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학교는 원래 쫌 그랬다 :
지난 주 금요일 서울대학교에서 조국 장관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인원 규모로 보아 분명 무시할 수 없는 정도의 여론이 서울대학교 재학생 사이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들의 문제의식을 존중한다. 조국 장관 후보 가족의 입시 전략은 그의 계급적 위치를 이용한 지대 추구 행위였다. 그렇지만 나는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다. "쟤들은 무엇 때문에 입시 문제에 특히나 민감할까?"
이 의문은 나의 개인적 경험에 의한다. 이번 시위에서 여론 형성에 일정 부분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아는 서울대학교 재학/졸업생 인터넷 커뮤니티 스누라이프는, 나의 경험에 따르면 예전부터 서울대학교/일반전형 순혈주의가 심한 곳이었다. 서울대학교 외 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대학원에 들어온 사람은 동문이라고 하기 어렵지 않냐는 소리를 서슴없이 했다. 쫌 심한 경우에는 학벌세탁이라는 단어까지 쓰면서 말이다. 그리고 외국인/해외학교 특별 전형이나 농어촌 특별 전형 등 일반 전형은 실력 있는 학생의 입학 정원을 제한하는 불합리한 제도라는 견해도 심심찮게 발견되고는 했다. 그런데 이들의 견해 중 높은 확률로 등장하는 발언은 "우리들은 얼마나 힘들게 입학했는데"이다.
내가 이들의 순혈주의에 위화감을 갖는 이유는 그것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힘들게 입학 안했다. <--- 대 문제성 발언
나는 6차 교육과정 중 대전의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내신점수가 충분하지 않아 정시로 입학하였다. 그러나 수능 시험 준비하면서 남들 한 번씩 흘린다는 코피 한 번 안흘렸고, 야간 자습 시간에는 졸리면 자야 집중력이 올라간다는 이유로 1시간씩은 책상에서 숙면했다. (그때 너무 한 쪽으로만 고개를 돌리고 엎드려서 지금도 반대 방향으로는 고개 돌리는 게 어색하다;;;) 그때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한 유명 학원 강사 인터넷 강의나 EBS 강의는 졸려서 쳐다보지도 않았다. 지방이니 고액 족집게 과외나 전문 입시 학원 같은 것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나는 내가 할만큼만 공부했고, 그래서 나온 수능 점수로 대학교 가려고 했다. 수능 때 점수가 서울대학교 갈만큼 좋았던 것은, 2003년 11월의 수능시험 문제가 내가 풀기 좋을 수준으로 출제된 운 때문이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 이상 자뻑 완료
나는 쉽게 입학한 때문인지 서울대학교 입학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이 없다. 순혈주의에 위화감이 드는 것은 "너희들이 서울대학교 입시에 그렇게 예민한 것은, 힘들었던 자신의 고교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 아니냐"는 의문 때문이다. 힘든 것이 없었던 나는 당연히 보상심리도 약하다는 논리이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더욱 보상심리는 보잘 것 없어졌다. 나의 커리어 상 첫 입사 때 빼고는 학교 졸업장 프리미엄을 받은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이직 시장에서 첫 직장에서의 커리어 패스가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좌절감만 맛 보았다. 서울대학교 졸업장이 신분상승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기대감은, 나에게는 있지도 않았고 실제로 체감하지도 못한 허상이다.
여기까지 개인 경험담을 주절주절 늘어놓은 것은 현재 재학생들이 촛불을 든 것이 고교시절까지의 보상심리 때문이라면, 좋지 않은 결과로 끝날 것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어서이다. 고교 때까지의 어려움에 대한 보상심리는, 그 다음에는 대학교/대학원 때 고생, 그 다음은 직장에서의 고생으로 증폭된다. 아무래도 학교와 그 다음 직장에도 "이름값"이 있으니, 고생에 대한 보상심리는 "실력에 대한 보상"으로 포장되기 쉽다. 그게 시장에서 평가되는 진짜 실력인지는 알 수 없는데도 말이다. 또한 보상심리는 있는데 내가 지금 경험하는 바처럼 그것이 연봉이나 사회적 지위로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이미 우리 사회는 학력 등으로 취득하는 소득이나 지위보다, 태어날 때 물려받는 물질적/인적 자본이 더 영향력이 큰 사회이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 보상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욕구불만은 다른 데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서울대학교 동문들이 갖는 유일한 경쟁력인 인적 네트워크의 강화로 삐져 나간다. 그것은... 조국 장관 후보가 교수 사회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저지른 과오와 동일한 실책이다.
보상심리의 촛불은 제 2, 제 3의 조국 장관 후보를 만들 뿐이다.
보상심리가 아니라 진정한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분노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면, 조국 장관 후보가 이용한 입시 편법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좀 더 본질적인 데에 대한 분노를 가졌으면 한다. 즉, "대체 그렇게까지 고교 때 고생할 필요가 있었나"에 대한 분노이다. 전술했듯 서울대학교 졸업해 봤자 극적인 신분상승은 이미 없다. 그런데도 정시, 수시, 입학사정관 제도 등등으로 복잡하고 비용 높게 입시와 교육 시스템을 유지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또한 서울대학교를 그렇게 용을 써서 들어가려는 것은, 그나마 그렇게 해야 극적이지는 않더라도 취업이라도 가능한 경제적 배경이 생길 것이라는 절박함 때문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어째서 그 고생을 해서 들어간 대학교의 기대값이 고작 삼성 그룹이어야 하는가. 기대값이 구글과 같은 글로벌 지배 기업일 수는 없는가. 또는 서울대학교 말고도 충남대학교 등과 같은 지방 국공립대학교에서도 양질의 교육과 훈련을 시켜 지방의 대기업 R&D 연구소에 취업 활로를 확대시킬 수는 없는가. 이런 보다 큰 구조적 모순에 대한 고민과 분노로 촛불을 들었으면 한다.
구조적 모순에 대한 고민을 하면 누구는 해결책으로 대학교 평준화를 들 것이고, 누구는 서울대학교와 같은 초일류 대학교를 더 크게 많이 만드는 것을 들 것이다. 그런 견해 차이는 좋다. 어느쪽으로 가든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프레임워크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당장의 입시 제도의 공정한 운영만을 바라는 폭 좁은 시야로는 현재의 기득권의 원만한 유지 외에는 바랄 수 있는 미래가 없다.
첫댓글 나는 빽이 없다.....서울대 다니는 내 아들도 빽이 없다는걸 알겠지. 그렇지만 나는 아들에게 바라건대, 너를 위해서 제발 빽 좀 만들어라.
조국 문제는 빽없는 일반 백성들의 한을 이용하려는 일본놈들의 앞잡이 자유한국당의 공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