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뜻하지 않게 공수되어온 Fighting Techniques of the Medieval World 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만 좋고 믿을만한 책 같기는 한데 읽다가 몇가지 의문점이 드는군요
일단 삽화 설명에 작게 끼여있는 것 뿐이지만 "훈족은 등자가 없었다" 라는 말이 있군요. 뭐, 등자의 탄생과 도입에 관해 여러가지 설이 있다는 건 알지만 이건 좀 당혹스럽습니다 ㅇㅅㅇ;
정말 훈족이 등자를 사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나요? 아니라면 증거물이 무엇인지요.
또 다른 질문은 등자와 Couched Lance (겨드랑이에 랜스끼기)로 인한 "기마충격전술" 에 관한 겁니다. 이 책은 이 둘간의 연관성에 관해 무슨말을 하고 싶은건지...
"등자 도입 전에는 기마 충격전술이 불가능했다" 라고 써놓더니만 "기술과 테크닉이 같이간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면서 충격전술 발명시기에 관한 여러 학자들의 의견을 잠깐 보여주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기병의 차징시 작용되는 힘은 횡력이라 기마충격전술은 등자보다는 주로 안장의 형태에 더 영향을 많이 받으며 고로 고대에도 Couched Lance 를 이용한 충격전술이 스탠다드로 퍼지지는 않았어도 일부 기마병들에 의해 사용되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 헤타이로이, 테살리안, 파르티아와 사르마티아의 카탁 등)
그리고 독일 ZDF방송국에 방영되어 책으로 나온 '역사의 비밀' 1권에서 보면 훈족은 안장과 함께 등자를 갖추고 있었다고 나옵니다. 그러나 훈족의 '등자'는 발을 받쳐주는 가죽 밴드나 아마로 된 일종의 발주머니 같은 정도여서 나무나 쇠로 된 오늘날 같은 등자와는 거리가 있죠. 물론 훈족은 어릴때부터 승마에 익숙한 유목민이기 때문에 등자의 불안정함을 상당 부분 극복했습니다.
등자라는 물건이 참 간단하게 생겼는데도.. 늦게 나온걸 보면..나름대로 안장만 단 상태에서도 그럭저럭 효율적인 기마가 가능했던 모양입니다.. 몽골의 12세정도 되는 애들도 안장없이 적정 속도로 달리고 안장만 있는 상태에서도 전속 질주를 하더군요.어떤게 보면 등자라는 물건이 좀더 말타는 법을 빨리 익히기 위해 고안된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듭니다.장거리 행군시 다리가 힘든 부분도 수정해 주는 점도 있고.
전투라는 측면에서도..말 위에서 투창을 쓴다면..나름대로 뱃심이나 몸이 고정되 있는 상태에서 물건을 날려야 날아가는 법인데..등자 없이도 이걸 해냈다는걸 보면.. 창의 길이가 길지 않다면 기창돌격이란 것이 어려울것 같지만은.. 중세 기사들의 방식이 너무도 극명하게 치우쳐 있어 그런것 같네요.사실 그건 기병의 가치를 많이 상실한 것일수도 있는데..
알렉산더 대왕의 컴패니언 기병대가 돌격전을 했다고는 하지만, 등자가 없는 관계로 창을 찌르기 직전에 창을 놓는 방식을 채택했고 중세 기사들의 돌격에 비한다면 미약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컴패니언 기병대도 제대로 형성된 중보병의 전열을 정면으로 돌격한 것이 아니라 주로 전열간에 벌어진 틈으로 돌격하거나 경보병대에 돌격을 감행했기 때문에 중세 기사들의 돌격보다는 약합니다.
컴패니언 기병대뿐만 아니라 중동의 카타플락타이나 동유럽의 사르마티아 중기병, 로마제국 후반기의 중기병대도 돌격전을 시행했지만, 이들의 기마돌격도 중세 기사의 돌격전에 비한다면 훨씬 미약한 수준이었습니다. 지나친 중무장으로 인해 돌격속도가 매우 느렸고 양손으로 창을 조작하는 방식의 전투법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중세 기사들이 창을 겨드랑이에 낀 챈 전속력으로 돌진하여 충돌하는 방식과는 확연하게 다른 방법입니다. 즉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로 접근하여 양손으로 창을 휘둘러 싸우는 방식인 것입니다.
고대의 기병 돌격에 관한 다른 예를 들자면 탑수스 전투에서 카이사르의 기병대는 적 보병 전열을 정면으로 돌파하지 못했습니다. (로마인 이야기에서는 그렇게 주장하고 있지만...) 범우사에서 번역되어 나온 내전기에 따르면 카이사르의 기병대는 양측면에 배치되었고 전투의 승패는 보병의 돌파로 결정되었다고 확실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궁금한건 등자가 기마충격전 가능 유무를 정할 정도로 안장보다 영향이 큰 장비냐 이지요 ㅇㅅㅇ 그리고 고대 랜서들이 충격전에 손에서 창을 놓았다는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 같습니다. 물론 중세때에 지속적으로 개량 발전되어온 충격 스탠스나 기술보다는 뒤떨어지겠지만 그래도 고대 기병돌격 기록들을 보면 확연한 충격 효과를 가지기는 했던 것 같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고대 기병들은 여러 주화에 나오는것 같이 보통 겨드랑이가 아닌 옆구리나 힙쪽에 랜스를 "Couch" 한 것 같습니다 ㅇㅅㅇ ...에... 이거 끝이 안나겠네요; 학계에서도 완벽히 결론난것도 아니라 하고 (들은말) 그냥 이런저런 의견이 있다는 걸로 하고 끝내지요.
근데 진짜 이상적인 기병은 중세의 정면돌격이 아니라 캠패니언들 처럼 좌우 협공이나 추격에 있다는것 아니겠습니까? 예전부터 정면돌격으로 나가려는 기병치고 온전히 살아남는 기병은 없죠.네도 그랬고.더구나 렌스를 쓰는 중세의 기병도 렌스가 한번 밖히면 실상 그 한번의 차징으로 렌스는 거의 사용할 일이 없었다는건데
예전에 영국에 가서 리인액트 체험한 분이 쓰셨던( 다크나이트라는 분 아실겁니다)그분 글 보면 리인액트에 참여하던 영국의 교수가 말해주길 어떤식으로 보면 기사라는 것도 동양의 가미카제와 같다는 식으로 말합니다.기병 일열은 생명 보장이안된다는 거죠.사실 기사가 가장 먼저 전장환경에서 사라진것도 그런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등자가 없어서 기창돌격이 안된다고 하더라도 중형 무기를 다뤄야 하는 필요성을 못느꼈기에 그토록 오랫동안 등자가 발명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낙마 방지는 중동의 4각(角) 안장이나 Pommel 과 Cantel 부분이 높아진 안장의 유무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엄청 높아지지요. 등자는 추가적인 안정성을 주는 것 이외에 근접전 능력 향상 (지지대이니...), 기병 양성 시간 단축 등에 더 메리트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등자 무용론이 아니라 등자가 ㅡ필수적ㅡ이냐에 대한 논쟁이랄까요. 직접 등자떼고 카우치드 랜스로 차징을 성공시키던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물론 고대 기병의 차징이 중세보다 강하다는게 아니라 린 화이트가 ㅡ중세기술과 사회변화ㅡ에 서술했던것처럼, 충격전술에 등자란놈이 꼭 필요하냐ㅡ라는게 문제지요
첫댓글 등자가 도입되기 전까지 기병들의 임무는 패잔병 추격이나 화살이나 투창을 던지는 산병전이었습니다. 중세 기사들처럼 옆구리에 랜스를 끼고 전속력으로 돌진하는 충격전은 거의 불가능했지요.
그렇게만 말하기에는 고대 기병들이 보여주는 충격 효과가 상당히 크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리고 독일 ZDF방송국에 방영되어 책으로 나온 '역사의 비밀' 1권에서 보면 훈족은 안장과 함께 등자를 갖추고 있었다고 나옵니다. 그러나 훈족의 '등자'는 발을 받쳐주는 가죽 밴드나 아마로 된 일종의 발주머니 같은 정도여서 나무나 쇠로 된 오늘날 같은 등자와는 거리가 있죠. 물론 훈족은 어릴때부터 승마에 익숙한 유목민이기 때문에 등자의 불안정함을 상당 부분 극복했습니다.
나무나 쇠로 된 등자는 훈족의 시대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5세기 중엽에나 유럽에 등장했습니다. 동양에서는 332년 무렵에 등자가 도입되었습니다.
등자라는 물건이 참 간단하게 생겼는데도.. 늦게 나온걸 보면..나름대로 안장만 단 상태에서도 그럭저럭 효율적인 기마가 가능했던 모양입니다.. 몽골의 12세정도 되는 애들도 안장없이 적정 속도로 달리고 안장만 있는 상태에서도 전속 질주를 하더군요.어떤게 보면 등자라는 물건이 좀더 말타는 법을 빨리 익히기 위해 고안된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듭니다.장거리 행군시 다리가 힘든 부분도 수정해 주는 점도 있고.
전투라는 측면에서도..말 위에서 투창을 쓴다면..나름대로 뱃심이나 몸이 고정되 있는 상태에서 물건을 날려야 날아가는 법인데..등자 없이도 이걸 해냈다는걸 보면.. 창의 길이가 길지 않다면 기창돌격이란 것이 어려울것 같지만은.. 중세 기사들의 방식이 너무도 극명하게 치우쳐 있어 그런것 같네요.사실 그건 기병의 가치를 많이 상실한 것일수도 있는데..
역갤에 문의해 보았는데 무소득이더군요ㅡㅅㅡ 그래도 멘엣암즈 쯤되는 것에서도 아무 이유없이 차징과 밀리에 대해 다르게 쓰지는않았을 테니...
알렉산더 대왕의 컴패니언 기병대가 돌격전을 했다고는 하지만, 등자가 없는 관계로 창을 찌르기 직전에 창을 놓는 방식을 채택했고 중세 기사들의 돌격에 비한다면 미약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컴패니언 기병대도 제대로 형성된 중보병의 전열을 정면으로 돌격한 것이 아니라 주로 전열간에 벌어진 틈으로 돌격하거나 경보병대에 돌격을 감행했기 때문에 중세 기사들의 돌격보다는 약합니다.
컴패니언 기병대뿐만 아니라 중동의 카타플락타이나 동유럽의 사르마티아 중기병, 로마제국 후반기의 중기병대도 돌격전을 시행했지만, 이들의 기마돌격도 중세 기사의 돌격전에 비한다면 훨씬 미약한 수준이었습니다. 지나친 중무장으로 인해 돌격속도가 매우 느렸고 양손으로 창을 조작하는 방식의 전투법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중세 기사들이 창을 겨드랑이에 낀 챈 전속력으로 돌진하여 충돌하는 방식과는 확연하게 다른 방법입니다. 즉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로 접근하여 양손으로 창을 휘둘러 싸우는 방식인 것입니다.
고대의 기병 돌격에 관한 다른 예를 들자면 탑수스 전투에서 카이사르의 기병대는 적 보병 전열을 정면으로 돌파하지 못했습니다. (로마인 이야기에서는 그렇게 주장하고 있지만...) 범우사에서 번역되어 나온 내전기에 따르면 카이사르의 기병대는 양측면에 배치되었고 전투의 승패는 보병의 돌파로 결정되었다고 확실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상, 위의 세 가지 댓글은 역사속의 전쟁사 카페에서 '중립지대'님의 의견을 참조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양해 드립니다.
궁금한건 등자가 기마충격전 가능 유무를 정할 정도로 안장보다 영향이 큰 장비냐 이지요 ㅇㅅㅇ 그리고 고대 랜서들이 충격전에 손에서 창을 놓았다는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 같습니다. 물론 중세때에 지속적으로 개량 발전되어온 충격 스탠스나 기술보다는 뒤떨어지겠지만 그래도 고대 기병돌격 기록들을 보면 확연한 충격 효과를 가지기는 했던 것 같습니다.
또 규율잡힌 중보병 정면돌파가 무리인것은 차징만 전문적으로 발달시킨 중세 기사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제 생각으로는 고대 기병들은 여러 주화에 나오는것 같이 보통 겨드랑이가 아닌 옆구리나 힙쪽에 랜스를 "Couch" 한 것 같습니다 ㅇㅅㅇ ...에... 이거 끝이 안나겠네요; 학계에서도 완벽히 결론난것도 아니라 하고 (들은말) 그냥 이런저런 의견이 있다는 걸로 하고 끝내지요.
근데 진짜 이상적인 기병은 중세의 정면돌격이 아니라 캠패니언들 처럼 좌우 협공이나 추격에 있다는것 아니겠습니까? 예전부터 정면돌격으로 나가려는 기병치고 온전히 살아남는 기병은 없죠.네도 그랬고.더구나 렌스를 쓰는 중세의 기병도 렌스가 한번 밖히면 실상 그 한번의 차징으로 렌스는 거의 사용할 일이 없었다는건데
예전에 영국에 가서 리인액트 체험한 분이 쓰셨던( 다크나이트라는 분 아실겁니다)그분 글 보면 리인액트에 참여하던 영국의 교수가 말해주길 어떤식으로 보면 기사라는 것도 동양의 가미카제와 같다는 식으로 말합니다.기병 일열은 생명 보장이안된다는 거죠.사실 기사가 가장 먼저 전장환경에서 사라진것도 그런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등자가 없어서 기창돌격이 안된다고 하더라도 중형 무기를 다뤄야 하는 필요성을 못느꼈기에 그토록 오랫동안 등자가 발명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등자가 없는 상황에서 적을 창으로 찌르면 그 충격을 기수가 고스란히 받기 때문에 낙마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등자가 도입되고 나서 왜 기병들의 전투력이 향상되었겠습니까? 말 위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죠.
낙마 방지는 중동의 4각(角) 안장이나 Pommel 과 Cantel 부분이 높아진 안장의 유무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엄청 높아지지요. 등자는 추가적인 안정성을 주는 것 이외에 근접전 능력 향상 (지지대이니...), 기병 양성 시간 단축 등에 더 메리트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행군문제도 있는데 다리가 아무것도 받치지 못해서 보병만큼은 아니어도 기병도 다리가 무지하게 아프다고 합니다. 이런걸 해소해 주는 문제 역시도 상당히 큰 부분이고.
음, 제가 논하고 싶은것은 "등자 무용론" 이 아니고 "등자, 안장, 기창돌격" 간의 관계입니다 ㅇㅅㅇ 등자 좋지요 ㅇㅂㅇ)/
등자 무용론이 아니라 등자가 ㅡ필수적ㅡ이냐에 대한 논쟁이랄까요. 직접 등자떼고 카우치드 랜스로 차징을 성공시키던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물론 고대 기병의 차징이 중세보다 강하다는게 아니라 린 화이트가 ㅡ중세기술과 사회변화ㅡ에 서술했던것처럼, 충격전술에 등자란놈이 꼭 필요하냐ㅡ라는게 문제지요
http://www.classicalfencing.com/articles/shock.php ...알고보니 안장도 떼고 해봤었더군요 ㅡㅁ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