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사람을 기약없이 기다린다는 것, 그것은 하루만으로도 지나치게
긴 삶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영원까진 아니더라도 그것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바로 직전까지의
삶만큼의 공간을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진정으로 그리운 사람을 기다려본 적이 있는가?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엔 모든 정신과 모든 행동은 자신의
깊은 심연 속에서 움직여간다. 그것은 자신도 인식할 수 없는 심연속의
움직임인 것이다.
그로인해 그 시간은 완전한 유이자 완전한 무이기도 한 것이다.
그 시간은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있기 전까지의 그것 자체이며,
마침내 그리운 사람과의 해후 끝에는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코 그 시간의 구체적 움직임을 기억해낼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구토를 하고나니 몸도 기분도 한결 개운해졌다.
예산에서는 화창했던 하늘이 서울에 도착하니 잔뜩 찌푸린 채 금세라도
비를 퍼부을 듯 싶었다. 터미널을 나서려하자 굵은 빗방울이 한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터미널 주변의 피서객들로부터 불안정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나 일말의 기대가 사라졌다는 듯한
동요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구름의 끄트머리에 다다르면 사람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서울이란 그저 작은 곳일 뿐이고,
자신들의 시야 또한 그리 신통친 않았다는 것을.
나는 전철을 타고 의정부에 도착했다.
집으로 가기위핸 신설역에서 내려야했으나 3호선을 타고가다 1호선으로 환승한 종로3가서부턴 곯아 떨어졌다.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1호선 전철과 경원선 기차가 들고 나는 것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의정부역의 2층 역사 창가에 서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들리는 거라곤 오직 빗소리였던가? 맑은 날이면 귀청 떨어질
듯 역을 관통하던 기차와 전철과 자동차들의 경적소리도 역내의
비명같던 사람들의 소음도 모두 빗소리에 녹아버렸던가?
그런데 그건 빗소리가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건 비가 내는 소리였던 거
였다. 비가 역사지붕에 떨어지는 소리, 전차와 기차와 자동차와 도로위로
떨어지는 소리,우산없는 사람들의 머리위로, 얼굴 위로, 어깨위로, 구두
위로,우산 받친 사람들의 우산 위로, 내 눈과 귀와 가슴으로 떨어지는
소리였던 거였다. 어쩌면 비에겐 아무 소리도 없는 걸꺼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화부스 앞에 줄을 섰다.
의정부역 앞 광장으로 제광이 낡은 자주색 베스타를 끌고 나왔다.
둘둘말아 원기둥처럼 된 가죽뭉치가 조수석까지 비집고 들어와 있는
바람에 난 차안에서 허리를 약간 수그리고 앉아야했다.
제광은 내 불편한 자세를 보곤 엉덩이를 앞으로 좀 빼서 가죽뭉치
마구리에 머리를 기대라고 했다. 자세는 전보다 편해졌지만 차가 요동을
칠 때마다 가죽뭉치 마구리에 뒷통수가 부딪치는 바람에 차를 타고 가는 내내 고생을 했다.
제광은 점심을 먹은 후에 좀 느긋하게 쉬다가 영업을 나오려 했는데
나때문에 파이가 됐다고 했다. 제광은 언제나 부정적인 일에 대해 표현
하는 단어로 파이를 써왔다. 언젠가 그 이유가 무어냐 물었었지만
그로서도 알고 있진 않은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제광을 비롯해 제광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가 파이라고
하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으니 상관없는 일이다 생각했다.
우리는 제광이 자주 간다는 식당에서 보신탕을 먹었다.
제광은 비질비질 땀이 흐르는 얼굴을 들고는, 마침 오늘 돈이 좀 들어오니 저녁엔 좋은 데로 가 술한잔 하자고 말하면서 돈이 생기는 날은
꼭 쓸일도 같이 생겨 돈을 못모은다면서 다시한번 파이란 말을 꺼냈다.
제광은 게걸스럽게 보여질 정도로 열심히 먹었다. 그가 어떤 음식이든
사력을 다해 먹는 것처럼 보이는건 그의 기분이 굉장히 좋은 상태란걸
난 알고 있었다. 사실 난 제광이 염천교 일대로 영업을 나가기 전에
동두천에 있는 그의 집으로 먼저 태워달라 할 심산이었지만 제광의 좋은 기분을 망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염천교의 가죽제품을 취급하는 상가 단지로 갔다.
첫번째로 들어간 상점에서 제광은 20분쯤 있다 나오더니 다됐으니까
차안에서 5분정도만 기다리라고 말하곤 차 뒷문을 열어 내 뒷통수를
틈틈히 때리던 가죽뭉치를 첫번째로 짊어져 내갔다.
제광은 상점의 문앞에서 상점을 향해 큰소리로, 가만있지말고 빨리 내려
놓고 가게 물건좀 같이 나르라고 성화를 했다.
제광을 따라 상점의 젊은 점원 하나가 어기적어기적 걸어나오는게
보였다.
나는 차에서 내려 가죽 몇뭉치를 같이 날랐다. 별로 무겁지도 않았고
두 셋이서 나르면 5분도 안걸릴 일이었다.
차에타서 시동을 건 제광은,왜 네가 그걸 나르냐며 못마땅해했다.
제광은 자기가 혼자해도 되는 거지만 그곳사람들 하는 짓이 하도
야박해서 일부러 그랬다고 말했다.
우리는 다음 상점에다 남아있던 가죽뭉치를 다 내리고 동두천으로
향했다.제광은 덕정을 조금 지나 자동차 검사소 앞에 차를 세우고,별일 없으면 퇴근하겠다고 회사에 전화를 했다.
제광의 집에 도착했을 땐 오후 5시였다.
동두천 시내 한 귀퉁이,주택가에 있는 반지하인 제광의 집은 지난 겨울에 왔을 때처럼 어수선하고 지저분 했다. 보온밥통의 얼마 안남은 밥은 푸르스름한 곰팡이가 슨 채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나는 돼지우리에서 잘 순 없다고 말하고 제광과 함께 아주 오래전 부터
개수통에 들어있었음이 분명한 그릇들을 설겆이하고 집안 곳곳을 말끔히
청소했다.
난 제광에게 우리보단 집에서 지내는게 그에게도 나쁠건 없을거라고
농담을 던졌다.
샤워를 마치고 나니 제광이 맥주를 몇병 사왔다.
나는 제광의 옷을 빌려 입고 내옷을 세탁기에 넣어 돌렸다.
우리는 맥주 두병을 따서 마셨다. 나는 제광에게 밥도 안지어 먹고
청소도 안하는 곳을 집이라고 할 순 없다고 말했다.
제광은 왜그러냐고 따지듯 물었지만 난 대답하지 않았다. 집이 집다워
지려면 음식과 청소외에도 수도 없이 많은 것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었
다. 난 그것들을 일일이 다 말할 수도 없었고 사실 잘 알지도 못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