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동주.
언론들은 박근혜와 이명박의 만남을 두고 이런 제목들을 붙였어.
맞는 말이야.
그러나 오월동주란 말에는 전혀 다른 뜻이 내포돼 있지.
언론이 오월동주란 제목을 붙였을 때는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들이 서로 원수지간이란 의미가 강해.
원수끼리 같은 배를 탔다에 방점이 찍혀있지.
그러나 손자가 말한 오월동주의 의미는 전혀 다르지.
원수끼리 같은 배를 탄 건 맞는데 폭풍이 불어 배가 뒤집힐 정도가 되면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들이 왼손과 오른손 처럼 서로를 도우면서 폭풍을 헤쳐 나간다는 거야.
죽지 않기 위해서.
배가 뒤집히면 다 죽으니까.
이건 일종의 배수진과도 같은 거야.
실제로 손자 역시 이 얘기를 9地 편에서 말했지.
아홉번째 땅을 死地라고 했어.
군사들을 사지에 던져 넣으면 죽기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다는 거야.
그래서 이긴다는 거지.
이게 오월동주의 진정한 의미야.
과연 박근혜와 이명박은 오월동주의 진정한 의미에 다가간 것일까?
아마 진정한 의미의 협력까지는 먼 것같고 원수끼리 같은 배를 탔다는 데까지는 인식을 같이 했을 거야.
같은 배란 무슨 의미일까?
한나라당이지.
진정한 의미의 협력이라면 힘을 모아 한나라당을 잘 이끌어 폭풍을 헤쳐가며 정권재창출을 하는 게 순리야.
그런데 그동안 이명박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박근혜를 국정의 동반자가 아니라 없애야 할 정적으로만 대해왔어.
박근혜를 통한 정권재창출은 정권재창출이 아니라 정권교체로 인식했다는 거지.
실제로 친이들은 박근혜가 정권을 잡으면 다 죽는다는 공포심을 여과없이 드러내왔어.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주장하는 것도 그런 인식의 다른 표현일뿐이고.
그런 이명박이 정권재창출을 얘기했어.
박근혜에게.
접점이 없는 친이 친박간의 싸움은 공멸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명박이나 박근혜나 이런 상황을 타개할 필요가 있었어.
이명박은 레임덕 방지를 위해서는 반드시 박근혜의 협조가 필요했고 박근혜로서는 친이들의 공포심을 어느정도 다독일 필요가 있었을 거야.
어찌됐든 현직의 비토를 마냥 무시하기는 어려우니까.
정권재창출을 말하고 정권재창출을 위해 협력한다는 말은 의미심장하지.
권력재창출의 주체가 누구냐는 거야.
이명박이 또 나갈 수는 없으니까 당연히 정권을 재창출하는 건 박근혜야.
그런데 그 당연한 일이 왜 의미심장할까?
그동안 이명박은 박근혜가 창출하는 정권은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해 왔지.
협력하겠다는 말은 곧 박근혜의 정권 창출도 정권재창출이라는 걸 인정하겠다는 거야.
그러니 박근혜에게는 큰 선물이고 이명박으로서는 진일보일 수밖에 없지.
두사람의 회동 결과에 대해서 밝혀진 게 별로 없지만 단편적인 얘기들이나 추측을 동원해 보면 큰 틀에서 이명박은 공정한 경선관리, 혹은 경선에서 손떼겠다는 의미의 메시지를 전했을 거야.
박근혜가 화기애애했다고 말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든 이런 메시지가 있었다는 의미지.
지금 이명박이 박근혜에게 해줄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니까.
반면 이명박은 박근혜에게 요구할 게 많지.
세종시 표결에서 보듯 박근혜가 비토하면 이명박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따라서 후반기 정권운영을 위해서는 박근혜의 협조가 절대적이지.
다른 하나는 이명박의 퇴임후 문제야.
아마 명시적으로 이 문제가 거론되지는 않았겠지만 이명박으로서는 박근혜에게 은근히 이 문제를 바라는 투의 언급이 있었을 수 있어.
이렇게 큰 틀이 짜여졌다면 4대강 문제는 오히려 큰 이슈가 아니었을 거야.
공을 다투는 청와대 인사가 4대강 문제에 협조하기로 했다는 발설을 하자 박근혜측에서 곧바로 언급자체가 없었다고 반격한 건 회동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었나 하는 걸 생각해 보기에 충분한거지.
4대강 문제가 구체적으로 거론되지 못했을 정도의 회동이었다면 정권재창출과 그 이후의 문제들이 집중적으로 거론됐다고 추측해볼 수 있겠지.
다만 두 사람간의 신뢰에 아직 문제가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결론이나 발표할 정도의 내용이 없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어.
발표를 박근혜에게 일임했다는 건 박근혜가 발표해도 별다른 게 없다는 의미겠지.
일단 이번 회동으로 들끓던 분당론은 당분간 수면아래로 잠수할 수밖에 없을거야.
공정경선이 보장된다면 굳이 탈당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러나 이런 약속이 깨지는 날이면 상황이 달라지지.
이미 박근혜는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고 말한 적이 있어.
이명박이 또 속인다면 그때는 분명한 분당의 명분이 되지.
이명박으로서는 분당은 곧바로 레임덕을 뜻하기 때문에 분당하지 못하도록 여러가지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지.
먼저 말한대로 분당도 하지 말고 그렇다고 당을 장악하지도 말라는 거야.
그러나 또 약속을 깨는 날이면 분당해도 토를 달기 어려워 지지.
김태호를 발탁하면서 회동 무용론이 무성했는데 김태호에 대한 설명이 있었던 모양이야.
김태호는 전에 말한대로 PK 관리 차원, 혹은 PK와 박근혜 분리 작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김태호가 청문회에서 깨질 조짐이 보이자 전격적으로 회동이 이루어진 것만 봐도 이명박은 김태호를 버리는 카드, 혹은 선심성 카드로 생각했던 것 같아.
박근혜는 김태호에 대해서는 신경도 안쓴다는 기사가 났었는데 사실 김태호는 신경쓸 정도의 인물은 아니지.
요즘 홍준표나 이재오까지 나서서 열심히 김문수를 띄우는 걸 보면 그들의 내심이 뭔지 짐작이 가.
홍준표 말이 박근혜대 반박근혜 연합구도로 간다는 건데 반박근혜 연합의 단일화가 그리 쉽지는 않지.
전국을 돌며 경선을 하면서 하나씩 탈락하는 구도라면 누구도 박근혜를 이길 수 없어.
다만 보이지 않는 손이 미리 단일화를 결정해서 곧바로 양자구도로 간다면 박근혜도 마음 놓을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게 되겠지.
홍준표는 바로 이걸 말하고 있는 거야.
공정경선 관리란 이렇듯 보이지 않는 손이 관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박근혜로서는 절대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어.
그런데 사실 이런 내용들은 공동발표를 할 수도 없고 합의문을 작성하기도 뭐하지.
두 사람간의 신뢰가 절대적인데 과연 이명박을 믿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야.
그런데 가만 보면 늘 약속을 깨면서 박근혜의 뒤통수를 친건 이명박이지만 그랬다고 이명박이 잘된 것도 없어.
이번마저 약속을 깬다면 이명박으로서는 치명타를 맞을 수 있지.
뭔진 모르지만 약속을 깨는 날이면 박근혜에게 분당의 명분을 줄테니까.
약속을 지킬 거냐 아니면 레임덕을 감수할거냐, 두 가지 선택이 이명박 앞에 놓여있어.
박근혜가 회동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한 건 반대로 이명박의 코가 꿰었다는 말이야.
지금까지는 이명박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도 대처가 쉽지 않았는데 이제부터는 상황이 바뀌지.
이명박으로서도 퇴임후를 걱정해야 할 처지로 몰렸으니까.
퇴임후를 걱정하느니 약속을 잘 지키는 게 좋지 않을까?
이명박으로서도 더 이상 박근혜와 원수져 봐야 좋을 일이 없어.
사실 이런 정도의 회동이었다면 회동 자체를 비공개로 하는 것도 좋았을 거야.
왜 굳이 회동 사실을 공표한걸까?
서로에게 원하는 게 있었을 거야.
이명박으로서는 미래권력과의 화해협력이라는 홍보 자체가 큰 힘이 되지.
레임덕은 없다고 큰 소리 칠 수 있어.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하다는 선언이기도 하고.
이재오가 특임으로 간 건 형님과의 권력투쟁을 막는 차원이었다고도 하고 당내에서 친박과의 싸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도 하지.
어떤 경우든 형님의 입김이 작용했겠지.
여러명의 주자를 내보고 박근혜 죽이기를 줄기차게 시도해 봐도 시원치가 않았기 때문에 전술을 바꿨을 수도 있어.
물론 이런 전술 변화는 새로운 유망주가 떠오르던가 박근혜 지지도가 하락하면 바뀔 수 있어.
그러나 현재 구도가 고착된다면 차기 1순위인 박근혜를 끝까지 무시하기는 어려울거야.
회동은 이런 전환점, 즉 전술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거야.
죽여도 안죽으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강경파인 박형준이나 이동관이 물러나고 화합형인 임태희와 정진석이 청와대로 들어가면서 이런 변화들이 일어났지.
이번 회동 역시 정진석이 열심히 뛰었다더군.
그건 일회성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그렇게 판이 짜여져 간다는 의미지.
배가 뒤집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오월동주를 만든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아예 배를 따로 탔겠지.
분당 카드가 잠수한 건 맞지만 그랬다고 카드자체의 위력이 감소한 건 아니야.
약속위반에 대한 경고로서의 분당카드는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고 있지.
그런데 묘한 건 어디까지가 경선 공정관리냐는 거야.
그건 아마 공정 공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과거처럼 친박죽이기를 일방적으로 해대면 그건 애당초 공정경선과는 거리가 멀어 지지.
친이로 대의원을 다 채워놓고 공정경선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따라서 경선에 관여하지 않으려면 청와대는 공천에서부터 관여하면 안돼.
가장 좋은 방법은 이명박이 아예 탈당하는 거지.
그리되면 어느정도 경선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거야.
그런 과정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번 한번의 회동만으로 앞날을 예측하기는 일러.
다만 오월동주를 할만큼 서로의 인식에 공통분모가 있었다는 정도로 만족해야지.
이제부터는 박근혜가 국민의 입장에서 이명박과 어떻게 싸워나가느냐야.
박근혜는 분명히 말했지.
대운하는 안된다.
4대강이 대운하는 아니라고 하니 믿어야 한다.
그래도 대운하 한다면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라고.
다시 한번 확인했지.
무시무시한 경고야.
이번 회동으로 반드시 박근혜를 죽이겠다는 이명박의 입장이 한발 물러선 것으로 볼 수 있어.
어느 면에서는 박근혜에게 코가 꿰었고.
따라서 박근혜 입장에서는 활동반경이 좀 더 넓어졌지.
보다 활발한 행보를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지.
다만 박근혜의 분당을 막기 위한 책략이라면 박근혜로서도 참을 수 없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사생결단이야.
이명박이나 박근혜 모두 배수진을 쳤어,
그 결과가 오월동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