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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이야기] 16
S#1. 길
바로 앞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차. 중호가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중호 : 아 저 미친놈이..
하는데 신이 굳어서 본다. 신네 차의 앞을 바로 돌아 가는 차.
도우. 그리고 조수석의 은수.
신 : 돌려.
중호 : 뭐?
신 : 차 돌리란 말야. 저 차. 채도우!
급회전을 하는 중호.
S#2. 거리
앞서 달리는 도우의 차. 그 뒤를 따르는 중호의 차.
// 중호 차 내부
신이 급하게 핸드폰의 버튼을 누른다. 저 앞의 도우 차를 보며 애가 탄다.
// 도우 차 내부
은수의 핸드폰이 울린다. 은수가 후딱 옆의 도우를 본다.
도우는 가면같은 얼굴로 전방만 주시하고 있다가 은수의 핸드폰을 보더니 백밀러를 본다. 은수도 뒤를 돌아본다.
은수 후딱 핸드폰의 폴더를 열었다가 다시 닫는다.
// 거리
중호의 차 앞으로 다른 차가 끼어드는 바람에 중호가 욕설이 나올라 한다.
S#3. 사거리
신호등이 노란불로 바뀐다. 도우가 그대로 직진해버린다.
빨간불이 된다. 중호의 차가 급정거를 한다.
네거리를 가로지르는 차들이 지나간다.
내부에서 신이 미치겠는 심정으로 보는데 저 앞의 도우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진다.
S#4. 건축공사장
도우의 차가 거칠게 들어와서 멈춘다. 운전대를 부여잡고 도우는 마치 숨도 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다시 울리기 시작하는 은수의 핸드폰.
도우 : (감정을 누르고 누른) 아까 그 자리에 은수 니가 아니라 그 놈이 있었다면 나 무슨 짓을 했을지 몰라. 은수야.
은수 : (후딱 폴더를 열어 귀에 대더니) 김신씨. 저 오빠하구 같이 있어요. ..당연하죠. 나 괜찮아요. 오빠하구 같이 있는걸요.
(억지로 웃는) 다른 사람이랑 있는 줄 알았어요? 걱정 마세요.
도우, 은수가 신과 얘기하는 것도 싫다. 문을 거칠게 열더니 내려버린다.
은수 : (긴장이 풀리며) 저 진짜 괜찮아요.
은수가 타고 있는 도우의 차 쪽으로 중장비 차 하나가 다가온다.
S#5. 사거리
한쪽에 차를 댄 중호의 차.
신이 차 밖에 나와 전화 중이다.
신 : 어디에요. 거기. 채도우 그 인간. 내가 계속 궁지에 몰아넣었어요. 그 놈 미친 놈인 거 알면서 내가 일부러 그랬다구요.
그러니까 당신 지금 무슨 일 생기면 나 때문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
S#6. 건축현장
도우의 차 옆으로 중장비 차가 지나가고 있다.
은수 : 오빠가 할 얘기가 있나봐요. 얘기하고 갈게요. 걱정마요.
하는 소리가 중장비 소리와 섞인다.
은수가 유리창 밖을 본다.
도우가 거기 서서 은수를 보고 있다. 은수, 전화를 끊는다.
S#7. 사거리
신 : 여보세요. 이봐요.
하다가 그대로 있다. 아까 들린 소리를 생각하고 있다.
운전석에서 중호가 기웃 보며.
중호 : 뭐가 어뜩게 되고 있는 건데?
신 : 중장비 소리야. 포크레인? 불도저?
중호 : 뭐?
신 : 중장비 차가 지나갔어. 이 근처에 공사 하는데 어디야.
하며 사방을 둘러본다. 사거리 주변은 말끔한 도심. 지나가는 일반 차들.
S#8. 건축현장
은수가 차에서 내린다.
도우가 똑바로 은수를 보고 있다. 아직까지는 누르고 있는 목소리.
도우 : 그러니까 은수 니가 내 옆에 있어야지. 내가 돌아보면 보이는 데 있어야지. (점점 억누르던 것이 흔들리고 있다)
대체 어디 가서 뭘 하구 있는 거야. 이런 말 내가 꼭 해야 돼? 말 안하면 몰라? 왜 몰라. 너 내 동생이잖아.
은수 : 오빠.
도우 : 너두 내가 필요하잖아. 안 그래? 이따위 벌레같은 사람들 속에서 너두 힘들잖아.
봐. 이 더러운 세상에서 나하구 너를 알아주는 것들 아무도 없어. 나하구 너 뿐이야. 알잖아. 너두.
은수 : 아니야. 오빠가 틀렸어.
도우 : ...뭐?
은수 : 이 세상 그렇게 더럽지 않아. 사람들은 벌레가 아니야. 오빠가 다른 거야.
도우 : (은수가 하는 말을 믿을 수가 없다)
은수 : (어쩔 수 없이 눈물이 솟아) 오빠가 다른 데 사는 거야. 그러니까 오빠가 일루 와. 우리한테.
도우 : ...우리?
은수 : 오빠.
은수가 도우에게 다가서려다 멈칫. 도우가 은수의 뒤를 보고 있다. 은수가 뒤를 돌아본다.
저 멀리 공사장 입구 쪽으로 들어서고 있는 중호의 차.
도우 : 은수 니가 불렀니? 오빠가 무서우니까 도와달라고? 너의 우리한테?
은수, 도우의 손을 봤다. 주먹이 쥐어지고 떨리는.
은수 저도 모르게 다가오는 차와 도우의 가운데를 막아서더니 두 팔을 벌린다.
은수 : 하지마 오빠. 제발. 사람들 더 다치게 하지 마.
도우, 완전히 상처 받은 눈으로 은수를 보다가 돌아서더니 세워져 있는 자기의 차에 탄다. 그대로 출발해버린다.
다음 순간 은수의 뒤에 와서 서는 차.
거의 동시에 다리에 맥이 풀리며 주저앉는 은수.
중호와 신이 동시에 튀어내려 은수에게 온다.
신 : (은수를 잡으며) 이봐요.
은수 : (아직 눈물이 남아서) 괜찮다구 했잖아요. 오빠는 나 안 다쳐요.
신이 앞을 본다. 도우의 차가 멀리 앞으로 돌아 입구 쪽을 향하고 있다.
그대로 중호의 차 운전석으로 타는 신. 바로 후진을 한다. 거칠게.
// 입구 쪽
나서려는 도우의 차를 후진해온 신의 차가 막아세운다.
신이 차에서 내린다. 도우도 내린다.
성큼 다가서 대치하며, 서로의 감정이 정제되지 않고 폭발하다가.
신 : 니 동생도. 니 아버지도 내가 보호하구 있어. 그러니까 만나고 싶으면 나한테 먼저 연락하구 허락받아.
도우 : (노려본다. 노려보면서 냉정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김 신.
신 : 니가 건드리는 모든 사람. 다 내 사람들이니까 이 말. 명심해.
도우 : 니 사람들.
신 : 그래. 내 사람들.
도우 : 니가 말하는 사람이란 게 뭔지 알어? 둔하고 야비하고 비겁하다 못해 구역질 나는 존재. 너 모르지? 같은 종자니까.
신 : 사람도 아닌 게 나한테 사람에 대해서 가르치겠다고?
도우 : 이제부터 사람이 뭔지 하나하나 보여줄테니까 잘 봐. 제대로 잘 가르쳐줄테니까.
신이 불끈 나서려는데 그 어깨를 짚는 중호의 손.
중호 : (낮게) 또 들어가고 싶어?
그런 중호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더니 여전히 도우를 노려보며.
신 : 헛소리 집어치구 잘 들어. 니 동생. 경아. 누구든 내 사람들 다시 다치게 해봐. 그땐 내 목숨 저당 잡히구 너 먼저 죽일 거니까.
도우 이제 냉정을 되찾았다. 두 손을 슬쩍 들어보이더니 뒷걸음질.
도우가 운전석 옆에서 잠깐 먼데를 본다. 거기 은수가 애절하게 도우를 보고 있다.
도우가 차에 타더니 차를 후진해서 거리를 만들고 빠져나간다. 신, 남은 울분을 어쩌지 못해 냅다 타이어를 찬다.
S#9. 범환의 건물
범환이 귀찮은 얼굴로 안경을 만지며 앞에 쌓여진 장부들을 보고 있다.
범환 : 엇다 싸인하라고?
옆에 대기하고 선 회계사가 얼른 한 곳을 가리킨다.
회계 : 여깁니다.
범환 : (싸인 직직 해주고) 또.
회계 : (재빨리 다른 서류를 들이밀어준다) 여깁니다.
범환 : 회계사선생.
회계 : 예.
범환 : 내가 호구야. 무지렁이야?
회계 : 예?
범환 : 아무거나 들이대고 싸인하라면 해? 설명을 해야 될 거 아냐.
회계 : 아 예. 이것은..
하는데 재빨리 전화기를 들고 달려온 부하가.
부하 : 명도 뉴... 라는데서 전화가 왔습니다. 큰형님 성함 대면서 바꾸라는데요.
범환 : 어디?
부하 : (재빨리 다시 전화기를 귀에 대고) 어디라고요. 명도.. 뉴우딜.. 정.. 뭐요?
범환 : (성질 나서 벌떡 일어서더니 전화기를 뺏어서) 김범환이요. 어디시라고?
S#10. 도우의 사무실
여직원이 수화기를 도우에게 넘기며.
여직원 : 김범환씨 본인입니다.
도우 : (전화를 받아) 채도우라고 합니다. 직접 만나서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S#11. 채회장 정원
급히 뛰어올라오는 중호. 현관 입구에는 조직에서 나온 두 사내가 버티고 서있다.
S#12. 채회장 거실
회장은 소파에. 옆에는 은수가.
명선이 애들을 데리고 서 있는 앞에 신.
신 : 밖에 있는 애들이 앞으로 어디 가시든 지켜줄 거에요.
그러니까 형수. 애들 학교 델구 갈 때나 장에 갈 때도 혼자 가지 마시라구요. 아셨죠?
명선 : (영문 모르지만 끄덕끄덕)
신 : 회장님두요. 병원 가실 때는 쟤들이 모실 거니까..
하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들어오는 중호.
중호 : 야 재미없게 됐다.
하다가 그제야 명선을 보고 얼른 인사.
신 : 뭐가.
중호 : 큰형님하구 채도우 그 놈이 만나기로 했대. 방금 연락 받았는데. 벌써 만나러 나가셨단다.
신 : (난감해지는데)
중호 : 큰형님이 그 놈에 대해서 알어? 그 놈이 너하구 어떤 사인지. 어떤 놈인지 모르지?
킬킬 웃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채회장이 웃고 있다.
회장 : 제대로 건드려놨구만. 니들이 그 놈을 제대로 쑤셨어. 독한 놈이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어떻게 막아 낼거야?
S#13. 식당 귀빈실
문이 열리며 조폭 부하 둘이 먼저 들어와 안을 살핀다.
긴 테이블 안 쪽에는 도우 혼자 앉아있다.
뒤이어 들어오는 범환. 그제야 일어서는 도우. 미소를 짓는다.
도우 : 채도웁니다.
범환 : 그 이름. 내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이뻐라.. 하는 애한테 들은 적이 있어요.
S#14. 채회장 거실
신이 조급해서 전화를 하고 있다.
신 : 잠깐이면 된다니까요. 뭐가 안되요.
옆에서 중호가 폼나게 전화기를 뺏어들더니 명선을 충분히 의식하며.
중호 : 임마. 나 중호형이다. 큰형님께 급하게 드릴 말씀이 있으니까 바꿔. 어쭈우. 바꾸라면 바꿔야 될 거 아냐.
S#15. 식당 귀빈실 앞 복도
입구에 양쪽으로 선 사내 중의 하나가 전화를 받고 있다.
사내 : 아 글쎄 안된다니까요. 형님께서 얘기 끝날 때까지 방해하지 말라구 하셨단 말입니다.
S#16. 귀빈실 내부
도우가 두툼한 서류철을 밀어주며
도우 : 검토해보세요. 우리 명도시에 앞으로 들어설 건물들이에요. 하나의 새로운 신도시가 들어서는 거니까 건축량이 방대하죠.
범환 : 방대하면..
도우 : 주변에 건축자재 취급하는 중소기업. 하청기업. 가진 친구들 많으시죠? 그 관리 맡아보지 않으실래요?
범환 : (저도 모르게 앉는 자세를 바로한다. 완전 땅기는 제안이다) 근데..
도우 : 그런데요?
범환 : 나를 아시오? 나한테 뭐 은혜 갚을 일이라도 있으신가?
도우 : 없는데요.
범환 : 그런데 왜 이런 엄청난 제안을 해.
도우 : 농업벤처에 투자하셨죠? 30억.
범환 : 허어..
도우 : 우리가 그 땅이 필요해서요. 그런데 억지를 쓰면서 안 팔겠다고 하네요. 말도 안되는 값을 부르고 있어요.
범환 : (말없이 보는)
도우 : 사장님께서 투자금액만 빼내신다 하면 저들도 버틸 힘이 없어지니까 좀 더 합리적으로 대화가 될 거 같아요. 이게 첫째구요.
두 번째는 사장님께서 갖고 계시는.. (하며 입구에 버티고 선 사내 둘을 보며) 인력도 필요할 거 같거든요.
건축현장이란 게 그렇잖아요. 잘 아시겠지만.
범환 : 김신이라고 아시나?
도우 : 김신... (생각해보는 척) 아.. 들은 적 있어요. 그 이름.
범환 : 들은 적이 있다....
도우 : 무슨.. 가족이 하던 공장이 저희 회사 때문에 부도가 났다던가.. 해서 행패를 부리고 간 적이 있는데.
아마 그 사람 이름이었죠?
범환 : (보고 있는)
도우 : 사업을 하다 보면 별 일 다 당하잖아요. 사장님도 그런 경험 많으시죠?
범환이 빙긋 웃는다.
도우가 와인을 범환의 잔에 따르며.
도우 : 그 친구를 잘 아신다면 한번 소개시켜 주세요.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게 여간 일손이 많이 필요한 게 아니니까.
일자리 정도는 얼마든지 구해줄 수 있을 거에요.
도우가 자기 와인잔을 든다.
범환이 잠시 보다가 자기 잔을 들어 건배를 맞춰준다.
S#17. 거리
신의 차가 달리고 있다. 차에는 신이 혼자.
운전을 하는 신이 핸드프리로 전화 중.
신 : 내가 지금 농업벤처로 가는 중인데요. 내가 가진 게 조합장님 번호밖에 없어서 그래요. 근데 연락이 안돼.
그 주변 누구라도 좋으니까 어떻게든 연결해서 연락을 좀 해줘요. 나 갈 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말라고.
S#18. 뮤즈 내부
문호가 전화를 받고 있다.
문호 : 그러니까 김신아. 니 생각에는 채도우 그 놈이 농벤 사람들을 건드릴 거 같다 이거지. 그래서 조합장 먼저 단속하라고?
근데 너 너무 과민반응 아니냐? 그 조합장이란 사람 나두 봤지만 의리의 돌쇠같은 분이던데.
설마 채도우 그 놈 말에 바로 넘어가겠냐. 안 그냐?
하며 옆의 경태를 본다. 옆에 바싹 붙어서 듣고 있던 경태는 그 질문에 심각하게 생각해본다.
S#19. 거리
차 안의 신이 계속 운전을 하며.
신 : 아무튼 조합장님 먼저 찾아주세요. 찾아서 나하구 연결 좀 시켜달라구요. 끊어요.
(운전하며 다른 번호. 스피커폰으로 요란한 벨소리가 나더니)
재명소리 : 핼로우.
신 : 재명. 너 김형사하구 친하지?
S#20. 경찰서 상황실
재명이 아래를 노려보며 전화를 받고 있다.
재명 : 친하다는 건 정확하게 어떤 의미야. 어디까지 간 게 친한 거야.
재명은 현재 삼분라면이 익기를 심각하게 기다리는 중이다.
S#21. 거리
차안의 신.
신 : 그 형사. 법보다 몸이 먼저 나가는 스타일인 거 같은데. 당분간 조심하라고 전해. 절대로 어떤 꼬투리도 잡히지 말라고.
언제 어떻게 뒷덜미를 잡힐지 모르니까.
S#22. 경찰서 상황실
재명 : 그런 복잡한 말은 직접 해. 바꿔줘?
하며 보는 곳에 경주가 다가오고 있다.
재명 : 헤이. 신. 여기 형사...
하는데 경주가 지나가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익어가는 삼분라면을 가져가버린다.
재명이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본다. 걸어가며 벌써 먹기 시작하는 경주.
S#23. 거리
차 내부. 신이 또 새로운 전화 번호를 찍는다. 찍다가 헛손질을 하다가 그대로 끼익 차를 갓길에 세워버린다.
뒤에서 따르던 차가 빠앙 크랙션을 거칠게 누르며 지나간다.
어느새 가빠진 숨. 초조함. 두 손으로 얼굴을 부비고 심호흡을 해보려고 해본다.
대체 다음에 뭘 해야 할지 도우보다 빨리 머리가 돌아야 하는데 그게 안되는 듯 해서,
이러다 또 누가 나 때문에 다칠까봐 견딜 수 없이 초조하다.
S#24. 농벤 하우스들 앞
민수가 돌아다니며 지나는 사람들에게 묻고 있다.
민수 : 조합장님 못 봤어? 어디 가셨대? 연구동에도 없고. 사무실에도 없고. 거기 하우스에도 없지?
얘기 듣는 사람들 고개를 절레절레.
민수 : 아아 진짜.. 어딜 가신거야.
하며 전화번호를 누르는데. 지나가던 조합원 하나가.
조합원 : 조합장님 찾어?
민수 : 알어?
조합원 : 아까 나갔는데.
민수 : 어딜.
조합원 : 뭐. 약속 있다구 이사들하고 다 같이 나갔어. 엄청 좋은 차가 와서 다 싣구 갔어. 그 차 엄청 비싸 보이던데.
민수 멍하다가 그제야 핸드폰이 통화연결된 거 깨닫고 얼른.
민수 : 조합장님 나갔다는데. 이사들하고 다 같이..
하다 보면 거기 신의 차가 와서 선다.
신이 전화를 하며 내리며.
신 : 어디루 갔다구요?
하며 전화를 끊는다.
민수 : (조합원을 보며) 그니까 어디루 갔는데에.
조합원 : 모르지.
신 막막해진다.
S#25. 중국집 룸
조합장과 이사 둘이 주루루 앉아있다. 고급 중국집이라서 점퍼 차림의 농벤 사람들이 더 초라하게 보인다.
조합장이 전화를 하고 있다. 머리를 조아리고 예. 예.. 하는 중.
제복을 입은 여점원들이 전채 요리를 돌아가며 서빙을 하자. 이사들은 어쩔 줄 몰라 황송해하며 받는다.
그 앞에 앉은 오시장.
오시장 : 뭐래요. 뺀대지요?
이사들이 걱정되서 조합장을 돌아본다. 조합장이 완전히 풀이 죽어서 전화를 끊고 있다.
오시장 : 그봐요. 내가 아주 걱정이 돼서 달려왔대니깐. 그 투자자란 사람 어떤 사람인지 알기나 해요?
(괜히 은밀하게) 아주 유우우명한 조직 폭력배 보스에요. 보스. 큰형님.
이사들 겁먹었다.
오시장 : 당신들 정말 큰일 날 뻔 했어요. 아니 겁두 없이 그런 사람을 투자자로 받아요? 뭐 하나 맘에 안 들어봐아.
당장 조직 애들 와르르 몰구 와서 하우스고 연구실이고 와장창 때려부수면 그만이지.
이사1 : (조합장을 찌르며) 뭐래요?
조합장 : 우리한테 투자한 30억 빼간대요.
오시장 : (혀를 찬다)
이사2 : 그럼 우린 어뜩해요.
오시장 : 당신들 30억 당장 뱉어내야 되잖아요. 있어요? 없죠? 그럼 뻔하잖아요.
30억 못 내놔? 그럼 조직애들 우루루. 하우스 연구동 와장창. 그럼 당신들 땅이고 뭐고 다 뺏기는 거지.
이사1 : (조합장을 흔들며) 어뜩해요. 우리.
조합장 : 시에서.. 어뜩게 좀 도와주실 방법이..
오시장 : 아침에 채도우 단장님을 만났어요. 그 양반 당신들한테 삐쳤어. 땅 안산대.
조합장 : 아니. 며칠 전만 해두 평당 백에 사주신다구..
오시장 : 그럼 그 말 나올 때 잡았어야지. 세상에 그렇게 자비로운 사업가가 어딨나아.
조합장 : 그래두요. 보십쇼. 이 근처 땅값 다 올라서요. 이백 이하짜리 없습니다.
우리 농벤은 정 가운데라서 평당 사백이 제값이에요. 우리 신이 선생이 그 값에 팔아준다고..
오시장 : 당신들이 신이선생이라고 부르는 사람. 본업이 뭔지 모르죠? 그 사람 전과자에 사기꾼이야. 차암.. 사람들 진짜 순진해.
이사들이 조합장을 본다. 조합장, 난감해진다.
오시장 : (스윽 눈치를 보더니 아래에 있던 계약서를 턱 올려놓는다) 내가 채단장한테 아주 사정을 해서 받아왔어요.
단. 오늘 중으로 계약하셔야 되요. 오늘 내루 해결 못하면 나두 더 어쩔 수가 없어. 자 백만원. 안 깍고. 그대로 다.
조합장 : 근데.. 이게 우리 조합원들 모두의 의견을 먼저 들어봐야..
오시장 : (또다른 조합법 서류철 터억 올려놓으며) 농업벤처 조합법인에 정관 봤어요. 여기 이렇게 되있대요.
(접혀져 있는 페이지 펴서 읽는) 조합이익에 관한 긴급한 상황시 조합원을 대표하여 조합장이 임의처리할 권한을 갖는다.
(모두를 보며 의기양양) 내가 공부를 좀 많이 해요.
S#26. 농벤 마당
검은 승용차가 들어오고 있다. 기다리던 신이 본다.
차에서 내리는 양복의 기사. 그가 열어주는 문으로 황송해하며 내리는 조합장과 두 이사.
신이 얼른 앞으로 나서 그들을 맞이하는데. 신을 일부러 피해서 오는 조합장.
신이 불안해지며 돌아본다.
S#27. 농벤 식당 앞 / 저녁
어디선가 종을 땡땡 치고 있다. 조합 사람들이 삼삼오오 식당으로 들어가고 있다.
확성기 소리가 들리고 있다.
소리 : 농업벤처 조합원 여러분. 오늘 중대 발표가 있습니다. 모두 회의장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이 식당 쪽으로 가는데, 입구에 서 있던 이사1이 머뭇거리며 신을 막는다.
이사1 : 저기요. 죄송한데요. 이건 조합원들만 하는 회의라서요.
신이 뒤로 물러난다.
신의 뒤로 오던 민수가 놀라서.
민수 : 뭐야. 무슨 일인데 신이 선생을 내쳐.
신 : 대충.. 알 거 같은데요.
민수 : 뭔데. 뭐얼?
신이 돌아서 걷는다.
신의 옆을 지나쳐 계속 안으로 가는 사람들. 그 중에는 신이 선생 안 들어가? 하며 묻는 손 흔드는 아줌마도 있다.
S#28. 채회장 정원
중호가 전화를 하고 있다.
중호 : 어 맞어. 큰형님이 돈 빼라 그랬댄다. 투자금 30억. 채도우 그 느무 시키한테 완전 홀려 가지구.. 야. 내가 가서 말할까.
큰형님한테 가서 그 자식이 어떤 놈인지 다 말해? 내 가서 말할게. 까짓 거. 말하다 맞기밖에 더하겠냐. 설마 나 죽이시겠어?
S#29. 농벤 선인장 하우스 내부
주욱 피어있는 색색의 꽃같은 선인장들..
그 위로 들리는 신의 소리.
신소리 : 그래서.. 댓가로 뭐 받으셨대? ...명도 건설 하청업체 브로커.. 대단하네.
신이 혼자 앉아서 전화 중이다.
신 : (웃어보려고 한다) 그 정도면.. 홀릴만 하네. 알았어. ..생각 좀 해보고.
전화를 끊는다. 바로 울리는 전화벨.
신 : 어.. 알아봤어? (하면서 무릎에 종이를 펴고 메모할 준비)
S#30. 경태 방
경태가 모니터를 보며.
경태 : 조합원 과반수 출석 투표 투표 조합원 2/3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이거면 됩니까? 더 있습니다 더 많은데.. 네에.
신이 전화를 끊은 듯 자기도 끊는다.
문호가 입구에서 보고 있다.
문호 : 그래서.. 뭐야.
경태 : 이구이사가..
문호 : 김신이..
경태 : 버림받은 거 같습니다.
문호 : 누구한테.
경태 : ...사람들한테요.
S#31. 선인장 하우스 내부
신이 생각에 잠겨 있다. 손에는 메모를 한 종이.
일어나려다가 다시 주저앉는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반이다.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고 심호흡을 하고 벌떡 일어난다. 돌아서다가 멈칫.
저만치 은수가 서 있다가 자기도 멈칫.
신 : 거기서 뭐해요.
은수 : 기다렸어요.
신 : 뭘. 나를?
은수 : 네. 김신씨 전화 끝나고 마음 정할 때까지.. 계속.
신 : 여까지 도대체 ..누구하고 왔어요?
은수 : 버스 타구 왔어요. 혼자.
신 : 아니 내가 혼자 다니지 말라구 그렇게.. (화를 내다가 어이없어 관둔다)
은수 : 도와드리려구 왔어요.
신 : 글쎄 뭘요.
은수 : 뭐든지. 제가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시켜만 주면.
신 : (보는..)
은수 : 김신씨 뭔가 하실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도와 드릴려고.
신 : (보다가) 글씨 잘 써요?
은수 : 네?
신 :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글씨를 못 써서 그러는데. 잘 써요?
말하면서 신은 벌써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옆에 빈 나무 박스를 보더니 주워들어 이리저리 살핀다.
S#32. 식당 앞 / 밤
회의가 끝나고 문이 열린다.
사람들이 분분이 나서기 시작한다. 다들 심난해서 수런거리고 있는데. 느닷없이 들리는 소리.
신소리 : 명도농업벤처의 땅을 단돈 100만원에 팔겠다는 얘기는 이 농벤을 해체하겠다는 얘깁니다. 여러분 여길 좀 봐주세요.
사람들이 돌아보는 곳.
거기 신이 나무 판자에 각목을 어설프게 박아서 만든 팻말을 꼽고 그 앞에서 소리쳐 얘기하고 있다.
팻말에는 은수가 커다랗게 써넣은 조합법이 쓰여져 있다.
(내용은 [ 4조 4항 조합의 해산 분할 품목조합 조직변경 사항의 결정은 조합원 과반수 출석 투표,
조합원 2/3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
은수가 앞의 어설픈 탁자 위에 진정서 뭉치며 볼펜을 준비하고 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 앞으로 모여든다.
신 : (계속) 농벤, 조합장 마음대로 해산 못합니다. 여기 보이시죠? (적힌 글을 가리키며) 4조 4항 조합을 해산할 때는
조합원들이 찬성해야 됩니다. 여러분. 아무도 모르게 조합장 혼자 싸인하고 온거죠?
조합장이 안에서 뛰어나오며 본다. 어이가 없다.
신 : (조합장을 똑바로 보며) 조합장님. 그 싸인 아직 안 늦었어요. 취소시킬 수 있습니다. 이거 보세요.
하며 종이를 하나 넘긴다. 다른 내용. 글자는
[조합법 32조 의결 방법, 의결내용이 법령위배 등의 사유로 결정을 취소하기 위해 농림부 장관에게 청구할 소를 제출해
조합장의 싸인을 무산시키고 해임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합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청구하여야 한다.]
조합장의 싸인을 무산시키고 해임시킬 수 있다. 부분이 클로즈업.
신 : 여기 32조. 우리가 조합원 과반수의 서명을 받아서 농림부 장관한테 소를 제출하면요. 조합장님 싸인 취소시킬 수 있어요.
그러니까 여기 서명하시면 됩니다.
하는데 달려온 조합장이 팻말을 빼들고 꺽고 던져 발로 밟는다.
신, 아랑곳없이 계속 사람들에게 말한다.
신 : 좀만 기다려 주세요. 이 땅 400에 팔 수 있습니다. 그 돈 받으면 바로 저 산 너머에 이만한 땅 사구요.
그 땅에 서민아파트 세동. 학교 하나. 보건소도 하나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믿고..
조합장 : (대뜸 신의 멱살을 잡아) 뭘 믿어. 당신 조직폭력배에 전과자라면서. 그런데 뭘 믿어.
신 : (멱살을 잡혀서도 여전히 사람들을 향해 소리쳐) 믿고 기다려 주세요. 제가 받아올게요. 평당 400만원.
그거 받으면 우리 농벤 옮기구요.
이사들도 달려들어 신을 끌어낸다. 신은 여전히 소리친다.
신 : 아파트 세동. 학교 하나. 보건소 하나 지을 수 있어요.
은수가 울음을 막으며 신을 따라간다.
사람들이 모두 냉냉하게 신을 보다가 자리를 떠난다.
민수도 쩝쩝 입맛을 다시며 보다가 돌아선다.
S#33. 도우 사무실 / 밤
우아하게 재즈 음악이 흐르고 있다.
도우가 등을 보이고 창을 향해 앉은 채, 손가락으로 또각또각 리듬을 타고 있다.
전화벨이 울린다. 손가락이 찾아가서 버튼을 누르면
여직원소리 : 의원님 연결됐습니다.
도우가 수화기를 든다.
도우소리 : 채도웁니다. 별고 없으시죠?
도우가 의자를 돌려 앉는다. 이제 미소짓고 있는 도우의 얼굴이 보인다.
도우 : 의원님 법조계에 친한 분 많으시죠? 그쪽 출신이시니까. 저 부탁 하나 드려도 되요? 명도시에 좀 깐깐한 검사분이 계세요.
제 밑에서 일하는 사람 자꾸 오라가라 하는 게
노크소리에 보면, 살짝 문이 열리며 경아가 들여다본다. 손짓해서 들어오게 하며 계속.
도우 : 저의 어디가 맘에 안 드시는지 모르겠네요. 거기 서장님도 아주 일하기 힘들어 하시구요. (경아에게 미소를 보내며)
아시겠지만 명도시. 지금이 제일 힘든 시기거든요. ...(듣고) 그래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그럼.. 다음에 한번 모실게요.
상대가 끊기 기다렸다가 수화기를 놓고.
도우 : 왜 아직 퇴근 안했어요.
경아 : (근처의 벽 쪽으로 가며) 같이 하려구 기다리고 있는데요.
도우 : 나 많이 늦을 거 같아요.
하며 다시 스피커폰을 누른다.
도우 : 명도 경찰서장 연결해줘요.
여직원소리 : 알겠습니다.
하는데 경아가 옆의 벽에 기대는 순간. 그 벽이 옆으로 밀리며 그 아래 있던 조감도가 드러난다.
경아가 놀라서 그 조감도와. 거기 붙어있는 도우의 그림, 그레이스 왕비의 사진 등을 보는데.
반사적으로 일어난 도우가 한걸음에 다가와 다시 뭔가를 작동시켜 벽을 닫는다.
경아 : 내가 보면.. 안되는 거였어요?
도우 : (그 말 무시하고 다시 책상 쪽으로) 먼저 가요. 난 아마 새벽에나 들어갈 거 같으니까.
경아 : 어제. 종일 힘들었죠?
도우 : (돌아보는)
경아 : 자금 문제는 계속 방해 받고, 사람들은 이상한 소문에 수근대고
도우 : (미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냥 해주면 좋겠는데. 나 지금 많이 바빠요.
경아 : 회의 도중 나가서 어디로 갔어요?
도우 : ...
경아 : 아가씨 만났어요? (감정은 감추고 가벼운 듯)
도우 : (아무렇지도 않게) 그래요.
경아 : 앞으로도 힘들 땐 아가씨한테 갈 거에요?
도우 : 그게 중요해요? (정말 모르겠다)
경아 : 나 지금 어떤 기분으로 보여요?
도우 : (그저 보는)
경아 : 힘든 남편을 기다렸는데, 새벽에 잠깐 들어오더니 옷만 갈아입고 나갔어요. 그 다음 그 아내.. 기분 어떨 거 같아요?
(응? 하는 기분으로 미소지어 보는)
도우 : 경아씨. 나 이런 대화.. 좀 피곤한데.
경아 : ..(보다가 끄덕인다) 그냥 확인해 봤어요. 당신한테 보이는 나는 어떤 모습인지.
놓았던 백을 드는데.
도우 : 아..
하더니 책상 서랍을 열어 금빛 카드를 꺼내 건네준다.
도우 : 주는 거 잊었네. 한도액 생각하지 말고 써요. 경아씨도 돈 많은 거 알지만. 나.. 남편이잖아요.
하며 도우가 웃는다.
그 때 스피커폰이 울린다. 도우가 버튼을 누르면.
여직원소리 : 서장님 연결됐습니다.
도우 : (수화기 들어서) 서장님?
그러는 도우를 보다가 경아가 조용히 돌아선다. 손에는 무겁게 들려있는 카드.
도우 : 빠르면 내일. 늦어도 며칠 내로 서장님 문제는 해결 될 거에요. 그럼 좀 해주셔야 될 게 있는데요.
하며 본다. 경아가 나가서 조용히 문을 닫고 있다.
S#34. 농벤 식당 앞 / 밤
이제 모두 가버린 텅 빈 공간.
신이 오다 보면 거기 은수가 혼자 쭈그려 앉아 부숴진 피켓과 널려진 서명지를 주워모으고 있다.
신이 잠자코 옆에 쭈그려 같이 주워 모은다.
S#35. 농벤 주차장 (마당)/ 밤
신이 주워모은 것들을 트렁크에 집어넣고 탕 닫는다.
은수를 위해 뒷좌석의 문을 열어준다. 은수가 머뭇거린다.
신 : 타요.
은수 : 내일 다시 오실 거죠? 여기.
신 : 당신 아니면 대충 여기서 자려고 했지.
은수 : 그럼 저두 대충..
신 : 저기요.
은수 : 네.
신 : 아까 도와준 건 고마운데. 안 그래도 되요.
은수 : 그치만..
신 : 마음 불편하잖아요. 당신 오빠하고 싸우는 일인데. 그래서 힘들어하구 있는 거 아니까 안해도 되요. 그만 해요.
은수 : (또 울려고 한다)
신 : 뭐야. 또 울라구..
은수 : (고개 젓는)
신 : (괜히 화내서) 타요. 밤새 서 있을래요?
은수가 얼른 탄다.
신이 문을 닫아주고 운전석으로. 타고. 벨트를 하고 시동을 걸고 그러다 백밀러로 뒤를 본다.
은수는 오두마니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신 : (무뚝뚝) 고개 들어요.
은수 고개를 들면.
신 : (계속 무뚝뚝) 훨씬 보기 좋네.
하더니 차를 출발시킨다.
S#36. 채회장 집 앞 / 밤
도착하는 신의 차. 운전석에서 내리는 신. 열어주기 전에 먼저 내리는 은수.
그런데 앞에서 헤드라이트가 켜진다. 눈이 부셔 그쪽을 보는데 다시 꺼지는 헤드라이트.
거기 정차해있던 차에서 경아가 내린다. 신과 은수를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착잡한 심정으로 본다.
신 역시 뭐라 말을 꺼내지 못하는데.
은수 : 언니.
경아 : (비로소 은수를 돌아보더니) 아가씨 기다렸어요.
은수 : 왜 집에 안 들어 가시구..
경아 : 나 환영 못 받거든요. 들어갔다가 쫓겨나와서 여기서 내내 기다렸는걸.
신 : (은수에게) 그럼..
하더니 다시 운전석의 문을 열며 타려는데
경아 : 신아. 얘기 좀 해.
신 : (멈췄다. 보는)
경아 : (은수에게) 나.. 이 친구하고 아주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에요.
은수 : ..알아요.
경아 : 알아요?
은수 : (끄덕끄덕)
경아 : (신을 봤다가 다시 은수에게) 그럼 그것도 알고 있었어요?
은수 : (보면)
경아 : 신이 형님네 공장. 누구 때문에 망했는지. 그래서 그 형님이 누구 때문에 죽었는지. 신이 왜 감옥에 들어갔는지.
은수, 경아가 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신이 걱정되서 신을 돌아본다. 신은 말없이 경아를 보고 있다.
경아 : (쓸쓸하게 신을 본다) 다 아는데 나만 몰랐네.
신 : 어떻게 알았어.
경아 : 하긴 내가 말할 기회도 안 줬다. 내가.. 그랬다. 그치?
신 : (담담하게) 몰라도 됐는데. 너하구 상관없는 일이야.
경아 : (목이 메는 거 삼키고) 알았으면 너한테 그렇게 못했을 거야. 그렇게 니 가슴에 상처주고 그 위에 또 못질하고.
못했을 거야. 나 그렇게 나쁜 여자 아니야.
신 : ..알아.
은수. 조용히 몸을 돌린다. 둘만의 대화인 듯하다. 바라보고 있기가 미안해서. 그렇다고 이동하지도 못하고.
경아 : 이런 말.. 이제 다 쓸데없나?
신 : (좀 불안해지는) 너 괜찮아? 무슨 일 있는 거야?
경아 : (울컥 참던 눈물이 솟구치는. 그래서 웃는) 김신 너 지금 내 걱정해주는 거야?
신 : 아무 일 없지?
경아 : ..없어. 그냥. 널 안 만났으면 모른 척 넘어갈려구 했는데 만났으니까 어쩔 수 없네. 신아.
신 : 응.
경아 : 미안해. 용서해.
신 : ..너 바보냐.
경아 : (눈물 훔치며 웃는) 그런데.. 미안하긴 해도 어쩔 수가 없네. 나.. 되돌릴 수는 없어. 내 길.. 계속 갈 수 밖에 없어.
신 : ..그래.
경아 : 나 여왕이 되야 하거든.
신이 끄덕인다. 차마 웃어주진 못하겠다.
S#37. 도우 사무실 / 밤
시디가 마지막 곡을 연주하고 덜컥 이탈을 해서 멈춘다.
조용해진 실내. 열려진 벽 뒤의 조감도. 그림들..
도우가 혼자 창 밖을 보며 앉아있다.
스피커폰이 울린다. 손만 움직여 버튼을 누른다.
여직원 : (조심스레) 더 시키실 일이 있으시면..
도우 : 없어요.
여직원 : 그럼..
도우 : 퇴근하세요.
여직원 : .. 네.
다시 조용해진다.
창 밖을 보고 있는 도우의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
S#38. 경찰서 외경 / 낮
그 위로 들리는.
서장소리 : 그동안 수고가 많았네.
S#39. 서장실
서장이 앉아서 보고 있는 앞에 서 있는 경주와 형사.
서장 : 오늘부로 양우선 사건 내가 직접 지휘하도록 하겠고. 그런 의미에서 일단 거기 수사인원부터 구조조정해야겠어.
지금 몇 명이 붙어있지?
형사 : 다섯명입니다. (에라 할말 하자) 처음에 아홉명에서 다섯명까지 준 겁니다. 더 이상 줄이면 진짜 탐문수사고 뭐고 힘듭니다.
서장 : 나 방금 영어로 말했나?
형사 : 예?
서장 : 내가. 직접. 지휘한다고 했지? 내가. 직접 지휘하는데 세명이면 충분하지 않겠어?
형사 : ...예.
서장 : (경주를 보고) 그리고. 자넨 이만 본청으로 돌아가지.
경주 : 정식 절차 밟았습니다. 공문 다 제출했고..
서장 : 서울도 바쁘잖아. 맨날 시위한다고 난린데.
경주 : (무뚝뚝) 열심히 하겠습니다. 껴주십쇼.
서장 : (밉지만 뭐라 더 못하고) 우선. 그 참고인 아직 델구 있나?
형사 : 그렇습니다. 아직 조사할게..
서장 : (책상 위의 서류를 냅다 후려치며 호통) 경찰이 돼서 말이야. 시민의 인권을 먼저 생각해야지.
제대로 증거도 잡아내지 못하면서 아무나 잡아놔. 니들이 민중의 지팡이야? 당장 풀어줘. 지금 당장!
경주, 그저 묵묵하게 허공만 보고 있다.
S#40. 경찰서 앞
승용차가 도착한다. 안에서 나오는 케이. 도착한 승용차에 타기 전 슬쩍 경찰서를 돌아본다. 미소. 타고.. 출발해간다.
케이가 돌아봤던 경찰서 로비에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경주.
그 옆의 재명이 자기 손에 들린 자판기 커피를 내려다보고 있다. 냄새를 맡아본다. 불안한 얼굴.
경주 : 너두 갈래믄 가라. 민간인 붙잡아 놓구 일 시키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것두 그냥 민간인인가. 미국 변호사래매.
넌 한시간에 얼마 받는 변호사였냐.
재명 : 형사 샐러리로는 쓰기 힘들지.
경주, 체.. 해서 먼저 걸어온다.
재명 따라오며.
재명 : 뭐할건데.
경주 : 박살난 소주병 있었던 데서 사거리까지. 그 시간에 버스나 택시는 탔다는 증거를 못 찾았고.
히치하이크를 했거나. 걸어갔거나. 목격자를 찾아봐야지. 난 구닥다리라 발로 뛰는 형사거든.
S#41. 경찰서 주차장
주차되어있는 경주의 차쪽으로 이동해오며.
재명 : 우리 아버지. 죽었을 때 당신이 형사였으면 좋았을텐데.
경주 : 그건.. 나를 존경한다는 얘기냐.
재명 : 하긴 그럴 리 없지. 우리 아버진 누구를 위해서 학비를 대주고 도와주고 그런 거 했을 리 없으니까.
당신같은 형사가 달려와줬을 리 없지.
경주 : (차 문을 열려다 보는) 근데 너 지금 나한테 반말하고 계시냐?
재명 : 이제 우리 친해졌으니까. 한국말은 친해지면 반말하는 거 맞지? (하더니 손 내민다) 키.
경주가 보다가 어이없어 웃고 차 열쇠를 던져준다. 뒤로 가서 열려다가 발로 두어번 차고 열어 들어간다.
재명이 웃으며 운전석 문을 연다. 역시 안 열린다. 발로 차고 열고 들어간다.
S#42. 농업벤처 앞 / 낮
신의 차가 들어오고 있다. 운전석의 신이 돌아보는 곳.
거기 버스가 한 대 서있고 사람들이 내리고 있다.
카지노 딜러 복장을 한 아가씨부터 제복을 입은 남자. 골프복장을 한 아가씨. 주방장 복장의 남자.
깔끔한 앞치마의 메이드 복장의 아줌마.
신이 어이가 없어서 차를 세운다.
신이 차에서 내리는데 민수가 달려와서.
민수 : 신이 선생. 이거 뭐가 어뜩게 돌아가는 거야.
신 : 저 사람들 뭐에요?
민수 : 몰라. 갑자기 조합 사람들 다 불러대더니 저 버스가 도착한 거야.
어디선가 스피커 소리가 들리고 있다. 어눌하게 종이를 읽는 듯.
소리 : 명도농업벤처 조합원 여러분. 지금 바로 연구동 대회의실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실험실에 자리를 지켜야하는 분들 빼고는 다 오세요. 직업 설명회를 시작한댑니다. 직업설명.. (옆에 누군가에게 묻는)
근데 이게 머여. 무슨 직업을 설명해?
입이 헤 벌어져서 구경하고 있는 농벤 사람들.
내리는 아가씨들은 치어리더처럼 발랄하게 모션을 취해서 사람들을 더 입 벌어지게 하고 있다.
S#43. 대회의실
경쾌한 음악이 깔리는 가운데 어벙벙한 농벤 사람들이 들어서며 구경하는 곳.
앞에서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옆에는 큼직하게 신명도시 조감도가 세워져 있다.
조감도 중에 호텔 카지노 부분을 가리키며.
사회자 : 요 부분에 들어설 호텔 카지노에서는 앞으로 엄청난 인력이 필요하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 원하시는 분은
미리 저쪽에 마련된 데스크에서 지원서 작성을 해주세요. 명도시 원주민들에겐 선지원. 선선발의 혜택을 드리고 있거든요.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책상을 붙여놓고 앞에 지원서를 쌓아놓고 직원들이 접수 준비를 하고 있다.
S#44. 도우 사무실
스피커폰을 켠 채 도우가 건조하게 지시하고 있다.
도우 : 한시간 후면 대형 버스들이 도착할 겁니다. 설명회가 끝나는대로 거기 있는 분들 다 모시고 출발하세요.
대형 음식점 예약해놨으니까 모셔 가시구요.
S#45. 회의실
앞쪽에는 딜러의 제복을 입은 남녀가 워킹하고 있다.
사회자 : 카지노 딜러 아시죠? 조건은 고졸 이상이구요. 일일 8시간 3교대 근무제 되겠습니다.
급여는 초봉이 연봉 2500에서 3000만원. 명도시 카지노 호텔에서는 350명 수용 예정입니다.
멍하니 구경을 하고 있는 농벤 사람들.
그 중에는 민수도 있고. 영준도 있고. 손 흔들던 아낙도 있고.
S#46. 도우 사무실
도우 : 이름난 가수, 개그맨들도 대기하고 있을 거니까 충분히 먹고 즐기게 해주세요.
그런 분들.. 고기하고 술.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앉아서 손뼉치고 구경하는 거 좋아하잖아요. 그 정도면 되지 싶은데?
S#47. 회의실
요리사의 옷을 입은 남녀가 경쾌하게 걸어서 오락가락.
사회자 : 일반조리장. 주방보조. 조리도구 관리. 학력보다는 실력 위주로 선발할 예정입니다.
호텔 하나에 100여명의 주방직 업무자가 필요하구요.
S#48. 회의장 앞
안에서 들리는 음악이 여기도 들리는 가운데.
신이 혼자서 피켓을 세우고 있다. 어제 부서졌던 것을 밤새 고쳐온 것이다.
그 위에 은수가 써줬던 그 종이를 붙인다. 일부 구겨지고 찢어진 곳은 테이프로 붙였다.
옆의 바닥에 쌓여있던 서명서 뭉치를 집어 들다가 돌아본다.
조합장이 보고 있다. 신이 얼른 피켓을 잡더니.
신 : 웬만하면 놔두시죠. 밤새 못질해서 고쳐놨는데.
조합장 : 바라는 게 뭐요.
신 : 예?
조합장 : 바라는 게 있을 거 아냐. 바라는 것도 없이 이러진 않을 거 아니냐고.
신 : ...말했잖아요. 아파트 세동. 학교 하나. 보건소 하나.
그렇게 말하는 사이 영준과 농벤 사람 몇이 뒤늦게 회의장으로 들어가며 신과 조합장을 힐끗거린다.
S#49. 회의장
농벤 사람들이 와아 웃고 있다.
호텔 룸메이드 복장을 한 아줌마 둘이 코믹하게 걷고 있다.
사회자 : 호텔 룸메이드. 이건 건강하고 정직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전해볼만 합니다. 기술 필요없고.
그러니 취업이 어려운 삼십대. 사십대 아주머니들 도전해 보세요. 주 5일 근무에. 정년퇴직까지 일할 수 있지.
무엇보다 팁이라는 짭짤한 부수입이 있어요.
구경하는 사람들 중에 여자들이 숙덕거리고 있다.
S#50. 회의실 앞
조합장 : 당신같은 뜨내기가 우리를 왜 도와줘. 어떻게 도와줘. 처음부터 믿어서는 안 됐는데.
신 : 돕겠다는 생각 같은 거 처음부터 없었어요. 나같은 놈이 누굴 도울 수 있다는 생각, 안해요.
조합장 : 그럼 대체 우리한테 왜 접근한 거야.
신 : ...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나한테 싸워서 이겨야 하는 놈이 하나 있는데요. 그 놈을 쫓아온 거 뿐이에요. 근데 이상하게요.
그 놈이 가는 길에는 이렇게 약하고 모자라고 그래서 당하는 사람들이 즐비하네요. 내 발에 자꾸 걸린다구요.
조합장 : 우리더러 모자란 놈들이라고 하는 건가. 지금?
신 : 그럼요. 아주 모자라죠. 누굴 밟아본 적이 없어서 자기가 밟히는 것도 모르구요. 누구한테 어뜩게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S#51. 회의실 내부
캐디 복장의 아가씨가 골프채를 흔들며 돌아가는데 사회자가 마무리 멘트를 하고 있다. 음악은 꺼져 있고.
사회자 : 일단 밖으로 나가시면 버스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한시간 정도 대기할 거니까요.
이 자리에 못나오신 조합원 분들. 가족 친지분들 다 부르세요. 이 밤. 신나게 먹고 마시면서 미래를 얘기해보는 겁니다.
사회자, 만족해서 마이크를 끄는데
신소리 : 거짓말입니다.
웅성거리며 움직이려던 사람들 돌아본다.
뒷문에서부터 들어오는 신. 한손에는 팻말. 한손에는 서명서를 들고 있다.
신 : 절대 속으면 안됩니다. 연봉 이천? 삼천? 평생직장이라구요? 이 농벤 땅 팔고 그 직장 잡으라구요? 웃기지 말라 그래요.
신이 회의장의 중앙까지 와서 피켓을 옆에 세우더니.
신 : 저 사람들 누가 보낸지 알아요? (하며 앞에서 알짱거리는 메이드 복장이며 요리사 복장의 사람들을 가리키며)
그 놈이 이 명도시 뭘루 만들려는지 아냐고요. 그 놈은 여기를 지 왕국으로 만들려고 하는데요.
지 왕국에 하인이 필요하고 종이 필요한 거에요. 보고도 모르겠어요?
사회자 : (뒤에서 박수를 쳐가며) 자자 나가세요. 밖에 버스 기다립니다. 트로트 가수 아이돌 가수 다 기다려요.
자녀분들 오라 하세요.
신 : 여러분 지난 칠년동안 이 농벤 땅에서 고생한 거 알아요. 앞으로도 계속 고생해야 되는 거 아는데요. 그래도 여러분 땅이고
여러분이 주인이었잖아요. 그거 다 버리구 하인 할라구요? 평생 먹여준대니까? 그게 다에요? 그게 당신들 꿈이냐고.
신이 소리치는 동안 하나씩 하나씩 농벤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공연을 했던 자들도 나가고. 지원서를 받던 직원들도 나가고.
신 : (피켓을 들더니 더 크게) 여기 32조. 우리가 조합원 과반수의 서명을 받아서 농림부 장관한테 소를 제출하면요.
조합장님 싸인 취소시킬 수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머뭇거리던 민수도 에라.. 해서 사람들을 따라 나간다.
이제 회의장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뒷문에서 조합장만 보고 서있다.
그래도 꿋꿋하게 회의장 가운데서 소리치는 신.
신 : 이 땅 400에 팔 수 있거든요. 그 돈 받으면 바로 저 산 너머에 이만한 땅 사구요. 그 땅에 서민아파트 세동. 학교 하나.
보건소도 하나 지을 수 있습니다.
어느덧 뒷문의 조합장도 가버리고 회의장에는 신만 남아있다.
신이 목이 아파서 기침을 한다. 기침을 하다가 우두커니 서있다.
S#52. 도우 사무실
책상에 걸터 앉은 도우가 말하고 있다.
도우 : 벌레하고 동물이 뭐가 다른지 알아? 동물은 그래도 예측할 수가 있잖아. 다음에 뭐를 할지. 덤빌지. 도망갈지.
그런데 벌레는 그게 안 돼. 이 다음에 어디로 튈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 (뒤를 돌아본다) 안 그래?
도우가 보는 곳. 사무실 입구 쪽 그늘에 언제나처럼 케이가 서 있다.
S#53. 뮤즈 홀
문을 열고 들어서던 재명이 내부를 휘 둘러보고는.
재명 : 뭐야. 다들 어디 가는데.
안에서는 문호와 경태가 나갈 준비를 하고 황황히 나오고 있었다.
경태가 급하게 손잭을 꼽고.
경태 : 아직 안 갑니다. 기다립니다.
재명 : 뭘 기다려.
경태 : 저기.. 올 겁니다. 왔습니다.
동시에 문이 열리며 은수가 급히 들어선다.
은수 : 제가 늦었죠?
경태 : 늦었습니다. 우리 많이 기다렸습니다. 그러니까 왜 온다구 합니까. 우리가 가면서 태우면 되는 거였습니다.
(하면서 돌아나가는 은수를 졸졸) 그게 더 빨랐습니다. 한참 더 빨랐습니다.
재명 : 어이. 그러니까 어디..
문호 : 너두 갈래?
하면서 벌써 나갔다.
재명, 뭐야.. 해서 옆의 의자에 퍼질러 앉았다가 늘어졌다가.. 에이 일어나서 나간다.
S#54. 채회장 집 정원 / 낮
지키던 조폭 하나가 대문에서부터 안내해서 올라온다.
따라 들어오는 경아.
S#55. 거실
명선이 기다리고 서 있다. 들어서던 경아가 멈칫한다.
명선 : 서재에서 기다리구 계셔.
경아 : 언니..
명선 : 됐어. 들어가 봐.
웃지 않고 명선이 부엌 쪽으로 움직인다.
경아 잠시 명선 쪽을 보다가 서재 쪽으로.
S#56. 서재
소파에 앉아서 돋보기를 쓰고 신문을 보더 채회장이 안경 너머로 들어서는 경아를 본다.
경아 : 안녕하셨어요.
채회장 : (보다가 킥킥 웃는다)
경아 : 건강은 어떠세요.
채회장 : 좋아. 아주우 좋아. 며느리부터 시작해서 죄다 재미있게 만들어주는데 오래 살아야지. 이렇게 볼 게 많은데.
경아 : 앉아두 되요?
채회장 : 왜. 얘기가 길어?
경아 : 길어질 거 같아요.
채회장 : 니 남편에 대해서 알아보구 왔어? 제대로 알기 전엔 오지 말라구 했잖아.
경아 : 그거 때문에 왔어요. 가르쳐 주십사구요.
채회장이 경아를 보다가 또 킥킥 웃는다.
채회장 : 알면 어쩔 생각인데. 늦기 전에 도망칠려구?
경아 : (앞에 앉더니) 아니요. 도망은 안 치겠다구 약속했어요. 도망친 결과가 어떤 건지는 저, 잘 알거든요. 아버님.
그저.. 알구 싶어요. 그이. 내가 오래 공들여 사랑을 하면 그거 알아줄 순 있을까요?
채회장 : 사랑이라.. (비웃는)
경아 : 저 그이 수제자인데요. 맨 처음에 배운 게 그거였어요. 장기투자를 하려면 기업 분석을 철저히 하는 게 먼저다.
그래서 다시 여쭐께요. 그이라는 사람. 얼마나 투가가치가 있는 상품인지.. 알고 싶어요.
채회장이 이제 비웃음기가 없이 경아를 새삼 보고 있다.
S#57. 농벤 외경 / 밤
이제 어두워 지고 있는 농벤의 외경.
S#58. 농벤 회의실
여전히 비어있는 농벤의 회의실. 아직 불 켜지 않아서 어두운 실내.
그 가운데 혼자 앉아있는 신. 옆에는 피켓을 세우고.
언젠가 패배했던 총회장에서처럼 의자에 늘어져 앉아서 천정을 보고 있다.
서명지를 뭉쳐서 공처럼 만든 것을 천정에 던졌다가 받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S#59. 농벤 입구 / 밤
문호의 경차가 오고 있다.
운전석에는 문호. 조수석에는 구겨진 채 깊이 잠든 재명. 뒷좌석에는 경태와 은수.
문호가 어어 해서 속도를 줄인다. 입구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문호 : 아가씨.
은수 : 네?
문호 : 김신이가 혼자 있을 거라구 하지 않았어?
은수 : 그럴 건데..
문호 : 근데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어.
S#60. 회의장 내부
늘어져 있던 신이 소리를 듣는다. 다가오는 발소리들.
어라 해서 일어나 앉는데 앞 뒤의 입구로 들어서는 사람들. (너무 새마을처럼 친근한 분위기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레)
누군가 불을 켜서 눈이 부신 신이 눈을 가리는데.
민수 : 봐. 아직 있을 거라구 했잖아.
아낙1 : 아 왜 여기 혼자 이러구 있어. 같이 갔음 제대로 먹구 왔을텐데.
신이 벙벙한 사이 사람들이 그의 주위를 둘러싼다.
둘러싸면서도 내내 떠드는 사람들. '아따 그 가수들 춤 잘 추대. 텔레비전하고 똑같드라../니는 고기 사인분은 먹었재./아따 지는?'
조합장이 바로 신의 앞에 서더니.
조합장 : 저 사람들 얘기는 실컷 듣고 왔으니까 이제 선생 얘기를 해봐.
아낙2 : 선생은 선생인데 깡패 선생이지.
사람들 웃는다.
민수 : 아까 이 깡패 선생 아주 감동적이었어 어? (흉내) 여러분은 모두 하인이 될 겁니까아?
아낙1 : 그 하인 제복이 천은 고급이더만. (하며 모델 걷는 흉내 내며) 그거 입으면 이렇게 걸어야 하는갑더라. 이래이래.. 요래요래.
사람들 웃는다.
신 : 그니까.. 싸인들 하구 오신 거 아니에요? 그 직업.. 지원서.
민수 : 고기 사준대는데 그럼 안 먹구 와?
아낙2 : 근데 그거 한우 맞나? 미국산 사준 건 아니겠지?
'설마..' 하면서 와글와글. 하는데 조합장이 손을 들어 조용히 시키더니.
조합장 : 신이선생이 잘못 알구 있는 게 있어. 우리.. 그렇게 모자라지 않어.
신 : ..죄송합니다.
조합장 : 처음부터 이 땅 넘길 생각 없었어. 일단 싸인하고 농림부 제소해서 시간을 끌 생각이었지. 우리 농산물 출하될 때까지.
민수 : 그건 우리 비밀 계획이었는데 선생이 너무 떠들어 댄거야.
신 : (할 말을 잃었다)
조합장 : 우리 조합 천명이 모여서 칠년 째야. 당할만큼 당하고 싸울만큼 싸워 본 사람들이야.
물론 우리 사이에도 가끔 쥐새끼들이 있지만 그야 사람이니 어쩔 수 없고.
사람들 뒤에 있던 영준이 아무도 모르게 고개를 숙인다.
조합장 : 그러다보니 좀 배타적인 건 사실이야. 믿지 못해서 미안허이. 선생은 그냥 투자 받는 데나 이용할 생각이었거든.
신이 어이도 없고, 화도 나고. 기가 막히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허허.
신 : 그럼 나 혼자.. 쇼한 겁니까? 지금까지. 나 혼자..
민수 : (위로하듯 신의 등을 툭툭 쳐주며)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니까. 이해해.
조합장 : 그러니까 선생은 뭔 수가 있긴 한 거야? 우리가 쫓겨나기 전에 평당 400만원. 총 500억 이상 받아낼 자신이 있어요?
사람들 와글와글 '들어보자구.. 얘기 좀 해봐아.'
신이 그제야 정신이 차려져서 자세를 바로 한다. 모두 조용히 신의 말을 기다린다.
신 : 자신 있습니다. 될 거라구 생각하구요.
S#61. 뒷문 밖 복도
안을 들여다보던 문호가 뒤를 본다.
문호 : 이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누구 아는 사람?
경태 : (열심히 생각 중이다)
은수 : 계란.. 인가봐요.
문호 : 뭐?
은수 : 아니. 그냥.. 김신씨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거든요. 백만개의 계란을 찾는다고..
은수. 말해놓고 민망해서 우물쭈물.
S#62. 주차장 / 밤
조수석에서 구겨져서 잠들어 있던 재명이 돌아눕다가 아파서 잠이 깬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자기 뿐이다. '뭐야 이거.'
S#63. 농벤 마당 한구석 / 밤
영준이 소리를 낮춰 전화를 하고 있다.
영준 : 저두 이게 어떻게 된건지 잘 모르겠는데요. 여기 땅. 안 팔기로 한 거 맞구요. 김신이하구 사람들하구 소주 마시러 갔습니다.
디게 친해져서 갔는데요.
S#64. 도우 사무실 / 밤
도우가 수화기를 가만히 내려놓는다. 의자를 돌려 창을 향한다. 창 밖은 어둠.
S#65. 경아네 안방
스탠드 하나만이 어두운 빛을 내는 방.
커다란 침대에 경아가 혼자 누워있다. 잠들지 못하고 있다.
S#66. 뮤즈 홀
주전자의 뜨거운 물이 졸졸 떨어지고 있다. 떨어진 물이 필터를 거치며 머그 잔으로 들어간다.
깊은 밤. 빈 홀의 카운터에서 신이 그동안 배운 실력으로 제법 그럴싸하게 드롭 커피를 만들고 있다.
S#67. 경태의 방
경태가 의자에 앉아 빙빙 돌기를 하고 있다가,
뭔가가 머리에 떠오른 듯 주루루 의자를 끌어 모니터 앞으로 가더니 열심히 타자를 치기 시작한다.
S#68. 뮤즈 이층
커피 머그잔을 들고 이층으로 올라와 지나가려던 신이 멈춰서 본다.
거기 소파에서 뒤척거리고 있는 재명.
신 : 안 자냐?
재명 : 잔다.
신 : (웃고 옆의 의자에 앉는다. 편안하게. 커피 한모금 마시고..) 재명.
재명 : (아 귀찮아. 돌아눕는)
신 : 그러고보니 너에 대해선 아는 게 별루 없네. 어이. 도재명.
재명 : (으이그 해서 일어나 앉는다. 아직 떠지지 않는 눈) 니가 여자냐. 나에 대해 알아서 뭐할라고.
신 : 너 어떤 변호사였냐.
재명 : 이기는 변호사.
신 : 미국 영화 보면 변호사가 그런 거 하잖아. 이혼하는데 따라다니거나 법정에서 떠들어대거나.. 넌 전문이 뭔데.
재명 : (영어) 살인. 강도. 마약. 납치.
신 : 한국말로 해.
재명 : 나는 이기는 변호사니까 그런 놈들을 풀어준다. 풀어주면 다음 날 다시 살인하고. 마약하고. 누굴 죽이거나 자기가 죽어.
신 : 니 인생도 참 쓰잘데기 없었구나.
재명 : 니 인생은 더하지 않았나. 백수.
신 : 그랬지. 완전.. 쓰잘데기없는 인생이었는데. (더 편히 기대앉으며) 나 가끔 그런 생각 든다.
죽은 우리 형이 아무래두 간섭하구 있는 거 같다구. 원래 잔소리가 심했거든. 나 놀구 먹는 꼴을 못 봐줬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여기까지 날 밀고 온 게 아닌가.. 우리 형이.
재명 : 그럼 내가 여기 있는 건 우리 아버지가 델구 온 거냐? (코웃음) 노 땡쓰.
다시 누워버린다.
신, 커피를 한모금 더. 형이 그리운 밤이다.
S#69. 채회장 거실
채회장이 돋보기를 쓰고 책상 가득이 쌓인 서류들을 뒤져보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면 창 밖이 훤하게 밝아져 오고 있다.
S#70. 도우 사무실
창 밖이 환하다.
그 자세 그대로 밝아오는 창 밖을 보던 도우가 문득 의자를 돌려 앉는다.
스피커폰을 누르고 번호를 띠띠띠 하나하나 누른다. (핸드폰번호)
S#71. 은수의 다락방
은수가 커다란 박스에 다락방의 짐들을 정리중이다. 인형같은 것들..
옆에 놓았더 핸드폰이 울린다. 들어서 본다. 모르는 전화번호다. 받아서.
은수 : 여보세요.
S#72. 도우 사무실
스피커폰을 들리는 은수의 목소리.
은수소리 : 여보세요. 누구세요?
도우는 리모콘을 누른다. 시디가 돌며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S#73. 다락방
은수 : 여보세..
하다가 멈춘다. 재즈가 들리고 있다. 누군지 바로 알겠다. 숨죽여 듣다가.
은수 : 오빠?
S#74. 도우의 사무실
스피커폰에서 들리는 은수의 목소리.
은수소리 : 오빠지? ..잘 안 들려. 여보세요?
도우가 수화기를 들어서 스피커를 향해 가만히 놓아준다.
이제 은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계속되는 음악.
도우가 일어서서 밖으로 나간다.
책상 위에 놓여진 수화기. 혼자 돌고 있는 시디 플레이어.
S#75. 뮤즈 앞
간판이 내놓아져 있다. 칠판에는 오늘의 감상 음악이 적혀져 있다.
중년의 남자 손님 하나가 칠판을 읽어보고 안으로 들어간다.
S#76. 뮤즈 내부
실내에는 밖에 적어놓은 그 음악이 흐르고 있고.
몇 명의 손님들이 각자 자리에 앉아서 음악을 감상하고 있다.
새로 들어온 손님이 자리를 잡아 앉는다.
경태가 재빨리 다가와서 음료수를 내려놓고 메뉴를 건네준다.
카운터에서는 문호가 잔을 닦으며 흐믓해서 손님들을 보고 있다.
카운터 테이블 위에 있는 핸드폰이 진동으로 운다.
문호가 얼른 들고 뒤쪽으로 가며 낮은 소리로.
문호 : 여보세요.
주문을 받은 경태가 와서 보면 문호는 구석에 등을 돌리고 전화 중.
경태가 커피 잔을 꺼내서 커피를 만들 준비를 한다.
//문호 쪽
문호 : 이야 진짜 오랜만이네. 나? 나야 깨끗한 시민으로 산지 오래되었지. 어? ..좋지. 한번 봐. 근데 나 건들 생각은 마라.
다시 말하지만 나 깨애끗하다.
// 이층에서 내려오는 신.
카운터의 경태에게 '나갔다 올게.' 입모양만으로.
경태가 끄덕끄덕한다.
뒤이어 이층에서 내려오는 재명. 손짓으로 바이. 경태도 어색하게 따라한다. 바이.
신과 재명이 둘 다 나갔다.
S#77. 거리
달려오던 신의 차가 신호를 받아 선다.
운전대의 신이 핸들을 톡톡 치며 기다린다. 옆 좌석의 재명이 의자를 뒤로 눕히고 있고.
신의 핸드폰이 울린다. 들어서 이름을 확인한다.
S#78. 은수 방
은수가 전화를 하고 있다. 잔뜩 겁에 질려 있다.
은수 : 이런 말 너무 말이 안 되는 거 아는데요. 오빠. 뭔가 이상해요. 김신씨. 아무 일 없죠?
왜 이런 생각을 하느냐구 하면 뭐라고 대답할 순 없는데요. 너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요. 김신씨. 아무 일 없죠?
S#79. 거리
편히 누운 재명이 옆을 돌아본다.
신이 불안에 잠겨 앞을 보고 있다. 신호등은 여전히 빨간색.
S#80. 저급 호텔 커피숍
잘 빼입은 문호가 들어선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손을 든다.
거기 달공(전에 고미술 사기를 칠 때의 동료 중 하나)이 손을 들어보인다. 다가서 반갑게 악수를 하고 어깨도 쳐가며.
문호 : 어이구 이게 몇 년만이냐. 근데 왜 이렇게 늙었어.
달공 : 자긴 어쩌고. 그거 분장한 거 아니지?
킬킬 웃으며 마주 앉으며.
문호 : 그나저나 웬일이냐. 형님한테 안부인사를 다 여쭙고. 너 마산인가 어디서 무슨 중국집인가 한다고 들은 거 같은데.
달공 : 그거 말아먹은 게 언젠데. 그 담에 닭집도 하나 차렸다가 역시 (손으로 날린 표시)
문호 : 제수씨는.
달공 : 헤어진 게 언젠데..
하며 앞에 놓인 물을 들어마시는데. 어쩐지 문호를 바로 보지 못하고 있다.
문호가 빤히 달공을 본다. 역시 피하는 시선.
문호 : (조금 불안해지며) 뭐야. 너 무슨 사고 쳤냐?
달공 : 문호야.
문호 : 말해.
달공 : 내가 사는 게 너무 힘들다. 그러다보니 참 별짓을 다 하게 되네.
문호 : 무슨 짓.
달공 : 근데 솔직히 이 바닥에 친구란 건 없지 않냐? 안 그냐? 기는 놈 위에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 그러구 사는 거지.
우리가.. 안 그냐?
문호 완전히 불안해지며 벌떡 일어난다. 마악 몸을 돌리는데 입구에서 튀어 들어오는 사복형사들.
일부는 달공을 붙잡고 일부는 문호를 붙잡는다.
문호 저도 모르게 도망쳐보려고 하지만 어림도 없다.
형사 하나가 문호의 팔목을 채 잡으며.
형사 : 강동환씨라구 알죠?
문호 : 누구요?
형사 : 당신이 사기 치려던 사람 이름을 왜 몰라.
문호의 팔목에 채칵 수갑이 채워진다.
형사 : 당신 박문호 맞지? 상습사기꾼.
S#81. 뮤즈 내부
경태가 마지막 손님에게 잔돈을 거슬러 준다. 시계를 본다. 갸우뚱.. 문호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카운터에서 클로즈 안내판을 들고 한 손가락을 안내판에 꼽으며.
경태 : 뮤즈. 문 닫을 시간입니다. 삼촌 아직도 안 왔습니다. 할 수 없습니다. 마징거 혼자 문 닫습니다.
오늘 마징거 혼자 진짜 힘들었습니다.
끄덕끄덕.. 하고는 입구 쪽으로 가는데.
느닷없이 문이 벌컥 열리며 쳐들어오는 형사들.
형사2 : 안경태씨?
경태 놀라서 들고 있던 안내판을 떨군다.
형사2 : 허위 사실 유포. 명예 훼손. 기타 등등 위반으로 체포합니다. 피의자, 묵비권 행사할 수 있고요.
모든 발언이 법정에서 불리하게 쓰일 수 있고요. 변호사 조언 받을 권리 있습니다.
경태의 팔목에 수갑이 채워진다. 경태 다리에 힘이 빠져 무너지려고 한다.
형사 둘이 양쪽에서 잡아 질질 입구로 끌고 나간다.
끌려가던 경태가 애절한 얼굴로 뒤를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