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0년부터 18세기 중엽까지의 영토이다.
오요 왕국은 1300년 전후로 요루바인들이 규합되어 건국된 국가로 그 전의 요루바 민족 국가인 이페 왕국이 멸망한 뒤 시간이 지나 건립되었다. 오요의 족장 또한 이페 왕국의 왕가 후손을 자칭했다. 오요 도시 부족국가(전기 오요 왕국)이 탄생했다.
그러나 건국 이후 200년 뒤 못해 수난에 시달리게 된다. 바로 북부의 보르구 왕국과 누페 연방의 지속적인 침공과 학살, 약탈이었다. 당시 요루바인들은 소규모 도시 국가로 쪼개져 난립했었다. 오요 왕국도 그중 하나였고 수도이자 국토인 중심도시가 약탈되었다. 마침내 누페 연방이 오요를 비롯한 요루바인 정치체를 속국으로 삼고 조공과 노예를 강요하며 암흑기가 찾아온다. 1535년부터 1600년까지 거의 60년 이상 강점기를 당했다.
이 과정에서 요루바인들은 타민족과 부족에 대해 매우 강한 적개심과 증오심을 가지게 되었고 민족에 대한 동질감과 결집력이 생기게 되었다. 그 결과, 요루바인의 민주적 대타협으로 통일국가가 생기게 되었고 그 중심에는 신도시로 천도한 오요 왕국이 있었다.
이런 통일 과정으로 오요 왕국은 과두적인 측면과 분권적인 측면이 강하게 된다. 왕좌는 세 왕가에서 선거를 통해 뽑히고 각 왕가가 있는 지역이 광역권으로 묶여 중심지를 이루었다. 이를 중재하며 군사력을 결집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집전관과 의회를 운영했다. 그리고 이런 정국을 운영하고 행정을 이끌었던 건 기병을 끄는 전사들이었다. 그래서 정치는 정복과 전쟁에 집중하여 운영되는 호전적 민주 군사 협의체였다. 오요 제국의 탄생이었나.
1600년경부터 그들을 노예로 팔아 이익을 내던 베냉 제국을 침공해 서쪽 방면 해안을 오요 제국에 편입했다. 이로서 오요 제국도 서양과의 노예 무역에 참여하게 되며 정복과 부의 축재의 기반이 된다. 곧바로 폰족이 다스리는 다호메이 왕국과 자신들을 괴롭혔던 보르구 왕국을 속국화하고 노예를 바치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흥 강자인 아샨티 제국의 확장을 저지하며 서아프리카 해안 지역의 패자가 되었다.
쇠퇴기 및 멸망
이런 확장과 전쟁은 오요 제국을 강성하게 했으나 사회적 모순 역시 점차 커졌다. 핵심적으로 두 가지 문제가 생겼는데 첫째는 오요 기병들의 기득권화였다. 이는 수많은 정복 국가에서 나타난 문제였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군사 지도자의 입지 강화와 군사 기술의 정체가 나타났다. 그 결과, 왕보다 군사 지도자인 집정관의 목소리가 더 커지며 내정보다는 전쟁만 부르짖는 상황이 됐지만, 군사 기술은 기병에만 집중해 신 병기인 화기에 소홀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다호메이 왕국의 저항에 대한 정복에서 다호메이 화승총 부대에 깨지며 한계를 마주했다.
그리고 두번째로 가장 큰 문제인 집정관의 힘이 너무 강해졌다는 점이다. 마침내 오요 제국의 전성기 막바지에 획기적인 전공을 세운 '가하'라는 인물이 집정관이 되면서 오요 제국은 정치적 혼란이 오게 된다. 그는 권력 유지를 위해 쿠데타를 벌인 이후 종신 집정관이 되었으며 만약 왕이 반항할려는 낌새가 있으면 제거했다. 선거군주제인 점을 활용하여 집권을 조금밖에 못한 왕에게 자살을 종용하고 나머지 왕가에서 다시 선거해 뽑았다. 이런 정신 나간 과정을 5번이나 했고 결국 6번째에 근왕파와 집정관파의 내전이 발생했다. 근왕파가 승리하고 가하를 제거하며 국정농단은 끝났으나 멸망할 때까지 오요 제국은 회복하지 못했다.
지배층은 반으로 나뉘어 내전을 벌인 것이었는데 당시 오요 제국의 지배층은 오요의 핵심 군사력인 오요 기병대였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혼란만이 아닌 군사력이 질적 양적 저하도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오요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군사 공백을 메꾸기 위한 화기 수용, 기병 복구와 화기 구매를 위한 정복 전쟁 및 노예 무역을 생각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집정관직 약화와 선거군주정의 무시로 전계층적으로 군사적, 지방적 분열과 약화를 초래했고 가장 큰 문제는 해결을 위한 정복 전쟁을 전부 실패했다. 다호메이 복속 전쟁은 날이 갈수록 화기를 먼저 수용한 다호메이가 유리하게 되며 다호메이 제국이 탄생했다. 그리고 누페 연방과의 전쟁도 결국 역전패 당하며 왕의 권위와 국력이 모두 실추되었다.
마지막으로 북쪽은 이슬람으로 뭉치며 건들 수 없는 세력이 되며 차마 건들 수가 없었는데 바로 그 세력이 풀라니 지하드 세력이었다. 소코토 칼리프국 중심으로 서아프리카에 지하드(풀라니 지하드)를 수행하며 마침내 서아프리카 해안을 제외한 거늬 모든 지역이 풀라니 지하드 세력이 되었다.
당시 오요 제국은 선거군주정의 무시로 왕들은 자신의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경쟁자는 자신이 왕이 되려고 내전과 암투를 하며 국가가 분열되었고 혼란함에 국민들은 점차 이슬람으로 개종하며 안식을 찾으려 했고 이에 소코토 칼리프국이 응하며 침공이 시작했다. 풀라니 지하드 세력의 공격성에 오요를 비롯한 현재 나이지리아 남부 지역의 토착 종교 세력이 연합했고 저항을 해나갔으나 결국 패배해 북방의 영토를 뺏기고 남쪽으로 천도했다.
오요 제국은 수도 도시만 남기고 명맥을 이어 오다가 영국의 서아프리카 진출 당시 수도가 폭격 당하며 항복하고 속국이 되었다. 이후 나이지리아 독립 직전까지 유지되었고 독립 이후엔 오요 주의 지방 통치자 역할은 했다. 그리고 2022년 4월 22일에 왕이 서거하며 공위가 되었는데 왕을 뽑는 오요 의회의 의견 분열과 나이지리아 내의 지방 왕위 폐지 여론이 높아 오늘날까지도 공위가 유지되고 있다.
700년 넘게 버텨온 요근래에 오요 정치체가 사라질 가능성도 충분히 높아졌다.
첫댓글 시작땅에서 변한게.. 있나?
노예 무역을 위한 해안가 한 프로빈스가 있습니다. ㅋㅋㅋ
제?국?
비록 주권국가로 존속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 혼란을 겪으면서도 700년 동안 이어왔다니 신기하네요
최근에 넷플릭스에 관련 영화도 있는거 같은데요
다호메이 왕국이 주인공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