하였다. 그리고는 여기서 사실대로 말하면 없었던 것으로 해준다는 약속을 하였다. 명숙은 그 말에 귀가 솔깃하여 선이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는 말을 하자 김형사는 선이를 불러달라고 했다. 명숙은 다음 여기로 데리고 나오겠다고 하였다. 김형사는 다음에 만나자고 하고 떠났다. 명숙은 다방에서 나와 힘없이 집으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선이는 조바심하는 마음으로 명숙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명숙이가 선이의 집으로 들렸다. 선이는 깜짝 놀라면서 어서 안으로 들라고 하였다. 방으로 들어온 명숙은 선이를 데리고 오라는 말을 하던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고 의논하였다. 선이는 난감한 일이라도 명숙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다는 판단을 했다. 선이는 명숙이의 말을 듣고 김형사를 만나러 갔다. 명숙이가 다방에 들어설 때 음울한 기분이라고 하지만, 선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기분에 젖어있었기에 분위기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세 사람이 앉은 다방에는 음울하였다. 김형사는 차를 마신 명숙에게 임무를 다했으니 집으로 가라고 했다. 명숙은 쇠사슬에 묶인 악몽 같은 시간은 사라지고 새장에서 풀려난 새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선이와 마주앉은 김형사는 언제 보아도 예쁘다며 미스코리아보다 좋다고 했다.
아주머니를 보았으니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공과 사를 구별해야 하는 시간이라 냉정하게 구체적인 질문을 하였다. 선이는 순순히 따르면서 벌을 달게 받겠다고 하였다. 김형사는 언제부터 보따리 장사를 시작했으며 세관 직원 누구에게 월 얼마씩 상납하는가 하면서 아주 섬세하게 질문하였다. 선이는 남에게 피해를 줄 이유는 없다며 선아의 삶이 어려워서 하는 것이었으니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다고 하였다. 김형사는 벌을 한 마리 잡는 것이 아니라 벌집을 찾아야 한다며 협조를 부탁한다고 했다. 선이가 아무리 자기 선에서 끝내달라고 하여도 듣지 않고 세관 직원의 이름을 물었다. 선이가 경찰서 조사실에서도 몇 번 조사를 받아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선이가 언니와 만나는 것을 보고 최형사가 뒤를 밟았다. 선이는 항시 형사들의 표적이 되었다. 언니들로부터 정보가 흘렀기 때문이다. 최형사는 다른 형사에게 무전을 하여 직원을 한두 명 더 데리고 오라고 했다. 선이가 언니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컨테이너 한 대 불량으로 크게 한탕 하기위하여 조직이 필요하다고 했다. 밀수에 관한 계획을 정밀하게 세워놓고 언니들에게 알려주고 각자 주어진 임무를 확인하려고 했다. 주어진 임무는 어느 공장 창고로 운반한다는 운반책임자와 거래처를 확보하고 바로 물량을 없애는 소비책임자 전국의 깡통시장으로 거래처를 확보하는 영업담당자들을 만나 어떤 방법으로 행동하는지 알아보려고 갔다. 언니들 불러놓고 임무완수에 대해 확인을 하려고 카페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최형사가 냄새를 맡고 은밀하게 선이를 따라붙었다. 카페에 들어가서 선이의 일당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잡고 그들의 대화를 귀담아들었다. 다른 두 명의 형사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선이의 이야기가 대충 끝날 무렵 최형사는 화장실에서 무전기로 형사를 불렀다. 핸드폰이 없는 시절이라 툭박한 무전기가 형사들에겐 중요한 장비였다. 선아가 기왕에 밀수에 물들었으니 형사 한 사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김형사를 선택하여 너무나 깊은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그 사실을 서로가 모르는 상태였다.
형사들은 선이와 언니들이 모여 있는 좌석을 에워싸자 선이는 혈색이 달라지고 당혹스러운 운치였다. 최형사는 뒤에서 다 들었다며 보따리 밀수꾼들 앞에서 숨김없이 그대로 말하면서 협조를 부탁한다고 했다. 아무도 사실을 말하지 않아도 형사들은 안다고 하면서 순순히 따라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도 아무도 말하지 않고 모른다고만 반복하였다. 김형사가 명단을 보여주자 당황해 하면서도 아니라고 억지를 쓴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서 모두를 경찰서로 연행하였다. 경찰서로 끌려온 여인들을 분리하여 심문자는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한 여인이 우리를 이유 없이 연행하였으니 검찰청에 고발하겠다고 하였다. 경찰은 고발하라는 듯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을 끌면서 애를 먹이려고 더욱 냉혹한 심문을 반복했다. 신문이 끝나고 한참을 잡아 두었다가 밤 열 시에 풀어주었다. 차여사가 집으로 들자 남편이 어디를 그렇게 돌아다니는가 하고 언성을 높였다. 차여사가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검찰청에 근무하는 남편에게 꾸지람을 듣자 사실을 털어놓았다. 경찰서에서 지금 돌아오는 길이라고 목에 힘주어 말했다.
차여사의 남편은 경찰서에 전화하여 담당 형사와 통화를 했다. 증거도 없이 왜 사람을 잡아놓고 밤이 늦도록 귀가시키지 않았는가 하고 언성을 높였다. 최형사는 검찰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경찰에서 당연히 해야 할일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오늘 다섯 명이 모인 자리에는 두 명이 구속까지 되었다고 경찰은 목에 힘주어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서검사가 알았다고 하며 전화를 끝냈다. 서검사는 아내에게 꼬치꼬치 따지고 물었다. 차여사가 사실을 은폐하려고 이리저리 말을 둘러대 보지만, 남편은 검찰이라 형사보다 더욱 세밀하게 사실을 물었다. 남편은 이혼하지 않으려면 사실대로 말하라고 했다. 숨기다가 검사의 체면이 손상되고 잘못하면 옷을 벗어야 한다고 아내에게 꾸지람했다. 그래도 차여사가 어떻게 하더라도 자신의 행동을 말하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피하곤 했다. 밤을 새워 아내를 추궁하기도 달래기도 하여 새벽녘에 사실을 밝혔다. A세관 출입국 검사과에 근무하는 이계장의 모든 정보를 차여사의 남편은 섬세하게 기록한 메모지를 가방에 챙겨 출근하였다. 선아가 건방진 차여사에게 상당히 거리감을 두고 지켜보았다. 차여사가 선아와 만나서 이야기하고 있을 때 서검사가 아내에게 전화했다. 점심 대접할 테니 선아를 모시고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모처럼 점심초대를 받았다며 선아에게 함께 가자고 했다. 선아는 망설이다가 언니의 부탁에 거절 못 하고 따라갔다. 서검사가 근무하는 검찰청 인근 한식집으로 들어갔다. 시간에 맞추어 서검사가 나타났다. 차여사가 선아를 인사시킬 때 산양하게 인사를 하였다. 서검사도 깍듯이 인사를 했다. 거창하게 차려진 음식보다 더 거창한 질문에 선아는 답하느라고 진땀을 흘렸다.
서검사가 퇴근하여서 작업복 차림으로 세관 근처에 살롱으로 찾아가 혼자 술을 마시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며 취한 척하였다. 옆자리에는 한 여인이 남자에게 매달려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잘 봐달라는 말을 하였다. 서검사가 술에 취한 척하면서 테이블에 엎드려서 옆자리에서 두 사람이 속삭이는 말을 유심히 들었다. 십만 원인데 하고 돈을 전해주며 눈감아 주려고 애원하였다. 아주머니는 엄청나게 큰돈이라고 강조하였다. 세관직원 이계장이 금 한 돈에 3만인데 열 돈값은 되어야지요. 하며 더 많은 돈을 요구하였다. 이름을 기억하고 술 취한 취객처럼 비실거리며 세관 직원에게 높은 자리에 있을 때 봐줘야지 하며 몸을 부딪쳐 보았다. 이계장이 이게 뭐 이런 사람이 있어 하면서 밀어버리자 서검사가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면서 이계장의 이름을 부르면서 너 이 새끼 나에게 죽고 싶어 하며 덤비자 이계장은 자기 이름을 부르니 너무나 놀라서 피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싸울 수는 더더욱 없었다. 누구인지 궁금하였기 때문이었다. 이계장이 도망치다시피 밖으로 나와 여자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옆 건물 계단으로 올라 이 층에서 내려다보고 서검사를 지키고 있었다. 이계장이 서검사가 나오자 미행을 하였다. 서검사는 이계장의 이름만 기억한 채 집으로 들어갔다. 이때 계장이 서검사의 집을 알아두고 문패에 이름을 기억하였다. 골목아래 편의점 직원에게 유도심리 하여 그 사람의 정체를 알아냈다. 지청에 근무한다고 나의 비리를 파 해치겠다고 좋아 두고 보자 절대로 그냥 두지 않겠다고 했다.
이튿날 서검사가 외출하여 세관 본부에 들러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직원 이름과 직책을 말하고 신상을 조사할 것이 있다면 개인정보를 요구하였다. 이계장과 출입국에 조과장의 신상을 메모하였다. 그리고 은행에 들려 두 직원의 돈의 흐름을 알아보았다. 어떤 방식으로 상납 되었는지 어느 곳으로 얼마나 많은 돈이 흘러들어 갔는지 철저하게 조사하였다. 그리고 사무실인 지청으로 들어갔다. 김형사가 시간만 늦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세관 본부에 들러 경찰이라는 신분증을 보이며 이계장의 신상을 요구 하였다. 세관 본부에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무엇을 잘못하였기에 검찰과 경찰이 번갈아 가며 조사를 하는지 이상하다며 물었다. 김형사는 검찰청에서 무슨 이유로 누구를 조사하였는지 다시 물었다. 서검사라고 하자 김형사는 다 잡아놓은 물고기를 서검사에게 빼앗기게 되었다고 중얼거렸다. 김형사가 서검사와 같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조금은 알고 있었다.
세관 본부에서는 조사된 두 직원에게 조심하라는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이계장이 단번에 눈치를 채고 분하고 억울하여 죽이고 싶다며 두 주먹 불끈 쥐고 앞니를 물었다. 그리고 근무할 기분이 아니라며 망설이다가 오후에 회사에서 조퇴하였다. 이계장은 집으로 들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와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아주 늦은 밤에 들어갔다. 이계장은 사랑하는 여인과 데이트할 때 선이의 모든 것을 다 가졌기에 선이를 도와주고 싶었다. 선이가 이계장의 마음을 읽고 이용할 시기가 된 것으로 생각하였다. 선이가 몸과 마음을 다 주었기 때문에 충분히 들어줄 거로 생각하고 도와달라고 강조했다. 밀수를 크게 한탕 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히는데 거절도 못 하고 기꺼이 승낙하는 이계장이었다. 선이는 돈이 부족하니 좀 도와 달라고 애원도 하고 빌어도 보았다. 선이는 언니 친구들과 다섯 명이 천만 원가량의 전자제품을 밀수하기로 하여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진행하고 있었다. 선이는 김형사에게도 같은 수법으로 돈도 빌렸다. 두 사람은 밀수사건의 깊숙한 곳까지 젖어있어 실패한다면 구속되어야 하는 위험한 위치에 있었다.
김형사는 퇴근하는 서검사를 만나 오래만이라며 술이나 한잔하자고 하였다. 어색한 두 사람은 조용한 카페에서 술잔이 오가면서 대화가 길어졌다. 김형사가 보따리 밀수사건에 관한 수사를 처리하겠다고 우기자 서검사는 절대로 안 된다고 하면서 반드시 비리를 찾아내겠다고 하였다. 김형사와 서검사가 늦은 밤까지 술을 마셨고 술집에서 밖으로 나와 헤어져 각자 집으로 갈 때 서검사가 많이 취해 있었다. 선이는 이계장과 데이트하고 집으로 가다가 카페에 들려 술을 마셨다. 선이가 화장실에 갈 때 어디선가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은폐된 곳에서 선이는 숨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김형사였다. 깜짝 놀라 몸을 피하면서 자리로 되돌아왔다. 김형사는 선이를 보지 못하고 서검사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선이는 이계장에게 김형사가 있으니 어서 가자고 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이계장이 뒤따라 나와서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선이를 내려놓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날 밤 술에 취하여 집으로 간 서검사가 누군가에 의해 집 근처 공원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 공원 의자에 누운 채 영원히 잠이 들었다.
이른 아침 공원에 산책 나온 주민이 의자에 누운 사람이 이상하여 가까이 가서 깨워보아도 반응이 없고 몸이 뻣뻣하게 굳어있어 경찰에 신고하였다. 경찰이 왔을 때는 이미 숨진 시간이 오래된 것 같다고 했다. 경찰이 신원 조회를 하여 가족을 불렀다. 가족들은 울분을 터뜨리더니 부인은 기절했다. 구급차를 불러 사망자의 시신과 기절한 환자는 병원으로 옮겨져 부인은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깨어났다. 경찰은 가족에게 자살인지 타살인지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고 수사에 협조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망자의 부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할 사람도 없으며 자살할 이유도 없다고 했다. 경찰은 유가족에게 소상히 조사하고 사망자의 시신을 부검하자고 제의했다. 유가족은 그렇게 하여 반드시 범인을 잡아달라고 하였다. 수사담당 팀에게 부검을 의뢰했다. 경찰은 서검사가 근무하는 검찰청 산하 지청에 사망자가 근무했던 곳에도 확인하였다. 서랍 속에서 세관 직원이름과 주민번호 즉 개인정보가 적힌 서류를 확보하고 수사의 실마리가 잡히는 것 같아서 쉽게 풀릴 것이라고 믿었다. 중년인 남부지청 직원과 함께 퇴근하다가 서검사가 아는 사람을 만나더라고 했다. 어제 퇴근길에 앞면이 많은 사람이 찾아와 어느 술집으로 가더라고 일러주었다. 경찰은 어느 술집인지 지청에 근무하는 직원이 가리켜준 대로 찾아갔다. 마담을 만나서 누구와 몇 시에 들러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 아는 대로 말하라고 강조하였다. 술집 마담은 어저께 밤에는 많은 사람이 와서 술을 마셨기에 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남자 두 명이 몇 시쯤 와서 마셨다는데 기억해 보라고 했다. 카페 마담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부검 결과 약물에 의한 사망이었다. 경찰은 술집에서 무엇이라도 찾아보려고 했다. 술에 무엇을 넣었을까? 경찰은 세관 주과장에게 찾아갔다. 과장에게 살인사건을 수사 중이라고 말하고 협조를 부탁하였다. 그날 술을 마신 장소에 같이 가자고 하였다. 세관 과장이 어느 술집이라고 자상하게 설명하고 먼저 가 있으면 뒤따라가겠다고 했다. 경찰관이 술집에 들러서 주인에게 상세하게 물었다. 몇 시에 누구를 만나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그들이 속삭이는 말을 들은 대로 말해주라고 했다. 세관 주과장이 어떤 여인과 함께 들러서 술을 마시더라고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어떤 남자와 옥신각신하더라고 하였다. 그 남자의 행방을 물었으나 마담도 알 수가 없었다. 경찰은 그 남자의 행방을 추적하려고 인상착의 키 안경을 끼고 있었는지 등 다양하게 물었다. 카페 마담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소상히 설명해 주었다. 중년의 두 남자는 저기 저 자리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고 했다. 마담은 어떤 여자와 술을 마시더니 나중에는 낮 서른 남자가 찾아와 시비하더라고 털어놓았다. 잠시 후 세관 주과장이 들어왔다. 그날의 사건을 사실대로 털어 놓았다. 여자 친구와 오랜만에 만났다고 반가워서 술을 한잔하고 있었다. 옆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중년 아저씨가 집으로 갈 때 나에게 넘어지면서 시비를 걸어도 그냥 돌려보냈다. 그 이후에 여자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갔다고 했다. 여자 친구를 좀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그것은 좀 곤란하다고 했다. 경찰이 의심받는 언행은 좋지 않으니 협조하면 좋다고 했다. 세관 주과장은 알겠다며 언제쯤 약속하면 되는가 하고 물었다. 경찰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했다. 주과장은 일주일 후에 여기서 만나자고 하니 경찰은 내일이라도 좋다고 했다. 주과장이 사흘 후에 여자 친구를 데리고 오겠다고 하였다.
검사가 죽었다는 소문이 지청에 알려지자 사건을 검사가 수사하겠다고 하였다. 경찰과 검찰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검찰청에서 경찰청에 검사 살인사건 전모를 검찰청으로 넘기라는 서류가 도착하자 경찰은 검찰청에 불만을 제시했다. 명령서 한 장으로 모든 수사과정을 이관했다. 사건을 이관받은 검사는 원점에서 시작하였다. 경찰의 수사과정을 그대로 인수받아 재확인으로 세관 주과장을 다시 불러 어떤 장소에서 누구랑 함께 술을 마셨는지 그 사람을 만나게 된 동기와 술을 마신 이유 그리고 몇 시부터 얼마나 많은 시간에 걸쳐 마셨는지 술집에 들면서 나올 때까지 섬세하게 조사하였다. 그리고 술집에서 약봉지나 극약을 사용한 병이 있었는지 버리지 않고 남은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찾아보았으니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이과장과 함께 술을 마셨다는 여인을 불러 수사를 착수했다. 여인과 주과장은 어떤 관계가 하고 물었다. 우연히 알게 된 사이라고 말했다. 어디서 어떻게 알았는가? 하고 질문이 좁아지자 여인은 가슴이 뛰기 시작하였다. 쉬는 날 등산하면서 알았다고 했다. 검사는 연인 사이 인가요? 하고 다시 물었다. 여인은 네 그래요. 자주 만나나요? 아니요. 가끔 만났어요. 만날 때마다 술을 마시나요? 아니요. 여인이 술을 잘 못하여 과장 혼자 마시곤 하지만, 술 마시는 일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그날은 왜 술을 마셨나요? 모르겠어요. 그 사람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술을 마시기에 같이 한잔하였다고 했다. 여인도 술을 좋아하나요? 아니요. 더욱 의심나는 말을 되풀이하자 검사는 세관 주과장이 용의자로 의심하고 단서를 찾기 위해 열정을 쏟아 수사하였다.
갑작스레 세관을 찾아 주과장의 서랍을 다시 뒤져보았다. 아무런 단서가 될 만한 근거는 보이지 않았다. 밖으로 나온 검사는 세관 주변의 약국을 모두 들렀다. 모든 약사에게 극약을 판매한 사실이 있는가? 하고 물었다. 전혀 없다고 했다. 어떤 약이 사람에게 사망을 가져다주는지 검사가 다시 물었다. 약사가 종류는 아주 많지만, 약국에서 취급하는 약은 몇 가지 안 된다고 했다. 몇 가지 약을 알고 싶다고 했다. 수면제를 비롯한 살충제 그리고 비아그라도 고혈압자가 과다복용은 심장마비로 사망한다고 했다. 검사는 약사의 설명을 낱낱이 메모하였다. 다시 세관에 들러 주과장을 만나 대화하였다. 집에서 키우는 꽃은 어떤 것이 있으며 애완동물은 기르고 있나요? 하고 물었다. 애완동물은 없으나 꽃의 종류는 많다고 하였다. 요즘 꽃에는 벌레가 많던데 주과장 집에는 많지 않은가 하고 물었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부터 진딧물 등 많은 미물이 꽃을 괴롭힌다고 했다. 약은 어떤 약으로 사용하나요? 하였다. 주과장이 살충제를 사용한다고 하였다. 아직도 사용하는 약이 있나요? 하고 물었다. 집에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자 검사는 나도 꽃을 키우는데 벌레가 하도 많아서 그러는데 잠시 확인할 것도 있으니 집으로 갈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 과장이 집에는 갈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검사가 세관에 근무하는 주과장을 더욱 의심하면서 집에서 조사할 것이 있다고 집으로 가자고 하였다. 그래도 가지 않겠다고 하며 집에까지 갈 이유가 있는가 하고 반문했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았다. 검사는 이튿날 수색영장을 발급받아 주과장의 집으로 갔다. 주과장의 집에서 부인에게 남편을 불러 달라고 하였다. 아내로부터 전화를 받은 주과장은 급히 달려와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검사에 물었다. 왜 나를 괴롭히는가? 하고 다시 물었다. 검사는 조사를 받으려면 확실하게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살충제가 어디에 있는가? 했는데 모기나 파리를 잡는 킬러를 내놓았다. 과장은 직접 화분에 뿌리면서 잎에 묻으면 말라 죽어버리니 조심스럽게 화분에만 사용하여야 한다고 설했다. 과장의 집에서도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밖으로 나오다가 쓰레기통을 뒤져 보았다. 여인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무전으로 지청에 연락하여 전화번호와 이름을 알려주면서 즉시 확인해 보라고 하였다. 당시는 삐삐도 보급되기 전이라 상호 연락이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검사는 무전으로 주소를 전해 듣고 여인의 집으로 찾아갔다. 여인이 집에 있어도 대문을 섣불리 열어주지 않았다. 마을 앞 지명다방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그러고 한 시간이 지나고 나왔다. 여인이 나오기 전에 세관에 주과장에게 연락하여 검사가 나오라고 하여 만나러 가려고 준비 중이라고 견해를 밝히고 어떻게 하면 좋은지 상의하였다. 과장이 돈거래 이야기는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하였다. 다른 사실은 없는가 하고 되물었다. 과장이 두 사람의 관계는 연인이라고 했으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했다. 여인은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집을 나와 지명다방으로 갔다. 다방에서 처음 만난 검사와 여인은 신중한 마음으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검사는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며 두 번 다시 질문하지 않도록 물음에 정확한 답이 되도록 소상히 말해야 한다고 하였다. 세관에 근무하는 주과장을 어떻게 알게 되었으며 관계는 어떻고 주로 어디서 만나는지 그리고 만나서 무엇을 하였는지 섬세하게 물었다. 여인은 경찰인 줄 알고 지난번에 사실을 이야기했는데 무엇이 더 알고 싶은가? 하고 말했다. 검사가 같은 말을 백번 물었을 때 같은 대답이라도 백번이라도 하라고 했으며 다른 이유는 말하지 말라고 했다. 검사는 자신의 신분을 말하지 않고 수사에만 열을 올렸다. 알게 된 동기는 학교 동창생으로 모임에서 서로가 좋아하게 되었다고 거짓 진술을 했다. 관계는 동창생이라고 자랑삼아 과감히 말했다. 최근에 만난 날짜와 시간 장소 등을 말하라고 했다. 며칠 전에 어느 카페에서 술을 마셨고 마지막에 어떤 취객이 그이와 입씨름을 하였다. 그리고 취객이 욕설할 때 그이가 취객을 밀어버렸다. 일어나더니 그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너 죽고 싶어 하면서 언성을 높였지만, 그이가 모르는 사람인데 어찌 이름을 부르는지 이상하다며 참고 집으로 가자고 하여 밖으로 나와 두 사람은 헤어졌다며 진술을 마쳤다.
이튿날 검사는 다시 세관으로 가서 주과장의 책상과 쓰레기통을 뒤져보며 근거를 찾기에 온 힘을 다하여도 작은 단서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검사는 주과장과 대화를 나누었지만, 수사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검사는 세관 총무과로 즉시 찾아가 살인사건을 조사하고 있니 협조해 달라고 부탁했다. 최근에 형사나 검사가 찾아와 직원의 정보를 확인한 일이 있는가 하고 물었다. 형사는 오래전에 이계장의 정보를 확인하였고 검사는 며칠 전에 같은 사람의 정보를 보자고 하였다. 경찰은 어떤 사건을 조사하고 검찰은 무엇을 조사하였는지 알고 싶었지만, 총무과 직원은 알 리가 없었다. 담당 경찰서에 들러서 밀수사건 담당형사를 찾았다. 형사과 직원들은 왜 그러시나요? 하고 반문하자 사망사건 때문에 조사할 게 있다고 했다. 경찰서 김형사를 가장 유력한 범인으로 초점을 맞추어 수사망을 좁혔다. 경찰서에서 김형사에겐 허점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검사에게 알려 주었다. 형사라는 직책 때문에 청명 결백하게 살고 있었다.
살인사건의 담당 검사가 경찰서 김형사를 찾아가 서검사의 죽음에 대하여 아는바 이는가? 하고 물었다. 김형사가 태연한 채 하지만, 속으로는 엄청 놀라는 표정을 검사는 읽을 수 있었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서 다 알고 왔다는 뜻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검사가 무엇을 얼마나 아는지는 몰라도 김형사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했다. 살해되기 전날 만났잖아요? 하고 유도하여 말하자 김형사는 조금도 은폐하려고 하지 않고 사실을 틀어 놓았다. 서검사와 조금 아는 사이라서 요번 수사를 나에게 맡겨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만났다. 김형사가 밀수사건의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는데 왜 월권행위 하는가? 하고 서검사에게 물었다. 서검사가 반드시 이 사건을 자기 손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 그토록 수사를 맡으려 하는지 섬세하게 알아보았더니 서검사의 부인이 보따리밀수꾼 명단 속에 끼어있었다. 그래서 사건을 처리하면 서검사의 아내를 명단에서 제외하려고 수사를 착수한 것 같다고 했다. 검사는 그래서 홧김에 일을 저지른 것인가요? 아니 무슨 당치도 않는 말을 합니까? 무슨 증거를 갖고 있기에 그토록 큰소리치는지 알고 싶다며 김형사가 검사의 눈을 쏘아보며 따졌다. 검사는 김형사라고 확신하지만, 단서가 없어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늦은 밤 헤어졌다. 실의에 빠진 검사가 출근할 때마다 고민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검사가 새로운 소식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부검 때 조사한 지문을 사망자의 얼굴과 옷에서 채취하여 정밀 감식한 결과서류가 이제야 문서로 전달받았다. 며칠로 지문 감식을 하였는데 엉뚱스럽게도 여자의 지문이었다. 김형사와 주과장 이라고 생각하고 단서를 찾고 있었는데 아주 빗나갔다.
범인은 선이라고 단정하고 잡으러 갔다. 선이는 김형사가 도피하라는 말을 듣고 사찰로 숨어들었다. 매우 급한 순간일수록 선이는 냉정해졌고 칼끝 같은 그 긴장의 순간에도 여유를 보이며 두 손 모아 기도에 몰입했다. 선이가 숨은 곳은 어느 사찰 법당이었다. 김형사는 사랑으로 잎이 피고 꽃이 피어있는데 비극적인 행동에 놀라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형사는 선이를 안쓰럽게 생각하면서도 구제의 손길이 이어졌다. 선이는 한 절에 오래 머물 수 없어 다른 곳으로 옮겨 다녔다. 자수할까 하고 집으로 들렸을 때 잠복 중이든 검찰에게 잡히고 말았다. 범인을 잡아와서 자백을 받고 현장재연에 들어갔다. 범인은 현장재연에서 소상히 밝혔다. 술에 취한 선이가 김형사를 만나러 갔을 때 도로 언저리에 두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 흐릿하게 눈에 들어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김형사는 먼저 택시를 타고 집을 향해 멀어져갔다. 선이가 가까이 다가갔을 때 서검사는 택시에 오르고 있었다. 선이가 김형사 인줄 알고 뒷좌석에 함께 탔다. 서검사는 차에 오른 여인이 누군지도 모른 채 부둥켜안고 볼을 비비며 젖가슴을 만졌다. 선이가 술에 많이 취해 서검사의 무릎에 안겨있어도 등을 돌려있어 알 리가 없었다. 서검사가 선이를 몰라보고 품에 안은 여인이 분홍녀[粉紅女]라 생각하고 입맞춤을 하였다. 술에 취한 선이는 김형사 인줄알고 몸은 점점 흥분되어 하는 대로 호응해주었다. 대청공원 앞에서 택시 기사가 다 왔다고 했다. 검사는 택시 기사에게 모텔로 가자고 할 때 음성이 달라 쳐다보았더니 김형사가 아니고 서검사였다. 당황하고 놀란 선이는 택시 기사에게 세워달라고 했다. 차에서 내린 서검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희미한 가로등아래 선이가 아닌 분홍녀로 보여 모텔로 가자고 졸랐다. 선이는 언니의 남편이라는 생각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품에 안으려는 서검사를 부축하여 공원 의자에 앉혔다. 선이는 서검사가 아는 사이인데도 이런 행동을 하는 것에 순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발작하여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서검사와 어떻게 아는 사이인가? 친한 언니가 남편이라며 인사시켜 주어 안다고 했다. 무엇으로 죽였는가? 하는 질문에 선이는 가방에서 약물을 꺼내어 의자에 앉은 서검사를 내 무릎을 베고 눕게 하여 약물을 먹였다고 했다. 검사는 무슨 약물을 어떻게 먹였는지 물었다. 선이가 가방에서 매니큐어 지우는 메틸알코올을 꺼내어 술 깨는 음료수라 하고 먹였다. 서검사는 답답함을 호소하자 선이가 팔로 목을 꽉 졸라 숨지게 하였다고 진술했다.
선이가 밀수에 손대기 시작한 지 오 년 만에 큰 사업을 눈앞에 두고 이렇게 비극적인 삶으로 전략하고 말았다. 삼복더위에 연꽃이 화려하게 피는 어느 날 현장재연을 구경한 나는 선이가 범인이라는 사실에 너무나 놀랐고 실망하였다. 정애는 명숙을 불러 선이가 나를 이렇게 실망하게 했다고 전하자 명숙이도 분노를 터트렸다. 세상에 믿을 만한 사람은 한 년도 없다고 투덜거렸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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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많이 덥네요
더위에 ...
건강잃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행복한 목요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지루한 글 읽어 주시어 고맙습니다.
재미가 있다면 자주 올려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