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홧가루를 씻어줄
5월 첫째 금요일은 어린이날로 주말까지 사흘 연휴가 이어졌다. 기상 상태는 연일 비가 예보되어 바깥으로 나들이를 예정한 집은 불편을 겪을까 싶다. 새벽에 잠을 깨니 창밖은 간밤부터 내리는 비가 그치질 않고 안개 속에 강수가 계속되었다. 나는 전날 반월 습지로 나가 곡강에서 점심을 먹고 학포 수변 생태공원을 다녀온 일정을 생활 속 글로 남기고 1일 1수 시조도 남겼다.
시조 글감은 학포 생태공원의 좀씀바귀꽃이었다. 어제 학포 수변 산책로에 가득 피어난 좀씀바귀꽃의 열병을 받고 걸었던 잔영이 남았더랬다. “잘다고 좀을 붙여 그 이름 좀씀바귀 / 길가나 보도 틈새 뾰족이 싹이 돋아 / 잎줄기 불려 자라면 찬거리로 삼는다 // 여럿이 어울려서 뭉치니 세력 키워 / 가뭄에 시들다가 비 맞고 생기 찾아 / 늦은 봄, 꽃을 피우면 빛나기만 하여라”
어제 오후 함께 길을 나섰던 일행과 귀로에 소중한 찬거리를 획득한 성과도 있었다. 우리가 머물던 학포에서 가까운 초동 반월에 지기와 교류가 있는 문우 가족이 가꾸는 대규모 시설 채소단지를 방문했다. 수경으로 재배된 상추가 출하를 앞둔 즈음이었는데 밑동의 처진 잎을 따주어야 상품성을 높이는 듯했다. 일행은 각자 청정한 비닐하우스에 키우는 상춧잎을 넉넉하게 따 왔다.
우리 집에는 많은 상추가 필요하지 않아 넘치는 양의 나눔은 염려하지 않았다. 같은 아파트단지 이웃 동 꽃대감에게 보내면 되는데 친구는 마침 하동에서 1박 하는 날이라 부재중이었다. 그러함에도 많은 양의 상추는 보낼 곳이 있었다. 꽃대감과 함께 꽃밭을 가꾸는 밀양댁 안 씨 할머니에게 보내면 되기 때문이었다. 부군 손 씨 할아버지가 즐겨 드는 막걸리 안주로 좋을 듯했다.
우중이라 아침 식후 산행이나 산책은 마음을 접었다. 책상 위는 도서관에서 빌려다 둔 책이 있어 하루를 보낼 걱정은 조금도 없었다. 점심은 달포 전 수산을 둘러오면서 사 온 ‘수산국수’ 다발로 국수를 끓여 먹을까 하다가 부엌에서 손이 번거로워 마음을 거두고 무쳐둔 산나물이 있어 비빔밥을 비벼 한 끼 해결했다. 비는 오후에도 쉼 없이 꾸준히 내려 강수량이 제법 될 듯했다.
점심나절 이후 오후에도 독서삼매에 빠져들었다가 냉장고 냉동칸에서 꺼낸 시래기 껍질을 깠다. 작년에 친구의 권유로 팔순의 노인이 힘겨워 부치지 못하는 텃밭에서 내가 가꾼 무청 시래기를 삶아 냉장고에 보관해 왔다. 그 시래기뭉치를 녹여 껍질을 벗기는 일은 내가 할 몫이고 그 이후는 내 소관이 아니었다. 삶은 시래기는 껍질을 벗겨 조리하면 식감이 훨씬 부드러워 좋았다.
어제 아침 와병 중이던 고향 초등 동기가 작고했다는 부음을 접했다. 하루 내내 동기들 단체 카톡에는 저승으로 먼저 떠난 친구의 명복을 비는 문자가 연이어 올라왔다. 오늘 저녁 고향 의령으로 문상을 다녀와야 하는데 아내가 꼭 가야 하는 걸음인지 재차 물어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내는 몸이 불편해진 이후 일가친척이 아닌 문상은 웬만하면 직접 조문을 자제하길 바랐다.
양복에 받쳐 입을 와이셔츠를 다림질해 놓고 아내 눈치만 보고 있었다. 날씨가 비가 와 그렇다기보다 아내는 고인과 친분 정도로 봐 문상을 가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초등 친구이기에 문상은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아내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날이 저물 무렵이 되어 문상을 나설 이웃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넣어보려다 망설이다 조의금은 계좌 이체로 넘기고 말았다.
모처럼 하루를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서 머물렀다. 그렇다고 텔레비전을 켜거나 침대에 드러누워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비록 문상은 못 갔지만 고인이 된 고향 친구의 명복을 빌어주는 경건한 마음을 가졌다. 아마 장례식장을 찾아간 동기들은 저승으로 먼저 떠난 친구의 영정 앞에서 멍하게 넋을 놓을 테다. 우리, 부디 자신의 건강을 잘 돌봐 가족 염려를 들어주었으면 한다. 23.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