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6월 6일 오후, 이승만 대통령은 원용덕 헌병총사령관을 경무대로 불러들였다.
“오늘부터 육 해 공군의 헌병은 원용덕 중장의 지휘 하에 들어감을 명령함”
“나의 명령이니 반공 한인 애국 청년들을 석방하라.
可, 晩”
* 이승만 대통령의 자필 서명 ‘晩’
1953년 6월 18일은 판문점에서 포로 송환 합의서에 유엔군과 중공군(북한군)양측이 서명하기로 예정된 날이었다.
게다가 바로 전날 17일 이승만을 달래려는 아이젠하워가 특사를 보내겠다고 하여 이승만이 수락하고는
그날 밤에 석방을 단행, 판문점회담을 한 방에 깨면서 백악관 심장을 강타하는 일석이조의 핵폭탄을 날린 것이었다.
1953년 6월 18일 00시를 기해서 .
명령에 따라 수용소를 경비하는 헌병대는 미군들을 따돌리고 27,000여 명의 반공포로를 석방하는데 성공하고
그날 06시에 중앙방송을 통해 ‘반공포로의 석방에 관한 담화문’을 발표함으로써 이를 공식화했다.
불안한 휴전을 반대하던 국민들은 우리의 의지를 만천하에 보여주었다고 환호하였다.
▲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화를 들고 행진하는 반공포로들. 예상치 못한 전광석화 같았던 반공포로 석방은 국내외에 많은 파장을 불러왔다. 사실 이 사건은 석방보다 이슈를 만들기 위한 의도가 더 컸다./미국 문서기록보관소
한미 상호방위조약 70주년(2023.10.1)
1953년 10월 1일 한국과 미국간에 조인되고 1954년 11월 18일에 발효되었으며 상호방위를 목적으로 체결된 조약
1952년 3월 21일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 트루먼 대통령에게 쓴 편지
“만일 미국이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주지 않으면 한국인들은 싸우다 죽을 것”
1953년 10월 1일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이승만 대통령 담화.
“이제 우리 후손들이 앞으로 누대에 걸쳐 이 조약으로 말미암아 갖가지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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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전면 남침으로 3일 만인 6월 28일에 서울이 점령되는 등 한국군은 거의 해체된 상태에서 남쪽으로 후퇴를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6월 30일에 미군이 참전함으로써 낙동강에서 교착되었던 전선은 9월 15일 맥아더의 인천 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10월 하순 압록강 하류까지 북진되었다.
그러나 이때에 중공군의 참전으로 서울이 다시 점령되는 등 전선은 38선 부근에서 교착상태에 빠지자 1951년 6월부터 미국과 구 소련간에 휴전이 제의되고 7월부터 유엔군과 공산군간에 휴전회담이 시작되자 한국은 휴전을 반대하였다. 한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휴전회담이 진행되자 한국은 미국에게 휴전조건으로 한미군사동맹을 촉구하였다.
이에 따라 1953년 6월 미국대통령특사 로버트슨이 내한하여 외교적 절충이 시작되었고, 8월에 내한한 덜레스 미국무장관과의 일련의 회담에서 한미방위조약에 대한 합의를 보게되었다.
이에 따라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된 직후인 8월 8일 서울에서 변영태 외무장관과 덜레스 미국무장관 사이에 가조인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10월 1일 워싱턴에서 정식으로 조인되고, 1954년 11월 18일 발효되었다.
이 방위조약은 전문과 본문 6조 및 부속문서로 되어 있으며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당사국 중 일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 무력공격에 의하여 위협받고 있다고 인정할 경우 언제든지 양국은 협의한다.
(2) 각 당사국은 상대 당사국에 대한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공통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절차에 따라 행동한다.
(3) 미국은 그들의 육·해·공군을 한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한국은 이를 허락한다. 그리고 미국은 비준에 앞서 양해사항에서 한국에 대한 외부의 무력공격을 제외하고는 원조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강조하였다.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한미방위체제는 한국방위의 핵심을 이루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한국의 방위력의 증강은 물론 경제적 발전까지 이룩할 수 있었다. 특히 주한미군과 한미연합사령부설치는 이 조약을 구체적으로 실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첫댓글 이승만대통령이
가장 잘한 치적중에 하나가
반공포로 석방입니다
그 당시에 눈치 안 보고 집행한 석방이 최고로 잘 했지요
벌써
세월이 흘러서 그 분들은 대부분 하늘나라로 갔지만
70년이란 세월이 지났군요!!!
그러나
남북은 아직도 전쟁중이니...안타깝습니다 ~^^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을 잘 아는 지식과 경험과 지략으로
미국을 갖고 주물르는 실력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자유가 뭔지도 모르는 해방된 식민지 나라, 국민 앞에
미국에서 익힌 자유민주주의 헌법체계를
그대로 심어 놓은 일이야말로
우리 나라, 민족에겐 하늘이 내린 행운이라는 생각입니다.
@좋아요 동감입니다.
좋아요님과 벼리님의 댓글만 읽어도 참 애국지식이 풍부하십니다.
이승만대통령을 무시하는 이들이 많아스리..입다물고 귀닫고 기회주의자로 살아요.ㅠ ㅠ
지금 생각해도 이승만 대통령이 중요한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국가가 할 일을 본보기로 하신 분을 폄하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에 분노합니다.
우리 고향에도 반공포로로 석방 되신분이 와서 살았는데, 좋은 이웃이였습니다.
거제도 계룡산 산행후 하산길에 포로수용소를 보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