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달에서 시작된 걸음이 샛별이 뜰 무렵까지 이어진다. 오름은 시간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이달오름과 새별오름 두 공간을 가르며 농익은 여인네와 같은 은빛 가을을 만난다.
제주 서쪽의 곡선미가 빼어난 오름이라면 이달오름과 새별오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꼽힌다. 두 오름은 이웃하여 서로를 견제하는 듯하다가도 어느새 서로를 북돋우며 서부권의 두 미녀로 자리 잡고 있다. 이달오름은 봉긋한 젖가슴에 비유되고 새별오름은 여인의 풍만한 둔부와도 같은 곡선미를 자랑하니 넉넉하면서도 강렬한 여성적 매력을 지닌 미녀에 비견될 만하다. 특히 가을이면 각각 제멋에 겨워하다 못해 두 여인네가 널따란 치마폭을 펼친 것처럼 억새밭으로 서로를 연결하여 유혹하고 있으니 아무리 목석이라 하여도 홀딱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새별오름 능선을 내려오다 만난 무덤, 오랜 세월 비바람에 풍상을 겪은 듯한 동자석과 산담이 철옹성처럼 묘를 에워싸고 있다.
가을날 오름을 벗 삼아 걷기 위해 등산화 신고 햇볕을 막아줄 모자 하나 챙겼다. 그리고 자그만 물병 하나……. 오름의 가을을 느끼기에 열린 가슴과 두 다리면 충분하다. 새별오름은 종종 안개가 넘나드는 평화로를 달리다 아스라이 고개를 내민 모습에 불현듯 올라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오름이다. 도로에서 멀지 않아 평화로 서쪽의 랜드마크처럼 우뚝 솟아있다. 이른 봄에 이 오름 주변은 수천 수만의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매년 정월대보름을 기해 오름 사면 전체에 불을 사르고 하늘에는 휘황찬란한 불꽃을 터뜨리는 들불축제의 무대가 바로 이곳이다.
새별오름은 5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있고 남봉이 최고봉이다.
혹여 봄에만 이 오름을 눈여겨보았다면 새별오름의 진면목은 바로 가을임을 얘기해주고 싶다. 억새가 분화구 아래를 가득 메우고 바람과 함께 노래를 부르면 세상만사는 모두 잊고 억새의 바다에서 노를 젓는 강태공이 되고 싶어질 것이다. 봄에 이곳에서 꿈과 희망을 불살랐다면 가을에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여인네의 은빛 치마폭에 휩싸여 여유를 느껴보도록 하자. 새별오름의 넉넉한 모습을 만나기 위해서는 들불축제의 주무대였던 북동쪽 사면을 자박자박 올라 굼부리를 넘어야 한다.
억새를 헤치고 난 작은 오솔길, 가을 사이를 걷는 사람들
오름 정상은 남봉이다. 남봉을 정점으로 등성이가 뻗어 내려가고 있고 사이사이 4개의 봉우리가 솟아있다. 5개의 봉우리는 이웃의 처녀댁인 이달봉에서 보아야 이름에도 나와 있는 샛별의 모습이다. 능선을 넘으면 은빛 억새가 춤을 추는 장관이 펼쳐진다. 억새를 헤치고 걷다보면 가을이 너무나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실감한다. 간혹 봉우리들에 안착되어 흐르는 세월을 지켜보던 산담들이 잠시 쉬어 가라고 손짓을 할 뿐이다. 시야가 트인 오름은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한다. 바다에는 비양도가 웅크리고 있고 동쪽으로는 한라산이 장엄하다. 구름이 오락가락 한라산자락을 스치듯 비껴가고 하늘은 더할 수 없이 짙은 가을색이다.
두 개의 젖무덤처럼 솟아오른 이달오름의 자태가 빼어나게 아름답다.
넉넉한 품새의 새별오름은 이달봉에 비해 확실히 완숙미가 흐른다. 드넓은 벌판에서 몽골군과 최영 장군이 격전을 치렀다고 하나 지금은 억새 우는 소리만 구슬프다. 굼부리 둘레에 난 길이 이달봉으로 바로 연결되어 있으면 좋으련만 올라왔으니 내려가서 다시 또 올라 새댁을 만나보라고 한다. 새별오름을 떠나는 이를 배웅하듯 햇볕에 졸고 있는 산담이 잘 가라고 손을 흔든다.
새별오름에서 이달오름까지 이어지는 길은 억새와 띠가 어우러져 춤을 추는 가을들판
이달오름은 나무와 풀밭이 성글게 자라고 있다. 짧은 숲길이 있어 오름의 또 다른 정취가 느껴진다.
지나왔던 새별오름의 전체 모습은 바로 이곳 이달오름에서 볼 수 있으며 샛별 모양임이 확인된다.
저 능선을 넘으면 하늘까지 닿을 수 있을까? 억새밭이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오름길
이달봉은 두 개의 봉긋한 젖무덤이 인상적인 오름이다. 정교하게 깎아놓은 듯한 모습이 필시 아이를 낳은 적이 없는 처녀의 그 모습이다. 산봉우리 두 개가 솟아오른 이달은 두 개의 달, 쌍둥봉우리라는 의미다. 하늘에 떠있는 ‘달’이라기보다 ‘높다’ 또는 ‘산’의 의미로 두 개의 산이 솟아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는 이달봉(비고 119m,), 다른 하나는 이달촛대봉(비고 85m)이다.
이달봉을 향해 가다보면 관문처럼 문도 아닌 것이 문이기도 한 입구가 나온다. 사람은 지나가되 우마는 지나가지 못하도록 입구를 굽어지게 만든 문이다. 이달봉 자락과 등성이가 우마들의 방목지인 탓에 필요한 구조물이다. 먼저 나타나는 봉우리는 이달봉. 이곳에 서면 새별오름의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갈빛으로 물들어있는 오름의 넉넉한 품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달촛대봉을 가기위해서는 고갯마루를 넘어야 한다. 두 개의 봉우리에는 나무와 풀밭이 성글게 어우러져있다. 한가로운 우마들의 놀이터이면서 오름을 만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길을 내어주는 제주의 자연이다. 가을에 새별오름은 별이 되고, 이달오름은 두 개의 달을 띄워 은빛 가을그림을 완성한다. 두 여인네의 유혹에 홀딱 빠졌다 나온 듯한 새별오름에서 이달오름으로 이어지는 트레킹코스, 가을에 꼭 추천할만한 길이다.
찾아가는 방법 :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산59-8 제주공항에서 중문방향 평화로 이용 22.9km (자동차로 40분 소요)
트레킹 코스 : 새별오름 주차장에서 시작되어 새별오름 오름둘레길을 따라 이달봉 ▶이달촛대봉 ▶ 새별오름 주차장 5.3km (2시간 정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