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폭력에 지친 그대 '텅후'로 맞서라
부하 직원의 불만, 상사에겐 투정으로 들려
욕 안 먹고 할 말 다 하는 당신이 텅후 高手
웃는 얼굴에 침뱉으랴 한국 속담이 바로 '텅후'의 핵심
타인의 언어 폭력을 되받아치는 게 아니라 적대적 에너지 분쇄해 평화적 해법 찾는 것
익명 뒤에 숨은 악플러 굴복시키려면 당신이 먼저 변하라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는 한국 속담이 있다면서요? 이번 인터뷰를 위해 한국에 대해 공부하다가 그 속담을 보고 무릎을 탁 쳤어요. 그게 바로 '텅후(tongue fu)'의 핵심이거든요! 어쩌면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주제라서 제 책이 인기가 있나 봐요. 하하."
베스트셀러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원제 '텅후')의 저자 샘 혼(Horn) 여사는 인심 좋은 이웃집 아주머니 같았다. 갈색 머리에 넉넉한 풍채를 지녔고 웃을 땐 박장대소했다. 그러면서도 뚜렷한 발음과 힘 있는 목소리로 시종일관 유쾌한 대화 분위기를 주도했다.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그는 "옛날 사람들이 폭력으로부터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쿵후를 배웠듯 현대인은 언어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텅후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텅후는 혀를 뜻하는 '텅(tongue)'과 중국 무술 '쿵후(kung fu)'를 결합해 그가 만든 신조어로 '언어의 무예' 정도로 해석되며, 자신의 책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의 원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은 1997년에 출판됐고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2008년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뒤늦게 히트를 치고 있다. 1월에 처음 10위권 안에 진입하더니 6월 둘째 주와 셋째 주 인터넷 서점 예스24 판매 집계에서 1위를 차지했다. 교보문고 집계에서도 6월 들어 2위에 올랐다.
지난달 27일 미국 워싱턴DC 교외 레스턴의 자택에서 만난 그는 "16년 전에 쓴 책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기에 놀랐다"면서 "한국처럼 빠르게 발전하는 사회일수록 텅후로 방어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사회가 빠르게 발전할수록 대인 관계 스트레스는 커지게 마련입니다. 한국은 특히 인터넷이 매우 발달했고 거의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쓰잖아요. 그것은 곧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사회라는 뜻이죠. 자연히 사람과 소통하며 스트레스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옛날 같으면 그냥 고개를 돌려버리면 그만이었을 문제가 이제는 컴퓨터를 켜거나 스마트폰만 열어도 재발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텅후란 어떤 기술일까?
"쿵후의 목적은 내 몸을 방어하고 상대방의 공격을 분쇄하는 것입니다. 무술을 수련한 사람은 싸움 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남에게 싸움을 걸지 않죠. 텅후도 마찬가지예요. 누군가 나에게 언어적 폭력이나 위해를 가할 때 그 공격을 되받아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적대적 에너지를 분쇄해 평화적 해법을 찾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의 약점을 들추고 괴롭히려 드는 사람에겐 어떤 텅후 기술이 필요한가요?
"도널드 트럼프가 래리 킹 쇼에 출연했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생방송 시작한 지 5분도 안 돼 트럼프가 갑자기 킹의 말을 자르며 '래리, 그런데 누군가 당신의 입 냄새가 아주 심하다고 말해준 적 있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당황한 킹은 마땅히 대꾸하지 못했고 그 후 주도권을 잃었죠. 취미가 고약한 트럼프의 페이스에 말려든 것입니다.
킹이 텅후 기법을 좀 알았다면 현명하게 이 상황을 다뤘을 겁니다. '나는 이미 너의 전술을 알고 있다(Name the Game)' 전략이 좋았을 겁니다. 예를 들어 킹이 한 번 피식 웃고 '아직도 그 버릇 못 고치셨소?' 하고 넘어갔으면 트럼프도 그렇게 의기양양하진 못했을 거예요. 아니면 방송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도에서 좀 더 단도직입적으로 맞설 수도 있었을 겁니다. 킹이 씩 웃으면서 '도널드, 부끄러운 줄 아세요' 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쇼를 진행하는 겁니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하는 겁니다. 남을 괴롭히거나 약점을 들추기 좋아하는 이들은 상대의 페이스가 흔들리기만을 노리고 있어요. 흔들리지 않고 계속해서 그에게 말려들지 않았다는 걸 각인시키는 게 중요해요."
―요즘은 사이버 세계에서 언어 폭력이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텅후는 사이버 세계에서도 적용 가능한가요.
"이번 인터뷰 전에 한국의 사례를 미리 찾아봤는데, 한국에선 유명인들이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자살을 선택했다는 뉴스를 봤어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텅후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선택'입니다. 남들의 도발에 대응할지 무시할지, 대응한다면 어떻게 할지, 대응 수위는 어느 정도로 할지 선택하는 거죠. 악성 댓글에 시달리는 연예인이나 학교에서 사이버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당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악플에 시달리는 유명인을 볼까요. 사이버 공간에서 터무니없는 욕설과 비방을 풀어놓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 겁니다. 악플러는 익명성 뒤에 숨어 힘을 발휘합니다. 재즈 가수 콜렛은 '우리 스스로 만족할수록 남을 억눌러야 할 필요가 줄어든다'고 했어요. 악플러들은 저 높이 단상 위에 올라가 있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보고 스스로 위축됨을 느낍니다. 그러기 때문에 단상을 걷어차고 어떻게든 유명인을 깎아내려 자신이 위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의지를 드러내는 거죠. 그렇다면 유명인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선택 세 가지는 무엇일까요?"
- ▲ 일러스트= 정인성 기자
"선택 1은 '상대를 바꾼다'입니다. 악플러들을 모조리 개과천선 시키거나 존재를 말살해 버린다는 뜻인데 이는 불가능에 가깝죠. 선택 2는 '상황을 바꾼다'입니다. 공식 성명을 발표해 '제발 악플을 자제해 주세요. 저도 상처받는 인간입니다'라고 호소하는 거죠. 이 방법은 일부 동정을 살 수는 있겠지만,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그럼 마지막 선택은? 선택 3, '나를 바꾼다'. 강해지는 것이죠. '세상을 바꿀 수 없으니 내가 바뀌어야겠다'고 마음먹고 행동 패턴을 바꿉니다. 온라인에서 굳이 악플을 찾아 읽는 습관을 버려야죠."
명강사이기도 한 그는 마치 강의를 하듯 말을 이어갔다. "미셸 오바마가 좋은 예입니다. 대선 기간과 정권 초기 그는 온갖 악플에 시달렸어요. 흑인이고 여성이고 덩치가 크다는 점을 놀림감 삼아 악플러들의 표적이 됐죠. 미셸의 반응은? (어깨를 툭툭 털어내는 동작을 하며) 일절 대응하지 않았어요.
18세기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순수하되 현명하게(informed innocence)'란 말을 명심하세요. 나이브해지지 말고 스스로 지식과 경험을 쌓아 무장을 갖춰야 합니다. 순수함을 유지하되, 바보 같지 않은 똑똑한 순수가 필요합니다."
―한국은 유교 전통이 강해 상사에게 자기 의견을 말하지 못해 스트레스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트콤 '프렌즈'에서 여자 주인공 피비는 사고뭉치 남동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친구에게 하소연합니다. 친구가 '이런 얘길 남동생한테 한 적 있어?'하고 묻자 피비는 '당연하지. 마음으로만'이라고 답합니다.
텅후의 품세 제1장이 뭔지 아세요?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기다리지 말라'는 겁니다. 직장에서 당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상사는 세 종류예요. 첫 번째 유형은 자기 때문에 당신이 스트레스 받는 걸 정말로 모르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당신이 스트레스받는 걸 알지만, 그걸 극복하는 것 또한 당신의 책임이라고 믿습니다. 세 번째 유형은 당신이 스트레스받는 걸 알고 그것을 즐깁니다.
이 세 가지 케이스에서 공통분모가 무엇인가요? 당신 자신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상황이 전혀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의 첫 단계는 당신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그럼 상사에게 불만이 있을 때 어떻게 이야기하는 게 좋나요?
"예를 들어 업무가 너무 많아 야근이 잦은 게 문제라면 지난주 당신의 출퇴근 및 업무 시간을 정확히 적어 둔 차트를 보여주세요. 상사가 시킨 일을 처리하는 데 정확히 몇 시간씩 걸렸는지 보여주세요. 또 '오늘까지 끝내야 하는 일이 여러 개 있는데, 어떤 것이 최우선이고, 어떤 것을 내일로 미뤄도 되는지 알려주세요' 하고 물어 보세요. 절대로 '일이 너무 많아요' 하고 투정부리지 마세요.
윗사람들은 매우 어려운 시절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올랐어요. 젊은 부하 직원이 불만을 얘기하면 윗사람에겐 투정하는 것으로 보여요. 그런 상사의 관점을 선점하는 전략이 효과가 있습니다. '저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 이런 좋은 회사를 다닐 수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이 말을 함으로써 당신은 대화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어요. 이제 상사는 당신에게 '요즘 젊은 친구들은 복에 겨웠다'는 식의 반격을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본론을 얘기하세요. '사람 수도 적은 우리 부서가 지난 몇 달간 회사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업무량을 소화했습니다. 그래도 최소한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제 딸과 저녁을 먹고 싶습니다. 이에 대해 부장님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이제 상사는 '사실 별것 아닌 부탁인데 안 들어주면 내가 심한 거겠지'란 생각이 들 겁니다."
―윗사람을 위한 텅후 조언은 뭐가 있을까요?
"일을 지시할 때 '오늘 안으로 제출하라'는 명령식보단 '오늘 안으로 할 수 있지?' 하고 부드럽게 물어보세요. 상황이 급박하다면 기한이나 단서를 달아 주세요. '내일 아침 8시에 곧바로 발표 시작이니까 오늘 안으로 끝낼 수 있지?'라고 말하면 부드러우면서도 아주 명확한 지시가 됩니다.
부하를 질책할 때는 '~했어야지'라는 표현을 피하세요. '지각할 것 같으면 전화했어야지!' '결정하기 전에 물어봤어야지!' 이런 문장은 말의 톤에서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고 짜증을 부릅니다. 부하는 자기가 잘못했어도 '이미 지나간 일을 지금 와서 어쩌라는 거야' 하며 반감을 갖지요. '~했어야지' 대신 미래 지향적 단어 '다음부턴~'을 쓰도록 하세요. '다음부턴 미리 전화를 주세요.' 이 한마디로 상사는 비판자에서 조언자로 바뀝니다."
세상에 까다로운 사람을 상대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는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주는 여러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다음은 샘 혼 여사가 제시하는 해결책이다.
손님이 까다로운 요구를 계속할 때
최근 한 기업 임원이 승무원을 폭행한 '라면 상무 사건'에 대해 혼은 책에서 소개한 '유머 전략'을 승무원이 썼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까다로운 승객은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자마자 뱉어내고는 승무원을 불러 "샌드위치가 엉망이야!"하고 소리쳤다. 승무원은 침착하게 승객과 샌드위치를 번갈아 바라보고는 샌드위치에 손가락질을 하며 더 크게 소리 질렀다. "이 나쁜 샌드위치 같으니라고!" 주변의 승객들 모두 웃음이 터졌다. 까다로운 남자조차 따라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승무원은 25년 경력의 베테랑으로 "오랜 승무원 경험에서 터득한 것"이라고 했다.
상대가 계속 고집을 부릴 때샘 혼 여사가 중요한 미팅 전날 호텔에서 꼭 복사기를 써야 할 상황이 발생했는데, 호텔 직원이 "외부인은 복사기를 이용할 수 없다"고 버텼다. 반드시 복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혼은 복사기를 조심해서 다루고, 사용료도 내겠다고 부탁했다. 그러나 직원은 막무가내였다. 혼은 침묵 전략을 동원했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한 후 입을 다물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직원도 당황했다. 그제서야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마침내 직원은 "좋습니다. 다만 조심해서 다뤄주세요"라고 말했다.
누군가 나를 도발하려 들 때"무슨 뜻이지요?" 하고 되묻는 전략이 유용하다. 무엇보다 시간을 벌어줌으로써 당신의 분노를 지연시키고 공격에 즉각 대항하지 않게 도와준다. 또 상대에게 다시 공을 넘겨 상대의 의중을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온종일 직장에서 힘들게 일한 후 집에 돌아왔다. 어서 푹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런데 아내가 잔뜩 부어 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우린 이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않는군요"라는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온다. 이럴 때 "바로 지난주에도 함께 외출했잖아"라고 하면 문제가 더 커진다. "여보, 왜 그렇게 말하는 거야?"라고 물어보라.
상대가 민감한 질문을 할 때아이가 없는 30대 중반 부부는 어딜 가든 "아이 언제 낳을 거냐"는 질문에 넌더리가 났다. 워크숍에 참여한 부부에게 샘 혼 여사는 모범 답안 여럿을 제안했고, 부부는 "우리도 뭔가 빠뜨렸다는 건 알아요"라는 답변을 선택했다. 놀림을 피할 수 없다면 상대와 한 패가 돼 스스로 먼저 나서서 유머로 대처하는 것도 방법이다.
키가 212㎝나 되는 어떤 남자는 '아니요, 전 농구선수가 아닙니다'란 말이 쓰여진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티셔츠 뒤엔 '그런데, 당신은 왜 그렇게 키가 작지요?'라는 질문이 쓰여 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티셔츠는 '제 키는 212㎝이고 이 위쪽은 공기가 아주 맑습니다'라고 쓰여진 것이다.
부담스러운 부탁을 거절할 때술집에서 일하는 바텐더는 술을 달라고 요구하는 미성년자들 때문에 골치였다. 바텐더는 텅후 워크숍에서 배운 대로 "설마 제가 법규 위반으로 실직되길 바라시는 건 아니죠?"하고 반문했다. 미성년자들은 무안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반문을 받는 순간 상대의 입장을 잠깐이나마 헤아리게 된다. 뇌물을 건네는 사람들 때문에 골치 아파 했던 경찰관은 "설마 미합중국 경찰관을 매수하려는 건 아니죠?"하고 반문했다.
샘 혼 여사는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이자 작가. 자기 자신을 ‘호기심 전문가(intrigue expert)’라고 소개한다. 캘리포니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하와이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다루기 힘든 사람들’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