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찬송가 492장 (구 544장) / 창세기 7 : 1 - 24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492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창세기 7장 1절 – 24절 말씀입니다.
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2.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3.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4.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6.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7.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8.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9.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10.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11.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12.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13.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14.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15.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16.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17.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18.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19.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20.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21.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22.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23.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24. 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 아멘!
오늘 본문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읽다가 16절 후반 절에 제 눈이 머물렀는데 오늘은 이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 노아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첫째, 이것은 노아가 남긴 하나님의 몫입니다. ‘맑은 하늘에 산중턱에서 방주를 만들다니... ’ 아마 노아는 이런 뭇사람의 비웃음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믿음이기도 합니다. 방주를 만드는 동안 노아는 뭇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산 위에서 배를 만들다니... 그러나 노아는 후에 아브라함이 맹목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듯이 그 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하나님이 아직 보이지 않는 일들을 지시하셨을 때에, 경외심을 가지고 방주를 지어서, 자기 가족을 구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른 의를 유업으로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히 11:7)
아마 그의 마음에 의심이 많았을 것입니다. “내가 듣기는 바로 들었나?” “내가 들은 그 말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일까?” “남들이 비웃는 이 길이 과연 옳은 길일까?” “혼자서 남들이 안하는 짓 하다가 망신 뻗치는 것 아닐까?” - 힘든 노동보다도 아마 이런 의심이 가장 그를 힘들게 하고 약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를 피신시키고, 마지막 자기 손으로 문고리 마저 잠구고 들어갔다면.... 아마 그가 방주 안에서 어떤 변화를 겪고 나올 지라도 계속 의심하는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문고리를 밖으로 달면서 모든 작업의 마무리를 하나님의 손에 의존해서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확실히 마무리 할 수 있는 선택을 떠나서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아마 노아는 그렇게 하나님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확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 달래기, 하나님 끌어안기라고 생각됩니다. 노아시대에 하나님께서 실망하십니다. “사람이 썪었다....” 그래서 그분은 인간을 쓸어버리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흠 없는 노아를 고르셔서 그 외에 모두를 멸하시고 그의 가문을 중심으로 마치 종자를 개종하시듯이 새인류를 세워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그 후손들은 죄악이 없었습니까? 매우 불행하게도 마치 오늘 우리를 보듯이 홍수 전이나 홍수 후나 인류는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스스로 결단하십니다.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 다시는 이번에 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없애지는 않겠다.”(창 8:21)
인간의 뿌리깊은 죄악은 어마어마한 인류의 홍수조차도 비웃습니다. 홍수 사건을 통해 변화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조금도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지 변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변하셨을 뿐입니다. “내가 다시는 인간을 이렇게 멸하지 않겠다.” 는 하나님의 결심으로 마무리합니다. 왜냐? 그분은 인간의 악함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홍수사건의 결론은 허무할지 모릅니다. 인간은 변하지 않고 단지 하나님께서 더 너그러워 지셨을 뿐입니다.
지금 노아는 인간의 불의에 대해 분노하고 계신 하나님을 달래고 있습니다. 불의한 인간을 쓸어버리시려는 하나님에게 노아는 마지막 몫을 넘기면서 그분의 손을 잡아채고 있습니다. 마지막 결정적인 작업에서 그분의 손을 빌림으로 화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노아가 덮석 그분의 손을 잡아 끌어들이고 있는 행동으로 생각됩니다. 자신의 위기를 담보로 해서 하나님을 개입을 요청하고 지금 그분의 손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아멘!
셋째,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몸소 문을 닫으셨다는 짧은 말은 간결하게 하나님의 배려와 세심한 몸짓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사무엘상 15장 29절 말씀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광이신 하나님은 거짓말도 안하시거니와, 뜻을 바꾸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뜻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바로 그 말씀이 있는 같은 장에 주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삼상 15:11) 오늘 노아의 이야기도 그 시작 벽두에 하나님께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고 마음 아파하셨다.” 고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인격이십니다. 그는 의지로 차 있으시며, 활발한 논쟁 속에 있기도 하시고, 자신을 알리려 하시고, 인간에 죄에 대해 충격을 받으시고, 그에 대해 마음 아파하시고, 가슴 치며 후회도 하시고, 또한 멸하기로 결심하였다가 당신께 눈물을 흘리며, 오는 자에게는 스스로 정하신 법을 초월해서라도 마음을 여는 분이십니다. 한마디로 살아 계신 하나님, 인간의 친구되시며 인간의 냄새가 물씬 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은 생명을 멸절하시려는 결심을 방관적이고 냉정한 무관심 속에서 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의와 불의를 갈라내는 차원에서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멸하시려는 스스로의 계획에 대해 “갈등하며 고통스러워 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고통은 노아를 통한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의 계획으로 이어집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고통이 노아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실제적 동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가슴 아픔으로 인해 노아에게는 무조건적 은혜가 베풀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이 노아의 이야기는 심판의 이야기일까? 아니야. 아마 그것은 노아를 선택하시는, 모든 인류를 희생해서라도 한 사람을 선택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이야기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하나의 선택 뒤에는 수 많은 버려짐이 전제되어 있으니까요. 여러분 한 사람을 선택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이 세상과 우주를 희생하셨으며 자신의 아들이시고 자신의 몸이신 그리스도를 희생하셨습니다. 사실 노아의 이야기는 이 고귀한 선택의 이야기, 이 엄청난 사랑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대를 심판하시는 그 대가로 무조건적으로 베푸신 은총의 결과가 바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임을 기억하시면서, 구원 받은 자로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맡기며 신뢰하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