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다산 정약용은 신유사옥으로 집안은 폐족이되고, 멀리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귀양 8년만에 16세에 헤어진 둘째 학유가 다산초당을 찾았다? 부자는 짧은 기간 동안 속정을 나누었다? 얼마 후에 아들은 떠나야했다. 다산은 무척 아쉬웠다. 어지러운 정치 현실은 앞으로 또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다산은 아들에게 노자 대신 가훈을 담은 편지♥를 꼭 쥐여주었다.
"아침에 햇볕이 먼저 든 곳은 저녁에 그늘이 먼저 들며, 일찍 핀 꽃은 먼저 시든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돌고 돌아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뜻을 품고 세상을 사는 사람은 잠시 재난을 당했다고 청운의 뜻을 꺾어서는 안 된다. 사나이의 가슴속에는 항상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는 기상♥을 지녀야 한다."
고난과 영광은 돌고 도는 것이니 아무리 힘든 고난을 당하더라도 쉽게 좌절하지말고 불굴의 의지♥를 지니라는 가르침이었다. 그러면 불행의 수레바퀴는 다시 돌아 반드시 청운에 오를날이 있으리라는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