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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왕자님은 안티옥의 지배권을 접수하시는 과정에서 단 한명의 이교도들도 죽이지 않으셨다 합니다.”
“그 이교도들마저 자신의 백성들로 삼으려 하는 거겠지. 기사도적인 행동이긴 하나, 그것이 결코 쉬운 길은 아닐 것이야…”
황제는 몸을 뒤로 기댔다. 이집트는 결코 약소국이 아니었다. 또한 십자군에 대한 반발로 이슬람권 국가들이 연합해 올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레오포드는 도시 하나로 그 압박을 견뎌낼 수 있을까.
…아니. 견뎌낼 것이다. 레오포드는 스스로 왕의 길을 내딛었다. 그만한 재능과 의지는 충분하다.
“폐하, 지금 막 교황의 사절이 도착했습니다만. 들일까요?”
“음.”
교황의 사절은 성직자들을 대동한 채 황제를 알현했다.
“교황 성하로 부터의 전언입니다.
성하께서는 신성 로마 제국이 황족을 직접 파견하여 성스러운 십자군 원정을 성공으로 이끈 것에 대해 깊은 감동을 받으셨으며, 안티옥의 안정을 위한 지원금을 하사하셨습니다.
폐하의 안부를 물으시며, 점령한 이교도의 땅에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 전력을 다하길 바란다 하셨습니다.”
“…안부라. 성하께서는 안녕하신가?”
“예, 음. 그것이… 사실 얼마 전부터 기력이 많이 쇠하셨습니다.”
“그런가.… 부디 평안하시길 바란다고 전해주게나.”
1년 뒤인 1101년 여름, ‘기사도의 지도자’ 황제 하인리히 4세는 61세로 붕어(崩御)한다.
후계자였던 황태자 헨리는 하인리히에 이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된다. 잘리어 왕조의 4번째 황제로, 그의 나이 43세였다.
새 황제는 귀족 의회에 새로운 의장을 투표로 선출할 것을 지시하고, 적자(嫡子) 룩카스가 아직 어렸으므로 막내 동생인 시프리두스를 황태자로 책봉(冊封)한다.
또한 매제인 테오데리쿠스를 북이탈리아의 왕으로 임명하였으며,
동생 레오포드를 안티옥의 왕으로 임명한다.
공교롭게도 두 달 뒤에 하인리히를 따라가듯 교황이 서거(逝去)한다.
‘인색한 자’ 성(聖) 그레고리우스 7세. 본명은 힐데브란트. 북이탈리아의 소아나 출신으로, 향년 61세였다.
교황이 서거함으로써 추기경단이 소집되어 교황을 선출하게 되었다. 13명의 추기경단에서 제국출신의 ‘전도사’ 에드몬드가 다른 제국의 추기경 3명의 표와 더불어 베니스와 에스파냐 추기경의 표를 얻으면서 교황으로 선출된다.
158대 교황, ‘전도사’ 오두스 1세. 그의 나이 54세였다.
교황이 서거하고 새 교황이 선출되기까지의 짧은 기간 사이에, 밀라노군은 또다시 피렌체를 공격해온다.
“...적의 병력은 얼마나 되죠?”
“천오백 가까이 됩니다.”
“아군은 천이백. 적군 수가 약간 부족한 듯싶지만, 저의 첫 전과로는 나쁘지 않겠지요.”
피렌체의 영주는 이제 17세인, 선제(先帝)의 삼남이자 황제의 막내 동생인 황태자 시프리두스였다.
“저… 전하?! 전하께서 직접 군을 이끄실 작정이신 겁니까?”
“의원님. 저의 모친이신 태황태후께서 절 회임하셨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렵게 생각하셨다지요.”
“아…아 예. 노산이신 지라, 선제께서도 ‘둘 중 하나만 구할 수 있다면 황후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황태자 전하와 태황태후마마 모두 건강하시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시프리두스의 동문서답에 이탈리아 의회의 귀족 로다는 허둥지둥 대답했다.
“…모두가 반은 포기했던 저의 목숨, 의원님 말씀대로 전 이렇게 여기에 있습니다.”
“아니… 포기하다니요, 전하. 그것은…”
“새 시대에는 새로운 장군. 새로운 인재가 빛을 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두에 제가 있을 것이고요. 이 전투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제 이름을 빛내는 것은 바로 저 자신이어야 합니다.”
시프리두스가 몸을 돌려 로다를 바라봤다.
“도와주시겠지요, 로다 의원?”
로다는 말없이 몸을 숙였다. 이 어린 소년은 틀림없는 황제의 핏줄, 전력을 다해 섬겨야 하리.
“그럼, 전략을 구상해볼까요.”
“넵, 첩보에 의하면 적군은 그 병력구성에 원거리병과는 아예 빠져있습니다. 아마도 4년 전 제국 경기병에 당한 데에 대한 교훈이 있었겠지요. 대신 쇄갑 기사대가 5개 중대로 늘어나고, 민병대로만 구성되었던 창병들은 모두 정규군으로 교체되었습니다.
밀라노 군은 재차 피렌체를 공격해왔다
적의 병력은 확실히 전보다 강합니다. 그러나 적장은 지휘경험이 없는 이름 없는 장수인데다, 이 곳 피렌체의 제국군은 이미 한번 밀라노 군을 격파한 바 있고, 이번에도 적을 괴멸시킬 것입니다.”
“동의합니다. 적의 행군이 성 앞에서 멈출 때 우리의 공격은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처럼 무조건 돌격하지는 않습니다. 진형은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직접 구축하겠습니다.”
“존명(尊命)!”
시프리두스는 말위에 올랐다. 피렌체에서 벌어진 선제의 전투를 망루에서 바라봤을 때가 벌써 4년. 13살이었지만, 당시의 기억은 지금도 책으로 풀어쓸 수 있을 만큼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전처럼 빠른 기동력으로 승부를 보기는 어려울 테지. 적은 기사대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고는 하나…’
그가 이끄는 근위대 뒤에는 새롭게 양성된 강력한 튜턴 기사대가 전의(戰意)를 불태우고 있었다. 시프리두스가 미소를 지었다. 그에겐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성문을 열라!”
밀라노의 병력이 성루에서 포착되자 황태자는 빠른 속도로 병력을 이동시켰다. 밀라노군은 튜턴 기사대를 예의주시하며 창병을 전진배치 시킨 채로 대열을 정비했다.
그러나 제국군은 적진을 향하지 않고 성벽을 등진 채 넓게 포진했다.
“궁병대, 앞으로!”
2백 여의 농민궁병대가 전열 배치되어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다. 곧바로 날아간 화살이 적의 보병대를 꿰뚫었다. 밀라노군의 대장 만노는 한 번의 사격에 십여 명의 병사들이 나가떨어지자 기사대에 돌격을 명령했다.
여전히 장비가 열악함에도 불구
밀라노의 보병들은 난리가 났다
“놈들의 궁병대를 박살내라! 오늘의 승리는 밀라노의 것!! 기사대, 진격~!!”
크리스티폴로와는 달리 만노는 그 자신이 직접 돌격해 들어가지는 않았다. 쇄갑 기사대 2개 중대가 제국의 궁병대를 향해 돌격해왔다.
“궁병대 후퇴. 양익(兩翼)의 튜턴 기사대는 적의 쇄갑 기사대의 후미를 친다!”
나팔소리와 함께 궁병대가 일제히 후방으로 물러났다. 밀라노의 기사대는 2열의 제국 중보병대를 보고 급히 말을 멈추고 기수를 돌리려 했으나, 중보병대는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전속력으로 공격해 들어왔다. 너무 깊이 들어오거나 기수를 늦게 돌린 기사들은 제국군의 창끝에 목숨을 잃었다.
측면에서는 튜턴 기사대가 괴롭혀, 밀라노의 첫 번째 돌격은 무수한 사상자만 내고 말았다.
밀라노의 기사대가 보병대의 뒤로 물러나자 튜턴 기사대는 다시 양익으로 물러나 정렬했고, 궁병대가 또다시 앞으로 나와 화살을 날려댔다.
제국군의 보병대는 밀라노의 기사대를 박살냈다
‘물이 흐르는 듯 한 병사들의 움직임. 아무리 실전 경험과 무수한 훈련이 이루어졌다지만, 이것이 진정 17세 소년이 지휘하는 전장인가?!’
“쇄갑 기사 2중대는 사상자가 심각! 전장을 이탈합니다!!”
“대장, 보병대가 쓰러지고 있습니다! 명령을!”
“……!!”
그 17세 소년이 이끄는 제국군은 적장에게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어디, 그 잘나신 황태자님의 얼굴이나 구경하러 갈까.”
“예?”
“기사 3, 4중대는 궁병대에게 돌격하는 시늉만 해서 피해를 줄이도록 함과 동시에 적의 시선을 끈다. 5중대는 좌익의 튜턴 기사대를 견제하여 3중대의 측면을 보호하라.
나의 1중대는 적의 우익을 돌파, 그대로 뒤로 돌아들어가 놈들의 근위대를 공격하겠다. 내가 근위대를 공격하든 안하든 놈들의 후방으로 들어간다면 필시 적진의 저 대형은 흐트러진다! 그 때 전군 돌격을 명하라!!”
“알겠습니다!”
“자아 돌격!!”
밀라노군의 기사대가 일제히 앞으로 나아갔다. 차츰 속도를 붙인 기사대가 제국군을 향해 다가왔다.
“전하, 이번엔 적의 모든 기사대가 돌격해옵니다!”
“이번 돌격은 틀림없이 위장일 터. 궁병대를 다시 후방으로 이동시키되, 중보병대는 현재 위치를 고수합니다.”
농민 궁병대가 다시 중보병대의 뒤로 물러나자, 밀라노 기사대는 진격을 멈추고 물러났다. 궁병대는 보병대 너머로 지속적으로 화살을 날렸다.
“좋아, 쐐기대형으로!!”
만노의 기사대가 창과 같은 진형을 갖추며 돌격했다.
“전하, 양익의 튜턴 기사단을 향한 적은 돌아서지 않습니다!!”
“적군의 보병대가 전진하고 있습니다! 명령을!!”
시프리두스는 미소를 지었다.
“제국의 튜턴 기사단이 저 정도 기세에 밀린다면 그것은 제국군이 아닙니다!
전술적인 이치에 맞지는 않으나! 정면 돌격을 명합니다!! 보병대는 사다리꼴로 배치!!!”
밀라노의 쇄갑 기사대와 제국군 튜턴 기사대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적 보병의 전진에 맞추어 대응하듯이 제국 중보병대가 앞으로 나아갔다. 좌우 끝의 중보병대는 튜턴 기사대와 부딪힌 밀라노의 기사대를 순식간에 포위, 돌아설 틈조차 주지 않고 쓰러뜨렸다. 제국군은 가까스로 후퇴에 성공한 기사대에는 화살을 쏘았다.
“돌파하라!!!”
만노가 기세 좋게 소리 지르며 창을 내질렀다. 튜턴 기사대가 양쪽으로 갈라지는 듯 하더니 금세 창 대신 칼을 뽑아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말까지 갑주를 두른 튜턴 기사단이 거칠게 부딪혀오고 있었다. 도리어 포위당한 형세가 되어버린 밀라노의 기사대가 하나 둘 쓰러져갔다.
‘이렇게 된 이상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만노는 튜턴 기사대의 칼날을 피해 돌파하는 데에 성공, 힘차게 고삐를 당겨 기수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러나 그 순간 만노는 아연실색했다.
튜턴 기사대를 돌파하고 나온 그에게 제국 근위대가 덮쳐오고 있었다.
‘이 무슨!! 나의 계획을 꿰뚫어보았다는 것인가!!’
“과연, 일개 부장급 치곤 훌륭한 시도였다. 그러나.”
근위대를 이끄는 시프리두스가 칼을 뽑아들었다.
“제국 튜턴 기사단에 맞서 추행진(錐行陳)이라니,
이보다 더한 만용(蠻勇)은 없을 것이다!!”
다음 순간, 만노의 목이 그의 몸으로부터 떨어져나갔다.
“적장이 쓰러졌다!! 황태자 전하가 적장을 베셨다!!!”
황태자가 검을 들어 밀라노 군을 향해 뻗어,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전군, 돌격하라!!!”
4년 전 처럼, 이번에도 전황이 일방적으로 변하고 말았다. 다가오던 적의 보병대에 튜턴 기사대가 무자비하게 돌격했고, 힘조차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전우들을 본 적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줄행랑을 쳤다.
제국군은 패주하는 적들을 추격, 무수한 포로들을 잡아들였다.
저항하는 병사들은 짓밟혔고
남은 적들은 성을 뒤로 한채 도망쳤다
전투를 마치고 귀환한 황태자 앞에, 로다가 몸을 숙였다.
“첫 전투를 대승으로 이끄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걱정을 끼쳤군요, 의원님.”
“정말이지, 적장에게 직접 돌격하실 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군요.”
황태자가 투구를 벗으며 천진한 표정으로 웃었다.
“하하하, 죄송합니다. 하지만…
익숙해지셔야 할 겁니다.”
그는 말에서 내려 검을 부관에게 넘기고, 할 말을 잊은 표정의 로다를 뒤로 한 채 내성으로 향했다. 근위대장이 정문을 통과하려는 황태자에게 물었다.
“전하, 포로들의 처우는 어떻게 할까요?”
“모두 석방합니다.
밀라노 측에는 ‘각오하라’는 말을 전하도록 하세요.
또한 전투의 결과를 보고할 전령을 테오데리쿠스 전하와 황제 폐하께 띄우시길.”
말을 마친 황태자는 성 안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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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관대한 황태자
사실은 평판 때문에 -_-;
정말 글 잘쓰심 재밌어요
감사합니다
재밋네요 정말 ㅋ 이거 보러 와요 요즘
감사합니다 부지런히 쓸게요
ㅋㅋ진짜 재밌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