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과 관련해 조금 놀란 적이 있다.
어떤 작가와 무슨 이야기를 하던 중에 그가 스마트폰을 꺼내 그자리에서 검색해 읽어보는걸 보고 황당했던 기억인데 난 그때 스마트폰이 비싸서 쓰지 않던 때였다.
요즘은 그게 놀랄 일이 아닌 시대지만 얼척없게 느꼈던 사건이었다.
나는 요즘도 검색을 하지 않는다. 공개되고 검증된 사실을 이성적으로 분석해 접근하는 편이다. 매체보다 빨리 소식을 접하는 부분도 많고 늦는 경우도 있다. 아직은 내가 매체에서 보도가 등장하기전에 접하는 내용이 많은 것같은데 조만간 역전될 것이다.
김멜라작가에 대한 것도 어느 작가와 사석에서 이야길 나누다가 알게됐다. 그래서 작품을 처음 접하기까지 늦었던 것도 그 선입견이 한몫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나도 한국페미니즘이 왜곡되어 같은 여자들조차 지지하지 않는 수준으로 처참하게 된 상황이 당연하다고 본다. 페미니즘이 아니라 그냥남혐일 뿐이니까.
퀴어축제는 나도 반대하는 사람이지만 페미처럼 제도와시스템을 투쟁상대로 하기보다 상대개념을 반대(적)영역에 두고 그 상대와 대결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는 방식이 아닌 한, 내 반대는 개인의 영역에서만 유효하다.
싫은 것과 나쁜 것은 전혀 다른, 등가비교 될 사안이 아니다. 싫은 것은 개인 취향 즉 기호의 문제지안. 나쁜 것은 사회통념 궁극에는 법률의 영역으로 흘러가는 공적영역의 문제라는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선동가들은 이 구분을 모호하게 지닌 많은 이들의 감정을 불씨로 활용한다. 반공으로 친일파들이 승승장구하게된 원인도 이런 틈을 공략해 효과를 봤기 때문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70만명대학살 행위마저 정당화하는 용도로 재생산되는 어처구니를 낳았다.
인간사회는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사회라는 개념자체가 복수개념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의 행동은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인간이 행하는 모든 형태의 행위를 업(보)이라고 하고 , 그걸 구체화해 부른다.
개인의 것은 사업, 공적인 것은 공업, 공과 사 모두에 해당하면 공공업으로 부른다.
사업은 양심과 도덕이 지배하는 영역이고
공업은 법률과 시스템이 관여하게 되는영역이며,
공공업은 위 두가지 모두가 관여되는 영역인데 이게 굉장히 복잡하다, 현대사회는 이 공공업이 확장되는 사회다.이걸 깊이있게 이해해야 사회갈등 요소들을 풀어낼 수 있기에 설명이 필요하다.
공공업이 개인+공공 이지만 모든 어우러짐은 그것들의 단순덧셈으로 굴러가지 않고 곱셈으로 증폭돼 굴러간다
산수에서 1+1=2지만
사회에서 1+1=3 이상이지 절대로 2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게 공공업을 이해하는 논리의 기본구조다.
동성애자를 의도적으로 활용하는 방송이 많다. 하리수부터 홍모씨 방모까지. 나는 그들이 방송에 나올 때마다 짜증나고 역겨워할 정도로 싫다. 다양성 차원에서 이해는 하지만 싫다.
올해 김작가님과 몇 번 소통했는데 굉장히 정직한, 요즘젊은이 같지 않은 익숙함을 볼 수 있었다.
그건 성정일 수도 있고, 시선을 고려해 애쓰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무척 바쁜 가운데 참 대견하다고 느낀 일이 많았다.
정말이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 과하지 않게 충분히 드러나는 실력, 예의와 겸손까지 지닌 전형적인 한국젊은이. 요즘은 억지로라도 이런 걸 갖춘 젊은이들이 희귀해서 더 돋보였다.
그리고 글이 정말 괜찮다는 점.
그 요란떨던 김모. 최모. 딱 3년이었다
끝물을 퍼내지만 3년 구축해둔 이름으로 연명하는중이다. 자기가 3년짜리 만들어진 작가라는걸 모른다. 다 거기서 거기, 그정도쓰는 작가는 한국에 널리고 널렸다는걸 모른다.
억지 폄하만 개입되지 않는다면 멜라의 시대는 길게 갈 것같다. 그들의 세계에서 무난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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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로라님의 통섭 논리에 적극 호응합니다.
어느 한쪽으로 경도되지 않는 스탠스야말로
이 사회를 건전하게 이끌어갈 통념으로
자리매김 하는 게 옳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외로이...카페를 이끌어가시는 노고에도
격려와 찬사를 보냅니다.
누군가 해야할 일, 자처하여 도맡으시는
고마움에도 고개 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