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노라면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낯추어 말하는 사람들이 생각외로 많다. 대화하는 중에 “나 같이 못난 사람이...” 혹은 “내 주제에...” 이런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점은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신감은 특정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기 자신 안에 이미 잠재되어 있는 잠재력과 능력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스스로를 하잖게 여김으로 자기 자신 속에 있는 잠재력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중에 갈브레이드(John Kenneth Galbraith)란 분이 있다. 하바드 대학의 교수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분이다.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관계를 다룬 탁월한 글을 많이 남겼다. 그의 글 중에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공깃돌놀이 이야기가 있다. 오랜전에 서양 사람들이 아프리카에 가 보니 어린이들이 다이야몬드 원석을 가지고 공깃놀이를 하고 있었다. 현금으로 환산하자면 억대가 넘을 가치를 지닌 돌들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서양 사람들이 눈깔사탕이 든 깡통을 들고가 아이들에게 사탕 한 알씩을 나눠주었다. 사탕 맛에 정신을 홀랑 빼앗긴 아이들은 더 달라고 졸랐다. 서양 사람들은 갖고 놀고 있는 공깃돌 하나에 사탕 하나씩을 주고 바꾸었다. 즉석에서 물물교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이들은 대단한 은혜를 입은 듯이나 몇 번씩 절을 하며 바꾸어 갔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살아가는 중에 나날의 삶의 메너리즘에 빠져 자기 자신의 값어치를 모른 체로 살아가게 된다. 자신 속에 깃들어 있는 진면목을 보지 못하고 자신감을 잃은체 살아가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미 내가 가진 다이야몬드를 보지 못한체로 살아가는 것이다.
당신은 자신 안에 있는 진면목을 제대로 알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딤후 2:20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1. 이제 이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에 들어섰습니다. 이 한 해를 통해서 이루고자 했던 일들을 점검하며 결실을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하며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나심을 이웃에게 알리며 코로나로 무너진 하나님의 교회와 신앙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저는 일 주일에 4번 야외 찬양사역을 나가고 있습니다. 이 번 겨울도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시고 영적인 은혜속에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제목 : 당신은 귀하게 쓰임받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 디모데후서 2:20-21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에 큰집에는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습니다. 큰집이란 교회를 말하고, 그릇이란 교회에 속한 성도들을 말합니다. 사실은 교회보다 큰 집들이 세상에 많이 있는데 왜 교회를 큰 집이라고 부르셨는가? 그것은 그 집의 주인이 크신 분이기 때문에 그 집이 큰 것입니다. 교회는 우주의 왕이신 주님이 세우신 궁전입니다. 이 집에 속한 가족들은 수 많은 무리들입니다. 사도요한은 그 수효를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요한계시록 7:9)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많은 무리들 가운데 당신은 존귀하게 쓰임을 받는 귀한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떠한 그릇을 귀하게 쓰임받는가? 첫째: 가치있는 그릇입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19) 바울이 이 본문에서 하신 말씀의 핵심은 무엇인가? 귀하게 쓰임받는 그릇과 천하게 쓰임받는 쓰임받는 그릇입니다. 그러면 귀한 것과 천한 것을 무엇으로 구별하셨는가? 그것은 그릇의 질적인 가치를 가지고 귀한 것과 천한 것을 구별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귀하게 쓰임받는 가치있는 그릇은 어떠한 그릇인가?
가치있는 그릇이란?
① 품위 있는 그릇을 말합니다. 본문에는 네 종류의 그릇이 있습니다. 금그릇과 은그릇과 나무그릇과 질그릇입니다. 이를 질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볼 때 크게 두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땅에 속한 나무그릇과 질그릇입니다. 이것은 세속적인 불신자들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땅에 있으나 땅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금그릇과 은그릇은 땅에 있으나 땅에 것과는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땅에서 살지만 땅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립보서 3:20)라고 했습니다. 당신의 시민권은 어디에 있는가?
② 변하지 않는 그릇입니다. 가치있는 그릇은 환경에 따라 잘 변하지 않습니다. 금그릇, 은그릇은 녹슬지 않고 변하지 않습니다. 결혼할 때 예물을 주로 금으로 합니다. 그것은 귀한 보석은 잘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불변하시는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브리서 13:8)고 했습니다. 당신은 받은바 사명에 변함 없는 성도가 되어야 귀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③ 잘 깨어지지 않습니다. 질그릇은 잘 깨어지고 나무 그릇은 잘 부러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인간의 연약성을 질그릇에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고린도후서 4:7). 금그릇과 은그릇은 부딪쳐 소리는 나고, 자국은 생겨도 잘 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질그릇과 나무그릇은 잘 부서집니다.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덕목은 화평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9)라고 했습니다. 화평을 만드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구역이나 교회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당신은 화평을 만드는 선수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깨끗한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고”(21)
미국 토마스 제퍼슨이 사람을 쓰는 세가지 원칙을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는 정직한 사람이요, 둘째는 강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요, 셋째는 맡은 일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정직하고 깨끗한 사람은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인사원칙은 어떠한가?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을 찾고 있습니다.
깨끗한 그릇은 어떠한 그릇인가?
① 경건한 자를 말합니다. 코오람 데오(CORAM DEO) 신앙을 가진 신전의식의 인격자를 원하십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처 유혹을 받았을 때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세기39:9)라고 했으며,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서 왕을 세우기 위해서 기름을 부으려고 할 때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사무엘상 16:7)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이 바른 자를 쓰십니다. 세상적으로는 조금 모자라도 좋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다윗을 가리켜 그 마음이 하나님과 연합된 자(사도행전 13:22)라고 했습니다.
② 순종을 잘 하는 단순한 사람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사무엘상 15:22) 고 했습니다. 사람은 단순해야 좋습니다. 복잡할수록 갈등이 많습니다. 그래서 영성훈련을 할 때 고독을 통해서 단순성훈련을 시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을 훈련할 때 고독한 광야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고독한 단순성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이것은 자아를 죽이는 가난한 마음을 같게 하는 훈련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부르실 때 “예”라고 대답하는 순종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③ 충성된 사람입니다. 주님은 달란트 비유중에서 다섯달란트 받은자를 향하여 칭찬할 때 “...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마태복음 25:21)라고 했습니다. 충성된 종을 착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한달란트 받아 땅에 묻어둔 자에게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마태복음 25:26)라고 했습니다. 게으른 자를 악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명자는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은 자신의 신분과 분수를 모르고 자리를 이탈하는 것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행전 20:24)고 했습니다. 사명자는 자신이 맡은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셋째: 준비된 그릇입니다. “거룩하고 주인이 쓰심에 합당하여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21)
오늘날 세계인들이 한국문화를 볼 때 너무 「급조된 문화」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한국인의 별명이 「빨리 빨리」입니다. 일 없이 바쁜 사람이 많습니다. 목회도 너무 빨리 빨리 할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저 자신을 조절합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사용하십니다. 철저하게 준비해 놓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부르십니다. 준비한 만큼 쓰임을 받게 됩니다.
준비된 거룩한 그릇이란?
① 구별된 그릇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속성중에 가장 많이 강조한 말이 거룩입니다. 구약의 제사법과 삶을 가르치는 레위기를 공부하면서 하나님은 철저하게 자기 백성을 성결하게 구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세상에서 구별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교회와 세상과의 울타리가 허물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세속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교회가 세상을 정화시킬 힘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중에서도 “... 하늘에게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태복음 6:9)고 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장중에서 쓰임을 받으려면 세상과 구별된 삶이 있어야 합니다. 시간 중에서 하나님께 떼어 놓은 구별된 시간이 있어야 하며, 많은 공간중에서 하나님과 엄밀히 만나는 구별된 골방이 있어야 하며, 많은 재능 가운데서도 하나님께만 받쳐드리는 구별된 달란트가 있어야 합니다.
② 주인의 마음에 새겨둔 그릇입니다. 주님의 마음에 새겨진 그릇은 언제나 값있게 쓰임을 받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사도행전 13:22)고 했습니다. 마음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의 종의 마음에 새겨진 그릇은 귀합니다. 그들은 교회의 귀한 반열에 참여하는 은총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은 주인의 손에 가까이 있는 그릇입니다. 필요시 언제든지 쓸수 있습니다. 저가 설교를 준비할 때도 서재에 많은 책들 가운데서 꼭 필요한 것은 손 가까이에 두어 언제나 쉽게 볼 수 있게 합니다.
③ 훈련된 사람을 쓰십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은 선물이지만 구원받은 성도가 존귀한 사명을 받는데는 훈련을 통하여 받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다 훈련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25년간 훈련 끝에 이삭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광야 40년간 훈련후에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23년간 훈련후에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주님은 인류 구원을 위하여 열두 제자들을 철저하게 훈련시켰습니다.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통하여 다듬어 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귀하게 쓰임받는 그릇은 가치 있는 그릇이며, 깨끗한 그릇이며, 훈련받은 준비된 그릇입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이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디모데후서2:20-21)고 했습니다. 당신은 귀하게 쓰임받는 복된그릇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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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정결하고 순결한 기운데 주님의 향기를 전달하는 도구로 쓰임받게 하소서 샬롬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존재 목사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