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문학기행(4)
기행유정(紀行有情)
황광국
2016년10월29일
경남산청으로 문학기행에 나선다. 시청앞에서 아침 8시에 출발 예정 시간이기는 하지만 10여분 정도 지연 출발했다. 지금까지의 관행으로 그 정도는 애교로 봐주어도 좋을 일이다. 벗님들 속속 도착하고 조금 후에 무릉도원님이 들어와 동석을 했다. 오늘 하루의 인연이다.
여행, 기분 좋은 일에다가 또 누구와 동행을 하느냐 또한 그날의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하루의 중대한 인연이 아니던가. 지나가다가 옷깃만 스쳐도 수많은 생의 인연이 있었다는 연기緣起설이고 보면 살아가면서 여행길에 동승한다는 일이 얼마나 깊은 인연의 관계이겠는가. 또한 이 차에 동승한 문우님들 그렇지 아니하겠는가.
가을의 끝자락으로 가는 아침, 적당히 구름도 흐르고 덮지도 춥지도 않은 그런 날, 좋은 여행의 서막이 열리고 있다. 구름사이 햇빛, 노랗게 물들어 가는 가로수, 산과 들에 번져가는 채색된 가을의 아침이 지나가고 있다. 벌판에는 황금물결이 이미 반은 줄어가고 그 자리에 하얀 비닐로 말려진 사일리지(silage)가 점점이 벌판에 자리잡아가고 있다. 어느 축산 농가에 마소의 식량이 되어갈 차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산물은 농가로 돌아와 황금물결의 밑거름이 되고 고기는 농가의 식탁에서 농부의 원력으로 생산에 들어가야 하는 순환의 관계이니 이 또한 돌고 도는 인과의 관계가 아니겠는지요.
차 내에는 오색의 벗님들 이야기에 취해 지나가는 풍광에 취해 도는 사이 회장, 총무를 비롯한 주최의 멤버들이 마련한 다과와 먹을거리를 돌리는 고운 손길이 바쁘다. 교수님의 인사말처럼 하루의 기행에 보는 것도 좋고 눈으로 보는 것만큼 먹는 것도 중요하고 글쓰는 것도 중요하고 모두가 소중한 일이다.
아침에 그냥 나온지라 식사대용으로 돌아오는 떡이 기막히다. 아침을 걸러서 인가. 지금까지 먹어본 떡 중에 가장 맛이 있는 듯하다. 오늘 불가피 참석을 못한 산수유님의 다감한 인정이 빚어낸 아침이니 오늘 하루의 원력으로 기행다운 기행길이 열려갈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회장님의 취지에 교수님의 인사 그리고 산수국님의 사회로 오늘 기행의 흥을 배가 시킨다. 모두 32명의 벗님들, 앞에서부터 하나하나 자기소개와 더불어 애송시 또는 노래로 자기의 표현을 해 나가는 시간을 갖는다. 모두의 특성을 살펴서 본다. 각자 자기의 닉네임과 더불어 표현하는 시간이 그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으니 하나하나 경청하며 오늘의 인연을 만들어 간다.
의미 있는 시간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나 내가 며칠 전 카페에 올린 시 ‘세월’을 설리님이 낭송한 것은 지금까지 기행 중에 일어난 일대 사건임에 틀림없다. 의외의 이벤트가 전개되고 있었으니 그 또한 의미를 부여하는 새로운 날의 여행길 아니겠는가.
그러는 사이 산과 물을 건너 강산을 지나가고 있다. 산은 물들고 숨어가는 오솔길이 산속으로 꼬리를 감추고 중간 중간 휴게소에 잠시 들리며 가는 사이 산청 땅에 들어선다. 유유히 흐르는 남강의 갈대밭 우거진 다리를 건너 성철스님의 출가지인 성철대종사기념관에 이른다.
山淸渡水至(산청도수지) / 물을 건너 산청 땅 이르러 보니
淸淨劫外寺(청정겁외사) / 청정도량 겁외사 고요한 뜰에
白松金剛節(백송금강절) / 한그루 소나무 금강의 절조 인데
木鐸一聲惺(목탁일성성) / 청아한 목탁소리 정신을 일깨우리
무에서 왔다가 무로 돌아가야 하는 인생, 남겨진 도포자락에 스미는 향기, 그것이 수행자의 외로운 길이자 행복의 길이었으리.
스님이 가신 뒤 후학들이 선생의 뜻을 기리며 창건한 겁외사. 세월의 밖에 영구히 존재하고 있으리니 그 빛 영원하리로다.
古色非蒼然(고색비창연) / 고색이 창연함은 아니라 해도
新舊調和役(신구조화역) / 고색에 신색이 어우러짐은
自然攝理道(자연섭리도) / 자연의 도는 섭리 아니겠는가
往來歲月香(왕래세월향) / 가면오고 오면 가는 세월의 향이여
汝永劫幸願(여영겁행원) / 그대는 영겁의 행복을 그리려 하건만
刹那無永遠(찰라무영원) / 찰라 없는 영원이 어디 있으랴
劫外印寸刻(겁외인촌각) / 무한세월 찍어내는 촌각의 시간
故是瞬看懇(고시순간간) / 그러므로 이 순간을 소중히 하리
길가에 무명초 가을꽃을 피우는데 한가로이 어울리는 한쌍의 노랑나비, 다가서는 세월의 기운을 아는지 모르는지..
11:20 성철기념관을 출발하여 2009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허준이 저술한 동의보감과 그의 스승 유의태를 기리는 동의보감촌에 이르렀다.
석경의 기운 받아
흐르는 파안대소
치솟는 열정 발산하는
동방의 한 빛
사백년의 지난 세월
의성의 의선이여
편작의 화신인가
화타의 재생인가
혜성처럼 나타나서
식어갈 줄 모르는
인간애의 발로였으니
제생의세의 의로운 생애에
동의보감 물줄기는
돌고 도는 세상사에 흐르는 향기일 지어라
12:20 그 아래 식당에 들려 한우 전골에 그 지방 특유의 막걸리 한잔에 취하는 점심, 옆에는 초록별빛 아래 코스모스 피어나고 월천의 군수님 맞이하니 더 한번 취해 들어가는 점심시간, 모두를 위하여 건배하니 화애로운 시간이야 두말하여 무엇하리.
곧 다음 행선지인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남사예담촌의 탐방에 나선다. 전주의 한옥마을, 안동의 고택 등등 전통 한옥이야 전국에 분포하며 각각 그 특유의 미를 자랑하고 있으니 제일이라는 진위야 알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높은 담장에 둘러싸인 고택의 주변에 오랜 나무들, 특히나 푸른 이끼에 휘감긴 700년 된 감나무가 수많은 그 후손을 거느리고 빨갛게 익어가는 동네에 짝을 이룬 사랑의 회나무가 눈길을 끌고 있으니 걸 맞는 이름이 될 듯도 하다. 새들은 숨어서 울고 제비는 남쪽나라 찾아갔으리.
娟娟飛蓮燕(연연비연연) / 예쁜 빛 날아가는 연빛의 제비여
知知拜拜頌(지지배배송) / 알면 알수록 숙여가는 그 노래에
姿姸謙虛德(자연겸허덕) / 고운 빛 엮어가는 겸허의 덕망은
稟性知性香(품성지성향) / 품성이 엮어가는 지성의 향이려나
15:50 조선시대 퇴계선생과 함께 후학을 이끌어간 영남학파의 거두 남명 조식선생의 유적지에 들러 해설사의 이야기 들으며 시간이 기울어 가고 있다. 당시의 시대상을 반추해보는 시간이기도 하며 선생의 높은 식견으로 오늘의 난세시국을 재조명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平生學問琢磨硏(평생학문탁마연) / 한평생 학문의 길 갈고 닦아서
神明舍圖南冥意(신명사도남명의) / 남명선생 신명사도 그리는 뜻은
王道政治爲百姓(왕도정치위백성) / 백성위한 왕도정치 이루렴이니
士道輝光思無私(사도휘광사무사) / 사심 없는 선비정신 길이 빛나리
기념관 마당 나무 밑 쉼터에 자리를 펴고 오늘 하루를 장식하는 먹거리 시간을 갖는다. 특히나 제비님의 솜씨로 정성을 들인 남도 특유의 홍어회와 아이리스님이 제공한 치킨 맛에 찬탄하는 시간이 오늘 여행의 백미로 장식된다. 맥주도 한잔 함께 하는 시간이야 별미의 별 시간이다.
날이 어두워 오기 시작한다.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귀향하는 차에 오른다. 돌아오는 차내에서 아직 인사를 하지 못한 벗님들 인사에 이어 노래에 취하여 정담에 취하며 어느 사이 전주에 이르니 동반 기행의 하루가 마무리 된다.
가인(佳人)의 향기여
가연(佳緣)의 임이여
아름다운 여행길에 유정의 시간이 아니었으랴
2016년 10월 29일 월천문학기행기
첫댓글 미리내님의 기행유정을 통해 그날의 일들이 오늘처럼 생생합니다.
저는 그날에 보았습니다.
수컷의 아름다운 벼슬같은 것을요.
님들 덕분에 생에 멋진 추억을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쩌다 제가 월천에 들어가 기행 때마다 떡 담당(?)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작품에까지 언급해주시니 너무 기쁘고 행복하옵니다.
역시 받는 것보다 주는 기쁨이 백배 천배이옵니다.
앞으로도 월천에 있는 동안은 계속 드리고 싶습니다.
시조와 함께 엮어진 이 수필은 찹쌀팥 호박떡만큼이나 찰지고 달콤하고 무지 맛있습니다.
먹고 먹고 또 먹어도 맛있네요.
대리만족하고 갑니다.
미리내님의 기행유정의 끝은 어디일까?
구절양장 심산유곡 천의무봉 무릉도원을 둘러봐도 찾을 길 없는 기행유정을 어떻게 말릴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서경보다는 서정에 마음을 두신 미리내님의 월천사랑과 방연을 잇게 하고픈 심사이기에
화수분처럼 샘 솟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번 기행에서 만난 미리내님의 건강한 모습을 보며 기뻤습니다.
미리내님의 편작과 화타선생은 아마도 가인의 향기와 가연의 임을 추구하는
자신의 마음가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더욱 더 방연의 끈을 이어가시길 빕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11.07 17:50
미리내님의 글을 쭉 읽어 올라오는 동안 문학기행이 3박 4일이었나 싶었을 정도였습니다
산청군에서 혹시 전화 오지 않았던가요?
감사패 전달하겠다고요. 함께한듯 너무도 생동감이 전해집니다. 고맙습니다
미리내님의 기행수필은 보고 또 보아도 숨이 막힙니다. 숨 쉴 틈도 주지않고 박진감 넘치게 읽어내려가게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숨차 죽는 줄 알았습니다. 기행의 여정을 표현하시면서 느낌을 자세하게 기술해주셔서 기행수필은 이렇게 쓰는 거구나 를 알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