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내연산 덕골을 오른다. 정비된 등산로나 이정표는 없다. 가는 곳이 길이다.
-
막다른 벽이다. 닫힌 의미의 벽이 아니다. 통로 같은 벽. 이끼로 수놓은 바위벽이 협곡을 이루고, 투명한 물이 흐르는 골 바닥은 붉은빛이다. 양쪽을 절벽이 막고 있어 큰 비가 오면 위험하지만, 지금 이 협곡은 매혹적이다.
골동품 같은 바위벽이 일정한 흐 름으로 벽을 이루었고, 이끼와 나무가 벽의 삭막함을 메워 하나의 작품 같은 협곡을 만들었다. 정비된 길이나 등산로가 없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건 사람의 발이 아닌 골짜기에 사로잡힌 산꾼의 마음이었다. 사람 발길이 닿은 적 없는 것 같은 원시계곡은 사람 마음을 협곡 속에 가둬놓았고, 골에 갇힌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꽁꽁 묶여 행복했다.
홀린 듯 따라간 협곡의 끝은 막다른 벽이었다. 막다른 벽 왼쪽에 푸른 소가 있고 그 안에 쌍폭이 흘렀다. 숨겨진 쌍폭, 막다른 벽에 닿은 후에야 드러나는 숨은 폭포가 있었다. 폭포에서 시원한 바람이 흘러나왔다. 막다른 벽이지만 쌍폭이 풀어놓은 짙푸른 물속으로 들어가면 딴 세상이 나올 것만 같다. 막힌 협곡은 단절의 의미가 아닌 신비로운 통로였다.
산꾼의 정신을 빼는 덕골의 신비로운 맹공격
‘덕골’은 흔하디흔한 시골 골짜기 이름, 별다른 기대 없이 오른 계곡은 묘했다. 5.5km의 짧지 않은 계곡이지만 재미난 소설을 읽듯 강한 흡입력으로 산꾼들을 빨아들였다. 중부지방에선 폭우가 한창인데 포항은 36℃에 이르는 무더위다.
하옥계곡 캠핑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덕골로 든다. 포항 트랭글산행클럽의 송경조, 최국헌, 박정원씨와 김시우(한국산악회 영서지부), 이장미(서울과학기술대 재학)씨가 일렬로 오른다.
-
- ▲ 향로봉에서 꽃밭등으로 내려서는 길의 바위 전망대. 내연산은 숲이 짙어 열린 경치가 드물다.
-
- ▲ 내연산 삼지봉 정상. 숲으로 둘러싸인 헬기장이며, 귀퉁이에 밥 먹기 좋은 그늘이 있다.
-
알려지지 않은 원시계곡답게 정비된 등산로나 이정표는 없다. 가끔씩 보이는 표지기를 따르기도 하지만 원칙은 골짜기를 따라가는 것이다. 송경조씨는 기막힌 타이밍에 왔다고 한다. 평상시의 덕골은 물의 양이 적은 편인데 며칠 전 폭우로 장관이라는 것이다.
깊지는 않지만 등산화가 젖지 않으려면 징검다리를 내내 오가야 한다. 골 한 굽이 돌 때마다 펼쳐지는 수려한 모습에 계곡 뜀박질은 오히려 신이 난다. 평범한 골짜기는 협곡이 나타나며 확 바뀐다. 석수장이가 층층이 깎은 것 같은 섬세한 암반이 양쪽 벽과 발아래를 메웠다.
막다른 협곡에서 쌍폭을 구경하고 30m를 되돌아가 우회길로 올라선다. 폭포는 협곡 마지막에 있다 해서 ‘막창폭포’다. 약간 위태로운 우회로엔 어느 등산인이 임시로 고정로프를 묶어 놓는 덕을 베풀었다.
갈림길이다. 표지기는 왼쪽 산등성이로 난 길에 있지만 오른쪽으로 간다. 덕골의 매력은 계곡을 오르는 데 있다. 좌우 계곡 넘나들기를 수차례, 최국헌씨가 기자를 멈춰 세운다. 파릇파릇 예쁘장한 초록의 이끼가 바위벽을 채웠고, 물이 흘러내려 작은 이끼폭포를 완성했다. 실로 비현실적인 장면에 말문이 막힌다. 카메라로 표현할 수 없는 섬세한 솜씨는 과히 신선의 정원이라 할 만하다.
덕골의 맹공격이다. 기막힌 폭포가 연속으로 나타나 산꾼이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만든다. 층층이 결을 이룬 섬세한 계단 모양의 와폭이다. 마음 같아선 옷을 홀라당 벗고 폭포에서 알탕을 하고 싶다. 와폭을 지나 골 왼쪽 기슭을 지나는데, 송경조씨가 멈춰 세운다. 지상파 방송에서도 소개되었던 황금샘이 여기 있다고 한다.
-
- ▲ 월사동계곡과 먹방골이 만나는 합수점. 멋들어진 바위벽과 한나절 놀다 가고픈 맑은 물이 있다.
-
계곡 측벽 바위틈으로 물이 나오는 금샘은 지금 골에 수량이 많아 샘이 물속에 있다. 손을 갖다 대면 물이 나오는 걸 느낄 수 있다. 바위틈이 붉은 것은 물에 철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철 물이 나오는데 여름엔 시원한 물이, 겨울엔 따뜻한 물이 나온다고 한다.
별도의 안내판이나 표시가 없어 현지 산꾼과 동행하지 않고선 발견할 수 없는 샘이다. 전체적으로 계곡 바닥의 암반이 붉은빛을 띠는 건 철분 성분이 바닥에 쌓였기 때문인 듯하다.
물 없는 건천이다. 바위가 많은 걸로 보아 속으로 물이 흐른다는 걸 알 수 있다. 바위로 가득한 건천을 1km 오르자 다시 물이 흐른다. 상류지만 수량이 적지 않다. 계곡을 막아선 높은 벽은 삼단실폭포다. 정면의 폭포는 높이에서 힘이 넘치고 오른쪽은 이끼가 빼곡해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덕골의 두 번째 맹공격이다. 폭포를 우회하는 길이 위태롭다. 마침 균형을 잡을 수 있게 손잡이 역할을 하는 나무가 있어 다행이다. 넘어서기 위험한 지점이다. 한편으론 스릴 있고 한편으론 위험한 클라이밍 구간이 연이어 나온다. 약간 고도감 있는 벼랑을 젖은 바위를 딛고 넘어야 하기에 너나없이 발길이 조심스럽다.
산행을 시작한 지 세 시간이 넘었지만 여전히 능선에 닿지 못했다. 닦인 등산로가 없고 셀 수 없이 계곡을 건너뛰고 바위를 넘은 탓이다. 능선에 닿자 휴식 같은 풀이 가득하다. 능선부터는 길이 뚜렷해 고속도로다. ‘고 권오강 여기서 잠들다’라고 새긴 나무기둥은 2006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여기서 심장마비로 눈 감은 포철공고 산악회원을 기리는 것이다.
-
- ▲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미녀를 닮은 덕골. 다른 세상으로 연결될 것만 같은 묘한 아름다움을 품었다.
-
- ▲ 월사동계곡에서 하옥리계곡으로 이어진 하산길. 사람들이 다닌 희미한 흔적이 있다.
-
은밀한 연장전, 월사동계곡
삼지봉 정상에 닿자 속이 시원하다. 뚫린 경치는 없지만 너른 헬기장이다. 포항시에서 지난 3월 세운 새 표지석이 있다. 이젠 능선에 몸을 던져야 한다. 여기서부터 향로봉까지 오르막이 산꾼의 체력을 시험한다.
향로봉 정상에선 바다 쪽으로 트여 있어 처음으로 시원한 경치를 맛본다. 정상 구석엔 초라한 돌탑이 있는데 어느 포항 산꾼이 전국의 산을 다니며 돌을 하나씩 주워 와 쌓은 나름 귀한 탑이라고 한다.
이젠 내리막의 연속이다. 신갈나무와 굴참나무가 빼곡해 볕이 들지 않아 좋지만 36℃ 무더위는 끝없이 땀을 흘리게 만든다. 벼랑 끝 바위는 타고난 전망대다. 트인 경치가 워낙 귀한 산이기에 다들 올라가 먼 곳을 바라본다. 아득히 펼쳐진 산줄기의 흐름이 둥글둥글한 것이 우아하고 착하다.
덕골이 전반전이고, 능선이 후반전이라면 월사동계곡은 연장전이다. 꽃밭등에서 이정표에 표시되지 않은 희미한 산길로 접어든다. 꽃밭등은 과거 이곳에 있었던 마을에서 유래한다. 당시 이곳은 나무가 없는 진달래 천국이었기에 마을 아이들이 꽃잎을 따먹으며 놀았다고 한다. 지금은 진달래는 없고 신갈과 굴참나무로 가득해 생소한 지명이 되었다.
월사동계곡으로 가는데 길이 없다. 간간이 눈에 띄는 표지기에 의지해 보지만 이마저도 끊어진다. 지형이 펑퍼짐한 곳이라 계곡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월사동계곡 상류는 덕골과는 사뭇 다르다. 바위와 쓰러진 나무가 계곡을 메우고 있어 ‘원시청정계곡’이 아닌 그냥 ‘원시계곡’이다. 그러나 고요함만은 일품이어서 외딴 세상에 온 것 같은 적막감이 안개처럼 자욱했다.
-
- ▲ 능선의 휴식 같은 신갈나무숲. 계곡에 비하면 고속도로다.
-
골을 내려갈수록 가늘게 고이던 물은 세를 불리더니 마침내 직벽 쌍폭포를 보여 준다. 쌍폭을 기점으로 빛깔 고운 암반계류와 힘센 협곡이 번갈아 나타난다. 3~4m 높이의 다양한 폭포가 반갑지만 감탄하지는 않는다. 덕골에서 충분히 화려한 계곡경치를 과식했기에 이곳의 계곡미가 반감된 것이다. 게다가 무더운 날씨에 15km 이상의 긴 산행에 지친 이들은 얼른 하산하고픈 기색이 역력하다.
월사동계곡이 이들의 마음을 읽었는지 문득 휴식 같은 너른 계곡을 내어 준다. 먹방골과 하옥리계곡이 만나는 합수점이다. 경북수목원에서 상옥리 쪽으로 이어진 계곡이 먹방골이다. 꽃밭등에서 월사동으로 흐르는 계곡은 별다른 이름이 없어 등산인들이 보통 월사동계곡이라 부른다. 내연산을 대표하는 경치인 12폭포가 있는 계곡도 청하골, 보경사계곡, 내연산계곡 등 이름이 여러 가지다. 현지 주민들은 과거 청하면에 속했을 때 청하골이라 부르는 이들이 있었지만 현재 송라면이므로 이는 잘못되었다며, 내연산계곡이 맞지 않겠냐고 한다.
피서지 분위기가 물씬 나는 너른 계곡에 배낭을 벗고 옷 입은 채 물에 뛰어든다. 부드럽고 시원한 촉감이 몸을 감싼다. 물에 누워 하늘을 보니 살찐 양떼 같은 구름이 느리게 흘러간다. 뜨거웠던 근육과 크게 박동 치던 심장이 진정되며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렇게 좋은 여름 산이 또 있을까 싶다.
너른 계곡이 나왔다고 풀어진 마음에 다시 긴장감이 돈다. 수심이 깊어지고 길이 희미한 통에 길 찾기가 관건이 되었다. 밭이나 집터였을 것 같은 너른 터엔 개망초꽃이 가득하다. 흰 꽃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을 따라 산을 떠난다. 세월이 지나도 여름이 되면 이 계곡이 생각날 것 같다.
-
- ▲ 덕골 상류의 삼단실폭포. 폭포를 우회하도록 길이 나있지만 여기서부터 간간히 안전에 신경 써야 할 곳이 나온다.
-
산행 길잡이
등산로나 이정표에 대한 기대 버리고 계곡 따라가야
산족보를 보면 내연산은 내연지맥의 핏줄이고, 내연지맥은 낙동정맥의 자식이며, 낙동정맥은 백두대간의 자손이다. 낙동정맥이 청송에서 포항으로 접어들어 709.1m봉에서 바다 쪽으로 산줄기가 뻗어 나오는데 이때 북쪽으로 흘러가는 산줄기가 43km의 내연지맥이다. 지맥 최고봉은 930m의 향로봉이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지맥의 주인은 내연산이다. 지맥을 대표할 만큼 잘난 산이다.
덕골~삼지봉~향로봉~월사동계곡 산행은 18km에 9시간 정도 걸린다. 덕골과 월사동계곡에서 정비된 길이나 이정표를 찾는 건 무의미하다. 기본적으로 골짜기를 따라가며 수심이 깊거나 높은 폭포가 있을 때만 우회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산행에 임해야 한다. 덕골 막창폭포를 넘어서면 갈림길이 있다. 표지기가 달린 왼쪽 사면 길로 가면 이끼폭포 등 비경을 놓치게 되므로 오른쪽으로 가 계곡을 따라야 한다.
수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아쿠아슈즈나 샌들을 신고 물에 발을 담그고 올라 능선 부근에서 등산화로 갈아 신는 것이 덕골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등산화를 신고 가더라도 발이 젖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덕골의 경우 폭포나 협곡을 우회할 때 젖은 바위를 지나야 하는 위험한 구간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등산초보자가 가기에는 무리이며 베테랑일지라도 독도에 주의해야 한다.
능선부터는 길 찾기가 수월하며 꽃밭등에서 나뭇가지를 쌓아놓은 숲길로 들어가면 월사동계곡이다. 길이 희미하거나 없으므로 길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계곡을 찾아 내려가는 데 주력해야 한다. 먹방골과 하옥리계곡을 만나는 합수점에서 오른쪽으로 계곡을 따라가다 노란색 컨테이너 농가가 있는 임도로 올라서면 산행이 끝난다.
월사동계곡 입구(N36 15 38.1 E129 13 55.8)는 상옥리 68번 지방도로 삼거리에서 하옥리계곡으로 2km 들어간 지점에 있으며 오른쪽 아래로 이어진 임도를 따라 붉은색 철문으로 들어가면 된다. 계곡을 좌우로 건너거나 바위를 오르내리는 등 거리에 비해 체력 소모가 큰 편이므로, 남은 체력을 감안해 코스를 조정해야 한다. 평소엔 수량이 적은 편이므로 장마가 그친 후 들어가야 비경을 볼 수 있다.
교통 대중교통편은 포항이나 영덕에서 연결된다. 포항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일(05:20~22:00)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500번 버스를 타고 청하면 환승센터에서 하차하여, 하옥계곡행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하옥리행 버스는 1일 3회(07:10, 11:20, 17:00) 운행하며 40~50분 걸린다. 덕골 입구(하옥산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월사동계곡에서는 하옥리에서 되돌아 나오는 버스를 타거나 죽장초교 상옥분교까지 2.8km 걸어가서 버스를 타야 한다.
숙식(지역번호 054) 하옥리계곡을 따라 펜션과 민박이 드문드문 있다. 경방골 입구에 동대산산장(010-7146-4785), 청솔펜션(010-4422-6926)이 있으며 상옥리로 이어진 하옥계곡을 따라 자연의쉼터민박(733-6997), 어진이네민박(733-8025), 포항학생야영장 옆 배지미민박촌(262-6631), 시골민박식당(010-8588-7663), 하옥리버뷰민박(262-2850), 느티나무민박(262-6630) 등이 있다.
하옥계곡은 폭우가 쏟아지면 위험하므로 계곡에서의 캠핑은 주의를 요한다. 폭우에도 비교적 안전한 캠핑장은 별삼킨별오토캠핑장(010-7188-8882)과 포항시에서 운영하는 무료 캠핑장(마두교 덕골 입구)이 있다.
비교적 큰 숙소로 청송군 부남면의 청송자연휴양림(872-3763)과 보경사 앞 연산온천파크(262-5200)가 있다. 연산온천파크는 숙박 시 온천은 무료다. 휴양림과 연산온천파크는 모두 하옥리에서 3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차로 30~40분 걸린다.
식당은 보경사 입구에 즐비하다. 신라식당(262-0565), 봉산식당(262-0568), 산채식당(262-0985), 부산식당(262-6669), 보경반점(262-1113) 등이 있다.
별미인 물회는 포항 시내의 환여횟집(242-8899)이 유명하다. TV 프로그램 ‘1박2일’, ‘생생정보통’, ‘맛대맛’ 등에 소개되었다. 본점과 분점이 있다. 물회(1만2,000원)와 물회국수(1만2,000원), 회덮밥(1만2,000원), 도다리물회(1만8,000원), 막회 등의 메뉴가 있다.
개념도 특별부록 대형지도 참조.
-
- ▲ 덕골 입구의 캠핑장. 포항시에서 운영하는 무료캠핑장이다. 화장실과 개수대가 있다(왼쪽). 여름 별미인 포항 물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