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채전 안주 삼아
어제와 그제 가까운 이들의 안타까운 부음이 세 건이나 왔다. 초등 동기가 병고를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 그는 유복자 외동으로 태어나 어릴 적 귀염을 많이 받고 자랐다. 친구는 삼촌이 재일 거류민으로 경제적 기반을 갖추어 성장기에 아무런 어려움 없었고 군청 기능직에서 정년퇴직했다. 내향적 성격이라 남 앞에 나서거나 소리가 높지 않아 있는 듯 없는 듯 묻혀 지냈다.
어제는 내가 속한 문학 동아리 한 여성 회원 부군이 돌아갔다는 부음을 접했다. 시인은 70년대 우리나라 섬유산업 견인차였던 마산의 모직 공장 여공으로 야학을 마쳐, 서울에 거주하며 중앙 시조 문단에서 필력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날 남아선호로 여성이 사회 진출의 기회가 적었음에도 유리 천장을 뚫은 분인데, 부군을 뵙지는 못했지만 반려자를 잃은 아픔에 마음이 무거웠다.
장마처럼 계속된 연일 강수 상황에서 고향 초등 친구를 영결하는 문상 갈 여건이 못 되어 마음이 걸렸는데 부음이 연이어 닿았다. 어제 점심나절 한 대학 동기가 평균 수명보다 이르게 작고했다. 나는 동기생보다 대학을 뒤늦게 입학해 고인은 나보다 서너 살 아래 나이다. 부부 교사로 출발, 남편은 교장으로 재직하다 아내 간병을 위해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명예퇴직하고 나왔다.
내가 교육대학 입학 당시는 400명 정원에 남학생은 고작 36명이었다. 그 이후 전국의 교대 입학 관리부서는 부랴부랴 어느 한쪽 성이 20퍼센트를 넘지 못하도록 입시 규정을 바꾸기도 했다. 36명 가운데 8명은 40년이 넘게 여름과 겨울 방학 1박 2일로 부부 동반해 만나온 사이다. 수도권 치유의 숲에서 성심을 다한 부군의 간병에도 저승사자 부름을 거스를 수 없어 안타까웠다.
간밤 같은 생활권에 사는 친구 차에 동승해 울산의 대학 동기 문상을 다녀왔다. 밝은 모습으로 화사하게 웃고 있는 고인의 영정 사진에서 이승을 먼저 하직한 야속함은 원망이 되었다. 나는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에 접빈실의 친구 내외들과 얘기를 나누는 속에 맑은 술을 몇 잔 기울였다. 썰렁한 빈소를 밤새워 지켜주지 못하고 빗속에 어둠을 뚫고 집으로 복귀했다.
날짜 변경선을 달리한 이튿날은 어린이날에서 이어진 연휴 마지막으로 일요일이었다. 새벽에 글 몇 줄과 시조를 한 수 남기고 우울감과 무기력이 엄습해 다시 자리에 누웠다. 바깥은 날씨마저 궂어 마음을 더욱 쳐지게 했다. 바깥으로 나가질 않고 하루를 집에서 보내려다 생각을 바꾸었다. 날씨가 흐려도 근교 숲을 찾아가 서너 시간 거닐다 나올까 싶어 산행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로 내려가 이웃 동 꽃밭에서 꽃대감을 만났다. 친구는 매일 일과가 꽃밭을 돌보고 나면 스포츠센터 빙상장으로 나가 스케이트를 타면서 건강을 관리했다. 친구가 빙상장으로 가면서 나를 명곡동까지 태워주어 거기서 북면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천주암 아래서 굴현고개를 넘어간 외감 동구에서 내려 달천계곡 들머리 남해고속도로 창원터널 곁 단감농원에서 숲으로 들었다.
비가 많이 와 평소 건천이던 계곡엔 맑은 물이 넘치게 흘렀다. 빗방울에 젖은 나뭇잎은 무게를 견디지 못해 가지가 휘어지기도 했다. 물기를 머금은 부엽토 길을 걸어 양미재에서 구고사 뒤 농바위 산등선으로 올라 숲을 뒤졌다. 빗속에도 은방울꽃이 피어 눈길을 끌었다. 벌깨덩굴 자생지로 가서 한 마리 산짐승이 되어 허리를 굽혀 산나물을 뜯었다. 어렵지 않게 빈 배낭을 가득 채웠다.
벌깨덩굴은 줄방아라고도 하는데 고소한 산나물로 숲 그늘에서 자라 보드라웠다. 우리 집에는 찬거리로 삼을 산나물이 밀려 건너편 아파트단지 상가에서 전으로 부쳐 먹고 싶어 꽃대감을 불렀는데 먼저 퇴직한 칠순 선배는 동석 못할 사정이라 아쉬웠다. 주점 아낙에게 넘겨진 벌깨덩굴은 향긋한 전이 되어 나와 술안주로 삼았다. 이웃 테이블 손님들도 산채전으로 계묘년 봄을 보냈다. 23.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