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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곧장 학교로 가면 도보로 20분 쯤 걸리는 거리지만 항상 해변가 쪽으로 돌아서
등교하는 수혼이 도착하는 시간은 거의 오차없이 6시 40분 쯤이다.
싸늘한 공기만이 내려앉은 고요한 교실 안에 들어오면 주번이 아닌 날에도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칠판을 정리하며 필과 지우개를 가지런히 준비 해 두고 책상의 열을 맞춰
정렬시켜 둔 뒤에야 자리에 앉아 대학생들도 이해하기 어려워 한다는 경영학 원서를
펴 놓고 공부에 열중하는 수혼이다.
"엄머, 수혼이 닌 모범생 유전자를 달고 태어난기가."
시계 초침 돌아가는 소리만 들려오던 적막한 교실에 울려퍼지는 하이 톤의 방정맞은
목소리와 함께 수혼에게 바나나 우유를 줬던 반장이 등장했고, 수혼은 자신의 앞에 앉아
원서를 이리 저리 살펴보면서 펄쩍펄쩍 뛰는 반장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네곤
다시 책에 집중 하려고 했으나..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자리를 뜨지 않고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반장때문에
쓰고있던 안경을 벗어 내려두곤 입을 연다.
"용건 있으시면 말씀 하십시요."
"..아이..뭐..용건이라기 보다.. 키히히. 니 어젯밤에 훤칠한 얼라랑 같이 있든데
갸도 이번에 수련회 온 학생 아이가? 수혼이 니가 헌팅을 했을 리두 없고,
혹시 전에 있던 학교 애인이라도 되는 기가?"
반장의 말에 어제 일을 떠올리며 옅게 미소를 내비추는 수혼을 넋놓고 보던 반장은
눈치 챘다는 듯 무릎을 탁 치며 일어나 또 방정을 떨어댄다.
"그래 수혼이 닌 얼굴도 이쁘고 공부도 잘하고 행실도 바르니까네
애인도 그리 훤칠하니 좋겠다 가시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은.."
"고마 됐다!! 이 가시나 부끄러워 하긴. 낄낄.. 비밀은 꼭 지켜 줄테니께
부끄러워 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며 이제 막 등교하는 학생들 사이로 총총 대며 뛰어가는 반장.
곧 반이 넘는 학생들이 교실을 메워 수혼이 애써 정리해 둔 책상을 한 대 모아놓고
이야기 꽃을 피우느냐 정신없어 보인다.
대부분의 화제는 어제 동문고등학교 학생들과 있었던 얘기들이었고, 여기 여학생들과
동문 여학생들이 물어 뜯고 싸웠다는 소리도 얼핏 들려온다.
곧 0교시 자습의 시작을 알리는 예비종이 울리고..
아직도 비어있는 주헌의 자리를 보다가 낮게 한숨을 쉬곤 MP3를 꽂고
다시 책에 집중하는 수혼이다.
"..깨우고 올 걸 그랬나."
자습시간이 되었는데도 왁자지껄한 교실 분위기는 가라앉을 줄 몰랐고,
좀 전에 담임선생님의 호출을 받고 나갔던 반장이 들어와 교탁을 두어 번 치자
그제서야 조용해 지며 모두의 시선이 반장에게로 모아진다.
"장순이, 은미, 난이, 효진이. 니덜 어제 일방적으로 엄청 깨졌담서.
그게 어째 학주 귀에까지 들어갔노. 은미 니가 말했나."
"아..아 그 서울년들이 지나가는데 하도 무시하길래 한마디 했더니 벌때처럼 때로
달려들 줄 누가 알았나. 나중에 갸네 학교 머시매덜 까지 와서 면박을 주는데 서러워서
눈물이 나데.. 울 아부지가 하도 역성내면서 묻길래 조금..
아주 일부분만 말씀드렸는데.. 와. 일이 커졌나."
얼굴 여기저기에 상처가 남은 은미라는 여학생이 울먹이며 답했고,
그에 반 전체가 술렁이며 남학생들 역시 흥분했는지 욕짓거리를 해댄다. 은미 뿐 아니라
반장의 입에서 거론된 다른 여학생들 역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효진이란 여학생은 교복이 다 찢어졌다면서 학교 체육복을 입고 등교했을 정도였다.
"나도 엄마가 계속 캐묻는 걸 괜히 일 커질까봐 간신히 둘러대느냐 욕봤다.
일년 내내 체육복 입고 등교하게 생긴걸 우짜노."
"은미 아버지이기도 하신 우리 학주쌤께서 저 쪽 책임자랑 연락을 해서 좋게 좋게
마무리를 지으셨대. 근대 성격이 아주 불같으시고 승부욕이 남다른 우리 학주쌤이
가만히 사과만 받고 끝낼 분은 아니시라는거 니덜도 2년쯤 겪어봤응께
잘 알것이여. 그제?"
"그래서? 그래서 우짜신다는데?"
앞줄에 앉아있던 남학생이 다그치듯 묻자 반장은 뭔가 비장한 표정으로 뜸을 들이다가
승부욕에 불타는 눈빛으로 천천히 입을 연다.
"오늘 우리 4교시 체육시간때 그 싸움난 반 애덜하고 친선이라는 명목 아래에
여학생들은 피구, 남학생들은 축구. 그 짝 책임자가 아마 우리 학주쌤을 단단히 화가
나게 한 모냥이니까 이 번 시합은 우리의 명예를 걸고! 우리 대명고의 명예를 걸고!
죽을 힘을 다해서!!! 오늘 지면 진짜 남은 학교생활 족친다 생각하고
똥꼬에서 불나도록 열심히 해보는거여!!
승리가 아니면 죽음 뿐인거여. 다 알아 들었제?!!""
열띤 반장의 말에 흥분의 도가니가 된 학생들은 빨리 선수를 뽑자며 서로 나서는 바람에
교실은 다시금 시장바닥을 방불케 했고, 관심없다는 듯 계속 원서에만 집중하고 있던
수혼은 3교시 후 조퇴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꽂고 있던 MP3의 볼륨을 높힌다.
수혼을 제외한 모든 학생들이 방방 뛰며 정신을 못차리고 있을 때..
두 배 만해진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들어오는 학주로 인해 모두의 시선이 반장에게서
학주에게로 옮겨졌고 학주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칠판을 쾅 내려친 후 목청껏 말한다.
"너그들의 열의를 보겠다. 이것은 전쟁이여. 이 번에 다가오는 축제를 재미나게 즐기고
싶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할 것이여. 맨날 흙바닥에서 뜀박질 하는 너그들이
그 허여멀건한 서울 촌것들이랑 붙어서 진다는 것은 정말 대명고 명패 내려야
할 일이니께.. 무슨 말인지 다 알아 듣제?!"
"예썰!!!!!"
교실이 떠나갈 듯 한 함성에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딸인 은미에게
엄지를 치켜 보이던 학주는 명단표를 잘 짜보라며 반장의 어깨를 두어번 쳐주곤
교실을 나간다.
"자. 그럼 우선 축구부터 짜자. 니네 맨날 방과 후에 축구하는 패밀리 있지 않나.
주장이 누꼬."
"김주헌이 축구는 쩔제. 그노마가 주장이긴 한데.."
"그런데?"
"..아직 등교 전이라."
힐끔 수혼의 눈치를 보며 말을 하는 성일.
반장을 얼른 주헌에게 전화해 보라고 성일을 다그치고, 성일은 주헌의 전화가
꺼져있다며 어깨를 으쓱 해보인다.
결국 주헌을 뺀 축구의 나머지 멤버가 다 결정이 나자, 출석부를 보며 여자부 경기
멤버를 물색하던 반장은 뭔가 고뇌하는 듯 하더니 무릎을 탁 친다.
"그래. 임수혼이! 임수혼이가 뭐든 만능 아이가!"
그런 반장의 말에 모두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수혼을 쳐다보았고,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책을 보던 수혼은 갑자기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들곤 이어폰을 뺀다.
"수혼아. 니 피구 나가라."
"..운동을 잘 하지 못합니다."
"운동을 못하긴.. 어제 사람을 그렇게 때려놓고."
"잉? 성일이 니 무슨 소리가. 임수혼이 사람을 때려?"
"아니.. 뭐든지 잘하니까 싸움도 잘 할 것 같다..뭐. 그런 말이지."
수혼의 시선에 고개를 돌리며 대충 얼버무리듯 대답하는 성일.
"빼지 말고 수혼아. 응? 하자? 응?"
"..정말입니다. 전에 했던 일도 어깨가 다쳐서 그만 둔 것입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경기하기엔 무리가 많습니다."
동문에서는 남자로 알려져 있는 수혼이기에 여자부 경기만큼은 꼭 피해야 했다.
이미 천씨가문을 나온지라 다른 학생들에게 성별이 밝혀지는건 상관 없었지만
도련님들이 이런 식으로 알게되는건 왠지 싫은 수혼은 꽤나 필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어필했다.
결국 완고한 수혼의 고집을 꺽지 못하겠다는 듯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던 반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운동신경은 없지만 덩치가 산만한 여학생의 이름을 리스트에 넣는다.
"다 짜긴 했는데.. 우리 반 엘리트 김주헌 임수혼이 빠져서 어째 불안불안 한게..휴우.
어쨌든. 제군들 퐈이팅입니다!!"
"퐈이팅!!!!!!"
"이기자!!!!!"
수업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어느 덧 3교시의 쉬는 시간.
모두들 체육복으로 갈아입으며 마지막 열의를 다지는 동안에도 등교 전인 주헌이
조금 궁금해지려고 할 무렵, 학교 운동장엔 이미 동문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고 수혼은 쏟아져 나가는 학생들을 쳐다보다가 조퇴서를 끊으려는 듯
일어서는데 모두가 빠져나간 교실안으로 성일이 들어온다.
"어제 주헌이 갑자기 우리 술자리 오더니 급하게 술쳐먹고 완전 꼬라져서 갔는데
너한테 안갔나."
"주헌군 아직도 연락 안됩니까."
"..엉. 폰 꺼져있어."
"저희 집에서 재웠으니 너무 걱정 마십시요. 아직 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치사하게 왜 너만 나왔냐 주헌이 깨워서 같이 나오지. 하여튼 김주헌 말대로
넌 참 정이 없다."
"정은 없어도 해장국 하나는 끝내주게 끓이는거 같으니까 이쁘게 봐 주슈."
교실 앞 문에서 낮익은 목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초췌해 보이는 사내.
술 때문인지 퀭 해진 얼굴로 부시시 웃으며 머리를 긁적인다.
"아직 술이 덜깬거냐..? 이 새끼 나사 빠진 거 처럼 왜 이래 징그럽게."
성일의 말대로 약간 정신이 풀린 것 같은 표정으로 저벅저벅 수혼과 성일의 앞까지
다가온 주헌은 수혼을 내려다본다. 할 말 있냐는 듯 자신을 올려다 보는 수혼을
계속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또 베시시 웃어버리는 주헌을 미친 놈 취급하며
손가락으로 귀 주위를 빙빙 돌리는 제스쳐를 취해 보이더니 빨리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라는 말과 함께 먼저 나가버리는 성일.
덕분에 교실엔 주헌과 수혼. 둘 뿐이다.
"솔직히 말하슈."
"무엇을 말입니까."
"..국 끓일 때.. 약 같은 거 탔지?"
말도 안되는 질문을 진지하게 물어오는 주헌이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가볍게 무시하며
가방을 챙기는 수혼.
"안탔단 말이야..?"
"옷 갈아입고 나가 보십시요. 축구 선수 명단에 넣어달라고 하면 경기 뛰실 수 있으실
겁니다."
"으흠..이상한데.."
계속 중얼거리며 체육복으로 갈아입으려는 건지 교복 단추를 푸르는 주헌.
그러다가 수혼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곤 다시 옷을 여민다.
"뭘 보고 서있어 이기지배가!! 와 웃긴다 너!!"
"..제 앞 길을 막아서서 옷을 갈아입는 주헌군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엉?..와..와..!! 어이가 없네 어이가. 국에는 웃음이 나는 약을 타지 않나,
이제는 생사람 까지 잡고!!!"
주헌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픽 웃어버리는 수혼. 그에 주헌은 수혼에게
삿대질 까지 하며 열을 올린다.
"거봐 거봐! 너도 오늘 아침에 그 해장국 먹었지? 너 같이 웃음 비싼 기지배가
이렇게 픽픽 웃는거 봐라. 분명 그 국에 웃음이 나는 약을.. 어.. 그러고 보니..
넌 어디가슈? 아까 들어오다가 반장한테 대충 들었는데 수련회 온 학교랑
체육대회 하는 거라든데.. 너 거기 아는 사람도 많잖아. 안보고 어디가."
"..아직은 마주칠 때가 아니니 잠시 물러나는 것입니다.
어제 주헌군도 보셔서 아시겠지만 상황이 그렇습니다."
"...너 도망쳐 온거야 여기로?"
책상에 걸터 앉아 수혼을 쳐다보며 묻는 주헌.
창 밖으로는 양 쪽으로 갈라져서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은 학생들과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 축구 유니폼을 입은 남학생들이 보인다.
수혼은 창 밖 풍경만 빤히 바라보다가 휘슬을 목에 걸고 있는 계윤을 어렴풋이
확인하곤 뒤돌아 선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답이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뭐..뭐라는거여.. 그러니까 아닌게 아니라는거유? 아니면..
아 뭔 말을 이리 어렵게 해 고목고목한 기지배가!"
"좋은 경기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하곤 가방을 들고 교실문 쪽으로 걸음하는 수혼을 빤히 쳐다보던 주헌은
순식간에 우당탕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수혼의 앞을 막아선다.
"그..그니까..음...그니까.."
"말씀 하십시요."
"..저...어..어! 야 너 오늘 왜 나 안깨우고 너만 왔냐! 치사하게!"
"6시에 깨우면 일어나실 수 있으셨습니까."
"..아..그건 아니지만... 그..그럼! 왜 국에다가 약을 탔냐!"
"..용건 없으시면 비켜 주십시요. 곧 경기가 시작되니 주헌군은 서두르시는게
좋을 것입니다."
수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밖에서 주헌을 찾는 반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에 시선을 돌렸던 주헌은 자신의 옆으로 비켜 지나가려는 수혼의 앞을 다시 막는다.
뭐냐는 듯 자신을 올려다보는 수혼을 보며 어느새 귀까지 빨개진 주헌은 수혼의
양 어깨를 꽉 잡곤 쏟아내듯이 말한다.
"내 경기 보고가슈."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진심으로 말하는 주헌의 말이 '권유'가 아니라 '부탁'으로
와 닿아서인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보이던 수혼은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을
기다리는 주헌을 향해 입을 연다.
"어깨 좀 놔 주시겠습니까. 아픕니다."
"어..어? 어..엉."
당황한 듯 재빨리 손을 때곤 옷에 쓱쓱 문지르며 또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을 짓는 주헌.
수혼은 그런 주혼을 지나쳐 나가고 주헌은 풀이 죽은듯 그런 수혼의 뒷모습만 쳐다본다.
"보고 가겠습니다. 어서 갈아입고 나오세요."
"진짜?!! 아.. 야!! 누가 좋아서 이러는 줄 아냐?!! 너야 말로 영광인 줄 알아!!
푸하하하!! 이 오빠보고 뿅 가지나 말아라!!"
그렇게 말하며 금새 들뜬 목소리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옷을 갈아입고는
먼저 걸어가고 있는 수혼의 머리를 꾹 누르곤 앞서 뛰어가는 주헌.
"오빠 골 넣으면 특별히 너한테 세레머니 날려줄테니까 잘 보이는 곳에 있으슈!!"
"..풋."
정말 순수한 시골소년같은 주헌의 모습에 웃음이 나온 수혼은 주헌이 누르고 간 머리를
정돈하곤 사람들과 동떨어진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는다.
곧 남자부 축구경기가 시작되려는지 학교 대양별로 줄을 서서 선수확인과
경기 절차를 거치는 듯 보였고, 동문에 출전한 선수 중에 아는 얼굴은
희안의 친구인 수권 뿐인듯 했다.
곧 계윤의 휘슬이 울리고,
두리번 거리며 뭔가를 찾는 듯 보이던 주헌은 이내 수혼을 발견했는지 씨익 웃고는
공을 몰아간다.
"저기.. 수혼이 오빠 맞죠..?"
양 쪽 학교의 응원 또한 치열한 가운데 묵묵히 심판을 보는 계윤과 열심히 뛰고 있는
주헌을 바라보고 있는 수혼에게 다가와 말을 붙이는 두 명의 동문 여학생.
애뗘 보이는 얼굴이 1학년인 듯 했다.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여 가볍게 인사를 하는 수혼을 보며 손뼉까지 쳐가며 좋아라 하는
여학생들을 멀리서 지켜보던 반장은 두 팔을 걷어 붙이고 성큼성큼 다가온다.
"니들 뭔데 우리 임수혼이한테 와서 이러노. 너들 학교는 저짝이거든? 확! 안가나!!"
"..엄마...뭐야 이 여자.."
"뭐라? 이 여자? 이 쪼꼬만 가시네들이!"
멀리서도 크게 들렸는지 반장의 목소리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주목되었고,
수혼은 일이 더 커지면 큰일이겠다 싶어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꿀밤을 먹이려는 듯
주먹 쥔 손을 올리는 반장의 팔을 잡는다.
"..그만 두십시요. 지켜보는 눈이 많습니다. 명목상이라도 친목을 위한 자리인데
서로 심기불편한 일은 만들지 않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와...역시...멋져"
그런 수혼을 황홀한 눈으로 쳐다보는 동문 여학생들과 달리 울듯한 눈으로
씩씩거리던 반장은 안그래도 큰 목소리를 목청껏 높힌다.
"니..니 임수혼이 니.. 니 지금 저 기지배들 편 드는기가!!!
아무리 니 애인이 저 학교에 있어도 이러믄 나 서운하지!!! 와 임수혼이 진짜 니!!"
"애..인? 오빠 여자친구 생겼어요..?"
"힝...몰라.."
골치 아프게 됐다는 듯 눈을 감곤 반장의 팔을 놓아주는 수혼.
반장은 벙 쪄서는 찡찡거리고 있는 동문 여학생들과 수혼을 번갈아 본다.
"오빠..? 여자친구..? 뭔소리가 이게. 수혼이 니 여ㅈ...으븝..! 뭐꼬!!"
언제부터 지켜보고 있었는지 갑자기 뛰어나온 희안이 반장의 입을 탁 막고는
가쁜 숨을 내쉬자 반장은 뭐냐는 듯 희안을 탁 쳐내곤 또 한바탕 할 생각인지 휙 하니
희안을 올려다보더니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에 홍조까지 띄우며
순한 양이 되어버린다.
"아니..저기요.. 마음에 들면 마음에 든다고 말씀을 하시지 참.. 서울 양반들은
성미도 이리 급하셔가꼬..호호호.. 근대 수혼이 니 여ㅈ..으븝..!..아이 참.
말 좀 합시더 말 좀..호호.."
"..희안군."
"이 누님이랑 산책 좀 하다 올께요!"
그렇게 말하며 윙크와 함께 씨익 웃어보이곤 반장을 거의 끌다시피 하며 학교건물
뒤로 사라지는 희안.
수혼은 그런 희안과 반장의 뒷모습이 사라질때까지 쳐다보다가 픽 웃는다.
왠지 이 상황이 불안하면서도 웃겼던지 뒤 돌아서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계속 웃음을 터뜨리는 수혼을 보며 두 여학생은 곧 쓰러지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꺅꺅 거리다가 다시 걸어오는 다른 그림자에 아쉽다는 듯 응원석으로 사라진다.
"..변했네."
뒤에서 들려오는 낮익은 목소리에 웃음을 멈추곤 동작까지 멈춰버리는 수혼.
그러다가 천천히 뒤 돌아서서 어느새 휘슬을 교관에게 넘겨주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계윤을 보곤 고개를 숙여 예의를 갖춘다.
"..안변한건가."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안녕의 범위가 어디까진가. 건강? 기분?"
구경 나온 선생님들 때문에 담배 대신 막대기가 긴 사탕을 입에 물고 서서
건조하게 수혼을 내려다 보는 계윤을 쳐다보는 수혼.
"후자 쪽이라면 물을 이유도 대답할 가치도 없을 것 같고."
"..죄송합니다."
"만나자마자 하는 말이 안녕하십니까랑 죄송합니다 인거 보니까 임수혼 맞네."
"....."
"그 동안 죄송하단 말 못하고 어떻게 살았나."
"..도련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다음에는 회장님을 잘 계십니까..일테고."
"..죄송합.."
또 고개를 숙이려는 수혼의 얼굴을 잡고 자신의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을 수혼의 입에
물려주는 계윤의 행동에 말이 막힌 수혼은 어느새 등 돌리고 원래 위치로 돌아가려는 듯
걸어 나가는 계윤을 쳐다본다.
그리고 그 사이 동문이 골을 넣었는지 동문쪽 학생들은 팔짝팔짝 뛰며 환호성을
질러댔고 대명고 학생들은 그런 동문학생들을 향해 야유를 보내며 욕짓거리를 해댄다.
"야 김주헌!! 너 정신 안차려?!! 어딜 보는거여 시합중에!!"
"미칫나 니!! 그 좋은 찬스에 역전을 당하나!!!"
아마 결정적인 순간에 한 눈을 판 주헌이 실점의 원인인 듯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뭔가 굉장히 불만이라는 듯 흙바닥을 툭툭 차며 미동없이 서 있는
수혼을 노려보며 씩씩거리는 주헌.
"..뭔 놈의 기지배가 아는 남자가 저리 많아. 흥. 고목고목한게.. 아..아!! 깜짝이야!!
어떤 심판이 그리 호루라기를 쌔게 불어!! 무시하냐! 한 번 해보자는거여 뭐여!!"
"김주헌이!! 니 똑바로 안하나!!!!! 내가 니만 지켜보고 있을끼라!!!"
저 멀리서 우렁차게 소리치는 학주의 외침에 그제야 수혼에게서 시선을 떼곤
다시 경기에 임하는 주헌이다.
첫댓글 계윤.... 글감사합니다. 두편이나 ㅎ 행복한 일욜입니다.
잼잇게잘읽엇습니다~ㅋ수혼이는돌아갈까요??
발라드님, 뚱땡이님 감사합니다! ㅎㅎㅎㅎ 기대 저버리지 않는 초발광츄리닝 되도록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ㅎㅎㅎ
...주헌이 심란하겠어요! 하... 다음 내용이 궁금하네요~ㅎㅎㅎ
심쿵할만한 장면들이 수두룩하네요> _<기분좋게 읽고 다음편으로 고고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