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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13
구자근 사모(광주 화평교회)
강덕금 할머니
요즘들어 보기 드물게 맑은 아침이 등나무 무성한 잎들 위에 놓여 있다. 한참 짙어가는 녹색 들판에 새하얗게 날아오른 백로도 애써 슬로우 모우션으로 돌며 더 크게, 더 넓게 원동 들판의 이미지를 새롭게 변신시키고 있는데......
“어? 성문이 할머니, 어서 오셔요. 이렇게 일찍 웬일이세요?”
“이거, 멸치장인데 아주 고소하니 맛있습디다. 사모님 김치 담아 드시라고... ”
“할머니 두고 쓰셔야지요. 자꾸 들고 오지 마시랑께요. 아이 참... ”
“아녀라! 나는 목포 아들 며느리가 김치 담아 중께로 이거 쓸 일이 없습디다. ”
“그래도... ”
아무리 얘기해봤자 변치않는 결과가 늘 뒤따르기에 어느날부터 난 그것이 할머니의 사랑방식인걸 알고 사실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두 번 세 번 거절해도 변함없이 일정한 방식의 나눔이 전해질 때,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듯이...
“그런디말요, 성문이 할아버지가 오늘 아침은 저렇게 삐져가지고 밥도 안먹고 있단 말요. ”
“할아버지가 삐질 일이 뭐 있었어요?”
“어제가 어버이날이었는데 글쎄 자식들이 한 놈도 안왔다고 어젯밤에도 꿍시렁대더니 오늘 아침은 아예 숟가락도 안들어서 나만 혼자 아침먹고 이렇게 나왔다우. 뭐 자식이 올 수도 있고 못올 수도 있는 것이지 그것 갖고 골내고 삐진다요? 참내! 꼭 어린아이 같더란 말요... 하하하...”
“보고 싶으셨나보네요. 명절 때 왔다가고 생신 때 왔다가고 그러면 됐지요 뭐. 가까운데 사는 것도 아니고 멀리 있으니까 자주 찾아뵙는 것이 자식들 입장에서는 여간 힘든 게 아닐거예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편도 한 두시간 거리야 사실 별 것도 아닌데, 70대 성치않은 노부모, 아무리 뭣해도 마음 먹기에 따라 2, 3주에 한 번씩은 찾아볼 수 있을 것인데, 자고 가는 것도 아니고... 참, 그 마음먹기라는 것이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부모 자식간도 품 안에 있을 때나 하나지, 떨어져 나가면 그저 남이라 생각하고 아예 기대도 하지 말아야 쓸 것인데, 당장 먹을 것 없고 돈없고 게다가 아프기까지 하면, 뭐 이해고 나부랭이고 남는게 있어야지. 그러니 애꿎은 자식들에게 투정이 나올 수밖에 없겠다싶다. 이도저도 안되는 것이 정상이요, 마음먹은대로 살아지면 기적이고, 은혜려니...
“그런디요, 사모님, 성문이 할아버지하고 나하고 잠을 자도 꼭 거꾸로 누워서 자는디요...”
“예? 아니 왜 거꾸로 누워서 자요? 바르게 누워서 자기도 시간이 부족하구만요...”
“그러게요, 가만 보니께 그동안은 잠바를 꼭 입고 잠을 잤었는데 요즘은 날씨도 따뜻해지고 입고 자면 답답하니까 벗더란 말요. 그런데 벗은 잠바를 돌돌 말아서 자기 베게 밑에 꼭 받치고 잠을 자더라니까요 사모님?”
“하하하...”
“하하하, 그것 참 이상하다 싶었는데, 며칠 전에 내가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는데 아, 이 양반이 갑자기 방으로 홀라당 들어가더란 말요. 그러더니 벗어놓았던 잠바를 얼른 입고 밖으로 나오는거요. 아하, 이게 뭐가 있구나 싶었는데... 아, 글쎄 그 속에 아들이 주고 간 돈이 있었던 거요 사모님. 혼자서 몰래 숨겨놓고 내가 동네 부조돈 달라고 그러면 2만원, 3만원씩 주더란말요. 그런데 뭐 반찬 살 돈 좀 달라고 그러면 안줍디다 안줘요! ”
“아- 그러니까 그 돈을 할머니한테 들킬까봐 거꾸로 자고 잠바도 벗으면 베게밑에 개켜놓고 자고 그러시는구만요? 하하하...”
할머니도 강박넣은 박수를 치며(어찌 소리가 힘찬지 깜짝 놀랐다.) 계속해서 큰 소리로 웃어제끼셨다. 할아버지 이야기, 할머니 모습... 나도 어찌 웃음이 나오는지, 이 고요한 시골 아침에 화평교회 마당 수돗가에서는 한물, 두물, 세물 지나간 두 여자가 박장대소 난리가 나버린 것이다. 흔들대는 5월의 담록잎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의 웃음은 꼬리를 흔들며 저 앞 논두덩이에 낮게 날고 있던 백로의 우아한 날개짓이 내려앉을 정도였다.
“하하하, 하하하... !! 내가 요즘 꼭 연극을 보고 있는 것 같다니까요! ”
어머 어머... 저 표현 좀 봐... 나는 사실 속으로 몹시 놀라워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나머지 코메디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고요, 사모님. 작년에 성문이랑 같이 살때도 그렇게 이 양반이 웃겼다니까요. 아, 밤에 잠은 안오고 이리저리 뒤척거리고 있는데, 마당에서 자꾸만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나는거요. 내가 성문이한테 ‘성문아, 이게 무슨 소리냐? 할아버지 발자국소리가 아니냐? 달그락 달그락 소리도 멋지다야. 쌩돈 주고도 못볼란디, 밤마다 생방송으로 부담없이 봉께로 이렇게 좋구나?’ 했단 말요.”
“하하하, 하하하... ”
“하하하... 그러면 성문이가, 할머니는 어찌 이렇게 웃기고 재밌냐고 하면서 둘이서 그렇게 웃었다니까요? ”
장황하지만 어찌 부드럽고 살랑대는 말소리인지, 할머니 얼굴에는 어느새 홍조가 곁들여 있었다. 그동안 웃고 싶은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는 듯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웃음이 장황한 웃음이었고,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결코 흉이 아니라는 것은 그 부드럽게 이어져나오는 웃음과 표현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중간중간 섞여 나오는 문학적인 표현은 애써서 내는 소리가 아니요, 일상 속에서 용해되어 나오는 그야말로 ‘멋’이었다. 그러게 은혜는 일상 속에 임해서 드러나는 것이지 애써서 표현한다고 되는게 아니구나...
무엇보다도 나는 속으로 계속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분이 쓰시는 낱말 하나하나가 너무나 또록또록하고 힘차며, 강한 톤에다가 음률 자체가 생동감이 넘쳐났던 것이다. 난 사실 아직까지 이 동네 분들의 이야기를 얼른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할머니들 이야기는 발음이 정확하지가 않고 낱말의 연결 자체가 스리슬쩍 넘어가는 모양이라 더 그랬다. 게다가 강덕금 할머니는 몇해 전에 치매에 걸려 고생하셨었고 그 이후 건강도 좋지 않았다. 목포 아들네 집에서 얼마간 살다가 작년 가을에 정신이 온전치가 않으신채 혼자 살고 계신 할아버지께로 돌아오신 것이다.
냉동조기 4마리를 봉다리에 들고 처음으로 우리집에 찾아오셨을 때(그동안 우리에게 전화로 할아버지 안부를 계속 확인하심) 할머니 얼굴은 거의 노란 색이었다. 말씀도 거의 없으신채 차려놓은 레몬차와 고구마를 맛있게 드시곤 하셨는데 그때마다 몇끼 안드신 분처럼 하두 열심히 드셔서 내심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었다. 그러나 너무 어린애같이 의존적인 모습이 걱정이 되어서 확실히 선을 긋게 되었다.
“할머니, 자식들에게 거는 전화는 일주일에 한번만 하세요. 주일날 예배 끝나고 하셔도 되고요. ”
“할머니, 이런 거 자꾸 가져오지 마세요. 그러실거면 아예 우리집에 오시지 마세요. ”등등.
할머니는 부탁대로 많이 참으시고 행동을 자제하시고 하더니, 요즘 몇주 전부터 눈에 띄게 달라지셨던 것이다. 얼굴도 붉으스름하니 혈색이 돌았고 여기저기 씩씩한 모습으로 다니시며 이웃집 밭일도 도와주시곤 하셨다. 물론 무언가를 갖다주시고자 하는 마음만은 변치 않아서 우리들의 관계를 풍요롭게 바라보도록 하셨다. 황토밭에서 겨울을 난 속이 노랗고 보드라운 배추 2포기, 폭 끓인 콩나물국, 냉동조기 몇 마리, 진간장 1병, 세수비누, 햅쌀 한바가지, 친구가 줘서 다듬으셨다는 깨끗한 파 한바구니, 김볶음, 돼지고기 한덩이, 멸치장...... 참! ‘무화과 나무와 강덕금 할머니’는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 없겠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목포 아들네서 돌아온지 한 달 남짓 되어서이다. 여기 와서 처음 보고 처음 먹어보는 우리집 무화과 나무 열매는 9월 한달 동안 따먹자 모두 바닥이 났다. 10월이 넘어선 어느 주일날 오후, 강할머니가 갑자기 나를 오라고 하셨다.
“사모님, 우리 무화과가 이제 빨갛게 익었네요. 나는 잘 못따서 그런데 사모님은 나무에 잘 올라갈 수 있지요?”
“글쎄요... 저도 어렸을 때 이후로는 나무 탄 적이 없는데 어쩔랑가 모르겠네요. 한번 올라가보지요, 뭐.”
그러나 나무타기를 시험삼아 해보다가 금방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시방 나무탈 나이냐? 참내... 70대 할머니가 나를 ‘애’로 봤다고 해서 나까지 착각하다니...
“할머니, 도저히 못하겠어요. 어지럽고요. 그냥 얕은 데서나 따드셔요. 아들들 오면 따달라고 그러고요.”
그런데 그다음 장면은 아직도 엊그제 본 그림처럼 생생한 화폭으로 남아있다. 할머니가 갑자기 시멘트 바닥에 신발을 벗어놓는 것이었다. 그 다음엔 양말... 어머나, 어머나... 무슨 일이지? 치매를 앓으셨다더니 혹시 어디를 뛰어가시려는 것은 아닐까... 그러더니 옆에 있던 니어커를 나무 옆으로 밀어놓고 그 위로 반짝 올라서셨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 위로 뻗어있는 무화과나무 굵은 줄기를 손으로 꽉 잡으시고는 두 발을 시간차를 두고 재빨리 나무 위로 오르시는게 아닌가... 세상에! 그다음엔 계란 크기만한 빨간 무화과가 닥치는대로 할머니 손에 쥐어졌다. 그것도 서너개씩...
“사모님, 이거 받으세요. ” “예, 예... ”
난 이쪽저쪽 나무 밑으로 다니며 받아들이기에 바빴고 바구니대기에 분주했다. 거의 밝은 무색을 입고 있었던 할머니는 흡사 전설의 고향에서나 볼 수 있는 재빠름과 사뿐한 몸놀림을 계속해서 연출하고 있었는데 나무 아래에서 고개만 위로 올리고 있던 나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할머니가 떨어지면 어떡하지? 이거 화평교회 사모가 무화과열매 얻어먹으려다 할머니 한 분 잘못됐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뻗어나가는 것은 아닐까... 등의 위험한 상상이 덮쳐왔던 것이다.
‘아버지,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
위험한 일 앞에서 또는 일상에서 기도하라고 외치거나 애써 강요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같다. 기도조차도 은혜요 선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의 가르침이나 강조 속에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도라면 당연히 주님을 부르게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이 무얼 하셨던 분이고 어떤 분이며 왜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되셨는지를 계속해서 선포하고 증거하다보면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은 마땅히 예수님을 따르게 되어있는 것이다. 더 생각해보건대 ‘기도했더니 일이 이렇게 되었다’고 계속해서 떠들일도 하나도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저 불쌍히 여겨달라는 심정 하나인데 그게 뭐 사람들 앞에서 강조할 사항이 되겠는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인 것을...
“할머니, 이제 내려오세요.”
난 이제 차라리 애원조가 되어 부탁드렸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동동거리는 나와는 아주 딴세계에 있는 사람처럼 요만큼의 동요도 없이 침착하고 차분하게 일에 전념하고 계시는 것이었다. 오히려, “사모님, 이건 지금 빨리 드세요.” 하며 너무 익어서 터져버린 진빨강 무화과를 내려주시는 것이었다. 아이구... 어쩌나... 빨리 내려오시라니까... 그렇지만 솔직히 안먹을 수가 없었다. 빨갛게 터진 무화과의 속을 본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그 탐스런 열매는 나의 온갖 신경다발을 마구 빼앗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쩝!! 이렇게 맛있을 수가... 새콤, 달콤한 맛에 꿀향이 첨가된 듯한 조화의 정수...! 에지간해야 남편도 생각나고 아이들도 생각난단 말이지, 이건 도저히 내능력 밖이다......
참으로 맛나게 생긴 이 세상의 탐스러운 열매 앞에서 정욕을 발산시키지 않을 자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종교심으든 그럴 듯한 가치관이든... 그것이 무엇으로 포장되었든지간에 자기 입맛을 충족시켜주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간파할정도로 영리한 것이 인간인 것이다. 선악의 기준이 이미 자기자신에게 예속된 마당이다. 내 몸에 선악과 따먹은 증거가 오늘도 드러난다. 아담의 후손... 당장 죽을 것 같은 심정 앞에서 이렇게 먹어대고 있으니... 너는 오늘도 예수님이 살려주셔서 살고 있는 줄이나 알고 살아라... 은혜와 심판, 또 은혜와 심판......
“저도 한때는 나무를 아주 잘 탔더란말요. 그런데 아픈 바람에 나무를 탄지도 아주 오랜만이구만요.”
히야... 나같은 사람은 아주 기어서 살아온 인생이구나... 나무 위에서 날개 돋힌 듯 저렇게 살아온 할머니가 계시니... 드디어 할머니께서는 사명을 완수하시고 내려오셨다.
“사모님, 이거 다 갖다가 목사님하고 아이들 먹이세요.”
“하이고,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드시고요. 자식도 많으신데 불러다가 주세요. 저는 요만큼이면 돼요.”
“아녀라. 뒤꼍에도 또 있어요. 우리는 별로 먹지도 못허요. 그라고 자식들이야 언제 올지 몰릉께요. 이건은 하루 이틀 안먹으면 상허고... ”
빼곡하니 한바구니나 찬 빨간 무화과를 통째로 들고 나오면서 난 심정이 여러갈래가 되었다. 73세나 되신 할머니의 귀한 물건을 꼭 도둑질해가지고 나오는 기분도 들고, 너무 재미있는 장면을 보고 난 후의 비밀스러운 웃음이 쿡쿡 나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슨 신령한 현장을 목격하면서 잠시 딴세계에 있다가 이제 막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약하디 약하게 생기신 할머니의 ‘나무위의 쇼’는 한세대나 차이나는 나에게 정감어린 친밀감을 던져주었다. 그 주일 점심은 무화과의 검붉은 쨈이 듬뿍 발라진 식빵이 화평의 밥상머리를 풍성하게 장식해 주었다.
친구... 그렇다. 난 할머니와 친구가 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는 누군가에게 끝없이 열려진 사람으로 비쳐질 때가 있다. 그것을 친구관계라고 하면 적절한 표현일까? 우리들의 상황가운데 열려있는 많은 틈 속으로 우정의 몸짓들이 넘나들 때, 그때 우리는 쾌활하게 웃는다. 눈치보지 않고 마구 웃어댄다. 우리들의 인생살이에 괴로움이 없어져서 웃는게 아니다. 고통이 없어져서도 아니다.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우리 인생의 아픔을 고쳐주실라고 오신 분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그렇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이 굳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오직 죄사함의 능력을 세우기 위함인 것이다! 죄사함의 은총을 입은 자들이 오히려 그들의 아픈 상황과 고통스런 인생의 질곡 가운데에서조차도 예수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만을 높이려는 하나님의 뜻과 기쁘게 만난다.
하나님의 전능과 인간의 무능을 한가운데로 관통하는 것은 바로 죄사함의 능력에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죄사함의 능력과 중보기도는 성도에게 치료가 되시는 하나님의 전능이다. 즉 하나님과의 막힌 담이 헐어지는 치료인 것이다. 이러한 치료를 입은 자들이 예수님과 친구가 되고 성도와 성도가 친구로 맺어진다. 예수님과 맞먹게 되었다는 신분의 고하를 뜻하는 것이 아니요, 죄악된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놓여남을 입었다는 의미에서 친구이다. 온몸으로 제물삼아 베풀어주신 속죄의 사랑을 힘입어 예수님과 같이 종노릇하는 삶으로 짝지워진 친구이다. 즉 자신을 다 내어주시기까지 종들을 섬기신 주님처럼, 섬김으로 드러나는 친구관계이다.
빚진 것이 남아있고 계속해서 갚을 것이 남아있는 ‘종’의 관계에서 벗어나, 더 이상 계산할 것이 없이 다 갚아졌으며 무엇에도 매여있지 않은 자유하고 자발적인 관계가 예수님의 친구이며 예수님이 친구삼아주신 친구관계이다. 그 예수(종되신, 대속하신)를 자랑하고 증거하는 삶은 사랑과 섬김의 흔적으로 나타난다. 사랑으로 매인 관계는 자기주장을 앞세우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친구이면 누구든지 친구가 되지만 예수님의 친구가 되지 못한채 맺어지는 친구관계는 다 깨어질 관계이다. 더 그럴듯해 보이는 친구관계라도 예수가 빠진 관계는 결국 죽음이 갈라놓는다. 보증되시는 예수님만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강덕금 할머니와 함께한 강렬하고도 확실한 웃음조차 예수 그리스도의 죄사함의 능력에서 맺어진 열매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성도는 이 땅의 갖가지 외모(힘의 논리, 지적 수준, 생김새, 건강, 가치관...)로써 맺어지는 관계를 파하는, 믿음이 역사하는 열매들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는 자들이다. 남편이든 아내든 자식이든 부모든 직장 상사든 부하든 어떠한 나이차이이든, 예수님이 친구삼아 주신 관계는 예수님이 들려주신 영생에 관한 소식들로 인하여 충만한 기쁨으로 서로 사랑하는 자들이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요한복음 15 : 12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