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발도강(奮發圖强)
떨쳐 일어나 강하게 되려고 노력하다
奮 : 떨칠 분(大/13)
發: 필 발(癶/7)
圖 : 도모할 도(囗/11)
强 : 강할 강(弓/9)
공자(孔子)께서 위(衛)나라의 광(匡)이라는 지방을 지나가는데, 그곳 사람들이 죽이려고 했다. 노(魯)나라 양호(陽虎)가 그 이전에 그곳 사람들에게 포학하게 굴었는데, 공자의 용모가 그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공자는 '유학을 일으켰던 주(周)나라 문왕(文王)께서 이미 돌아가셨으니 유학을 계승할 책임이 나에게 있지 않겠는가? 하늘이 이 유학을 망치려고 한다면 내가 유학의 전승에 참여할 수 없겠지만, 하늘이 이 유학을 망치려고 하지 않는다면 광 지방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고 했다.
자신의 생명의 위험을 느끼는 그 순간에도 공자는 자신의 안위보다 유학의 전승 발전에 대한 사명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주자(朱子)가 만년에 권력자 간신 한탁주(韓胄)를 비판하다가 호되게 되말려, 그 학문은 위학(僞學; 거짓 학문)으로 몰리고 그 추종자들이 주자의 목을 베어야 한다고 상소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관직을 삭탈당하고 강학을 못하게 금지시켰다. 그래도 주자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계속 강학을 하고, 글을 짓고, 밤에 편안히 잠을 잤다.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이 아홉 살때 위독한 병에 걸려 어머니가 죽을까봐 애를 태웠다. '하늘이 반드시 소자에게 부여한 임무가 있어 어린 나이에 죽지는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고 하면서 어머니를 위로했다.
유명한 국문학자 양주동(梁柱東) 박사는 원래 영문학 교수였다. 1930년대에 일본인 소창진평(小倉進平)이 신라 향가를 처음으로 연구해서 해독해 내는 것을 보고는 '우리 조선이 일본한테 주권과 영토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이제 학문마저 빼앗기는구나!'고 탄식했다.
영문학 연구는 일단 뒤로 미뤄두고 잠을 안 자고 향가를 연구했다. 곧 심한 폐렴에 걸려 열이 40도가 넘었는데 모두가 죽을 것으로 알았다. 그때 양 박사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하늘이 우리나라 문학을 망치려 하지 않는 한 이 양주동은 죽지 않는다.'
학문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자 피맺힌 절규였다. 기적 같이 폐렴은 완치돼 향가를 올바르게 해석해냈고, 일본인의 학설은 대부분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밝혔다.
장자(莊子)의 말에 '슬픈 것으로 마음이 죽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哀莫大乎心死)'는 말이 있다.
살다 보면 어려운 일이나 다급한 일을 당할 수가 있는데, 이때 마음이 무너지면 몸도 따라 무너지게 된다. 굳건한 마음으로 떨쳐 일어나 더 강하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진나라의 굴기
진나라의 굴기는 확실히 변법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변법은 어쩔 수 없이 몰려서 하게 된 것이다. 이 점은 진효공이 그의 '구현령(求賢令)'에서 분명하게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제후들이 진나라를 비천하게 여긴다. 추악하기 그지없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기계(奇計)를 내서 진나라를 강성하게 할 수 있다면 그에게 영토를 나눠주겠다'고 한다.
진나라는 정말 제후들에게 멸시 당했는가? 그렇다. 예를 들어 기원전 632년 성복지전때 진나라는 참전국이며 승전국이다. 그러나 반달후의 천토지맹(踐土之盟)에 패주인 진(晋)과 동맹국인 제(齊), 송(宋)은 다 참석하고, 중립국과 패전국인 노(魯), 채(蔡), 정(鄭), 위(衛), 진(陳)도 참석하지만, 진나라는 참석하지 못한다.
참석하지 못한 것도 이상할 것은 없다. 사실상, 진나라 군주는 비록 주천자에 의하여 이미 정식으로 제후에 봉해졌지만, 제후들은 그를 제후로 취급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와 평기평좌(平起平坐)하려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진나라 사람들은 '중국'의 맹회에 참석할 자격이 없게 된 것이다. 이때의 진나라 군주가 진목공이지만, 나중에 춘추오패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진목공이지만, 당시에는 졸부 취급을 당했다. 전통적이고 정종의 화인화족들은 이런 신출내기를 인정해줄 리가 없다.
이것은 당연히 차별이다. 행운인 점은 차별을 당하면서, 진나라사람들은 기가 죽지 않고, 하늘이나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더더구나 스스로 타락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분발도강(奮發圖强)을 선택한다.
도강(圖强)의 첫걸음은 바로 다른 나라로부터 멸시받는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다. 원인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문화가 낙후되었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상앙변법 이전에, 진나라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아버지 어머니, 아들 며느리, 형제 형수 제수가 모두 한 방에 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당연히 유목민족의 장봉(帳篷)생활습관때문일 것이다. 다만, '남녀구분'이 엄격한 화족(華族)의 눈에 이것은 문명적이지 않은 것으로 비추어졌다.
둘째는 정치의 혼란이다.
기원전 425년 부터, 진나라는 40년간 안정되지 못했다. 한 국군(진회공)은 자살하고, 한 태자(헌공)는 승계하지 못했으며, 또 한 국군(출공)과 그의 모후는 함께 피살되고, 시신은 깊은 물에 빠뜨려진다. 그 결과 위무후는 진나라내란을 틈타 진목공이 빼앗아갔던 영토를 다시 회수한다.
문화낙후는 당연히 그들이 원래 오랑캐족이었기 때문이다; 정치혼란은 귀족의 독재와 전횡으로 국군의 권한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앙변법의 핵심사상은 바로 군주독재의 중앙집권이다.
변법의 구체적인 내용은 우리가 '춘추에서 전국까지'라는 책에서 이미 설명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바로 영주제를 폐지하고, 지주제를 실시하며; 봉건제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실시하며; 세습제를 폐지하고 임명제를 실시하는 것이다.
영주제를 폐지한 것은 원래 귀족에 예속되어 있던 신민을 중앙에서 직접 관할한다. 인민은 바로 국군의 것이다. 봉건제를 폐지한 것은 경대부의 채읍을 군현으로 바꾼다. 토지는 바로 국군의 것이다.
세습제를 폐지한 것은 모든 관리는 중앙이 임명하는 것이다. 권력은 바로 국군의 것이다. 토지, 인민 그리고 권력이 모두 국군의 손에 장악된다. 당연히 권력이 집중된다.
권력집중 이후의 국군은 손안에 지휘봉을 가진 셈이다. 이 자유자재로 뒤흔들 수 있는 지휘봉은 바로 '군공(軍功)'이라고 부른다. 군공이 있으면, 농민도 제후에 봉해진다; 군공이 없으면, 귀족도 체면이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진나라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전(公戰)에는 용감하지만, 사투(私鬪)에는 겁쟁이다.' 즉 국군을 위하여 싸우지, 자신을 위하여 싸우지 않는 것이다. 외국인만 죽이지, 진나라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 고관후록을 위하여 사람을 죽이지, 자그마한 이익을 위하여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살인기계인가? 그렇다. 진나라의 군공은 인두(人頭)로 계산한다. 적 1명을 죽이면 1급이 올라간다. 적의 수급만 들고 오면 공로를 인정받아 상을 받는다. 한 손으로 돈을 건네며 한 손으로 물건을 받는다. 이런 '호랑지국'에 적수가 어디 있겠는가?
육국의 패배는 당연한 일이다. 확실히 상앙의 변법이 없었더라면, 진나라의 굴기는 없었다. 문제는 군현제는 진나라때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초, 진(晋). 제는 모두 진나라보다 빨랐다. 변법을 시행한 것도 진나라만이 아니었다. 위나라의 이괴(李悝), 초나라의 오기(吳起)도 모두 상앙보다 앞섰다. 그렇다면 최후에 이긴 것이 왜 진나라일까?
아마도 여기에는 문화적인 요인이 있는 것같다. 문화가 한 나라와 민족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기이하다. 대체로 말해서, 너무 적으면 안되지만, 너무 크면 골치아프다.
월(越)은 문화가 너무 적어서 손해를 보았다. 초, 송, 노는 너무 많아서 손해를 봤다. 송나라는 은상의 고국이다. 노나라는 주공의 후손이다. 초나라는 그 사이에서 이익을 주워먹었다.
춘추시기, 주나라의 왕자조(王子朝) 반란이 있었다. 패배한 후, 그는 왕실의 대량 전적, 기물, 지식인과 과학기술 인원을 이끌고 피난을 간다.
그 결과 원래 '오랑캐의 땅'이던 초나라가 화하문명의 세번째 중심지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유가는 노나라에서 나오고, 묵가는 송나라에서 나오고, 도가는 초나라에서 나온다.
진나라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백지였다. 백지이면 누구든지 채울 수 있다. 진나라의 문화공백을 채운 것은 바로 법가이다. 법가는 지역성이 없다. 누구든지 돈을 많이 내면 그를 계책을 내놓을 수 있고, 그를 위하여 목숨을 걸 수도 있다.
이괴가 위나라의 재상이 되고, 신불해가 한나라의 재상이 되고, 오기는 초나라로 도망치고, 상앙은 진나라로 도망친다. 그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러나 가장 법가에 적합한 나라는 역시 진나라이다. 법가는 선진제자중 비교적 특이한 부류이다. 유가, 묵가, 도가는 모두 이상주의자나 복고주의자이다.
도가는 태고(太古)를 그리워하고, 묵가는 우세(禹世)를 그리워하며, 유가는 동주(東周)를 그리워한다. 법가는 실용주의자이며 공리주의자이다.
그들의 주장은 현실에 대한 것이고, 미래를 기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가는 천도(天道)를 얘기하고, 묵가는 제도(帝道)를 얘기하고, 유가는 왕도(王道)를 얘기하지만, 법가는 패도(覇道)를 얘기한다. 법가는 패도를 얘기하고, 진나라는 강성을 도모한다. 그러니 자연히 뜻이 맞게 된다.
하물며 진나라의 민풍은 원래 표한질박했다. 전국시대까지, 그들의 예술은 기껏해야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진나라는 화하문명에 아직 동화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한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연약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생산도구와 살인도구로 훈련되기 딱 맞다. 심지어 진나라에 인재가 부족했던 것도 장점이 된다. 사방에서 인재를 불러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객경(客卿)을 중용한 결과 한단계 더 귀족에 타격을 가하고, 군권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일석양조라 할 수 있다.
법가가 크게 활약하면서 뜻을 펼친다. 기실 그들의 카드는 군권지상이다; 수단은 고관후록과 엄형준법이다. 상을 크게 내리면 용맹한 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압박을 강하게 하면 양민이 될 수밖에 없다.
상앙과 진효공은 이 패왕조항과 강온의 두 손으로 진나라를 하나의 농장과 하나의 군영으로 만들어 버린다. 거국적으로 보조가 일치하고, 기율이 엄격하며, 명령이 그대로 집행된다. 국왕이 명을 내리기만 하면, 맹수처럼 적에게 달려든다.
이런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횡행패도는 아무도 막기 힘들다. 역대 이래로 화하의 제후들은 진나라를 멸시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함어번신(鹹魚飜身)하였다.
이 자그마한 함어가 모든 큰물고기를 잡아먹었다. 지금 그들이 하는 것은 화하문명의 수혈이 아니라 환혈이다. 진시황이 혁명을 한 것이다.
▶️ 奮(떨칠 분)은 ❶회의문자로 奋(분)은 통자(通字), 奋(분)은 간자(簡字)이다. 田(전)과 나머지 글자 隹(추; 새가 홰를 침)의 합자(合字)이다. 새가 들판을 날개치면서 날다, 새나 양이 힘찬 모양, 분발하다의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奮자는 '떨치다'나 '명성을 드날리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奮자는 大(큰 대)자와 隹(새 추)자, 田(밭 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奮자의 금문을 보면 大자가 아닌 衣(옷 의)자가 그려져 있었다. 여기에 밭과 새가 함께 그려진 것은 품 안에 있는 새가 밭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버둥 친다는 뜻을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奮자의 본래 의미는 '날갯짓을 하다'였다. 후에 새의 날갯짓이라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지금은 '떨치다'나 '명성을 드날리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奮(분)은 임금이 친경(親耕)할 때에 쓰던 대오리로 만든 푸른 칠을 한 삼태기의 뜻으로 ①떨치다 ②명성(名聲) 등을 널리 드날리다 ③휘두르다 ④힘쓰다 ⑤성내다 ⑥분격(憤激)하다 ⑦흔들리다 ⑧움직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가라앉은 마음과 힘을 떨쳐 일으킴을 분발(奮發), 있는 힘을 다하여 싸움을 분투(奮鬪), 있는 힘을 다하여 싸움을 분전(奮戰), 분하여 몹시 성냄을 분노(奮怒), 분발하여 마음을 떨쳐 일으킴을 분격(奮激), 분발하여 일어남을 분기(奮起), 분발하여 냅다 침을 분격(奮擊), 힘을 다하여 쳐 없앰을 분토(奮討), 힘을 떨쳐 일으킴을 분력(奮力), 떨쳐 일어서는 기운이 세차고 꿋꿋함 또는 힘을 내어 일하는 모양을 분연(奮然), 기운을 떨쳐 앞으로 나감을 분진(奮進), 마음과 기운을 가다듬어 힘씀을 분려(奮勵), 분발하여 떨침을 분휘(奮揮), 계책을 내어 발휘함을 분책(奮策), 나보란 듯이 뽐내는 뜻으로 팔뚝을 걷어붙임을 분비(奮臂), 맹렬한 힘으로 분기함을 분신(奮迅), 어떤 자극으로 감정이 북받쳐 일어남 또는 그 감정을 흥분(興奮), 마음과 힘을 떨쳐 일으킴을 발분(發奮), 감격하여 분발함을 감분(感奮), 맹렬히 힘씀을 맹분(猛奮), 삼가고 힘씀을 긍분(矜奮), 몹시 분하여 감정이 북받침을 분분(憤奮), 의를 위하여 분발함을 의분(義奮), 충의를 위해 떨쳐 일어남을 충분(忠奮), 매우 흥분함을 앙분(昻奮), 주먹을 불끈 쥐고 볼을 씰룩거린다는 말을 분권고시(奮拳鼓腮), 힘을 다하여 노력한다는 말을 분투노력(奮鬪努力), 있는 힘을 다하여 앞서기를 다툰다는 말을 분투쟁선(奮鬪爭先), 씩씩하고 세찬 기세로 달려 나아간다는 말을 분왕매진(奮往邁進), 후원이 없는 외로운 군대가 힘에 벅찬 적군과 맞서 온힘을 다하여 싸움 또는 홀로 여럿을 상대로 싸운다는 말을 고군분투(孤軍奮鬪), 사자가 세찬 기세로 돌진한다는 뜻으로 사물에 대해서 맹렬한 기세로 있는 힘을 다해 싸운다는 말을 사자분신(獅子奮迅) 등에 쓰인다.
▶️ 發(필 발)은 ❶형성문자로 発(발)의 본자(本字), 发(발)은 간자(簡字), 彂(발)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필발머리(癶; 걷다, 가다)部와 부수(部首)를 제외한 글자 殳(몽둥이 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필발머리(癶)部는 발을 좌우(左右)로 벌리다에서 벌리는 일, 弓(궁)과 부수(部首)를 제외한 글자 殳(수)는 치는 일, 음(音)을 나타내는 癹(짓밟을 발)은 나중에 풀을 밟아 죽이는 것이라고 일컬어지지만, 본디는 물건을 치거나 튀기거나 하는 일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發자는 '피다'나 '쏘다', '드러나다', '밝히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發자는 癶(등질 발)자와 弓(활 궁)자, 殳(창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發자의 갑골문을 보면 癶자와 又(또 우)자, 矢(화살 시)자가 함께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도망가는 사람을 향해 화살을 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發자의 본래 의미는 '쏘다'나 '발사하다'였다. 그러나 금문에서부터는 矢자가 弓자로 바뀌었고, 소전에서는 又자가 몽둥이를 들고 있는 모습의 殳자로 바뀌었다. 그래서 지금의 發자는 활과 몽둥이를 들고 누군가를 뒤쫓아 가는 모습이 되었다. 發자는 본래 화살을 쏜다는 뜻이었지만 누군가를 추격하기 위해 발자국을 따라가는 모습에서 '나타나다', '들추다', '밝히다'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그래서 發(발)은 (1)차, 배, 비행기 따위의 출발을 나타내는 접미어 (2)지명(地名)이나 날짜를 나타내는 명사(名詞) 다음에 쓰이어 전신(電信), 전화(電話) 등의 발신의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피다 ②쏘다 ③일어나다 ④떠나다 ⑤나타나다 ⑥드러내다 ⑦밝히다 ⑧들추다 ⑨계발하다 ⑩베풀다(일을 차리어 벌이다, 도와주어서 혜택을 받게 하다) ⑪빠른 발 모양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쏠 사(射), 펼 전(展), 세울 건(建), 창성할 창(昌), 우거질 번(蕃), 성할 성(盛), 설 립(立), 세울 수(竪), 일어날 기(起), 일 흥(興),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붙을 착(着)이다. 용례로는 법령을 공포하거나 명령을 내림을 발령(發令), 증서나 영장 따위를 발행하는 것을 발부(發付), 소식이나 우편이나 전신 등을 보내는 것을 발신(發信), 채권이나 승차권 따위를 발행함을 발권(發券), 움직이기 시작함을 발동(發動), 마음과 힘을 떨쳐 일으킴을 발분(發奮), 총포나 활 따위를 쏨을 발사(發射), 한 상태로부터 더 잘 되고 좋아지는 상태로 일이 옮아가는 과정을 발전(發展), 어떤 일을 생각해 내는 것 또는 그 생각을 발상(發想), 무슨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냄을 발심(發心), 의견을 내놓음이나 무엇을 생각해 냄을 발의(發意), 땅 속에 묻힌 물건을 파냄을 발굴(發掘), 미개지를 개척하여 발전시킴을 개발(開發), 숨겨진 물건을 들추어 냄을 적발(摘發), 길을 떠남 또는 일을 시작하여 나감을 출발(出發), 일이 자주 일어남을 빈발(頻發), 불이 일어나며 갑작스럽게 터짐을 폭발(爆發), 범죄 사실을 신고하여 처벌을 요구하는 행위를 고발(告發), 액체나 고체가 그 표면에서 기화함을 증발(蒸發), 정당하지 못한 일이나 숨기고 있는 일을 들추어 냄을 일컫는 말을 발간적복(發奸摘伏), 죄나 잘못 따위가 없음을 말하여 밝힐 길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발명무로(發明無路), 장차 운이 트일 땅이라는 뜻으로 좋은 묏자리를 일컫는 말을 발복지지(發福之地), 강성해지기 위하여 분발하다는 뜻으로 개인이나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하여 분발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발분도강(發憤圖强), 일을 이루려고 끼니조차 잊고 분발 노력함을 일컫는 말을 발분망식(發憤忘食), 사냥개를 풀어 짐승이 있는 곳을 가리켜 잡게 한다는 뜻으로 시문 따위의 빼어나고 웅대함을 평하는 말을 발종지시(發踪指示) 등에 쓰인다.
▶️ 圖(그림 도)는 ❶회의문자는 図(도)의 본자(本字)이다. 일정한 토지(口)에서 농토를 나누어(啚) 그린 모양에서 '그리다'를 뜻한다. 圖(도)는 영토에서 '지도', '그림을 그리다', 또 '영토를 다스리다', '일을 꾀하다'는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圖자는 '그림'이나 '계산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圖자는 囗(에운담 위)자와 鄙(더러울 비)자의 생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鄙자는 중국의 변방 지역을 뜻하는 글자로 '더럽다'나 '변방 지역'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圖자는 이렇게 변방 지역을 뜻하는 鄙자에 囗자를 더한 것으로 '지도'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圖자는 변방 지역까지 그려진 '지도'라는 뜻이다. 전쟁에 대한 계획이나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지도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圖자에는 '지도'라는 뜻 외에도 '꾀하다'나 '계산하다'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圖(도)는 어떠한 명사(名詞) 밑에 붙어, 그림, 도표(圖表), 도면(圖面)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 ①그림 ②도장(圖章) ③서적(書籍) ④책(冊) ⑤규칙(規則) ⑥그리다 ⑦베끼다 ⑧꾀하다 ⑨대책(對策)과 방법(方法)을 세우다 ⑩꾀하여 손에 넣다 ⑪헤아리다 ⑫계산(計算)하다 ⑬세다 ⑭얻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그림 화(畵), 그림 회(繪)가 있다. 용례로는 앞으로 할 일을 이루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꾀함을 도모(圖謀), 글씨나 그림이나 책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을 도서(圖書), 그림의 형상을 도형(圖形), 모양이나 색채 등을 미적으로 배합하여 장식 기타에 이용하기 위해 그림으로 나타내는 일을 도안(圖案), 그림으로 그린 양식이나 그림으로 나타내는 방식을 도식(圖式), 그림과 도안으로 그림을 그림을 도화(圖畫), 그림으로 그리어 보임을 도시(圖示), 그림으로 그리어 나타낸 표를 도표(圖表), 책임이나 맡은 일을 면하려고 꾀함을 도면(圖免), 무엇을 이루어 보려고 계획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시도(試圖), 하고자 하는 생각이나 계획 또는 무엇을 하려고 꾀하는 것을 의도(意圖),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우거나 그 계획의 실현을 꾀함을 기도(企圖), 한 나라의 영토 또는 어떤 세력이 미치는 영역을 판도(版圖), 원형보다 작게 줄여서 그린 그림을 축도(縮圖), 걸어놓고 보는 학습용의 그림이나 지도를 괘도(掛圖), 간략하게 줄여서 주요한 것만 그린 도면이나 지도를 약도(略圖), 지도나 도면을 보고 그 내용을 해독함을 독도(讀圖), 크나큰 계획을 광도(廣圖), 크고 뛰어난 계획과 포부를 웅도(雄圖), 붕새가 날개를 펴고 남명으로 날아가려고 한다는 뜻으로 큰 사업을 계획하고 웅비를 꾀한다는 말을 도남지익(圖南之翼), 구차스럽게 겨우 목숨만을 보전하며 부질없이 살아감을 이르는 말을 구명도생(苟命圖生), 사람은 제각기 살아갈 방법을 도모함을 이르는 말을 각자도생(各自圖生), 보지 않고도 알 수가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불견시도(不見是圖) 등에 쓰인다.
▶️ 强(강할 강)은 ❶형성문자로 強(강)은 본자(本字), 彊(강), 犟(강)은 동자(同字), 強(강)의 속자(俗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벌레 훼(虫; 뱀이 웅크린 모양, 벌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彊(강)의 생략형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弘(홍, 강)은 활시윗 소리, 크다, 가운데가 넓다의 뜻이다. 强(강)은 본디 바구미의 뜻이었으나 힘이 세다는 뜻의 勍(경) 또는 활이 세다의 뜻의 彊(강) 따위와 섞여 후에 강하다의 뜻으로 쓰게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强자는 '굳세다'나 '강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强자는 弓(활 궁)자와 口(입 구)자, 虫(벌레 충)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强자는 強(강할 강)자의 또 다른 글자로 이전에는 強자가 '강하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強자는 弘(넓을 홍)자와 虫(벌레 충)자가 결합한 것이다. 強자는 이렇게 '크다'나 '넓다'라는 뜻을 가진 弘자에 虫자가 결합한 것으로 강한 생명력을 가졌던 쌀벌레를 뜻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강하다는 뜻만이 남아 '강하다'나 '굳건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强자는 強자의 속자(俗字)였으나 지금은 强자가 '강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强(강)은 (1)일부 명사 앞에 붙어서 썩 세거나 된을 뜻하는 말 (2)넉넉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강하다 ②강하게 하다 ③굳세다 ④힘쓰다 ⑤강제로 하다, 억지로 시키다 ⑥굳다, 단단하다 ⑦거스르다, 순종하지 아니하다 ⑧세차다, 성하다(盛; 기운이나 세력이 한창 왕성하다) ⑨권하다 ⑩힘이 있는 자, 세력이 있는 자 ⑪강궁(強弓: 탄력이 센 활) ⑫포대기(襁) ⑬마흔 살 ⑭태세의 이름 ⑮억지로 ⑯나머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굳셀 강(剛),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약할 약(弱)이다. 용례로는 굳세게 버티어 굽히지 않는다는 강경(强硬), 남의 물건이나 권리를 강제로 빼앗는 강탈(强奪), 힘차게 외치어 의기를 돋움을 강조(强調), 강하게 함을 강화(强化), 억지로 시킴을 강제(强制), 강제로 주장하는 말을 강변(强辯), 강제로 간음함을 강간(强姦), 강제로 행함을 강행(强行), 강하여 어려움에 지지 않거나 잘 견디는 상태를 강인(强靭), 강렬한 정도를 강도(强度), 강제로 요구함을 강요(强要), 강함과 약함을 강약(强弱), 얼굴 가죽이 두껍다는 강안(强顔), 힘찬 활에서 튕겨나온 화살도 마지막에는 힘이 떨어져 비단조차 구멍을 뚫지 못한다는 뜻으로 아무리 강한 힘도 마지막에는 결국 쇠퇴하고 만다는 말을 강노지말(强弩之末), 아주 가까운 일가 친척을 이르는 말을 강근지친(强近之親), 도움을 줄 만한 아주 가까운 친척을 이르는 말을 강근지족(强近之族), 한편은 강하고 한편은 약하여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강약부동(强弱不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굳세고 튼튼함을 일컫는 말을 강고무비(强固無比), 원기왕성한 나이 즉 삼사십대를 이르는 말을 강장지년(强壯之年), 강철이 가는 데는 가을도 봄이라는 뜻으로 다되어 가는 일이 못된 방해자로 인하여 파탄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강철지추(强鐵之秋),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 주장의 조건에 맞도록 함을 이르는 말을 견강부회(牽强附會), 스스로 힘을 쓰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자강불식(自强不息),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힘이란 뜻으로 생존 경쟁의 살벌함을 일컫는 말을 약육강식(弱肉强食)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