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한 가운데에는 중앙공원이 있고, 그 옆에는 도립병원이 있습니다.
도립병원은 일찌기 일본인들이 지은 매우 큰 병원입니다.
앞의 본관의 길이만 해도 내 짐작으로 70m는 되어 보이는데 이층집입니다.
1954년 6월 말 경에는 도립 병원의 2층에는 간호학교가 있고 원장실이 있습니다.
아랫층 가운데 홀에 들어가면 서무과가 있고 나의 작은 형이 여기에서 일을 하며 저녁에는 청주 공고야간학교에 다닙니다.
홀에는 사람 키 보다 더 큰 시계가 벽에걸려 있는데 참 멋진 일본제 시계 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병실로 가는 기다란 복도가 있는데 길이가 50m는 될 것입니다.
긴 복도로 가면 가운데에는 간호원실이 있고 양쪽으로는 제1병동과 제2병동의 환자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간호원실에서 다시 복도를 따라 또 50m올라가면 제3병동이 있고 제4변동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가운데의 간호원실옆으로 오면, 식당이 있고 몇개의 창고가 있습니다.
형이 잠을 자는 방은 제1병동의 6호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작은 형이 나를 방으로 안내하며 무척 반가워 하면서도 당황합니다.
그것은 침대가 형 혼자 잘 수 있는 작은 침대인데 내가 왔으니 곤란한가봅니다.
그래도 나는 형이 좋아 둘이 낑겨서 잠을 잡니다.
나는 그날부터 형의 방에 머물면서 도립병원을 구경하는데 병원이 엄청 커서 매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살펴 봅니다.
우리가 있는제1병동 옆에는 청주 중앙공원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병원에는 높은 담이 둘러쳐져있습니다.
제2병동으로 가면 그 끝에는 넓은 마당이 있고 마당 한쪽에는 화장실(수술한 찌꺼기를 태우는 화덕)이 있는데 거의 매일 태우는데 고기타는 냄새도 납니다.
그 옆에는 시체실이 있고 그 당시에는 죽는 사람이 많아 항상 시체가 있어 그 앞을 지나면 무섭습니다.
그리고 화장실 옆의 바당에서는 거의 일주일마다 시체 해부가 있는데 간호학생들이 빙 둘러서서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듣습니다.
한번은 12살 먹은 남자 어린이가 친구와 싸우다가 죽었는데 눈을 찔렸는지 한쪽 눈이 새까맣습니다.
의사가 집게로 뱃가죽을 찝어 올리고 가위로 푹 찔러 뱃살을 오리자 창자가 마구 튀어나오는대, 바람이 들어가서 고무 풍성 같습니다.
나는 제2병동의 끝 층계에 서서 이 광경을 내려다 봅니다.
그런데 비린내가 얼마나 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간호사들은 눈 하나 깜빡이지도 않고 열심히 보고 듣습니다.
의사는 다시 창자들을 마구 뱃속으로 구겨 넣고 듬성듬성 꿰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면도날로 귀옆의 머리가죽을 동그렇게 오리고, 머리가죽을 조금 밑으로 벗겨 내리고, 톱으로 해골을 썹니다.
빙 둘러가며 조심스럽게 톱질을 하고 나중에는 작은 쇠붙이 끌을 양쪽 해골 틈에 박고 망치로 톡톡 치자 해골이 떨어집니다.
그러자 비닐에 쌓인듯한 뇌가 출렁 거립니다.
의사는 뇌를 찢어 벌리고 살펴보는데 가위끝이 눈으로 들어와 뇌를 찔러 사망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다시 엉성하게 해골을 꿰 맵니다.
울타리 밖에서는 그의 어머니가 틈새로 바라보며 통곡을 합니다.
며칠 후에는 26살된 남자를 해부하는데 죽은 지 오래되어 그런지 비린내가 너무 심해 나는 우웩 우웩하며 그곳을 피했습니다.
나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여러명의 식당 아줌마들이 나를 친절하게 대해 줍니다. 점심때는 우유가루로 쌀죽을 끓여 환자들에게 주고 우리도 먹습니다.
오후에는 식당 아줌마들이 밖으로 나와 그늘에서 쉬며 수다를 떨고 또 일하는 남자 노무자들이 모여 함께 잡담을 하며 즐거워 하는데, 남자노무자들은 거의 북한에서 남하하신 분들입니다.
어느날 이야기 도중에 한 남자의 바지단추를 잠그지 않았는지 발기된 성기가 밖으로 쑥 튀어나와 부인들이 박장대소하며 즐거워 합니다.
그렇게 나도 할 일이 없으니 그들과 어울리며 하루 하루를 보냅니다.
(계속)
첫댓글 다시금 작은 형님과의 생활이 시작
되셨네요.
저도 헌병대 재직시절에 시체부검 하는것을
참관한적이 잇읍니다.
볼게 못되더라고요.
청소년기 시절에 많은 역경이 있으셨읍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역경을 잘 이겨내신것 같읍니다.
어서오세요 무악산님
일찍 찾아주셨네요, 하하하
좋은 하루 되세요
아유
부검하는 것도 보셨네요
숨 끊어지면
소나 돼지 짐승같이 피 비린내?
아유
무서버라!
어서오세요 라아라님
시신이 상해서 그렇지요 하하하 감사
부검과정을 ?
아마
비위가 약한 사람은 견디기
어려울것입니다
부검에 참여해 보니
그 영상이 오래 가더이다
힘들었는데...
또 다른 생활의 시작이군요?
전 죽은 사람을 많이 봐서 새로운 인간상을 생각하개 됩니다.
삶과 죽음의 관게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감사
@형광등등 얼마전 오빠에게 들었던 이야기인데, , 6.25때 전쟁이 나고 삼일후 남대문에 가봤더니 남대문 지하도에 물이 찼는데 시체들이 둥둥 떠있었는데 그중 잊지못할 장면은 애기엄마가 포대기로 애기를 업고 뒤집혀져 둥둥떠있더래요.. 8살 어린애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요? 얼마나 무서웠냐고 물으니 하시는 말씀이 전쟁중엔 삶과 죽음의 경계, , 어느 싯점에 서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도 담담해지고 그모든일들이 두렵게나 공포스럽지 않다고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자하 자하님 너무 끔찍한 내용입니다.
그때 남데문지하실이 있다는 얘기는 처음들어요 아유 너무 불쌍하네요
@형광등등 지하실이 아니고 남대문옆 지하도입니다.. 사람들이 건너다니는 지하도겠지요.
작은 형을 찿아가자 형이 반가워 하면서도 당황했다는 대목에서 형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대형 병원이라서 형광님 세세히 볼 수 있었던 부분도 많으셨었군요. ^^~
예 순수수피아님 제 글에서 복선을
느끼시나봐요 하하하 민감하십니다 감사
제본소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두었는지? 그게 안타깝고 이해가 안됩니다
어서오세요 태평성대님 잘 보셨어요,
제가 좀 철이 들었다면 사장님을 찾아가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을꺼에요
그러나 제가 생각이 깊지 않았답니다. 감사
오랜 세월의 기억이 생생 하시네요
어서오세요 마야님 감사합니다.
저는 이상할 정도로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답니다 하하하
청주도립병원에서의 형님과 더불어 지낸 기간은 인생의 한페이지를 장식하는 시간이었겠군요.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그 중간의 경계 어디쯤에도 인간군상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내재해 있겠지요. 형은 주경야독으로 고단한 일상을 이어가고 형광님은 병원,이곳저곳을 누비면서 병원이 돌아가는 생리를 꿰어갑니다. 얼마지나지 않아 또다른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요? 밥벌이나 공부쪽으로요, , ,
자하님 님은 마음이 너무 좋으신 분이십니다.
보잘것 없는 한 인생을 너그럽고 자상하게 살펴봐 주시니 더 없이 고맙습니다.
제가 어떻게 될지까지 걱정하시니 그대로 특별한 일이 일어나겠지요 ㅎㅎㅎ
그 광경을보고
무서워서 잠이 안올탠데요
난국민학교때 죽은아이 가마니로 덮어놓은발을 보고
자다가 헛소리 하고
아버지가 헤모그로빈 사다먹이고 동내에선
귀신붙었다고
굿해야된다구 ㅎ
지금도 모지리얘요 ㅋ
여름에님 어서오세요. 감사합니다.
저는 많은 것을 봐서 별로 놀라지 않아요 하하하간이 부었나봐요 ㅎㅎㅎ
부검 말만 들었지
글에서 읽어봅니다
아고 무서버라요
어시시 ㅎㅎ
고운밤 되세요 ^^
하하하 무삽지요 의사들은 너무
익숙해 마치 짐승 다루듯 합니다 하하하 감사
작은형님께서도 병원에서 많은 분들께 인정받으셨었나 봅니다.
그러니 동생을 데리고 있어도 별 탈 없이 잘 계실 수 있었겠지요.
그곳에서 형광등등 님께서도 일자리를 찾아 또 인정받으며 성실하게 일하셨을 듯 합니다.
어쩜 이렇게 속속들이 선명하게 읽게 해 주시는지 그저 놀랄 뿐입니다.
바람따라 구름따라 흘러오신 인생 그 어느 곳에서도 진한 발걸음을 새겨오셨으니
이렇게 박진감 넘치는 한편의 멋진 작품을 이어 가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송초님 어서오세요 늦어 죄송합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