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구입하려고 사양표를 보면 AP(Application Processor)라는 말이 눈에 띈다. 그냥 쉽게 생각하면 데스크톱PC나 노트북으로 따지면 CPU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조금 자세하게 따지면 차이가 있다.
AP, 모바일 시대를 대표하는 새로운 이 두뇌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구동에 필요한 운영체제와 애플리케이션 운영을 위한 CPU, 시스템 장치와 인터페이스를 컨트롤하는 칩셋 등을 하나로 묶은 SoC(System-On-Chip)를 뜻한다.
쉽게 따져보자면 PC에서 CPU와 메인보드를 합친 게 AP라고 할 수 있다. 내부에는 CPU와 메모리나 디스플레이 컨트롤러, 멀티미디어 코덱이나 3D 가속 엔진, 이미지 처리 프로세서, 카메라와 오디오, 모뎀이나 연결 인터페이스 등을 망라한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AP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는 걸 알 수 있다. 삼성전자나 퀄컴, 엔비디아,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 AP를 생산하는 업체는 많다. 제조사가 만든 AP는 구성에 따라 성능에 차이가 있지만 시중에 나온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은 8할 이상이 ARM 코어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 AP 성능을 이해하려면 먼저 ARM 아키텍처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ARM 세대만 확인하면 성능 보인다
ARM(Advanced RISC Machines)은 임베디드 기기에서 주로 쓰이는 RISC 프로세서 설계를 지배하고 있는 곳이다. ARM은 직접 칩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아키텍처를 설계해 이를 라이선스로 판매하는 수익 모델을 갖고 있다. 디자인만 하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선보인 엑시노스나 퀄컴의 스냅드래곤 같은 것도 모두 ARM 디자인을 라이선스로 가져와서 만든 것이다. 전 세계에서 ARM과 계약을 맺고 디자인을 가져오는 곳은 300여 개가 넘는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대부분이 ARM 계열이라는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조사별 AP 표를 보면 CPU라고 표시된 곳에 ARM11 혹은 ARM 코어텍스(Cortex) 식으로 표기되어 있는 게 있다. 이들은 모두 ARM 디자인을 취한 것이다. 여기에서 요즘 쓰이는 건 코어텍스다. 코어텍스의 코어는 다시 코어텍스-A8과 A9, A12, A15, R4, M3, M1 등 다양하게 나뉜다. 아키텍처에 표시되어 있는 ARMv7이나 ARMv8 같은 건 아키텍처 버전을 뜻한다.
그냥 간단하게 보자면 코어텍스-A7 같은 건 성능보다는 가격에 초점을 맞춘 저가형, 코어텍스-A9는 중급 정도, A15는 고급형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요즘 자주 언급되는 코어텍스-A50 시리즈, 그러니까 A53이나 A57 같은 건 차기 모델이다. 이들 제품은 32비트와 64비트 프로세싱 기술을 채택한 것이다. A53은 전력사용량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고 A57은 성능을 기존 제품보다 3배 이상 높이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AP 사양표를 보다 보면 코어텍스 A15+A7 식으로 다른 계열을 함께 쓴 AP도 눈에 띈다. 빅리틀(Big.LITTLE)이라는 기술을 이용한 것이다. 평소에는 저전력 위주인 A7 계열 프로세서만 쓰다가 성능 위주가 필요한 부분에는 A15를 쓰는 식이다.
<▲ 애플 A7>
표에서 삼성전자가 선보인 엑시노스 5 옥타 모델의 경우 코어텍스 A15와 A7을 각각 4개씩 모두 8개 코어를 지원한다. 코어가 8개인 옥타코어라는 얘기다. 하지만 빅리틀은 한꺼번에 코어 8개를 쓰는 게 아니라 평상시와 과부하 2가지로 나눠 쿼드코어씩 움직인다.
AP를 고를 때에는 ARM 아키텍처 계열만 봐도 이 AP가 저전력에 초점을 맞췄는지 혹은 고성능용인지 알 수 있다. 또 같은 조건에선 제조공정이 미세화되어 있는 게 더 좋다. 참고로 요즘 나오는 AP는 대부분 28nm를 이용한다. 애플이 하반기에 선보일 예정인 아이폰6용 프로세서인 A8의 경우 외신에선 20nm를 쓸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제조공정이 미세화되면 같은 공간에 더 많은 집적도를 기대할 수 있고 전력 소모나 크기 등에서도 모두 유리하다.
보통 AP를 볼 때 동작클록만 보는 경우가 많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ARM의 어떤 계열인지, 코어 수는 몇 개인지, 제조공정은 어떤 것이냐다. GPU의 경우에는 제조사마다 선택이 다르지만 보통 코어텍스 A7 같은 저가형에 고급형 GPU를 택하는 경우는 없다. 이것 역시 ARM 아키텍처 계열만 확인해도 성능은 어림짐작할 수 있는 셈이다.
물론 다른 체크 포인트도 있다. 삼성전자나 미디어텍, 엔비디아 등을 보면 모두 ARM 계열 표시가 있지만 퀄컴이나 애플 일부 모델 등에는 조금 다른 표기가 보일 것이다.
퀄컴 역시 ARM으로부터 라이선스를 받긴 한다. 하지만 다른 회사처럼 코어텍스 프로세서에 대한 설계도 전체를 받는 게 아니라 명령어 세트만 라이선스한 다음 직접 설계한다. 여기에 붙인 이름이 크레이트(Krait) 같은 것이다. ARM 기반의 장점은 취하면서도 독자 설계를 곁들여 차별화나 경쟁력 강화를 한 것이다. 애플 같은 경우에도 ARM 코어텍스-A9와 A15를 혼합해 설계한 스위프트(Swift) 아키텍처나 자체 설계해 만든 64비트 모델인 A7에는 싸이클론(Cyclone) 아키텍처를 썼다.
<▲ AP 사양표 : 표를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내년부터는 64비트 시장
SoC에서 이용하는 성능 지표 가운데 하나는 DMIPS(Dhrystone Million Instructions Per Second)다. 코어텍스 계열의 성능이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면 간단하게 DMIPS로 보면 코어텍스-A7은 1.9DMIPS/MHz다. 반면 코어텍스-A9는 2.5DMIPS/MHz, 코어텍스-A12는 2.96DMIPS/MHz, 코어텍스-A15는 3.5DMIPS/MHz다. 수치상 차이를 봤을 때 이 정도 성능 격차가 벌어진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그렇다면 시중에서 태블릿 같은 제품을 고를 때 AP는 어떤 식으로 선택하면 좋을까. 단순하게 보자면 10만원대 혹은 이하 모델은 거의 대부분 코어텍스-A7 계열이다. 이걸 기준으로 보면 20만원대 이상이라면 최소한 코어텍스-A9는 되어야 말이 좀 된다.
반대로 20만원 이하 모델인 코어텍스-A9가 들어갔다면 상대적으로 성능이 더 좋을 것으로 생각하면 쉽다. 코어텍스-A15가 들어간 경우는 30만원대는 넘는 모델인 경우가 많다. 다만 30만원대 이하 모델이라면 AP 성능도 중요하지만 배터리가 빈약한 경우가 많은 만큼 배터리와 함께 따져보는 게 좋다.
AP의 사양상 조건으로만 보자면 퀄컴처럼 통신칩이 함께 들어간 제품은 예외라고 해도 무방하다. 스마트폰 계열에선 통신칩을 포함해 독주를 하고 있는 만큼 여러 AP 중 고민할 만한 분야는 사실상 태블릿 쪽이 유일하다.
어쨌든 스마트폰 쪽이라면 최신 모델은 적어도 스냅드래곤 800 이상이다. 갤럭시S5나 LG G3 같은 모델이 스냅드래곤 801을 채택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표를 보면 알 수 있듯 스냅드래곤 808 이상에선 제조공정은 물론 아키텍처 설계, 명령어세트 모두 큰 폭에서 변화가 생긴다는 점은 미리 체크해둘 필요가 있다. 지금 당장이라면 모르겠지만 올해 9∼10월 하반기 나올 모델에서 어정쩡한 AP를 선택하는 것보다는 내년 상반기 아예 바뀔 이들 AP가 들어간 스마트폰을 사는 게 좋다는 얘기다.
<▲ 퀄컴 스냅드래곤>
삼성전자의 엑시노스가 들어간 태블릿 모델은 대부분 삼성전자 쪽 생산 물량에 있다. 별다른 선택의 폭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애플 프로세서 역시 마찬가지다.
엔비디아의 경우 테그라K1 모델에 눈길을 주는 게 좋을 듯하다. 테그라K1은 코어텍스-A15 계열 쿼드코어에 최대 클록 2.3GHz 등 인상적인 성능을 갖췄다. 하반기 선보일 예정인 테그라K1 덴버는 64비트 모델이다. 안드로이드 시장이 64비트에 접어들 것으로 보이는 만큼 주목할 만한 태블릿용 AP가 될 수 있다.
<▲ 엔비디어 Tegra K1>
저가형의 친구 미디어텍 제품이라면 모델이 워낙 많은 만큼 특정 모델을 택하기는 쉽지 않다. 2013년 이후, 제조공정 28nm, 지금 구입하는 것이라면 코어텍스-A9 이상이 좋다.
<▲ 미디어텍 MT6732>
그 밖에 앞서 AP에 대해 밝힌 기준에서 보자면 인텔이 태블릿 시장을 중심으로 선보이는 아톰 프로세서는 엄밀하게 말해 AP는 아니다. 인텔 계열은 사실상 지금 선택한다면 안드로이드는 거의 전무하고 윈도 태블릿 계열이 대부분이다. 베이트레일-T 이상만 구입하면 손해볼 일은 없다는 점만 기억해두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