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별이 되어
오월 초순 입하 절기를 맞았다. 그제 저녁부터 시작한 비가 사흘째 아침도 그치질 않고 계속되었다. 누적 강수량이 여름 장마철에 버금갈 정도지 싶다. 어제는 밖으로 나가볼 생각은 아예 않고 집안에서 머물며 독서와 안식의 시간을 가졌다. 비가 계속되는 토요일 아침나절은 도서관에서 빌려다 둔 책을 펼침이 유일한 낙이었다. 점심은 손수 국수를 끓여 비 오는 날의 특식을 먹었다.
마음만 먹으면 국수 정도는 간편식으로 한 끼 쉽게 때울 수 있다. 이번에 끓여 먹은 국수는 알려진 제원이다. 근동에서 국수 다발은 ‘구포국수’와 ‘수산국수’ 브랜드가 유명하다. 구포국수는 그곳 시장에 국숫집이 있어도 합천 가회 모산재 아래 국수 다발을 만드는 공장을 봤다. 수산국수 다발은 밀양 하남읍 수산 현지에서 만드는데 인기리에 팔려 줄을 서 기다려야 살 정도다.
지난겨울 이른 아침 강변 트레킹을 나서 본포교를 건너 반월 습지에서 곡강을 둘러 곰탕집에서 점심을 들고 수산을 지났다. 수산에는 국수 다발 만드는 공장이 두 군데인데 시장통이 더 알려졌고 다리목 가게는 유명세가 낮은 편이다. 그러나 접근성은 다리목 가게가 편리해 나는 수산교를 건너기 전 국수 다발을 세 개 샀더랬다. 두 개는 같은 아파트단지 꽃대감과 지인이게 보냈다.
비가 오는 날을 틈타 점심 특식으로 국수를 끓여 먹으려 벼른 셈이다. 아내는 국수를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손수 끓여 먹음이 당연했다. 아침나절 펼쳐 읽던 고전연구가 조윤제의 ‘하루 한 장 고전수업’을 덮고 주방으로 가 멸치 맛국물을 내어놓고 끓는 물에 국수 면을 넣어 삶았다. 맛국물엔 달걀과 풋고추가 들었고 고명으로는 산나물 무침과 당근 볶음을 살짝 얹었다.
이른 점심을 먹고 오후는 비가 와도 우산을 받쳐 쓰고 창원천 천변으로 산책을 나설까 싶었다. 그런데 그즈음 휴대폰에 문자와 함께 착신음이 울려 받으니 작년 여름 퇴직 후 의령 가례로 귀촌한 친구가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왔다. 울산에서 부부 교사로 출발해 교장으로 재직하다 암 투병 중인 아내 병간을 위해 연전 명예퇴직한 대학 동기가 있었는데, 그 친구 아내 부음이었다.
엊그제 고향의 초등 동기가 병고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 오늘 발인한 날이다. 간밤 세차게 내린 빗길을 뚫고 남녀 동기생이 그 친구 문상을 갔는데 나는 동행 여건이 되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다. 이튿날이 되니 대학 동기 아내 부음을 접했다. 우리는 청년기 대학에서 만나 평생 교직을 수행했던 여덟 명은 40년 지기로 매년 여름과 겨울 방학이면 부부가 동반해 하룻밤을 보냈다.
이번 울산 친구 부인상은 먼 길이라도 조문을 가야 할 형편이었다. 의령으로 귀촌한 친구는 처와 함께 우리 집 앞으로 차를 몰아왔다. 나는 아내가 동행할 처지가 못 되어 혼자 합류해 시내를 벗어나 빗속 도로를 달렸다. 친구가 몰아간 차는 울산 남구 한 장례식당에 닿았다. 아내를 먼저 보낸 대학 동기를 만나니 서로 망연자실했다. 저승길로 보내기엔 아직 이른 나이지 않은가.
나는 보름 전 경기 가평 숲에서 요양하는 아내를 간병하는 친구와 통화를 나눈 적 있었다. 치유의 숲에서 3년째 머물렀는데 목소리는 기운이 빠져 있어 예후가 좋지 않음은 짐작되어도 힘을 내자면서 통화를 마쳤다. 가족 가운데 병자가 있으면 마당의 그림자가 더 어두워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아내를 먼저 보낸 친구는 산청에 사는 모친도 부양해야 할 장남으로 어깨가 무거웠다.
고인이 된 친구 아내는 임종을 앞두고 기독교 세례를 받아 목사와 교우들이 와 영혼을 달래주는 의식을 진행했다. 국화 꽃송이가 장식된 빈소 영정 사진의 고인은 환하게 웃는 모습이라 더 가슴이 아려왔다. 40여 년 전 같은 대학 캠퍼스에서 보냈던 고인은 동기와 인연을 맺었고 교단 동료가 되어 여름과 겨울 방학이면 얼굴을 봐왔더랬다. 이제, 밤하늘 별이 되어 지켜봐 주게나. 23.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