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 둑방길 건너편
오월 초순 연휴가 끝난 월요일이다. 연휴 내내 비가 와 바깥나들이를 계획한 집에서는 갑갑하게 보냈지 싶다. 그런 가운데 내 주변에서 안타까운 부음이 연이어 왔다. 울산 대학 동기 아내는 부군이 정성을 다한 간병 보람도 없이 생을 마쳤다. 고인은 나와도 같은 학번 동기라 빗길에 문상을 다녀왔다. 어제는 양미재로 올라 벌깨덩굴을 뜯어 무학상가에서 친구와 전을 부쳐 먹었다.
연일 내렸던 비로 미세먼지와 송홧가루를 씻어 대기는 무척 깨끗했다. 맑게 드러난 하늘에 신록의 가로수는 녹음을 드리워 갈 정도로 무성했다. 혼자 나서는 산행이나 산책에 익숙한데 올봄 들어 지기들과 동행하는 날도 가끔 있다. 그들과 동선을 같이 하려고 창원역 근처에서 두 지기를 만나 행선지를 물색했다. 근교로 차를 몰아가 함안 법수 악양 둑방길을 걷고 꽃을 보기로 했다.
서마산에서 국도를 따라 신당고개를 넘어 가야읍에서 의령 정곡으로 가는 지방도를 달렸다. 함안은 창원과 인접하지만 내 고향 의령과는 더 가까워 주변 산천이 익숙했다. 조선 중기 학자로 더 알려진 한강 정구가 고을 원님으로 머물다 간 적 있었다. 그는 북쪽은 남강이 흘러 지대가 낮고 남쪽은 낙남정맥이 우뚝해 거기로 배가 뜨도록 여항이라는 지명을 붙였다는 설도 전해 왔다.
가야읍에서 법수 악양으로 가는 들판은 광대무변하였다. 일모작 벼농사 지대는 추수 이후 뒷그루 비닐하우스 농사에 더 심혈을 기울였다. 겨울을 넘긴 시설 채소단지에는 주로 수박 농사였지만 파프리카나 멜론과 같은 고소득 특용 작물을 가꾸는 농가도 있었다. 우리는 악양루가 비켜 보이는 언덕을 넘어 악양 생태공원으로 갔더니 이즈음 눈길을 끄는 꽃은 볼 수 없어 차를 돌렸다.
함안 지리에 밝은 운전자는 악양 둑방길의 상징물이 되다시피한 빨간 풍차가 보이는 둑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연휴 이후 주초 평일임에도 관광 전세버스가 보여 외부로 알려진 꽃단지인가 싶었다. 우리는 느긋한 발걸음으로 돌지 않은 풍차가 세워진 둑방으로 향하니 늦은 봄을 장식하는 화사한 꽃이 반겨주었다. 악양 꽃밭은 거기까지였고 둑 너머 둔치는 녹색 향연만 펼쳤다.
꽃양귀비와 수레국화는 뒤늦게 잎줄기를 불려가는 둔치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쉼터 의자를 대신한 자연석 더미에 걸터앉아 가져간 간식과 커피를 들면서 환담을 나누었다. 당국에서 신경 써서 관리하는 생태공원이지만 외지에서 찾아간 이들에게는 아직 미흡한 면도 있었다. 우리와 같은 시간대 악양을 찾은 단체 관광객은 제주도에서 온 노인들이었는데 적잖이 실망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하루 여정에서 차수를 변경하는 여정으로 들었다. 남강 하류로 가로지른 백곡교를 건너니 ‘호암이병철로’였다. 삼성 그룹을 창시한 이병철 생가로 가는 길이라 도로명을 그렇게 붙인 듯했다. 지기는 호암 생가와 방향이 다른 적곡마을 앞에 원호를 그린 제방을 따라 차를 몰았다. 둑길 정자 근처 차를 세우고 악양루가 건너다 보이는 곳까지 걸어가 강변 풍광을 완상했다.
적곡제는 농로를 겸해 자동차도 다닐 수 있었다. 나는 지난해 봄과 올겨울 함안 대산에서 법수를 거쳐 가야로 트레킹을 했기에 현지 사정이 훤했다. 우리는 두 번째 정자에 올라 지기가 정성 들여 준비한 야외 현장 특식을 먹었는데 나는 맑은 술도 두어 잔 곁들였다. 식후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는 정자에서 아직 창작 열기가 뜨거운 지기로부터 지역 문단 이면사 일부를 알기도 했다.
정자 쉼터를 정리해 놓고 밝은 햇살을 쬐며 둑길을 걸어 악양루가 건너다 보인 곳까지 거슬러 올랐다가 차를 세워둔 데로 되돌아왔다. 벼랑길 따라 지정면 송도교를 건너니 함안 대산 구혜 한국전쟁 경찰승전기념탑은 보수 중이라 먼발치서 선열을 기렸다. 남지 철교 다리목에서 칠서 칠북에서 창녕함안보를 비켜 북면 하천 들꽃 카페에서 야생화를 둘러보고 자몽주스를 맛보고 왔다. 23.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