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부산에서도 서울에 당일치기로 갔다 와도 이상하다 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교통이 좋아졌지요.
살기도 좋아졌고... 미국에 있는 사람과 전화로 언제든지 통 할 수 있어 좋은 세상임엔 틀림 없습니다.
예전엔 서울 못 가보고 돌아가신 분들도 많았지요.
동네에서 누가 서울을 갔다 왔다하면 서울 이야기 들으려고 모여들던 때가 있었지요.
그런시기에 나는 서울로 수학여행을 간 것이 최초로 서울 땅을 밟아본 것이였습니다.
당시에는 한강을 걸어서 건넜는데, 부교를 띄우고 그 위에 철판을 깔아 차와 사람이 조심스럽게 건너다녔는데...
부교라서 차가 기우뚱거려 위험하다고 모두 내려서 차는 차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건넜습니다.
시골 촌녀석들이 서울에 오니 둔이 휘둥그레지는데... 첫째는 높은 건물과 차가 많다는 것이지요. (지금으로 보면 우수운 일...)
다음에는 밤에도 너무 환하고 차량이 다니는 소리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는 것이 아주 다른 점이였습니다.
그리고 남산으로 경복궁으로 덕수궁으로 휘몰아쳐 다녀서 무척 피곤하였구요.
당시에는 서울 인구가 130만이라고 하며 수도 대서울.... 이라고 하였는데.... 지금 용인시의 인구가 130만이라고 하니...
하여간 그 당시에는 큰 경험을 하였지요. 그리고 그때 서울에서 사 먹은 빵과 생과자가 어찌도 그리 맛이 있었던지....
그런데 지금은 서울을 이웃동네 갔다 오듯하니 세상 참 좋아졌고 편리한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 사는 우리는 참~ 행복하네요.
첫댓글 초등때 서울로 수학여행 하셨군요
대단합니다
어디에서요
실례 일까요?
저는 고향이 경기도 용인입니다.
그래서 용인에서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었습니다.
사실 가까운 거리였지만 당시에는 먹고 살기 바쁜 시대라서 여행은 끔도 못 꿀 때에
수학여행을 간 건데... 참 감사한 일이였지요. 감사합니다.
서울은 한양
왕이 사는 동네.
저는 고 2에 해당하는 나이에
서울에 여전히 전차가 다니던 시절
용산에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었고...들샘님의 부교는 없었네요.
속바람이 터져 무작정 가출 소년...
주제에 남산에 올라
서울의 지붕밑을 걱정하는 우국지사의 기개를 ...ㅉㅉㅉ
당시의 모습은 6.25전쟁이 끝나고 제대로 정리가 안 되어 있던 시절이였습니다.
창경궁도 창경원으로 동물원이 있었던 시절...
그저 까까머리 촌구석 아이들은 그냥 서울 가기만 해도 즐거웠던 그 시절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들샘님
아까 급해서 박치기한 것도 모르고 밖에 나갔어요.
부교라는 말이 참 신기합니다.
서울인구가 130만이었다고요.
들샘님
수학여행을 서울로 가는 때가 있었지요.
창경원에도 가고요.ㅎ
박치기를 했지요. 난 돌머리라서 괜찮은데 메아리님 괜찮으세요? ㅎㅎ
그리고 끝말이 이상하게 되어서 얼른 끝말을 '어'에서 '서'로고쳐 놨지요.
내 영향으로 비싼 한약까지 구입하셨다는데 이정도 배려는 해 드려야지요.
에고 ~ 가까이 계시다면 이런약초 저런약초 알려주며 전수도 해 주련만...
하여간 약초 잘만 쓰 면 무지 좋으니 좋은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옛날에
저도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서울로 갔답니다
서울역도 신기했고
남산케이블카도
창경원도.
좋았던 추억들이 생각이 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서울이 선망의 도시였지요.
그래서 수학여행도 서울로... 참 그때가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등 수학여행이면
일찍 오신거에요
저는 다 커서 왔지요
4학년때 목포에 나갔더니
2층의 병원에 외 할아버지가 입원해계셨는데
그 2층에서 내려다 보니 아슬아슬 ㅎㅎㅎ
중학교때에 제주로 수학여행갔습니다
가야호 타고...
사실 그때만 해도 서울구경 못해본 사람들이 부지기 수였습니다.
누가 서울 갔다 오면 서울 이야기 들으려고 모여들었지요.
그럴당시 한강다리도 아닌 부교를 건너 서울을 가서 전차를 타고 다녔으니... ㅎㅎ
참 옛날이야기지요. 감사합니다.
서울촌놈이라 63빌딩도 못가봤네요 ㅎㅎ
남들은 아마 곧이를 듣지 않으력고 할 겁니다. .. 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