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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년, 제노바에서 500미터 떨어진 언덕.
시프리두스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새로 지어진 야영지 사이를 걸어 나가고 있었다. 근위대장이 황급히 그를 따라잡았다.
“전하, 이 전투는…”
“지금은 아무 말 마라.”
“하오나 전하,”
“입 다물어.”
그는 근위대장의 입을 봉한 뒤 거칠게 근위병을 밀어젖히고 자신의 천막으로 몸을 던지듯 들어갔다.
그리곤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황태자는 천천히 자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한 달 전, 제노바 북부 숲
“대장, 나타났습니다. 베네치아 상인 길드의 깃발입니다만 저 규모, 저 속도는 분명 성(聖)로마 제국의 군대가 틀림없습니다.”
다급하게 달려온 척후병의 보고를 받은 남자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흥, 예상보다 더 빠르긴 하지만 작전대로로군.”
그는 밀라노의 연대장인 지오르지오였다. 이곳에서는 그가 지휘하는 2천 5백의 군대가 야영 중이었다.
“저 오만한 황태자 놈은 제노바를 바로 포위하여 깨뜨릴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그 전에 우리의 기습으로 울면서 피렌체로 돌아가게 될 거야.
은밀하게 가서 모든 병력에게 조용히 공격을 준비하라 일러라. 좀 더 가까워지면 내 신호와 함께 일제히 들이친다.”
지오르지오의 옆에 있던 부관이 고개를 끄덕이고 숲속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제국의 군대는 길을 따라 제노바를 향해 가는 듯 하더니, 갑자기 멈춰 섰다.
“………?”
“대장님. 저것들…”
“음. 로브(Robe)를 벗고 정체를 드러내시는군.”
2천의 제국군이 일제히 로브를 벗어던지고 각기의 수레 안에 집어넣었다. 손에서 로브가 사라진 병사들의 손에는 어느새 그들의 무기가 들려있었다. 마침내 거대한 독수리가 그려진 제국의 깃발이 여기저기서 높이 들려올라왔다. 선두에는 황태자의 기가 나부꼈다.
지오르지오는 일사불란한 그 모습에 몸이 떨려왔다.
“수레와 마차 안에 있던 것은 역시 무역품이 아니라 무기였다. 저 정도 병력이 저런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니. 황태자 놈이 어지간히 훈련시킨 모양이야.”
“하지만 좀 이상합니다. 제노바까지 가지 않고 왜 굳이 여기서 무장을 갖추는 걸까요?”
“글쎄… 어찌됐든 좀 더 지켜보자. 놈들이 접근해서 뒤를 보이는 순간 끝장낼 거다.”
제국군은 길을 따라 제노바를 향해 이동하는 듯 하더니, 돌연 길을 벗어나 언덕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밀라노 군이 주둔하고 있는 숲의 측면이었다.
순식간에 무장한 제국군은 돌연 길을 벗어났다
“대장님,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놈들의 튜턴 기사대는 본대와 떨어져서 빠른 속도로 우리 군의 후방 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목소리 낮춰! 이 움직임은 아무래도…”
지오르지오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부관. 전군 전투태세를 알려라. 석궁병대를 전방으로, 진(陣)을 측면으로 틀어 전개한다.”
“그 말씀은?!”
“아무래도 들킨 거겠지. 아니면 이미 우리의 매복을 알고 있었거나! 움직여라!!”
한 편 속보(速步)로 이동 중이던 제국군 안에서 근위대장이 말했다.
“…놈들이 우리 움직임을 눈치 챈 것 같군요.”
“음. 기습을 준비하던 부대가 기습을 받게 되면 그 사기저하는 엄청나지. 제국에는 첩보원마저도 유능하단 말이다.
병사들 그만 올라가게 해. 파비스 석궁병대는 사격개시, 튜턴 기사대에겐 놈들이 진형을 짜면 바로 돌격하라고 명해두었다.”
근위대장은 밀라노 군을 바라보며 크게 소리쳤다.
“전군 정지! 모든 석궁병대는 열을 맞추고 각 중대장의 명령에 따라 사격을 개시하라!”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면서부터 지오르지오는 처참한 패배를 맛보게 되었다. 진을 측면으로 전개하는 도중 양익의 병사들은 쇄도하는 튜턴 기사단에 짓밟히고, 또한 수없이 날아드는 화살에 무수한 병사들이 쓰러졌다.
당황한 지오르지오는 고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스스로 숲에서 빠져나오는 실수를 저지른다
병력 구성이 농민병과 민병대가 대부분이었던 밀라노 군은 사기가 있는 대로 떨어져서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흩어져 도망치기 바빴다.
제국군은 이 전투에서 8백이 넘는 적을 죽이고 9백이 넘는 포로를 획득했다.
“투항자들은 모두 베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석방해.”
“예?!”
근위대장이 칼을 뽑으려다 말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뭘 그리 놀라나? 선제 폐하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르침이다. ‘전의를 잃은 자를 죽이지 말라’고.
…레오포드 형님께서는 좀 취향이 다르신지도 모르겠군.“
“황실에서 전해 내려오는 가르침을 감히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제노바 공성을 앞두고 있습니다. 근 일천에 달하는 이들의 석방은 수성병력을 늘려주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시프리두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제노바 공성에서 저들이 방해가 될 것을 염려하는 것이로군. 그러나 저들 중 현명한 자들은 이것으로 제국에 대해 반항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알게 되었을 거야.
이번에 석방되고 나서도 제국에 또다시 저항을 하려는 자가 있다면, 그것에 물러서지 않고 쳐부수는 것이 제국의 황태자로서 해야 할 일일 것이다.
모두 석방해라!“
이렇게 해서 밀라노 군의 950 포로들은 모두 석방되었고, 하루 뒤 제국군은 석방한 포로들을 따라가듯이 행군하여, 제노바 근처에 야영지를 만들고 공성탑과 파성퇴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제노바의 영주이며 밀라노 공국의 후계자인 아고스티노 백작과 밀라노의 연대장 지오르지오는 병사들을 규합하여 제노바를 지키기 위한 만전의 태세를 갖추게 된다.
“저 제국군의 리더가 17세 때 피렌체에서 첫 전투로 대승을 거둔 그 시프리두스인가.”
“그렇습니다.”
“흐음~”
제노바의 탑 위에서 아고스티노와 지오르지오가 멀리 어렴풋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적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노바는 직접적으로 공격받아본 적은 아직 한번도 없었다
“…하인리히가 죽자 그 뒤를 이어 피렌체의 통치를 시작하고, 우리 밀라노를 상대로 첫 전투에서 대승. 그 이후 선정을 통해 피렌체 부근에는 산적조차도 사라졌다지. 그리고 지금 대단한 군세를 이끌고 국경을 넘어왔다, 이건가.”
그는 옆에 서 있는 지오르지오를 곁눈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국경을 넘어와선 또다시 대승을 거두었다지.”
“그, 그것은… 며, 면목 없습니다.”
지오르지오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흠. 그대는 왜 지난번 전투에서 패했다고 생각하는가?”
“매복을 사전에 들켰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적의 세작이 있었을 가능성이…”
“그렇다면 제노바로 모든 포로를 석방시킨 건 그 세작을 자연스럽게 도시 안으로 들여보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 그렇다면…!”
아고스티노는 피식 웃었다.
“뭐, 이미 도시 안엔 제국의 세작이 들어와 있다고 보면 되겠군.”
그는 고개를 돌려 탑의 벽을 콩콩 두드리며 말했다.
“잘 들어라. 제국 황태자에 대한 소문은 무성하지만, 사실에만 근거했을 때 놈은 이번 전투가 생애 세 번째 전투일 뿐이다. 게다가 공성전은 이번이 처음이겠지.
그리고 네가 설명했던 놈들의 전투방식은 거의 다 튜턴기사대에 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공성전은 기사들이 하는 게 아니지. 우리는 효과적으로 농성한다. 전군에 그리 알리고 준비를 갖추도록.”
“알겠습니다.”
그로부터 8일 뒤.
아침 해가 뜨자 제국군은 완성된 공성장비를 앞세우고 제노바를 향해 접근해왔다.
사기가 충천한 제국의 병사들은 깎아지른 듯 한 대열을 유지하며 성벽으로 이동했다. 아고스티노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우와, 저것들 정말 사람인가? 마치 저 백여 명이 하나의 덩어리인 것 같지 않은가.”
“백작님, 명령을!”
“흠, 감탄하고 있을 시간도 없다는 건가. 석궁병대는 사정권 내에 들어온 적에게 화살을 있는 대로 퍼부어라. 탑에 주둔 중인 사수들은 오로지 적의 파성퇴만을 노려라!”
제국군이 밀고 간 두 대의 파성퇴는 시간차를 두고 출발하였지만, 제노바의 탑에서 발사되는 불화살이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더구나 8백이 넘는 밀라노의 석궁병들이 폭우처럼 퍼부어대는 화살이 제국군의 진격을 더디게 만들었다.
첫 번째 파성퇴에 불이 붙어버리자 병사들은 재빠르게 퇴각하고 두 번째 파성퇴를 밀어붙였지만, 그것마저도 미처 성문에 도달하기 전에 불길에 휩싸이고 말았다.
제국군은 순식간에 두 대의 충차를 모두 잃었다
제국군이 불타는 파성퇴에서 떨어져 물러나자, 아고스티노가 소리쳤다.
“지오르지오!!”
“하명(下命)하시길!”
“육탄전에는 자신이 있겠지?”
지오르지오는 대답대신 칼을 뽑아보였다.
“좋아! 공성탑의 방향을 주시해라! 탑이 도달하는 성벽에는 창병을, 중앙 성벽으로 석궁병대를 이동배치! 나는 좌측으로 갈 것이고, 너에게 우측 성벽을 맡긴다!”
“존명!!”
파성퇴가 모두 불타게 됨과 동시에 제국의 공성탑이 성벽에 도달했다. 그때부터 전략과 전술이 결여된 전투가 벌어졌다. 화살이 어지럽게 오가고, 공성탑에서는 일진일퇴의 공방이 벌어졌다. 성벽에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는 제국군은 석궁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공성탑은 두 개 뿐이었기 때문에 성문으로 돌파할 준비를 하고 있던 근위대와 튜턴기사대는 그저 멀리서 손가락만 빨고 있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공성탑에 오르기 위해 기다리는 병사들은 화살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화살을 피하고 성벽에 오른 병사들도 밀라노군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시프리두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전황이 좋지 않다. 우리는 우리 병력의 10분의 1만 싸우고 있는 셈이군.”
“전하?!”
하나 둘씩 쓰러져가는 제국군을 볼 때마다 그의 얼굴은 점차 분노로 상기되어갔고, 한 마디 한 마디 분명하게 명령했다.
“전군, 퇴각한다. 성벽에 있는 아군을 탈출시켜라.”
황태자가 기수를 돌렸다. 그에게 있어 최초의 패배였다. 제국군은 4백 여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고, 성에서 5백 미터 이상 떨어진 곳까지 물러났다.
시프리두스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무리 오늘의 전투를 다시 생각하고 후회해도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는 별안간 테이블 위에 있던 잉크와 펜을 이용해 무엇인가를 써내려갔다. 한동안 글쓰기에 열중하던 그가 펜을 다시 펜대에 꽂았을 때는 어느새 두 장의 문서가 작성되어 있었다.
그는 두 장의 문서를 각각 다른 봉투에 넣어 봉인한 뒤, 다시 몸을 일으켜 천막 밖으로 나갔다.
천막 앞에서는 황태자를 기다리고 서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8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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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분한 칭찬이세요. 어이없이 첫 패전이 나서 사실 좀 창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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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닛사이즈 휴즈에 1년 2턴이라는거 ㅎㅎ 그리고 HRE는 제가 생각하기에 초반에 반란군 도시를 조금 무리해서라도 최대한 많이 확보해둘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체 저 밀라노의 엄청난 군대 수는 어떻게 된 노릇일까요...
우왓!!! 나의 로마제국이 저렇게 강했다니...ㄷㄷ 제밌네여....8화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