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든 성배.`
전 세계 기업들이 매년 3000조원에 달하는 거금을 투자하지만 툭하면 실패를 맛보는 분야는 무엇일까. 이는 과도한 연구개발(R&D)도 신규 사업 분야도 아니다. 바로 인수ㆍ합병(M&A) 분야다.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기업들이 M&A를 위해 쏟아부은 금액은 총 2조6000억달러(약 2973조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보다 2%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M&A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지만 그 승률은 결코 높지 않다.
M&A 성패의 기준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전문가들은 M&A 실패율이 최소 50%, 최대 9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즉 M&A를 시도한 기업 중 절반 이상은 실패를 맛본다는 뜻이다.
설사 M&A에 성공하더라도 기업들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단기적으론 주주가치가 하락하기 십상이다. KPMG에 따르면 합병사의 평균 주식은 합병 후 1년간 동종업계 대비 2.1%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리한 인수경쟁을 펼쳤다면 유동성 악화 등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도 있다. 웅진그룹의 극동건설 인수가 대표적인 사례다. 인수 후 통합과정(PMIㆍPost Merger Integration)에 문제가 생겨 합병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
리처드 루백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M&A는 잘해봤자 주주들에게 손해를 안 끼치는 정도"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나 2012년 한 해 동안 한국을 포함한 5개국에서 5개 기업을 인수하는 등 지난 12년간 총 65개 기업을 성공적으로 인수한 기업이 있다. 바로 90% 이상의 M&A 평균 성공률을 자랑하는 글로벌 동력전달장치기업 이튼(EATON)이다.
이튼은 M&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이전인 2000년에만 해도 연매출이 83억달러(약 9조5000억원), 해외 매출 비중은 20%에 그쳤다.
그러나 65개 기업을 인수한 이후인 지난해 매출 218억달러(약 25조원), 해외 매출 비중은 50%로 늘었다. 이튼은 지난해 인수한 기업들로 올해 약 6억600만달러(약 6900억원)의 추가 매출을 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7월 인수한 제일유압의 인수 후 통합과정을 복기하기 위해 방한한 리처드 피어런 이튼 부회장을 지난 5일 부산 제일유압 본사에서 만났다.
피어런 부회장은 이튼의 M&A 전략을 진두지휘하는 인물이다. 하루 일정으로 한국의 프랜차이즈 도시락을 먹으며 보고를 듣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피어런 부회장에게 이튼의 M&A 성공 비결을 물었다.
피어런 부회장은 "재무 상태가 좋은 기업을 5~10년간 관찰해 잘 아는 상태에서 인수를 결정한다는 점이 중요한 성공 요인"이라고 밝혔다. 그는 "모든 M&A 결과를 자체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해 향후 M&A 전략에 활용하는 점도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피어런 부회장과의 일문일답.
―인수 대상을 고를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우리는 M&A 경험이 매우 풍부하다. 2000년 이후 인수한 기업 65곳에서 연매출 120억달러를 거두고 있다. 이튼 입장에서는 M&A를 통해 매년 약 12억달러의 매출 성장을 기록한 셈이다. 재무적으로 어려운 기업은 인수 고려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잘 관리되고 개선의 여지가 풍부한 기업을 집중적으로 살핀다. 이튼이 가진 첨단 기술과 전 세계 제조공장 300개를 기반으로 한 제조 전문인력, 글로벌 고객층을 투입했을 때 더 개선될 수 있는 회사인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M&A 성공률이 얼마 정도인가.
▶우리가 지난 M&A 데이터베이스를 추적한 결과 성공률이 90%를 넘었다. 이는 아주 높은 수치다. 물론 10%의 실패도 맛봤다. 실패한 10%는 매출 목표 등 인수 효과가 애초 기대치에 못 미친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 10%의 기업들도 자체 문제보다는 해당 국가의 경기 침체 등 경제성장률이 뒷받침해주지 못해 목표치를 채우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10년간 미국 이외 해외 매출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는데.
▶M&A가 해외 시장의 성장을 도왔다. 아시아ㆍ브라질 등 해외 시장의 평균 경제성장률이 미국보다 훨씬 더 높았다는 점도 이유다.
-이튼은 작년에만 5개 기업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튼의 M&A 전략에 원칙이 있다면.
▶우리의 M&A 기본 원칙은 `잘 알지 못하는 기업은 인수하지 않는다`는 거다. 우리가 지난해 인수한 기업 5곳은 모두 우리가 지난 5~10년간 알아온 기업들이다. 이튼은 경영진에게 책임지고 인수 후보들을 익히기 위한 시간을 투자할 것을 종용한다. 딱 얼마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경영진에게 업무시간의 5~10%를 잠재 인수 대상 기업과 관계를 증진하고 익히는 데 투자하라고 강조한다.
대부분의 인수 대상 기업들은 이튼이 제품, 서비스를 공급했거나 우리에게 물품을 공급했던 곳이다. 우리는 경영진에게 1년에 한두 차례가 아닌 매월 장기적으로 이 기업들과 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하라고 요구한다.
-재무적으로 어려운 회사를 인수해 회생시키는 전략을 쓰지 않는 이유는.
▶회사가 재무적으로 어렵다는 건 사업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인수를 하더라도 고치기 힘들 것들이 많다. 물론 예외적으로 특정 시점에만 재정난을 겪고 있거나 한 차례의 실수로 회사가 망가진 경우는 손쉽게 결함을 고칠 수도 있다. 이런 회사들은 인수 대상으로 충분히 고려한다. 그러나 재무적으로 어려운 회사 대부분은 고치기 힘든 근본적 결함이 있는 경우가 많다.
-재무적으로 어렵지 않고 전망 있는 기업들을 M&A 매물로 찾긴 쉽지 않은데.
▶경영주들은 자신의 소중한 기업을 매각하는데 망설이지만 결국 매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나이가 많은 경영주가 가업을 승계할 사람을 찾지 못하거나, 인수가격이 매력적일 때 매각을 결정하게 된다.
우리가 인수한 기업 중 40%는 후계자를 찾지 못해 매각을 결정했고 다른 40%는 매각에 관심이 없다가 우리가 제시한 인수 조건에 매력을 느껴 매각을 결정하는 경우였다. 우리는 시간을 두고 인수 대상 기업의 경영주와 친숙하게 지내면서 매각을 확신할 수 있도록 설득한다. 그들은 결국 이튼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게 된다.
-왜 신규사업 진출에 M&A 전략을 활용하지 않나.
▶이튼은 이미 4개 주요 사업 부문을 전 세계에서 펼쳐나가고 있다. 기존 4개 사업 부문만 해도 여전히 개선 여지가 많다. 우리는 4개 주요 사업을 더 성장시키고 입지를 강화해줄 수 있는 기업들을 인수한다. 이를 통해 포괄적인 솔루션을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규사업을 위한 인수는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신규사업 부문에는 이미 경쟁력을 갖춘 회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결국 신규사업 진출을 위해 인수를 추진하면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물론 4개 사업 부문에 우리가 미처 갖추지 못한 제품군들에 대해서는 인수를 검토한다. 이튼에는 전력품질 관련 제품이 없었다. 그러나 비상전력체계(UPS) 부문 회사를 인수하면서 매년 1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M&A 성공 노하우가 있다면.
▶지난 몇 년간 M&A를 진행하면서 얻은 교훈은 무엇보다 먼저 M&A는 결국 전략이란 것이다. 특정 기업이 매력적이라서 단순히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체적인 전략과 가까운지, 핵심 사업과 맞아떨어지는지 살피고 이에 맞춰 인수 대상 기업을 찾는 것이 순서다. 성공적인 딜을 위해선 무엇보다 전략이 먼저 수립돼 있어야 한다.
두번째로 M&A의 모든 과정에 있어 철저해야 한다. 기업의 실사에서부터 기업 탐색, 계약 진행을 위한 협상, 계약 마무리, 인수 후 통합과정(PMI·Post Merger Integration) 등 모든 면에서 철저해야 한다. 실수가 절대 허락돼선 안 된다.
세번째는 매각 대금에 대한 고민이다. 성공적인 인수 협상을 위해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의 마지노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 금액 안에서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M&A를 실패하는 많은 기업들을 살펴보면 지나친 인수전을 펼치다 능력보다 많은 대금을 지급한 뒤 이를 만회하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마지막으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수 결과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한 점과 잘못한 점을 파악해 미래 M&A 프로세스 개선에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인수한 모든 기업에 최소 1명 이상의 재무담당자를 배치해 회사의 재무상태를 추적한다. 이 자료는 데이터베이스에 취합돼 인수 후 우리가 기대했던 결과를 얻었는지 알 수 있도록 한다.
-M&A 협상 스킬이 있다면.
▶먼저 M&A에 나서기 전에 전문 협상가들로 이뤄진 팀이 구성돼야 한다. 우리는 인수 계약서의 아주 자세한 부분까지 숙지를 해 효과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나설 수 있는 전문협상팀을 갖고 있다.
두번째로 M&A 성사를 위한 가이드라인이 사전에 준비되어야 한다. 리스크 분배와 인수가격은 어떻게 할지 초반부터 원칙이 잡혀있어야 합리적인 기간 내 협상을 마무리지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파는 쪽이나 사는 쪽 모두 어느 정도 타협은 하되 서로 윈윈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튼이 지난해 제일유압을 인수한 이후 거의 1년이 다 돼가는데.
▶유압 부문은 우리에게 전기에 이어 두번째로 큰 사업 부문이다. 제일유압은 굴착기 등 주로 건설장비를 대표 상품으로 갖고 있다. 한국에서 잠재 인수대상을 검토할 때 제일유압이 기술력과 제조력 면에서 단연 눈에 띄어 인수를 결정했다. 인터뷰 시작 5분 전까지 지난 1년간 PMI 과정에 대해 보고를 받았는데 잘 되가고 있는 것 같다.
-기업 인수 후 시너지 창출에 실패하거나 자기잠식에 빠지는 경우도 많은데.
▶인수 이후 가장 중요한 것은 PMI 전문팀과 프로세스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수한 기업의 경영진에게 경영, 본사와의 통합 등 두 가지를 모두 맡기면 업무 과중을 불러온다. 결국 제대로 된 통합이 불가능해진다.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제일유압에는 10명의 이튼 PMI 전문팀이 가동 중이다.
이들은 제일유압에 이튼의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적극 도입하고 꾸준한 소통을 통해 이튼의 영업 전략 등 기타 전문성을 전수하고 있다. 두번째로 중요한 점은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하고 현실적인 시너지 효과 목표치를 세우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 M&A 기록을 모두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고 있다. 이는 인수 가격과 인수 후 현실적인 목표치를 세우는 데 도움을 준다.
- M&A 성공률이 90%가 넘는다고 들었는데, 실패는 언제 겪었나.
▶5~8년 전 작은 회사를 여러 곳 인수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회사들은 직원 몇 명에 의해 운영되던 곳이었다. 이 소수의 직원들이 이탈한 후 회사 운영이 잘 안 됐다. 우리는 이를 교훈으로 삼아 인수 대상 기업이 소수 직원에만 의존하는 곳은 아닌지 면밀히 살피게 됐다.
■ 전세계 동력 우리손에…애플·NASA도 고객
우주항공·유압·전기·차량중 전기매출 10여년새 7배 늘어
= 이튼은 전 세계의 동력을 책임지는 기업 중 하나다. 빌딩의 전기 배전부터 농업, 건설, 광업용 유압, 우주항공에 필요한 모션 제어, 트럭에 쓰이는 자동 트랜스미션과 하이브리드 파워 시스템 등 전 세계 175개국의 움직이는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한 제품과 관련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난해 쿠퍼 인수에 성공하면서 매출 214억달러(24조4400억원ㆍ2011년 기준), 직원 10만3000여 명의 회사로 도약했다.
-이튼을 소개한다면.
▶이튼은 1911년 설립됐다. 그만큼 역사가 오랜 기업이다. 우리는 주로 전기ㆍ유압ㆍ기계 동력 제품과 솔루션을 기업에 제공한다. 기업들이 동력을 더 쉽고 효과적이면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발전소 외에도 일반 기업이 사용할 만한 거의 모든 저ㆍ중전압 전기 장비를 생산한다. 빌딩이나 경기장, 공장에 전기를 제공하거나 모니터링, 백업할 수 있는 장비를 제공한다. 애플과 페이스북도 우리 고객이다. 이들이 운영하는 빅데이터 센터에 이튼 전기시스템을 제공한다. 우주항공부문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우리 고객이다.
-전기, 유압, 우주항공, 차량 등 4개 주요 사업 중 가장 성장이 빠른 부문은.
▶전기 부문이다. 10년 전만해도 매출이 20억달러에 못미쳤다. 내년 매출 추정치는 140억달러다. 유압과 우주항공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전기 부문이 워낙 빨리 성장하고 있다. 슈나이더와 지멘스, ABB가 우리의 3대 경쟁사다.
-이튼은 2011~2012년 톰슨로이터 선정 100대 혁신기업, 미 특허평가기관 `페턴트 보드(The Patent Board)` 선정 산업자재 부문 혁신 기업 1위로 선정된 바 있다. 이튼의 핵심 역량은 무엇인가.
▶자체적으로 제품과 솔루션 대부분을 설계하고 디자인한다는 점이다. 타사에서는 전혀 제공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튼은 지난해에만 4억3900만달러(약 5016억원)를 연구개발(R&D) 분야에 투자했다.
R&D에 투자를 많이 하는 만큼 R&D 프로세스 혁신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특허 출원을 늘려 이를 통한 높은 투자수익률(ROI)을 기록함과 동시에 탁월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 He is…
리처드 피어런(Richard H. Fearon)은 2002년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최고기획책임자(CPO)로 이튼과 인연을 맺었다. 이튼의 M&A 전략을 비롯해 각종 전략ㆍ회계ㆍ사업개발 등을 총괄하고 있다. 2009년 이튼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과 월트디즈니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경영학석사(MBA)를 거쳐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7년과 올해 미 경제 전문지 크레인즈(Crain`s)에서 선정한 `올해의 CFO`에 두 차례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