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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영양가 높은 낙지와 새로운 맛의 경험, 참게장에 이어 차가운 겨울을 맞으며 나는 또 어떤 맛난 음식으로 이 겨울을 날까, 얼마나 많은 음식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새로운 음식에 대해 가슴 설레임은 충분히 나를 들뜨게 했고, 그 때마다 못 이기는 척 그 음식의 유혹에 빠져들 준비를 한다. 그런 나를 제일 먼저 반긴 것이 바로 굴이다.
굴은 우선 부피가 작아 많이 먹어도 배부르지 않아 좋다. 굴은 또 아무리 먹어도 질리는 법이 없다.
게다가 굴은 스테미너 음식으로도 널리 알려져, 몇 알맹이만 먹어도 힘이 솟는 착각마저 든다. 굴은 바다에서 나는 우유라 불릴 만큼 고단백 완전식품 영양식이다. 스테미너라니까 괜히 민망하게 들릴지 모르는데 이는 잘못 이해하는 거다. 근력, 정력, 생활을 더욱 활기차게 만드는 힘이 바로 스테미너다.
굴이 스테미너 음식으로 알려진 건 오랜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많이 먹기로 치자면 작가 발자크가 1444개로 대망의 1위,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가 175개, 시저도 이에 지지 않고, 나폴레옹도 세끼 식사를 굴로 때울 정도로 굴 킬러로 전해진다. 왕성한 사회활동도 모자라 지배자로서 자리 매김할 수 있는 힘이 굴에서 나왔단 말인가?
게다가 피부 미용에도 좋다 하니 내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실은, 11월 내내 굴만 먹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굴에 미쳐 있었다.ㅋㅋㅋ 그래서인지 연이은 음주에도 끄덕 없고, 아무리 오래 걸어도 지치지 않는다. 다른 때와 달리 쉽게 회복되는 것이 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우연의 일치치고는 신기할 정도로 몸의 변화가 크다. 궁금하면 직접 체험해 보시길...^^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굴의 7~80%가 거제, 통영에서 나온다. 그 외 전남과 서해 일대에서 소량 생산되는데, 이 겨울 지천에 깔린 굴로 원기 회복에 나서 보자.
통영에 가야 제맛인가. 아쉬운 대로 서울에서 가까운 서해 일대 굴로 유명한 천북에 가보자. 서해 고속도로 홍성-서산을 달리다 광천IC 로 빠져 남당리, 천북으로 가면 작은 포구에 굴구이 식당들이 늘어 서 있다.
작은 포구에 온통 굴 파는 식당들이 줄을 이었고, 가게마다 울퉁불퉁 못생긴 석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사진에 보이는 작은 통 하나가득이 2만 5천원. 제법 양 많아 보이지만 속을 까놓고 보면 한 접시나 될까...
그보다도 구워 먹는데 재미가 있다. 그러나 석화구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ㅡㅡ;;
번개탄 위에 철망을 얹고 석화를 올려 구워 먹는 굴구이.
남당리에서 반드시 대하를 먹어야 한다면 천북에서는 역시 굴구이를 먹어야 한다. 야트막한 불판 위에 제멋대로 생긴 굴을 올려놓고 뜨거운 불에 구워, 입이 열리면 그 입을 벌여 바닷물을 따뤄 내고, 잠깐 더 구워 먹는 굴구이... 이 맛을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겠나..
석화는 켜켜이 쌓인 껍질 속에 다양한 크기의 굴이 들어 있다. 껍질 까는 게 힘들어 고생이지만 안에 든 굴맛을 보기위해선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살짝 구워 잘 익은 굴을 한 입 물면, 굴 안에 머금고 있던 바닷물이 찔금~ 입 안으로 흘러들어 오고, 찝찔한 바닷물과 함께 말캉하게 씹히는 속살은 굴 특유의 향과 함께 형용할 수 없는 맛을 창조해 낸다. 조금 더 구워 내면 고소함이 극에 달해 단백질 고유의 향이 뇌를 강타한다. 띠웅~
자연산 굴은 좀처럼 먹기 힘들다. 가격도 비싸지만 신선한 굴을 시내에서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눈에 봐도 자연산 굴이 찰지고 맛있어 보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냥 그대로 먹는 굴회다. 초장이고 뭐고 아무것도 찍지 않고 오로지 자연의 굴 그대로를 먹는 것. 이것이야말로 굴을 가장 완벽하게 탐닉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바다에서 생긴, 자연 그대로의 신선한 굴은 색에서부터 입맛을 자극시킨다. 우유 빛 맑은 색에 윤기가 자르르~ 마치 진주를 보는 듯 반짝반짝 고급스런 윤이 난다.
굴의 온전한 맛은 굴 자체에서만 느낄 수 있다. 첫맛은 닝닝한 엄마의 젓맛, 곧 이어 풍만한 살의 씹는 촉감을 혀로 느끼며, 내장이 터지면서 나는 미세한 쓴맛까지 경험하고 나서야 최후에 `바다의 맛`을 만끽할 수 있다.
굴 한 알을 갖고도 머리 속에서는 수백 가지의 맛이 그려진다. 이런 소소한 경험은 먹는 즐거움을 배로 늘려준다.
피맛골 <열차집>의 굴전.
굴전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곳은 역시 피맛골 <열차집>이다. <열차집>의 굴전은 금방 만들어 고소하기 이를 데 없다.
여타 식당의 물이 질펀한 굴전이나 엄한 재료 마구 넣어 굴 고유의 맛을 해치는 미련한 주점의 굴전과 달리 살이 탱탱한 굴로 부드럽게 잘 부쳐 내어 당분간 지존자리를 꾸준히 지킬 것으로 보인다.
<열차집>의 굴전과 막걸리 한 사발... 뒷사람 등허리가 내 등과 부딪쳐도, 옆 사람 다리를 깡총 뛰어넘어 어렵게 앉아도 허허~ 웃음 지을 수 있는 사람 냄새 가득한 곳.. 열차집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
해장국집 굴국.
굴이 들어 간 탕은 무엇이든 시원하다.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만난 굴국 한 그릇이 음주로 찌든 속을 확~ 소독해 준다. 시원한 황태 국물에 다시마, 김, 콩나물 그리고 구수한 굴... 한 그릇에 온 몸의 독소들이 죄다 빠져 나가는 듯한 개운함을 느낀다. 요즘은 해장국집에서도 저마다 독특한 굴국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인사동 <오수>의 굴 요리.
굴 하면 역시 보쌈이 빠질 리 없다. 양념 잘한 김장김치에 굴 한 점 얹고 싸 먹는 칼칼한 맛의 굴 보쌈. 달착지근한 김치양념과 고소한 굴이 입에 착착 감긴다.
오늘, 술 약속 있다면 굴 보쌈 어떨까? 그리 많진 않지만 굴 보쌈으로는 <놀부보쌈>(최근 놀부가 고깃집에 심혈을 기울이느라 그런지 놀부 최초 주력 메뉴였던 보쌈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지점마다 차이는 좀 있겠지만 근래 화정의 <놀부보쌈>에 갔다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 죄다 남기고 나온 적이 있다. 고기 질이 심해도 너무 심하게 저급을 쓰는 바람에...ㅡㅡ;;)이 있고, 연남동 <송가네 기사식당> 등 기사식당의 보쌈정식도 가격 대비 훌륭하다.
밥집으로는 감자 옹심이 <영월>의 보쌈이 가격도 저렴하고 맛있고, 광화문 <미리내>도 족발과 함께 굴 보쌈이 제법 만만하다.
시청 앞 <정원 순두부>의 굴 순두부.
회사원의 점심 고민을 한 방에 날려 줄 대표 주자 순두부. 그 순두부에 굴이 들어가면 겨울, 최고의 굴메뉴가 된다. 얼큰한 국물에 고소한 굴의 진한 맛, 부드러운 순두부와 어우러져 잃었던 입맛을 자극하고, 다 먹고 나서도 한참동안 포만감이 지속된다.
<정원 순두부>의 굴순두부가 대모격이면 새롭게 시작한 프랜차이즈점 <들깨마을 맷돌순두부>의 굴순두부는 잘 키운 며느리 같다. 뜨거운 굴순두부, 밥 위에 얹어 부드럽게 말아 먹음 추위가 다 가실 정도...^^
주버니 가벼운 당신이라면 광교 조흥은행 본점 뒷골목 <포항과매기집>에서 아쉬운 대로 석화를 먹어도 좋겠다. 행동이 굼뜬 쥔아저씨 인심 좋게도 한 팩에 오천원 받는다. 접시에 몇 개 깔고 바가지 쒸우는 술집에 비하면 얼마나 고마운 가격인가. <포항과매기집>이야 좀더 추워지면 과매기로 한 번 더 등장할, 서울에서는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추억의 맛집이다.
굴은 신선도를 가장 신경 써서 먹어야 한다. 색이 거뭇거뭇하거나 쿰쿰한 냄새가 나면 절대 먹지 말아야 한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코로 맡아도 굴 자체의 냄새 말고는 일체의 잡내가 나지 않아야 한다.
상한 어패류는 몸에 치명타를 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맛탱이 간 굴을 발견하면 가차 없이 리콜하라. 기껏 클레임 걸었는데 생뚱맞은 쥔장 “굴 맛이 원래 그래요” 한다면 돈 아까워 말고 보는 앞에서 쥔장 다 드시게 하라.
겨울은 의외로 먹을 게 많다. 육지에서야 저장식품이 주겠지만 바다를 빙 둘러 먹거리가 제법 된다. 가능하면 여러 가지를 올리고 싶지만 우선 제일 먼저 굴을 소개해 봤다. 크게 비싸지 않고, 살찔까 염려할 일도 없고, 몸에도 좋고 맛도 좋으니 이 이상 더 완벽한 음식이 어디에 있을까...
경제가 어렵고 몸은 지칠 대로 지치고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하다면 오늘은 가슴 한 켠에 잠시 밀어두고, 시원한 겨울 바람 맞으며 굴 한 접시 비워 보자.
소주 소비량이 전보다 늘었단다. 그만큼 가슴 답답한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이럴 때 겨울 바람이 칼날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마음에 상처 안 입으려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너무 애쓰지 말자. 피하려 애쓰다 보면 안 나도 될 상처만 더 생길지 모른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자.
2005년 밝아오는 새해는 꼭 좋은 일만 가득 할 것이다. 그리 믿는다. 그리 믿어 보자.
굴은 바다에서 자랐다. 굴은 바다의 냄새를 그대로 맞고, 파도에 부딪히며,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살았다. 그래서인지 굴은 시원한 바다를 쏙 빼닮았다.
더 추워지기 전에 굴 한 점으로 가볍게나마 바다의 기운을 내 몸에 비축해 두자.
나는 오늘도 바다 먹으러 간다.^^ |
마루의 계절별미 예찬 / 맛집멋집 / http://myfriday.joins.com/taste/ / 2004.12.2.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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