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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삶의 깊은 상처를 입고도 자신의 영혼의 외침을 잃지 않는 사람을 나는 사랑합니다. 인간의 머리를 뒤덮고 있는 암흑의 구름을 뚫고 한방울씩 무겁게 떨어지는 빗방울과 같은 사람을 나는 사랑합니다. 내 스스로 파멸하거나 몰락하는 근거를 저 별이 빛나는 하늘에서 구하기 보다는 언젠가 이 대지가 사람의 것이 되도록 이 땅에 몸을 바치는 사람을 나는 사랑합니다.
- 프리드리히 니이체 " 짜라투스트라는 내게 말했다 中"
한 시대 두터운 종교적 아성에 도전하여 짜라투스트라의 말을 빌려 경직된 신의 죽음과 아울러 생生의 용기를 붇돋우는 초인의 탄생을 선포함으로써 그의 사상이 시대에 저항하고 반 그리스도적이라는 냉혹한 평가를 받으면서 근대 서양 철학사에 커다란 파문을 던지고 무궁 무진한 사색의 새 지형과 인간이 자신을 초극하여 끝내 초인을 실현해 가는 강렬하고 웅혼한 새 길을 열어 재낀 프리드리히 니이체
바야흐로 종교개혁과 격렬한 변화를 앞둔 17세기 이태리 바로크시대, 바로크를 찌그러진 진주라고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머리에 이고 구교와 신교, 신교와 구교가 찌그러지고 찟어지기까지 가인의 싸움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그가 그린 '다윗과 골리앗'에서 마치 다윗이 적장의 목을 벰으로 승자의 쾌재를 부르는 장면이 아니라 형제의 목을 베듯이 슬프고 괴로운 표정으로 칼을 들어 골리앗의 목을 베어 든 것처럼 예리한 붓을 들어 역겨운 종교적 가식과 위선의 가면을 베어냄으로써 자신과 운명 앞에 가슴치며 절규하고 진실하고자 했던 시대의 이단아. 그 시대 화단의 보편적 가치를 가차없이 허물어뜨리는 화풍과 기행에 당시 그를 가르켜 악마적 천재요 회화의 반그리스도라 비아냥거리고, 마음 속 죄罪의 경계를 넘어 죄의 오물을 먹고 자란 괴물이라 낙인을 받으면서도 그 누구도 더 이상 케케묵은 전통과 종교적 관습의 굴레에 옭아 멜 수 없었던 노여움의 단독자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 역시 너무나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그 속에서 무한히 솟구치는 의혹과 허무에 잠들었던 야성이 깨어나고 마침내 기존의 화풍의 패러다임을 깨뜨리는 파격적인 기법과 빛과 어둠을 양식으로 하여 시대에 비수를 드리대고, 모두가 잠자고 있는 동안 하늘에서 불어오는 광풍과 같이 휘몰아친 명암明暗의 조화에 미술사의 휘장을 벗기고 찢어버린 화가.
내가 지금 나되기까지 수 많은 사연이 있듯이 그에게도 무슨 억울하고 한 맺힌 일이 있기에 하늘의 재주를 타고났음에도 시대적 가인이 되어 당시 그가 속한 사회와 미술사에 지독한 악명을 떨치게 되었을까요. 잠시 그가 자기 자신이 된 기막힌 생의 절망적 뿌리를 찾아가 봅니다. 카라바조는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죽은 지 7년 후 이탈리아 밀라노 근처 작은 마을 카라바조에서 또 다른 미켈란젤로 메리시로 태어납니다. 원래 이름이 미켈란젤로 다 메리시였는데, 당시 풍습 대로 그가 태어난 부모 마을 이름을 따 미켈란젤로 없이 그냥 카라바조로 불리게 되지요. 1576년 다섯 살이 되던 해 당시 유럽을 휩쓸고 간 흑사병으로 아버지와 조부를 연달아 잃고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 마저 여의는 참혹한 시련을 겪게 됩니다. 그후 극심한 빈곤 속에서 싸구려 그림을 그려주며 떠돌이 생활을 하다 토스카나 공국의 대사 '프란체스코 마리아 델 몬테' 추기경에 의해 재능이 눈에 띄어 로마에 정착하고 '행운', '사기꾼들' 등 여러 주옥같은 그림을 그립니다. 그후 성 루이지 프란테시 성당 그림이 완성된 후 그는 로마에서 가장 성공적인 화가로 인정받기에 이릅니다.
반면에 그 무렵 그의 기행도 극에 달하여 깡패인지 불한당인지 툭하면 싸움질에 시비를 걸고, 폭행, 체포, 투옥 등 유치장을 밥 먹듯이 오가고, 급기야 몇푼 내기돈 다툼 끝에 당시 명망가의 아들을 살해하여 사형을 언도 받고 감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3일 만에 탈옥, 살인자로 현상금이 걸리게 되고 언제 잡혀 죽을 지 모르는 비참한 도피생활에 들어갑니다. 이 생활 중에는 낮이나 밤이나 심지어 잠잘 때에도 칼을 차고 다녔다고 하니 얼마나 그가 불안과 공포에 질렸는지 짐작이가고 남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가 막힌 운명도 종언을 고하여 나폴리에서 자객의 비수에 맞아 중상을 입고 상처가 악화되어 고작 서른 아홉살 짧은 나이 청운의 꿈이 안개처럼 사라지고 고단한 삶을 내려놓습니다.
돌이켜보건데 그의 기행과 독특한 예술편린은 천형과 같았던 흑사병에 갑자기 죽어간 부모와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뼈저린 아픔과 절규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도 갑자기 병에 걸리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유명을 달리할 때 종종 복 받치는 슬픔으로 인하여 정신을 잃은 사람들을 볼 수 있듯이 카라바조 역시 그 주변에 일어난 비극과 수많은 죄 없는 죽음에 속수무책인 현실과 신의 부재에 상처받고 그의 신앙에 대하여 부정과 강한 의혹의 시선을 보낸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그의 삶과 그림은 전통과 관습을 무시해 버립니다. 그의 밥줄인 성화마저 근사하고 신성한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잘난 제자들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고 대신 빈민과 노동자, 농민, 어부, 집시, 부랑자, 깡패, 창녀 등 사회적 약자를 성화의 모델을 삼아 사실적으로 그려 넣음으로서 무시당하고 버림 받던 소외계층에 대한 존재감과 존엄성을 일깨우고 그들을 앞세워 화폭에 성스러움을 불어 넣습니다.
'동정녀마리아의 죽음'에서 그녀를 물에 빠져죽어 배가 불룩한 여성을 대상으로 그렸다 하고, '성 마태와 천사'에서는 마태를 남루한 농부의 모습으로 그렸는가 하면, '다윗과 골리앗'에서 골리앗의 잘려진 얼굴을 자신의 얼굴로 대체시킵니다.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에도 예수님의 얼굴을 후광도 수염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젊은 어부로 그려넣지요. 어느 누가 이런 태도를 꼬집기라도 하면 "집시와 거지 그리고 창녀들, 오로지 그들 만이 나의 스승이며 내 영감의 원천이다" 며, 예수님이 허식에 치우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면박을 준 것처럼 그 누구든 낯박살을 주고 말이 안 통하면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그림은 카라바조의 걸작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 지난 주 3월 31일 한신대학교 권명수 교수님의 말씀 주제, 복음서의 "엠마오로 가는 길" 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몰라 본 것처럼 오늘에야 말씀 속에서 성서함 위 언저 둔 저 그림을 만나게 되는군요. 이 그림은 말씀 대로 깊이 절망하여 예루살렘을 벗어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 이런 저런 말씀을 나눈 후에 그들과 함께 엠마오의 한 여관방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중 뒤늦게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깜짝 놀라는 장면을 포착하여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어느 여관방 텅 빈 배경에 여백 없이 화면 가득 인물을 배열함으로써 인물 각 사람의 성격과 태도를 엿볼 수 있도록 합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카라바조의 평범하게 보이는 이 그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어느 종교화와 달리 여기서 예수님의 모습은 볼살이 통통하게 오른 시골 젊은 농부나 어부와 같이 너무나 평범한 모습에다 성인의 상징인 근사한 후광이나 품격 있는 수염 조차 없습니다. 제자들의 옷차림도 남루하고 성격도 꽤 거칠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거룩하고 성스러운 예수님과 그 분의 제자들을 저 따위로 그려 넣다니 당시의 사고의 행태로 보면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그림이었을 겁니다.
본문으로 들어가서 생각해 보건데 아무리 절망하여 사람을 몰라봐도 제자들이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몰라봤다고 하는 것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내용입니다. 목소리만 들어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인데 도상에서 만난 사람이 누구인 모르는 것도 이상하고, 그것고 저녁밥을 먹을 때까지 사람을 몰라봤다는 것도 참 별스러운 일이지요. 카라바조는 이 점에서 각자의 인물군을 착안한 것 같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고대 유대에 흔한 이름이었다듯이, 예수님이 너무나도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이라 도무지 알아볼 수 없다면 사람을 몰라볼 정도로 평범한 사람, 그에게 그런 사람은 갈릴리 어부와 같이 가장 평범한 젊은이를 그릴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당연히 그림에 후광은 말할 것없이 성스러움조차 배제되어야 할 테고요. 그 평범함 속에서 도무지 이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는 걸 제자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는 도마의 태도에 주목한 것 같습니다. 직접 확인하지 않은 이상 인정할 수 없다는 도마의 태도는 엠마오의 두 제자와 동일선상에 있습니다. 사실 이들 뿐만 아니라 당시 대부분의 제자들 역시 같은 의혹을 가지고 있던 터였습니다.
이 때에 카라바조는 예수님이 감사의 기도를 드린 후에 제자들에게 빵을 떼 주고 오른손을 드는 찰라 예수님 쪽에서 예수님의 오른손바닥 과 왼편의 제자의 눈을 절묘하게 마주치게 하는 극적 효과를 노립니다. 길을 같이 걷고 말씀을 전하고 저녁 식사를 같이 해도 몰라본 예수님 "예수께서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눠 주셨다. 그제서야 그들이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 보았는데 예수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루가24:31)" 그 예수님에 대하여 카라바조는 성서의 말씀대로 주관적으로 제자들의 눈이 열려 그분의 존재성을 알아봤다고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왼손으로 빵을 붙잡고 오른손으로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눠 준 순간 우연히 그 손바닥에 난 못자국을 본 왼편의 제자가 그제서야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 본 것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오른편의 제자가 광채가 나는 예수님의 얼굴에서 그분을 알아본 것이 아니고 손바닥의 못자국을 보고 바로크시대 가장 역동적인 단축법을 통해 그분을 알아보고 경악한 현장에 대하여 카라바조는 그 시대에 예수님에 대한 인식과 정신이 모순되고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고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예수님 아닌 것을 예수님으로 믿고, 그분과 아무 상관 없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치 예수님의 얼굴 뒤의 그림자가 우리의 차단된 의식 수준을 말해주고 있으며, 우리네 '인생의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만난 농부, 노동자, 걸인, 창녀, 부랑자 등 삶의 고단한 길가는 이름 모를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야말로 제각기 성스럽고 값진 존재로 이 시대의 예수님이자 그분의 제자들 그리고 '마리아'일 수 있음을 카라바조는 '엠마오의 저녁 식사'에서 어둠 속에 박혀 있는 그들의 신성을 들어냄으로써 설파하고 있습니다.
"삶에서 잃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아무것도 우리는 잃지 않는다"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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