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달라이라마의 용서
우리의 지향하는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그 해답에 대하여 티벳트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말한다.
용서야 말로 사람이 가져야 할 가장 귀한 가치이다 라고...
용서라는 단어의 "for giveness"는 대가없이 주는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그의 한 죽마고우에 대한 예를 들며 용서를 설명했다.
티벳이 중국군에 의해 유린을 당하고 많은 승려들이 죽거나 구금을 당하게 되었다.
달라이 라마의 친구인 로폰라는 그의 종교를 포기하도록 강요를 당하며 죽음에 가까운 고문을 당했다.
인간의 생각을 바꾸기 위한 중국인의 고문은 집요하고 혹독했다.
그러므로 로폰라는 두려워 했다. 그의 두려움은 핍박과 고난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을 학대하는 중국인들을 미워하게 되거나 그들에 대한 긍휼을 버리게 되는것을 두려워 하는 것이엇다.
중국군에 의해 수많은 동족이 죽임을 당하고
구속을 당하고 짖밟히고 수탈을 당하고 난뒤에도 그들은 용서를 하자고 했다.
그들의 가장 숭고한 삶의 목표는 용서였다 60년대이후 한국은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노래하며 우리민족의 최고의 가치를 경제라고 했다.
그리고 일어나면서 누우면서 새마을과 새나라를 경제를 통하여 이루어 내자고 노래했다.
그리고 결국 이루어 냈고 지금은 세계 10위의 경제내국이 되었다.
그러나 물질의 풍요가 만들어 놓은 행복은 그 뿌리와 의미가 깊지 못했다.
무엇을 위해 살것인가?
무엇에 의해 살것인가?
이 삶의 목적을 정하는 일이야 말로 바로 행복을 해답하는 바른길인것이다.
이에 대하여 티벳인들의 대답은 이랬다.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이 중국을 미워 하게 될까봐 그것이 두렵습니다.
우리의 복수는 우리 아이들의 웃음이기 때문입니다.
미움이 없는 아이들의 웃음 같은 티벳인들의
천진함이 행복임을 그들은 태생적으로 터득하고 있었던것이다.
중국인들의 미래관은 대국을 향한 추구이다.
그들의 논리는 힘에 의한 논리이다.
그 힘의 논리는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 함에 있어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올림픽 성공을 위해서 그들은 안깐힘을 썼다.
힘으로 밀어 붙이는 그들의 속성은 인권과 역사를 부정한다.
그러므로 그들에 있어 용서란 그들의 삶에서는 별 가치가 없는 문학적 용어일 뿐이다.
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의 티벳과 달라이 라마는 아주 나약하고 먹기좋은 간식꺼리일뿐이다.
네 살때 달라이 라마가 되었고 티벳의 지도자로서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게된 그의 호탕한 웃음은 어쩐지 작은 나라의 큰 힘을 느낄수 있게 한다.
중국의 누추함으로는 범접할수 없는 진정한 대국으로의 의미를 느낄수 있는 것이다.
얼마전 서울에서 벌어진 중국인들의 폭동에 가까운 시위는 중국이라는 졸부적 작태였다.
더욱 우리의 비위를 긁는건 중국인이까 그래도 된다는 미숙아적 사고가 더욱 놀랍고 기분이 더럽다.
세계제일의 밀매왕국, 짝퉁의 천국, 국가가 앞서 기술절도를 지시하는 회괴한 부도덕의 대국인 중국의 앞날을 예측할수는 없다.
천안문사태때 3천여명을 학살하고 주은례는 말하기를 “중국에서는 백만명이 죽는다 해도 놀라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지진으로 십만이 될지 수십만이 될지 모르는 사람이 죽었다.
어쩌면 주은례의 말처럼 중국에서는 놀랄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용서를 모르는 비류를 항한 조물주의 경고임을 그들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티벳의 인구만큼의 인명을 거두어 낼지도 모르는 하늘의 심판을 두려워 하지 않으면 티벳을 이에 물고 으르렁거리는 그들의 모든 이가 뽑히어 나가는 두 번쩨의 대 지진이 일어날것이다.
북경오림픽~다행히 잘 마쳤다..
올림픽은 중국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인의 축제이기 때문에 잘 되어야만 했다.
다만 티벳의 자유로운 종교사상 활동을 보장하고 그들이 갈망하는 자주권과 독립을 돌려주어야 할것이다.
첫댓글 용서라는 말만들어도 가슴이 훈훈합니다. 용서는 자신을 위해서러도 해야 되는데 그게 잘 않되는게 인간이죠....
결국 용서는 자신을 위한 결단이지요. 용서하지 못하고 미움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자신을 해치는 자해와 같은것이지요.
내가 나를 위해 용서하는 것이지요. 그 또한 이기적이고 .. 그래서 어렵습니다. ㅎㅎㅎ
그렇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나로부터 시작할수 밖에 없는것이 인생이겠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