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산행구간 : 운림동 증심사 버스종점→약사암→계단 길→ 중간 쉼터(세인봉에서 내려오는 곳) →중머리재→용추삼거리→중봉→중머리재→ 계단이 없는 길 →약사암→ 운림동 증심사 버스종점
o 산행시간 : 09시 40분 ~ 14시 20분(4시간 40분)
지난 달 친구들과 약속하기를 오늘은 친구가족과 함께 산을 오르기로 했던 터라 날씨가 좋기만을 기대했던 터! 중부지방에 머물고 있는 장마비와는 달리 광주지역은 이른 아침에는 날씨가 청명했던 것이다. 구름이 걷힌 파란하늘이 예감이 좋았다.
헌대 아침 8시를 전후하여 소낙비가 내리는데 장난이 아닐 정도로 퍼부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언뜻 언뜻 구름사이로 파란하늘이 보이고, 아파트에서 바라보는 무등산 자락도 흰구름이 빠르게 걷히고 있어 오늘 산행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출발하는 9시경에도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비닐비옷과 우산을 챙겨서 넷째아이와 아내랑 함께 나섰다. 세 아이들은 집에 있겠단다.
기주녀석이 ‘어디쯤 오고 있느냐?’고 전화가 왔다. 만일의 경우 계속 비가 내리면 집으로 되돌아 오든지, 영화를 보든지 해야 할 일이다. 산행이 가능할지 비가 계속 내릴지 알 수 없었으므로 승용차를 가지고 갔다. 9시 30분 증심사버스 종점에 도착하니 기주부부, 상수가 도착해 있고, 고향에선 숙직을 마치고 바삐 병인이가 왔다. 숙직후 집에서 편히 쉬거나 잠을 자야 할 텐 데 함께 해주어서 고마웠다.
시영이는 근무라서, 동은이는 전북 고창 처가에 간대서, 명희는 서울에서 오빠가 온대서, 선희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아이가 온데서 산행을 함께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병오는 만남의 장소인 ‘버스 종점에 일찍 올라왔다’가 비만 흠뻑 맞고 다시 집으로 와버렸다는 것이다. 경문이나 두열이는 참석여부를 알 수 없었다. 옛말에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으니 산행할 마음이 있다면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주부인은 아름답기도 하다. 원래, 오늘은 가족끼리 산행을 하자고 했던 터이므로 가족들과 함께 해야 하는데 기주내외만 부부였고, 상수나 병인이는 홀로였다. 기주부인은 고3, 고2인 아이들이 집에 있겠다고 해서 부부만 왔다는 데 내심 따라오지 않은 아이들에게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아이들이 독립해가는 과정’이라고 하는 것이니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나가는 연습’을 하고 있는 셈이다.
어느새 비는 그쳤다. 산행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10여분 더 기다렸으나 친구들이 더 이상 올 것 같지 않아 9시 40분에 산행을 시작하였다. 우리일행 말고도 손에 비옷이나 우산을 든채 산행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제 산행은 일상사가 된 것 같다.
약사암 입구에 이르러 앞서가던 기주부인이 등산로인 줄 알고 약사암으로 들어선다. 약사암은 무등산 초입에 있는 송광사의 말사인 증심사(證心寺)의 부속 암자다. 지금으로부터 1160년전인 신라시대에 인왕사로 창건했다가 고려 때인 1105년에 ‘약사암’이라 하였다. 1856년, 1905년, 1980년대에 대웅전을 다시 짓는 등 중건을 거쳐왔다.
약사암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운림당(雲林堂)·선원·큰방·요사채 등이 있다.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조성한 석조여래좌상(보물 600) 본존불과 독성탱화·칠성탱화·산신탱화·신중탱화 등의 불화가 있다.
중머리재에 오르니 산등성이를 넘나드는 시원한 바람이 일품이다. 구름은 중봉이상의 높이에서만 머물고, 중머리재 아래는 푸른 초원, 산아래 도시는 비온뒤 청명함 그대로였다. 6살인 넷째아이가 ‘아빠! 왜 중머리재라고 하여요?’ 라고 묻는다.
‘중머리재’란 ‘스님머리 고개’를 말하는 거란다. 이 곳은 땅이 척박하고 바람이 강해서 나무도 풀도 자라지 못하고, 맨 땅이어서 마치 햇빛이 빛날 때는 스님의 머리처럼 반들반들하게 보여서 그렇게 부르는 건대, 옛날 조선시대는 ‘불교를 배척한 나라여서 스님을 속된 말로 중이라고 불렀고, 중의 머리는 반들반들했던 데서 중머리재라고 부른단다.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짓는 넷째아이다.
대체로 ‘재’는 ‘산고개’를 말하는 데, 이런 고개는 나무나 풀이 잘 자라지 못한다. 그 이유는 ‘바람’ 때문이다. 사람이 다니는 길이 있듯이 바람도 다니는 길이 있는 것이다. 산의 협곡이나 고개길은 바람이 넘나드는 바람의 길인 것이다. 바람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풀이든 나무든 자라기가 힘든 것이다.
미당 서정주가 ‘자신의 인생의 7할(70%)은 바람이었다’라고 말하였지만, 우여곡절이 많은 시대상황아래서 ‘불고 불어 닥치는 바람’속에서 잘 익은 된장처럼 내재된 인생의 깊은 맛을 ‘시’로서 풀어낸 훌륭한 시인이지만, 그만큼 ‘바람이란 억센 기운’이었던 것이다.
누구든 무등산을 오르는 산행객들은 이곳 중머리재에서 이마의 땀을 닦아내고, 발아래 펼쳐진 시내를 바라보며, 가슴이 시원해짐을 느껴보는 것이다. 물먹은 산중의 나무들과 풀들은 상큼하기 그지없고, 중머리재를 넘나드는 바람은 ‘산위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이었다. 가슴에 답답함이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산을 올라야 한다. 산을 올라서 가슴이 펑 뚫리는 기쁨을 만끽할 때 가슴속 응어리는 사라지게 되어 있다.
몇걸음을 옮기면 약수터다. 광주시 보건당국에서는 ‘대장균이 많이 검출되었다고 마시기 부적합’이라고 표시해 놓았지만, 약수터에 이르러 어찌 약수 한사발을 들이키지 않으랴! 한사발을 마시고, 게다가 병인이친구가 내놓은 ‘토마토즙’도 맛있게 마셨다.
무등산에서는 세 번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을 만끽할 수가 있다. 중머리재에서 ‘바람을 가슴에 안는 일’이요. 두 번째는 약수터에서 ‘약수 한사발을 들이키는 일이요.’ 세 번째는 중봉이든, 장불재이든, 입석대이든, 서석대이든 잠시 쉬는 그곳에서 ‘등급도 없고(無等), 상서로운(瑞石) 기운’을 내려 받는 일이다.
세상사야 온 천지가 구별과 차별이 분분하고, 가진 자와 못가진자의 반목과 질시가 어지럽고,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볼 썽 사나운 일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지만 무등산(예전에는 서석산이라고 하였다)에서만은 ‘등급도 없고(無等), 상서로운(瑞石) 곳’이려니 무등산의 땅기운을 한 껏 받는 일이란 기쁘기 한량없다.
중봉 가는 길에 소낙비가 내린다. 나무아래 잠깐 비를 피하면서 준비해 두었던 우산을 펴서 소나기를 피했다. 소나기는 이내 그쳐준다. 산을 좋아하는 산사람들을 도와주는게 분명했다.
한편, 용추삼거리에서 중봉 오르는 길은 2주일전만 하더라도 풀들의 키가 작아서 걷는데 불편이 없었는데 오늘 산행길은 훌쩍 자란 풀 때문에 6살 넷째아이가 걷기에는 억새풀, 칡덩쿨, 산딸기의 가시, 원추리의 잎등이 엉키고 설켜 있어서 어린 아이가 걷기에 불편하겠기에 아이를 업어 주었던 것이다.
작년엔가 강원도 오대산(1563m)도 부모와 함께 혼자서 스스로 올랐던 녀석인지라 무등산 중봉(900m) 오르는 일쯤이야 장기로 말하자면 차(車)로 졸(卒)을 치는 것과 같고, 작은 새의 발에 긁혀 나는 피(鳥足之血)에 불과하겠지만 네째아들 키보다 훨씬 더 커버린 풀 때문에 업어 주었던 것이고, 아빠의 등에 엎힌 녀석에게 아빠 친구들이 “호준아 좋아?‘하고 물으니 ’네!‘하고 대답한다.
역시, 무등산 중봉에 오르니 중봉은 중봉답다. 발아래 중머리재는 구름도 없는 밋밋한 풍경이지만 중봉은 흰구름천지인 것이다. 그것도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사라지더니 이내 온통 흰 구름속에 세상이 되었다간 한순간 멀리 내려다보이는 선교리의 취수장만 은빛 호수처럼 빛나기도 한다.
뿐인가? 시속 200km속도로 흰구름이 넘나들다가 이내 정지해선 파란하늘을 선사해준다. 그리곤 무등산 장불재, 화순 만연산의 푸른 초원과 화순, 능주, 고향의 푸른 들판도 보여주고, 대곡리 농공단지, 효산리 마을까지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곤 다시 흰구름속에 우리들은 감싸고만다. 한편의 파노라마인 것이다. 기주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구름과 산의 풍경을 동영상으로 담는다고 디지털사진기를 들고 연신 찍어댄다.
중봉에는 기암괴석이 많고, 편안히 앉을 수 있는 바위가 있다. 여기에 앉아 병인이 친구가 가지고 온 복분자술과 싱싱한 파프리카로 정기를 북돋우고(옛부터 산딸기술을 먹고, 오줌을 누면 요강을 깨뜨릴 정도로 정력이 세진다고 해서 엎어질 복(覆), 요강 분(盆), 자(子)라고 했다), 주선(酒仙)의 경지를 음미해보고,
상수친구가 가지고 온 하수오술은 지리산 깊은 심연속에서 캔 약초로 만든 술로 ‘마시면 흰 머리가 검어질 정도’로 귀하디 귀한 술인줄 안다. 이제 불혹(不惑)을 지나 지천명(地天命)의 나이가 되어가니 친구들의 귀밑머리나 주변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있으니 효험이 있을 줄 안다.
게다가 내가 가지고 간 술은 ‘매취순 금술’이었다. 번쩍거리는 금가루가 들어있는 술을 한잔 한잔 권커니 자커니 마시며, 바람을 가슴에 안고, 오고가는 흰구름을 즐기니 부인들은 선녀요. 친구들은 선남이니 천상의 즐거움이 이와 같았다. 점심은 각자 준비한 밥과 김밥을 펼쳐놓고 함께 맛있게 먹었다.
식후디저트로 기주가 ‘토마토즙’을 내놓아 또 마신다. 토마토가 과일이네 채소네 하고 따질 것은 없다. 오래전 미국 대법원은 수입하는 토마토가 관세문제로 대두하자 토마토가 단맛이 없다고 채소로 분류하여 지금껏 채소로 되었다는 데, 몸에 그렇게 좋은 거라니 많이 먹고 볼 일이다.
중봉에서 중머리재로 내려오는 길은 다소 험하다. 평소에 사람이 다니는 산길은 비올 때는 물 길이 되는지라 비온 후 산길은 패어있어 조심스럽게 내려와야 한다.
내려오는 산길에는 길다란 대궁이 끝에 노란 꽃을 달고 있는 원추리 꽃이 정답고, 주황색 꽃에 까만 반점이 있는 참나리 꽃도 아름답고, 키 큰 풀들속에 작고 가냘퍼 보이는 산패랭이는 연보랏빛 꽃을 피우고 있다. 꽃이 이중으로 피어있는 산수국은 아직도 그대로 피어있고, 향기로 친다면 제일 간다는 싸리나무 꽃은 빗물을 머금고 축 쳐져 있다. 중머리재에 내려와 잠시 숨을 고르고 계속 하산하다.
하산해선 헤어지기가 아쉬워 시원한 맥주 한잔 하자고 운림중학교 부근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이름도 아름다운 ‘노스탤지어’다. 우리들은 ‘향수’라는 이름의 카페에서만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시원한 카프리와 버드와이저로 목을 축이고, 한치로 맛을 곁들이니 상수녀석이 지난 날 향수를 꺼내든다.
도청이 광주에 있던 시절,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마신 술이 과했는지 나는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헛구역질을 하는 데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상황이 되었고, 직접 운전하고 화순 집에 가겠다고 고집하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밤늦은 시간에 상수와 명희가 택시를 잡아 타고 화순 집까지 나를 데려다 준 이야기는 ‘향수’가 아니냔 말이다.
지난날 향수를 안고 카페 ‘노스탤지어’를 나서는 데 병인이와 내가 서로 계산하겠다고 실랑이를 하다가 키가 크고, 산행(山行)으로 다져진 힘이 센 병인친구가 끝내 맥주값을 계산해 버린다. 마음까지도 힘이 센 아름다운 친구다. 다음 무등산 산행은 8월 첫째주 일요일(8월 6일)이다. 산행을 하고 싶은 친구들은 그 때 9시 30분까지 버스종점에 오면 정다운 친구들은 만날 수 있다.
첫댓글산행기를 보노라면 마음이 두둥실 움직여 무등산에 있구먼. 속세에서 쌓인것들 중머리재에서 시원스래 날려버리고 中峰에서 무등산 氣를 받아 心身이 강건해져 행복한 삶되길 바라네...그리고 상수! 머리가 반백이 넘어선 이사람위해 하수오酒 좀 보내올 수 있는가? 내 손꼽아 기다림세.
첫댓글 산행기를 보노라면 마음이 두둥실 움직여 무등산에 있구먼. 속세에서 쌓인것들 중머리재에서 시원스래 날려버리고 中峰에서 무등산 氣를 받아 心身이 강건해져 행복한 삶되길 바라네...그리고 상수! 머리가 반백이 넘어선 이사람위해 하수오酒 좀 보내올 수 있는가? 내 손꼽아 기다림세.
그림...
동진이의 글을 읽고 있노라니 나도 문득 무등산에 가고 싶다~! 산수 좋은 경치와 좋은 친구들이 있기에...
덕례, 순남이 친구 등 언제든 오시게! 환영할 께! 8월은 6일이 아니라 5일 09:00시로 변경하였으니 이해바라네. 상수의 '8월산행 및 보양파티'를 읽어보시면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