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화양연화(花樣年華)의 기억 조기역사관
당섬선착장에서 연육교를 지나 왼편으로 올라가다보면 산 정상에
궁궐 같은 건물과 함께 조기배가 둥둥 떠 있다. 조기역사관은
선착장 근처에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조기 잡는 배를 왜 바다
근처가 아니라 산꼭대기에다 만들어 놓았을까? 조기역사관에
들어가 전시물을 살펴보면 연평도에 조기가 밀려오던
시절의 영화(榮華)를 알게 된다.
조기는 연평도에 황금시대를 열어 주었다. 1957년에 연평도
전경을 찍은 사진을 보면 진짜 이곳이 연평도인가 의심할 정도로
번화하다. 조기를 잡는 기간은 4월 중순부터 6월 상순까지 약 50
일이었는데 전국의 어선들이 연평도로 모여 3천여 척의 배에 선원
수만도 수 만 명이 오고 갔으며 연평도에서는 개도 돈을 물고
다니니 연평도에 가면 돈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조기파시는 일제 말기 최고 절정을 이루어 큰돈이 몰렸고
돈을 따라 술집과 잡화점이 즐비했다.
1950년대까지 흥청거리던 연평파시는 태풍 사라호가
지나간 이후 조기가 급격히 사라지면서 막을 내렸고 지금은
연평 파출소 옆에서 시작되는 조기파시 탐방로를 걸으며
지나간 과거의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전시관 2층으로
올라가면 사방이 툭 트인 누마루 형태의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서는 1 · 2차 연평해전이 벌어졌던 장소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해질 무렵이면 멀리 북녘 땅을 바라보며
바다로 사라지는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일몰 포인트이다.
조기역사관 뒤편으로 가면 추락주의라고 쓰인 푯말 왼쪽으로
빠삐용절벽을 볼 수 있다. 이곳에 온 사람들이 ‘이 절벽은
영화 <빠삐용>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탈출하기
위해 뛰어내린 절벽과 닮았다’고 해서 자연스레 빠삐용
절벽이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빠삐용절벽 아래로
푸른 바다와 하얀 백사장이 어우러져 있는 광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바다에 빠질 것 같은 아찔함이 있다.
연평도 등대공원은 평화공원 맞은편에 있다. 해방 전후부터
1968년까지 황금의 조기파시를 이루었던 연평도 앞바다에서
, 전국에서 모여든 어선의 길잡이로 1960년 3월 첫 점등을
시작으로 찬란한 황금어장을 굽어 비추어 왔다. 1974년
7월 국가안보의 목적으로 일시 소등하게 되었고 1987년
4월 등대로서의 기능이 없어지면서 이제는 조용히 지난
과거를 기억하며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다.